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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막사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면서 원효는 신라와 백제 백성 모두 불성을 지닌 존재로 생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원효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임종을 지켜주고 망자의 장례를 치르고 전쟁 희생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세력을 넓히려는 탐욕을 거둬들일 때 평화로운 세상은 자리할진대 서라벌 귀족들은 백성의 안위에는 무심했다. 원효가 살리려했던 백제군 병사가 찌른 죽창에 눈물을 흘리며 죽어간 혜공 스님의 최후를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베풀었던 선행이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는 자괴감으로 제자의 비애와 고독은 더했다. 벌거숭이 민둥산을 산림으로 일궈 전쟁 유민들과 상생하기를 발원하며 실천하였던 공덕이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에서도 스님은 미소를 짓고는 육신의 껍질을 벗으셨다.
목숨을 바쳐도 좋을 만한 일을 하면서 살기를 원하던 원효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무고한 이들이 생명을 잃어가는 현실을 묵과할 수 없어 전쟁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권세를 부리는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사랑받는 임금으로 살고 싶었던 선덕 여왕은 정해진 운명대로 나라를 통치하며 감내하는 생활로 생을 마감하자 김춘추는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권력욕을 가시화하였다. 꿈꾸는 대로 살고자 하였던 요석이 아버지 야망의 희생물로 전락해 원치 않은 결혼을 감내하면서도 원효의 발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원효는 경전에 통달하였음에도 경전에 묶여 살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향하며 발길 닿는 곳을 수행 처로 삼아 부처님 법을 실천하며 만인을 위해 살기를 바랐다. 아미타림 보호를 위해 신라에서 사라지는 게 최선이라 여긴 원효였지만 관념이 조작해낸 차별하는 마음의 고리를 끊는 깨달음은 당나라 유학의 도정에서 발길을 돌려 마음먹은 대로 행하는 본질로 작용했다. 진골 출신의 의상은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불교로 치세를 하려던 신라 국사 자리에 올라 귀족 불교의 울타리를 고수하였다.
아미타림 보호를 위해 신라를 벗어나려 했던 원효는 아미타림 백성을 짓밟는 가학적인 폭력성에 맞서 정면 대결함으로써 양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에 나섰다. 무고한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들을 서슴지 않은 기득권을 자행하던 이들은 자리보전을 위해서는 딸의 목숨까지 빼앗으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눈부처 같은 요석이 무애한 사랑을 원효에게 전하였던 요석이 정략결혼의 희생 제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일은 그동안의 수행 생활에 새로운 변화의 물길을 열어주었다. 서라벌로 돌아온 원효는 허드렛일을 자처하며 경전 공부에 매진하여 불법을 궁구하던 원효는 분황사 개혁을 이끌었고,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현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株)’ 낡은 질서를 유지하는 규범의 틀을 깨고 종교적 권위에서 벗어나 핍박받는 민중의 삶속으로 들어가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일로 화엄 세상을 가꾸려는 원효의 실천적 의지가 극명해진다. 황룡사 백고좌 법회가 열리는 자리에서 권력과 거리를 둔 채 백성 편에서 함께 살아갈 에너지를 전하였던 원효의 설법에 동요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김춘추는 딸을 앞세워 원효를 파계승으로 전락시키려 했으나 그 뜻을 간파해 통찰력 있게 대처하였다. 원효라는 법명을 소성으로 바꾸고 삼독(三毒)을 씻어내기 위해 삼학(三學)으로 수행하며 스스로 저잣거리의 백성들과 함께 살아갔다. 작은 그릇이라는 뜻의 법명으로 부처의 본래의 모습을 확인하며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며 정서적 치유를 바랐던 원효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독경과 울력으로 화엄 세상을 장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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