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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바보상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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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TV 켜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영화나 게임,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화면은 그야말로 온통 피와 살로 채워진다. 대중은 점점 무뎌지고, 매체는 더 큰 자극을 추구한다. 이제는 현실과 화면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방 범죄도 판을 친다.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TV와 같은 대중매체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책이 여기 있다. <바보상자의 역습>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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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TV 켜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영화나 게임,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화면은 그야말로 온통 피와 살로 채워진다. 대중은 점점 무뎌지고, 매체는 더 큰 자극을 추구한다. 이제는 현실과 화면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방 범죄도 판을 친다.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TV와 같은 대중매체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책이 여기 있다. <바보상자의 역습>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범죄 드라마나 시시껄렁한 시트콤, 유치한 비디오 게임과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보는 동안 우리의 머리가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라는 것은 상식이다.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면 사회성이 나빠진다는 것도 상식이다. 부모들은 이런 상식을 근거로 아이들을 압박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 아이와 이를 막아서는 부모 사이에는 매일처럼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각들 속에서 다음과 같은 새롭고도 신선한 논제를 던지고 있다. 대중문화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가? TV, 게임, 영화, 인터넷 등의 매체는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가? 

 

지혜는 상식을 뒤집는 데서 비롯된다. <바보상자의 역습>은 그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새로운 지혜를 제공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이 바보상자가 아니라 ‘두뇌 훈련소’라고 말한다. 실은 이 주장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게임 하면 아이큐(IQ)가 좋아진대.” “텔레비전 보면 공부가 더 잘된다니까.” “엄마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지 말래, 쳇.” 아이들이 항변하는 내용의 대강이 이와 같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라도 배운 사람이 하면 조금 다르다. 지은이 스티븐 존슨은 미국 뉴욕대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하면서 여러 베스트셀러를 써낸 지식인이다. 저널리즘, 신경과학, 정보기술, 커뮤니케이션이론 등을 동원해 텔레비전, 인터넷, 컴퓨터 게임 등이 어떻게 인간의 두뇌활동을 증진시키는지를 용의주도하게 분석했다. 그가 보기에 텔레비전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는 “매년 더욱 정교해지고 더욱 고난도의 인지활동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일은 “젊은 세대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세뇌”가 됐다.

 

저자는 대중문화의 유용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디 앨런의 영화 '슬리퍼'에서 '슬리퍼 커브'라는 논리를 차용한다. 지방이나 스테이크, 크림파이 등 다이어트의 적으로 여겨지는 음식이 사실은 몸에는 좋은 것이었다는 '슬리퍼'의 미래 과학자들의 말을 통해 우리가 낮게 폄하하는 대중문화가 결국 가치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TV, 게임, 영화, 인터넷 등으로 이뤄진 대중문화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며 대중에게 바보 같고 단순한 즐거움만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갈수록 지적으로 변하는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TV 시대 이후 미국인의 IQ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100년 전과 현 시대의 10살짜리 꼬마의 두뇌활동 비교를 통해 TV와 같은 대중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결국 20명 이상의 비중 있는 인물이 이끌어가는 TV 드라마를 즐겨보고 각 프로 스포츠팀 선수에 전화에서 메신저, 이메일 등으로 끊임없이 친구들과 통화하며 가상세계에 대한 탐험과 신기술 습득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있는 현 시대의 어린이의 두뇌가 더 좋지 않냐고 반문한다.

