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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발라드의 계절이다. 가을.
이제 곧 발라드 음반들이 쏟아져 나올 듯 하다. 성시경, 신승훈 등등 쟁쟁한 발라드 가수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음반을 짧지 않은 공백 끝에 드디어 들고 나온다 한다. 오, 게다가 이번엔 가요계에 무슨 바람이라도 분 것인지 잠적했던 가수들이 너도 나도 새 앨범을 들고 컴백하신다 한다. 이거 정말,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건 10월이나 되어야 나온다는 음반들. 평소에도 발라드를 좋아하고, 가을이 되면 옛날의 것들과 신선한 것들을 골고루 들어주며 홀로 청승을 즐기는 나는 이미 9월부터 발라드에 목말라 있었다. 전부터 즐겨 듣던 발라드들은 이미 너무도 많이 들어서 질리기 직전이고, 최근 발표된 곡들은 별로 귀에 꽂히질 않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 음반을 알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것은 라디오. 게스트로 나온 이승기가 열심히 새 음반을 홍보하고 있었고, 곧 이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소라 원곡의 ‘제발’. 처음에 곡 설명을 들었을 땐 어? 이승기가 이소라 노래를 부른다고? 소화할 수 있겠어?? 싶었지만, 막상 들어보니.
정말 괜찮았다. 애절하다 못해 처절한 느낌마저 주는 이소라의 ‘제발’을, 이승기 역시 처절하게, 그러나 퍽이나 다른 느낌으로 소화해 내고 있었다. 어어? 로 시작하고 오오... 로 감상을 마친 곡. 느낌이 좋아서, 앨범 정보를 찾아보았다.
앨범은 가을을 대놓고 겨냥한 듯한 컨셉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라는 중의적인 앨범의 타이틀은 이 앨범의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시켜 놓은 듯 하다. 남자인 이승기가 부르는, 여자들의 사랑 노래. 딱히 들을 음반도 없고, 이승기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리메이크 음반 자체도 좋아하는 편이고. 거기에 자켓도 마음에 든 데다 음반에서 느껴지는 전체적 분위기에 끌려서, 뭐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덜컥 음반을 주문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승기 음반으로는 처음 산 음반이 바로 이 리메이크다. 뭐 어쨌거나.
받아보고 들어본 지금, 생각보다 꽤 만족스러운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자들 노래만 리메이크 한 것이다 보니 간혹 원곡이 생각나고, 그 익숙한 느낌과는 좀 다른 생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음, 예를 들어서 ‘내 안의 그대’ 같은 경우는 서영은이 불렀던 원곡이 워낙에 강렬해서 처음 들었을 땐 왠지 어색했다. 하지만 뭐랄까, 듣다 보니 익숙해져서인지 이젠 퍽 귀엽게 또 자연스럽게 들린다. 어떻게 들으면 남자애가 노래방에서 여자 노래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긴. 그게 바로 이승기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노래 잘 부르는 남자 친구 같은 느낌. 다만 그것이 장점이자 한계로도 작용할 수가 있겠지만, 뭐 어떤가. 성시경은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노래 잘하는 옆집 대학생 오빠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듯 하지만 여전히 매력 있고, 여전히 인기 있는데. (그리고 나도 여전히 좋아하고...;) (사실 5집을 무지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타이틀곡 ‘제발’은 위에서도 말했듯 정말 좋다. 타이틀로 꼽기에 아쉬움이 전혀 없고, 이승기만의 감성으로 잘 소화해낸 듯 하다. 자칫 이소라의 그늘에 가려 어설픈 곡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을, 정말 잘 불러냈다. 뮤직비디오도 한 번 보고 싶다 (아직 못봤음...;)
‘한번만 더’는 사실 원곡은 잘 모르겠고, 나얼 리메이크 버전으로 워낙 좋아했던 곡이라 기대를 했다. 오, 그런데 나얼 버전과 거의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더군. 훨씬 경쾌하고, 그래서 이승기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난 이승기가 발라드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이런 분위기의 곡을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1집 때 ‘J에게’도 그런 맥락에서 좋아했었고, 그래서 2집 후속곡이 ‘외쳐본다’(이건 그 정도로 경쾌한(?) 곡은 아니지만, 시원시원해서 좋았다)이길 바랬건만... 현실은, 타이틀인 ‘하기 힘든 말’보다도 훨씬 더 처절한 ‘입모양’이었다는... 뭐 어쨌거나, 이 음반을 사실 분은 물론이고 사지 않으실 분께도 한 번쯤 들어보시길 추천하고 싶은 노래다. ‘한번만 더’.
그리고 또 추천하고 싶은 노래, ‘원하고 원망하죠’! 이거 사실 원곡을 워낙에 좋아해서 망쳐놓기만 해 봐... 하는 심리로 들었는데 의외로 정말 좋았다. 원곡과 분위기 자체는 거의 똑같은데 아무래도 보컬이 천지차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달라서 완전히 다른 곡을 듣는 것 같다는 착각이. 어쨌거나 애절하다, 좋다. 원곡이 워낙에 좋기도 하지만, 별다른 기교 없이 어찌 들으면 내추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잔하게, 덤덤한 듯 부르는 이승기의 보컬과 어우러지니 이것 또한 조화가 괜찮다.
리아의 명곡 ‘눈물’도 이승기의 보컬로 다시 한 번.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다. 사실 이 곡은 반주까지 아주... 노래방에서 노래 잘하는 남자애가 부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아주 강력하게 주지만, 외려 거기에서 특별한 매력이 느껴진다. 들으면서 어, 귀엽다! (노래방에서 이승기가 부르는 거 완전 상상...;) 했다는. 뭐 원체 귀여운 노래는 아니지만...
그 외에도 트랙 리스트만 보면 헉, 이걸 남자가? 싶은 매우 여성스런 곡들로 이 음반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양파의 ‘아디오’라든지 장나라의 ‘고백’같은. 그래서 처음 CD를 받아들고는 헉... 이거 괜히 산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 들어보니 좋다. 예상 이상으로 잘 소화해 냈다. 색다른, 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듣기 편하고 자연스럽고, 워낙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곡들을 선곡해 놓은 음반이라 곡 자체가 이상할까 망설일 필요도 없고 (뭐 그게 리메이크 음반의 최강점이 아니겠느냐만은...). 좋긴 좋지만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식상한 경지에 도달한 노래들을 이승기의 보컬로 듣는 것이 꽤나 새롭고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힘 잔뜩 줘서 억지 기교 부려가며 귀를 괴롭게 하는 요즘의 화려한 창법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느끼하지도 심심하지도 않은 그런 자연스러움으로 불러낸 리메이크라 가식 없이 다가왔던 것 같다. 언제 들어도 부담 없고 몇 번을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 진솔한 사랑 노래들.
가을에 듣기 좋은 음반으로, 누구에게든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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