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0.0
  • 50대 7.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그토록 황홀하고 순수한 '사랑'의 기원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그토록 황홀하고 순수한 '사랑'의 기원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내용보기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 작가정신  그토록 황홀하고 순수한 '사랑'의 기원 ​        방에는 가구 하나 없이 가운데에 덩그러니 욕조만이 놓여있다. 매일 밤 그녀가 욕조 속으로 들어가 온전히 아늑한 세상으로 들어선다. 깊은 밤, 그녀의 방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당신'은 계속 듣는다. "수장(水葬)이야말로 가장 정결한 죽음"이라는 거창한 말에 섬뜩하다. 그리고 '당
"그토록 황홀하고 순수한 '사랑'의 기원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내용보기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 작가정신

 그토록 황홀하고 순수한 '사랑'의 기원

 

 

 

 방에는 가구 하나 없이 가운데에 덩그러니 욕조만이 놓여있다. 매일 밤 그녀가 욕조 속으로 들어가 온전히 아늑한 세상으로 들어선다. 깊은 밤, 그녀의 방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당신'은 계속 듣는다. "수장(水葬)이야말로 가장 정결한 죽음"이라는 거창한 말에 섬뜩하다. 그리고 '당신'은 소설에 끝,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처럼 욕조에 물을 틀고 몸을 담근다. 바다만큼 넓어진 욕조를 느낀다. 그리고 물속으로, 물속으로.

 

 작가가 연애소설로 읽어주길 바라던 소설은, 역시 이승우의 소설이니만큼 '그냥' 연애소설로 읽히지 않는다. 마야라는 신비스러운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는 어느 누군가의 사랑처럼 달콤하지도, 격렬하지도 않다. 사랑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콕 집어 말한다면 무미(無味)의 사랑일까. 이 사랑의 이유는 '당신'이라고 지칭하는, 3인칭의 어떤 누군가를 말하는 듯하면서도 더 많은 화살표로 여기저기 가리키고 있는 그 모호한 주인공 때문이다. 황홀함과 욕망이 가득 차 있을 법한 주인공은 타오르지 않는다. 어떠한 핑계, 어떠한 명분으로 더욱 불타오를 수 있는 욕망을 자제시키고 있다. 사실상 자신이 뭘 원하는 것인지도 분명하게 알지 못한 채, 갑자기 떠오르는 본능의 행동 명령에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그리고 그 망설임과 명분 뒤에 숨겨진 자신의 욕망이 혹시나 들킬까 싶어 너무나 조심스럽다.

  

 "사랑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라는 진부한 질문을 갑자기 작가는 던진다.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여태껏 읽어온 작가의 책들에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겼다고 자부하기에 그냥 넘어간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 질문은 "사랑이 돈오(頓悟)인지, 점오(漸悟)인가"를 묻는다. 사랑은 갑자기 다가온 확신으로 시작되는 것인가, 천천히 조금씩 그러다 깊이 깨달아 시작되는 것인가. 그러나 질문은 답을 낳을 수 없다. "아직도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가 사랑의 기원과 그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데 바쳐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그러나 그 희망은 헛되거나 잘못된 것이다." (99p)라고 작가는 답했다. 인생의 어느 감정이나 비슷하게, 아니 특히나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는 어쩌면 절대로 유형화될 수 없고 정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당신'이 여자가 떠나간 뒤에야 그녀가 그토록 열망하고 편안해 했던 욕조로 빠져드는 것처럼, 사랑이 떠나간 뒤에야 더욱 더 큰 감정 덩어리가 느껴지게 되는 것도 이토록 서툴고 정의될 수 없는 사랑의 뜻이겠다. 합리화, 명분, 핑계, 정당화....... 모든 것을 던져버릴 때 마주치는 사랑이야말로, 정말 황홀하고 순수한 사랑이겠다. 하지만 어렵긴 어려운 일이다.

 

 

 

 

▒ 담아둔 문장 

 

▒ 당신이 두 차례에 걸친 그녀의 문자 메시지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은, 그런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소한 구실을 빌미로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가는' 길을 밟아야 한다는 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발이 가기전에 생각이 먼저 그 길을 간다. 그리고 대체로 생각으로 걷는 길이 발로 걷는 길보다 힘들다. 당신은 그녀 쪽으로 생각의 방을 트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워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당신의 단단한 각오가 흐물흐물해질 것 같아서. 생각의 몸을 일 밀리미터만 움직여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당신의 그 대단한 의지의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실상은 그렇게 허전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20p)

▒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물론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당신은 그녀가 춤을 권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은 손을 저어 사양의 뜻을 표시했다. 당신은 몸을 이용한 그런 식의 자기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이용해서든 자기 표현을 잘하면서 살았던 것 같지 않았다. 저들은 몸 말고는 다른 활용 수단이 없어서 몸으로 자기를 표현한다고 당신은 조금 전에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작 당신은 자기 표현의 도구로 몸조차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어쨌든 그들은 무엇인가를 이용하여 자기를 표현하지 않은가. 당신은 그들을 연민할 처지가 아닌데도 연민의 감정을 가지려고 했던 조금 전의 당신이 무안했다. 타인을 연민하는 것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연민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그러나 교활한 수단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다. 예컨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타인을 동정한다. 당신이 애처로워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가 애처로워야 하는 것이다. 여자는 강요하지 않았다. 당신이 손을 흔들자 팔을 놓았고, 제 흥에 취한 춤 동작을 계속했다. (55p)

​욕조는 바다만큼 넓어졌다. "물이 맑을수록 달빛은 창백하고, 달빛이 창백할수록 길은 뚜렷해요." 목소리는 바다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어디 가 있는지 알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당신은 아늑했고 편안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몸이 허물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나면 전혀 다른 삶이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신이,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의식의 안쪽, 또는 욕망의 밑바닥에서, 거의 언제나, 너무나 간절히 소망해온 것이었다. (98p)