저자는 “그렇다고 아이들이 무엇을 하건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무엇이 두뇌를 살찌우는지 결정하는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중문화를 사갈시하는 태도로는 두뇌 훈련의 매혹적인 공간에 대한 아이들의 애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설정을 이렇게 바꾸면, 부모들의 과제는 달라진다. 좋은 수학 교과서를 고르듯이, 더 많은 ‘두뇌 활동’을 돕는 좋은 드라마·시트콤·컴퓨터게임을 골라야 하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은 매력적인 동시에 논쟁적이다. 인간과 사회의 중층성을 이해하며 치열하게 두뇌를 단련시켜 탁월한 창의성과 사회성을 갖춘 젊은 세대들이 현실의 공동체를 보다 나은 것으로 바꾸는 데 그 능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줄 수 있다면, 이 책은 새로운 관점의 ‘의식화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s****j 2007.04.1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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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도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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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매체인 TV를 비꼬아 말할때 바보상자라고 흔히 일컸었다. 그러나 스티브 존슨의 연구자료와 항변(?)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바보상자라는 말을 이제는 접어야 할 것같다. 수십년동안 TV는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했고 TV가 바보상자가 아니라는 해명을 한 자료는 제대로 구경을 못해본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대중은 TV를 바보상자라고 치부하면서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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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매체인 TV를 비꼬아 말할때 바보상자라고 흔히 일컸었다. 그러나 스티브 존슨의 연구자료와 항변(?)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바보상자라는 말을 이제는 접어야 할 것같다. 수십년동안 TV는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했고 TV가 바보상자가 아니라는 해명을 한 자료는 제대로 구경을 못해본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대중은 TV를 바보상자라고 치부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해왔다.
 과연 대중메체가 책이나 신문을 대변할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하고 형편 없는 것일까? 하는 명제를 두고 나도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스티브 존슨의 글을 읽고부터 조금의 이해심이 샘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중문화라고 일컷는 게임,TV,영화와 같은 매체는 과연 우리의 두뇌를 갏아먹는 단순한 것이었을까? 라는 논제를 두고 스티브 존슨은 해부하고 반박해 나간다.
 게임이라는 것은 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람의 차이가 나듯이 그것의 복잡성과 기술성은 게임을 해보지 안한 사람은 느끼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게임은 시대가 지나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1차원적이었던 것이 3차원적으로, 단순 대결형에서 다방 네트워크형으로 변모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게임의 가장 큰 변화는 '양방향성'이라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예전의 일방향성의 게임 마인드를 가지고는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게임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간직하고 있으며 또한 엄청난 양의 연구와 과제를 필요로 하는 고난이도의 게임이 된 것이다. 이에 우리는 게임을 위하여 또 다른 지식 창출을 하며 연구과정을 통해 적지 않는 뇌를 사용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 시대의 변화를 겪었다. 이에 대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시청자의 역활론에 관한 것이다. '끼워넣기'의 기능을 역활론에 대입시켰는데 이를 시청자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즉 반세기 동안 대중문화를 지배해 온 TV 역시 집중력과 인내심,기억력,이야기 분석 능력등을 시청자에게 요구하고 훈련시켜 온 것이다. 매체는 시청자들에게 고도의 두뇌활동을 요구한 샘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야기의 다각화,반짝이는 화살표,인물간의 고리등 수많은 기법이 동원돼 왔으며 요즈음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서는 내용의 흐름을 놓쳐버리게끔 제작된다. 또한 '빈칸 채워넣기'를 통해 영상물 시청자는 공감대를 형성할 만큼 매체는 똑똑해졌다.
 이런 환경적 변화는 사람의 두뇌를 변화시켰다.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슬리퍼 커브'에 대한 주장이다. 이렇듯 대중문화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갈수록 복잡,지능화되고 우리 인간은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두뇌 근육을 강화한다. 스티브 존슨은 이렇게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과연 저자가 나열한 데이트는 명료했고 깔끔했다. 나의 대중문화에 대한 편입견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중문화도 문화다" 나의 입장변화가 그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양식을 가꿔주고 책이나 다른 고전 매체가 전해주던 따스함도 새로운 매체가 충분히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매체는 우리의 두뇌를 발전시키고 우리를 환경에 적응해 가게끔 만든다.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주는 해악을 따지기 전에 그것을 수용하는 인간들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사용자가 잘 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 것이다. 대중매체도 우리가 아름다운 문화라고 수용하면 그 아름다움이 문화의 숭고함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j****3 2007.03.0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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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상자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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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게임으로 대표 되는 대중문화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몇일 동안 게임을 하다가 죽거나 특정 게임을 오래 하면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보도를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 들어왔다. 점점 증가하는 폭력물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또 어떤가. 심리학자들은 발벗고 나서서 폭력물에 대한 노출 정도와 폭력 행동에 대한 상관 관계를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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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게임으로 대표 되는 대중문화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몇일 동안 게임을 하다가 죽거나 특정 게임을 오래 하면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보도를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 들어왔다. 점점 증가하는 폭력물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또 어떤가. 심리학자들은 발벗고 나서서 폭력물에 대한 노출 정도와 폭력 행동에 대한 상관 관계를 밝혀냈으며 티비라는 고유명사 대신 바보 상자라는 곱지 않은 예명으로 불리워지고 대중문화는 가급적 가까이 하지 않는게 인성의 발달이나 지적인 발달에 보탬이 된다는 일반적인 시각에 용감히 반기를 든 책이 있으니 바로 바보 상자의 역습이다.


저자는 우디엘렌의 공상과학 영화 '슬리퍼에서 미래에서 온 과학자들이 크림파이 핫퍼지를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안먹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 장면에서 따온 '슬리퍼 커브'라는 용어를 생성해 낸다. 우리가 저질 통속적이라고 비웃는 대중문화가 실은 우리를 점점 똑똑하게 만든다는 긍정적인 점을 제시해 보이고 있으며 그 증거로 티비 시대가 도래한 이후 미국인의 IQ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작가 스티븐 존슨이 인터넷 잡지의 창간자이며 편집자이기에 대중 문화 깊숙이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차지하고라도 게임의 역습, 티비의 역습, 인터넷의 역습, 영화의 역습이란 챕터를 통해 만난 그의 주장은 대중문화에 대한 고정 관념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분명 대중문화는 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스스로 진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대중문화의 순기능 또한 존재한다.
상업성과 대중문화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해서 어짜피 대중문화는 대중이 원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아지게 되어 있으므로 대중문화에서 대중의 역활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란.




 

m****e 2007.02.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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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디지털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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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역습''이라는 제목만큼이나 발칙하고 흥미로운 세상 뒤집어 보기 책은 TV, 게임, 인터넷, 영화 등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는 대중문화가 실제로는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풀어가고 있다. 또한 대중의 일반적 가치에 충실하라는 사회의 암묵적 강요에도 논리적으로 맞서고 있다. 특히 게임이 책보다 먼저 나온 세상에 대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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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역습''이라는 제목만큼이나 발칙하고 흥미로운 세상 뒤집어 보기 책은 TV, 게임, 인터넷, 영화 등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는 대중문화가 실제로는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풀어가고 있다. 또한 대중의 일반적 가치에 충실하라는 사회의 암묵적 강요에도 논리적으로 맞서고 있다. 특히 게임이 책보다 먼저 나온 세상에 대한 가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게임의 역습 TV의 역습 인터넷의 역습 영화의 역습 바보상자를 사랑하고 즐기는.. 그리고 대중문화나 디지털 미디어에 애착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보상자의 역습에 동참할 것을 권해봅니다.
n********e 2006.10.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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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성찰.
"대중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성찰." 내용보기
원래 제목이 Everything Bad is Good For You 라는데, 제목을 바꾼건 잘한 것 같다. 그대로 였으면, 아마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좀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 대부분이 대중문화(TV 혹은 게임들)에 대해 비평을 하는 와중에, 정말로 흔치않은, 대중문화를 옹호하는 그런 책이 나왔다. 책 내용도 쉽고 잘 넘어가는 편이며,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각종 매체들을 예로 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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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이 Everything Bad is Good For You 라는데, 제목을 바꾼건 잘한 것 같다. 그대로 였으면, 아마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좀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 대부분이 대중문화(TV 혹은 게임들)에 대해 비평을 하는 와중에, 정말로 흔치않은, 대중문화를 옹호하는 그런 책이 나왔다. 책 내용도 쉽고 잘 넘어가는 편이며,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각종 매체들을 예로 들면서 필자의 의견을 알기 쉽게 이야기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중문화가 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게 아니라, 뇌에 자극을 줘서 좀 더 똑똑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점점 복잡해지는 TV드라마의 스토리구조라던가, 컴퓨터 게임등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주로 미국의 대중문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미국의 TV드라마나, 컴퓨터 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필자가 제시하는 예를 보고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외 걸리는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뇌의 분석력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성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너무 낙관적이다. 아무리 잔인하고 폭력적인 게임이더라도, 플레이어에게는 얼마나 잔인한가보다는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인데, 수많은 게임개발자들이 그런 수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낙관적으로는 볼수 없지 않을까. 또 점점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분석능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게임에 익숙한 사람의 뇌를 게임뇌라고 부르며 문제삼았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게임뇌 관련책을 같이 읽으면 더욱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k****f 2006.12.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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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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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맨사 아이큐테스트가 이슈화되고 사무실에서도 그에 대한 반향이 일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행해진 20-40분간의 테스트가 잠시나마 서로에게 약간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가져다주며 웃음을 유발한 것이다. 그 짧은 유희를 바라보는 내내 난 이 책을 생각했다.   <바보상자의 역습>(비즈앤비즈. 2006)의 작가가 내세우고 있는 근거 중 하나인 아이큐의 전반적인 상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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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맨사 아이큐테스트가 이슈화되고 사무실에서도 그에 대한 반향이 일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행해진 20-40분간의 테스트가 잠시나마 서로에게 약간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가져다주며 웃음을 유발한 것이다. 그 짧은 유희를 바라보는 내내 난 이 책을 생각했다.