  

- 100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소설을 읽고, 이토록 기가 빠지는 느낌이라니. 와우.​

 

 

Copyright ⓒ 2014.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p********1 2014.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애보다 담화를 향해 열려 있는 연애담... <욕조가 놓인 방>
"연애보다 담화를 향해 열려 있는 연애담... <욕조가 놓인 방>" 내용보기
1996년의『사랑의 전설』, 2000년 『식물들의 사생활』, 2005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에 이어 작가는 또다시 사랑의 소설을 쓰고 있다.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아하고, 실존주의적인 의지 강한 이 작가가 쓰는 사랑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들여다보기 시작한지 십여 년이 되어가는 셈이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사랑의 이야기를 써내는 이 작가는 아직 사랑의 이야기를
"연애보다 담화를 향해 열려 있는 연애담... <욕조가 놓인 방>" 내용보기

  1996년의『사랑의 전설』, 2000년 『식물들의 사생활』, 2005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에 이어 작가는 또다시 사랑의 소설을 쓰고 있다.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아하고, 실존주의적인 의지 강한 이 작가가 쓰는 사랑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들여다보기 시작한지 십여 년이 되어가는 셈이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사랑의 이야기를 써내는 이 작가는 아직 사랑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서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번 소설에서 서사의 부분을 잔뜩 축소시키는 대신,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을 한껏 지향한다.

 

  “... 사랑은 요구하는 것이고, 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인에게만 자기에게 속할 것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연인이 아니다. 복종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 또한 연인이 아니다. 연인들은 요구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복종하면서 행복에 빠진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는 계명을 내리고,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는 계명을 기꺼이 지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명의 내용이나 어떤 내용의 계명을 준수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계명을 내린 이의 말에 대한 복종이다. 계명이 옳고 지킬 만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계명을 내린 이가 연인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전작에서 보르헤스를 자신의 연애 소설에 끌어들였던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시도하는 것은 이인칭이라는 시점이다. (장정일과 하일지의 소설 중에도 이인칭이 있었다. 그 소설들에 어떤 감정을 가졌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당신이다. 아니 소설의 주인공은 당신이지만 그 당신은 모든 이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먼저 소설가에게 노출되어 있다. 소설가는 자신의 눈으로 당신을 보고, 당신의 눈으로 당신을 보고, 당신의 눈으로 그녀를 본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자기 합리화가 없이는 여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서 자신을 설득시키고 난 후에야 행동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설득의 과정이 아니라 속이기의 과정인 경우가 더 많다. 당신은 스스로 만든 합리화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현명하지만, 그러나 현명함을 뒤로 감추고 기꺼이 그 술책에 넘어가줄 만큼 교활하기도 하다...”

 

  이인칭이라는 도전적인 시점과 시종일관 독서의 속도를 늦추는 아포리즘 속에서도 잠깐 줄거리를 살피자면 이렇다. 한 남자가 있다(이 남자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지금 한 여자의 집으로 향하려 하는 중이다. 그녀는 당신이 여행 중에 만났던 여자이다. 그녀에게는 죽은 남편과 죽은 아들이라는 아픔이 있었고, 당신은 낯선 곳에 홀로 남겨졌다는 상황이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카리브 해의 바다와 마야의 피라미드에서 짧은 사랑을 나눈다.

 

  “... 연인들은 최초의 하늘과 땅을 가진 에덴의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거주하는 양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다. 연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연인은 연인 말고는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랑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기술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웃거리지 않는 것은 기웃거릴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제외하면 그, 그녀만이 유일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서울로 돌아와 모든 것을 잊고 있다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H시로 발령이 나며 그녀를 떠올렸고, 그 후 2년여 동안 그녀의 집에서 지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아내가 있는 서울로 올라가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당신과 헤어지기로 했지만 당신에게 액자와 면도기를 찾으러 오라는 전갈을 남겼고, 당신은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고, 당신은 그녀의 집을 찾아갔고, 하지만 그곳에는 욕조가 놓인 방이 있을 뿐이고 그녀는 없다. 그리고 당신은 그녀가 몸을 담구고는 했던 그 욕조에 몸을 담군다.

 

  “... 우리는 때때로 의식하고, 때때로 의식하지 못한 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누군가다. 욕조에 누워 있는 그녀의 마른 몸이 떠올랐다. 물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녀는 잠든 것 같았고, 그럴 때 욕조는 침대처럼 보였다. 때때로 그녀는 거의 육체를 탈피한 것처럼 보였고, 그럴 때 욕조는 관처럼 보였다...”

 

  물론 이승우의 이번 소설에서 스토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당신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느냐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랑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 당신의 내면이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그저 치밀하게 보여줄 뿐이다. 

 

  “당신은 이 소설을 사랑 이야기로 채우려 하고 있다. 그것은 당신이 연애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가 연애담으로 읽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랑이었단 말인가!) 말을 바꾸면,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가 연애담 이외의 다른 이야기로 읽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사랑이었을 뿐이란 말인가!) 소박한 욕망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의지를 강요할 수 없다.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처럼 읽는 사람은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소설은 그렇게 모두에게 열려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랑에 빠져 있다고 믿는 당신의 이야기 혹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모두 연애담인 것처럼 어떤 경우에 모든 연애담은 연애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한발 더 나아가면 연애담을 쓰는 작가와 연애담을 읽는 독자가 서로 조우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작가의 욕망에 따라 독자가 움직여야 할 필요도 없다는, 이런 (오만해보일 정도로) 자긍심 강한 작가의 연애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연애를 향해 마음을 열 것이 아니라 담화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하는 법...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법도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7.0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