 

<바보상자의 역습>(비즈앤비즈. 2006)의 작가가 내세우고 있는 근거 중 하나인 아이큐의 전반적인 상승의 맹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TV, 게임 등의 매체에 전폭적인 지지를 실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주말에 TV를 껴안고 살 것이냐 책에 코를 박고 살 것이냐 는 삶의 패턴의 문제이다. 정보와 가십의 경계가 점점 무너져가는 대중매체의 홍수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고지식하게 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문화의 질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삶의 방식에 달려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TV,게임 등의 매체의 옹호를 펼치는 주장에 아이큐를 들먹이면서 그 효용을 설파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아이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또한 그러한 장점(작가가 예시하고 있는)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폐해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굳이 예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어른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급변하는 사회에 놀라운 적응력과 천재성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TV와 게임 등의 매체가 끼치는 영향은 참으로 대단하다. 때문에 작가의 주장이 전혀 그릇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의 말처럼 현재 문화의 주류가 된 바보상자의 문화를 하위문화로 폄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문화를 나누는 기준을 기존의 문화(독서를 통한 교육으로 대변되는)에 두고 TV, 영화, 게임, 인터넷 등의 문화를 판단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분명 두 문화는 차이가 있고 효용도 틀리기에 다른 기준에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에도 백분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달리 판단하는 것을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구태의연한 바보상자에 대한 비판은 아직 버릴 수 없는 날이 선 칼일 수밖에 없다. 이제 그 오래된 칼로 지루한 바보상자 해부를 해보자.

 

1. 바보상자(폄하가 아닌, 작가에 의해 언급되고 있는 매체를 총칭하는 의미에서)가 우리의 지능을 높여준다는 의견을 그에 쓰인 과학적인 근거를 뒤로 하고 사회적인 요인을 살펴본다면, 그것이 유행을 창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잘 나가는 드라마나 게임 들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이제 대중문화의 뒷자리로 밀려나고 아예 대화에 끼지도 못하는 현실이니 조만간 TV,게임 등을 다루는 학원이 등장한 다해도 그이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바보상자가 사회화 과정의 지도자 역할을 한다는 판단은 위험하다. 그것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구조의 사회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이렇게 변했으니 따라오시죠! 하는 작가의 논조에 거부감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가치를 무조건 과거의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시대가 상실한 것을 되짚어 보려고 하지 않고 시대의 조류를 타려는 작가의 의도는 비겁하게까지 여겨진다.

 

2. 작가의 위험한 논조의 맹점 중의 하나를 꼽자면 게임이라는 매체가 독서의 저변을 잠식하고 기존 교육의 기반에 위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게임을 하지 않으면 대화와 관계에서 소외되며, 이에 그치지 않고 책 읽는 사람을 고루하고 거들먹거리는 인종으로 규정짓는데 게임이라는 똑똑한 매체가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자신의 주장을 책으로 펴낸 만큼 책이 주는 특별한 이점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게임에 대한 평가절상을 이뤄, 큰 숲으로 둘을 같은 잣대에 올리지 말고 나무로서 존중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부모가 우려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그 공존의 숲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니, 불가능은 아니지만 시기상조임은 확실하다.
결국 작가는 책 읽는 문화가, 소위 기성의 엘리트의 문화가 기득권층이니 복잡한 연산능력을 키워주고 문제해결 능력을 고양시키는 게임의 순기능을 존중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잘못된 믿음을 설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르기에 각각의 잣대로 흑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옳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두 매체가 공생관계에 놓일 것이냐 약육강식에 지배될 것이야 하는 것이다.―현재로서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적이라 생각한다.

 

3. 인터넷의 발달로 요즈음의 아이들은 부모가 잘 다루지 못하는 각종 최신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재분배와 속도의 혁명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이점이다. 하지만 이런 순기능 역시 맹신해서는 안 된다. 분명 공공연히 거론되는 문제점이 일부에 국한되고 노파심에 불과하여 인터넷의 특징적인 장점으로 그것을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확실한 것이 쓸모없는 정보에 대한 노출이다. 물론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니 그것을 그 매체 자체의 확대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려서 받아들이는 개인의 선택의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다.
어떤 포털 사이트를 방문에서 메인페이지에 뜨는 연예인의 신변잡기에서 눈을 돌려 정보를 얻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는 인터넷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 시초는 정책적으로 이용된 스포츠신문에서, 아니 그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그것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용자의 욕구에 인터넷이 동한 것이냐 대중이 인터넷에 호도된 것이냐 하는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의 논쟁 전에 현실에 드러난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작가의 의견은 곳곳에서 감탄사를 내뱉게 할 만큼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논조가 책을 통해 출판되어 읽힌다는 사실에도 조금 놀랐다. 그만큼 TV, 게임, 인터넷, 영화 등의 매체가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보상자로 대변되는 문화가 평가절하된 것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그것의 순기능에 대해서 역시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것이 대세라고 해서 현상이 전복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같은 의미에서 작가의 의견에 동조한다고 해도 구태의연하리만치 산재한 문제들을 그것의 순기능으로 눈감아줄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매체들을 바보상자로 보는 고정관념을 깨는 작가의 과학적으로 보이는 주장 역시 뚜렷한 대책이 없는 이상론에 불과할 것이다.

 

바보상자를 버리자고 문화의 르네상스를 부르짖으며 바로잡으려 하는 노력은 고집스러운 향수병에 불과할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매체에 붙은 저속, 하위, 획일성 등의 시치미는 떼어버려야 한다. 이제 그것들을 떼어버렸다면 다시 한 번 지지부진한 고찰을 하도록 하자. ‘TV가 바보상자가 아닐까, 게임이 집중력 결핍을 낳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이 개인의 삶을 침범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의심과 함께 말이다.
크게 감복하고 그만큼의 반감을 갖기도 하면서 읽어나간 이 한권의 책이 그 길고 긴, 정답이 없는 전쟁을 종결짓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y*******9 2007.0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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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매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볼수 있는 계기
"대중 매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볼수 있는 계기" 내용보기
바보상자의 역습이라는 제목을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무언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책의 앞부분은 각각 해롭다고 여겨지던 대중 매체의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작가 나름대로 분석하여 반론을 제기 하고 있다. 작가의 궁극적인 주장은 대중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은 더이상 단순하지만은 않은 지적인 자극을 주는 주제들을 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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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역습이라는 제목을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무언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책의 앞부분은 각각 해롭다고 여겨지던 대중 매체의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작가 나름대로 분석하여 반론을 제기 하고 있다. 작가의 궁극적인 주장은 대중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은 더이상 단순하지만은 않은 지적인 자극을 주는 주제들을 다루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 인터넷, TV, 영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 매체들은 지극히 단순한 유희 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면에서 공감을 할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공감을 갖기 힘들었다. 우리가 게임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이전 포스트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확실한 보상책 덕분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현재 출시되는 게임들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점점 복잡도는 높아져만 가고 이것은 고도의 두뇌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것이 어려워 진다고 하여도 확실한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람이란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기 어려운 법이다. 목적지를 지도를 가지고 가는 것과 지도 없이 가는 것은 그만큼 큰 차이가 있다. 또한 현실을 반영한 시뮬레이션 장르만을 주로 언급하였다는 것도 글쓴이의 의도에 맞춰 놓은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작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실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만한 일이라도 적당한 자극을 통해서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듯하다. 고난이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곳에 접근하기 위해서 당연히 차근차근 계단을 밝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경우 사건이 꼬이고 꼬여만 가며 등장인물의 수도 많아지고 그들간의 관계도 복잡해지며 더이상 친절한 설명성 멘트 - ~은 뭐입니다하는 식의 - 는 기대 할 수 없어져만 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덕분에 한번이 아닌 재사용 - 재방영 - 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매우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DVD 사업은 꽤나 전망이 밝은 듯하다. 영화의 경우 다른 매체들과 달리 복잡도가 이전과 그리 차이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제한된 시간안에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을 들으며 며칠전에 보았던 영화 잡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의 런타임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것이 그저 단순히 반지의 제왕의 탓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전체적으로 대중문화에 관한 작가만의 - 정확히 알 수 없다. - 새로운 생각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다.
r***k 2006.11.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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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대중문화 뒤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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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상자의 역습스티브 존슨 저윤명지, 김영상 역비즈앤비즈과연 현대의 대중 문화는 속설처럼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과학 칼럼리스트이자 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은 이 책을 통해 되묻는다. <바보상자의 역습>은 통념을 깨는 책이다. 이 책은 '백해무익'하다고 널리 알려진 TV, 게임 등을 살펴보면서 적어도 '두뇌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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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상자의 역습
스티브 존슨 저
윤명지, 김영상 역
비즈앤비즈

과연 현대의 대중 문화는 속설처럼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
과학 칼럼리스트이자 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은 이 책을 통해 되묻는다.
<바보상자의 역습>은 통념을 깨는 책이다.
이 책은 '백해무익'하다고 널리 알려진 TV, 게임 등을 살펴보면서 적어도 '두뇌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저자는 이런 대중 매체에 대해 굳이 도덕적인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게임과 드라마의 논리 구조를 분석하고 '뇌과학'의 개념을 끌어들이며 구조주의 철학의 분석 틀을 빌어 윤리적인 차원의 문제까지 접근해 가는 저자의 주장을 듣다보면 어느 정도는 그의 말에 수긍하게 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승희 조'가 벌인 버지니아 테크 총격 사건을 비롯해서 미국 내의 대량 사살 총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미국 언론은 늘 폭력적인 게임과 드라마, 영화 등의 예를 들며 '대중 문화'를 공적으로 삼고는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이클 무어가 그의 영화<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펼친 쉽고도 간단한 논리를 되새길 수 밖에 없다.
'독일 애들은 폭력 영화를 안하고 일본 애들은 폭력 게임을 안하나 ?'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책의 의도는 이러하다.

나는 대중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뭔가 다른 방법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평가를 위해서는 대중매체를 인생교훈 전달의 매개체가 아닌 두뇌훈련소로 봐야 한다....중략.... '어떤 메시지를 보내느냐?'가 대중 매체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메시지만큼 중요한 것은 그 문화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사고과정을 겪느냐는 것이다." (pp. 24~25)

이 책이 서술해 나아가는 바는 위의 저자의 의도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절반 이상은 게임과 TV, 인터넷 그리고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얼마나 복잡하게 발달했으며 그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즐기는 현대인들의 두뇌가 얼마나 우수해졌겠느냐는 설명으로 전개된다.

그는 게임이 지닌 도덕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사고의 과정에 대해 주목한다. 레전드 교육학자인 존 듀이의 말을 인용한 그의 글의 한 대목을 보자.

게임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구별법이 게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존 듀이는 <경험과 교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육계에 만연한 가장 잘못된 생각은 사람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만 배운다는 믿음이다. 공부를 하면서 형성되는 태도나 호불호를 통한 부차적인 학습은 받아쓰기나 지리, 역사 수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배우는 내용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사는 동안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pp. 48~49)

그렇기에 저자는 <젤다>나 <하프라이프>(모두 미국 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어드벤쳐 게임이다.)의 게임 논리 구조에 주목한다. 8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어른들에게는 게임이란 <갤럭시>나 <팩맨>같은 게임들로 규정될 것이다. 하지만 현 시대에 유행하고 있는 게임들은 엄청난 두뇌노동을 수행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게임의 '복잡화'는 TV 드라마에서도 드러난다.

아마도 80년대에 TV 꽤나 봤던 사람들이라면 <댈러스>라는 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석유 부호 집안에서 벌어지는 형제와 주변 인물들간의 암투와 애정 관계가 이어지던 이 드라마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었다. 하지만 현재 '미드' 매니아를 양산하고 있는 <24>나 <프리즌 브레이크>같은 복잡 다단한 드라마에 비한다면 <댈러스> 캐릭터들간의 역한 관계는 그야말로 초보 수준이다. 미국의 드라마는 <힐 스트리트 블루스>라는 현실적인 경찰 드라마의 등장 이후 크게 변화한다. 시청자들은 전편을 보지 않고 후속편을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서바이버>를 비롯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조차 과거의 TV쇼들에 비하면 훨신 지적으로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다음은 <댈러스>와 <24>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오늘 처음 댈러스를 본대도 지금 방송되는 이야기 속 인간관계를 바록 파악할 수 있다. 드라마 곳곳에 화살표(시청자를 배려해서 대사나 장면들을 통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필자 주)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등장 인물의 일차적 관계를 쉽게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사이에도 별다른 고민거리는 없다. 느린 화면전환 때문에 지금 TV 세대에게는 너무 빤하고 지루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앞뒤 내용을 모르고 <24>을 틀어서 보면 머리가 아프다. 등장인물은 너무 많고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시간의 흐름과 동일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드라마의 전제에 알맞게 <24>는 과거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pp. 111~112)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도덕적인 부분을 떠나 현재 미국의 드라마가 그리고 이것을 즐기는 시청자들이 지적 유희를 한층 더 심도 있게 즐기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현대의 시청자들은 이렇게 복잡다단한 드라마를 감상하고 의도적으로 비워진 플롯을 메워나가는데 애를 쓴다.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은 그런 팬 그룹과 커뮤니티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우리에게도 의도한 시청률에 비해 유독 '폐인'들이 많았던 드라마들을 기억한다. <네 멋대로 해라>, <하얀 거탑> 등이 바로 그런 드라마들이었다.

그건 시간적 제약이 있는 영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7,80년대의 블록 버스터 <스타워즈>의 주요 등장 인물들에 비하면 <반지의 제왕> 3부작의 등장 인물들은 세배 정도는 많다. 그리고 저자는 되묻는다.

'주의력결핍장애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요즘 세상에서, 이유없는 폭력과 싸구려 자극이 난무하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많은 두뇌활동을 요하는 게임이 가장 인기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게임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p. 131)

저자는 블로그의 등장과 인터넷 환경을 통해 사람들의 독서량이 줄기는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양의 문자를 읽고 더 많은 양의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을 한다. 그에 의하면 '맥루한이나 포스트만의 경고처럼 활자는 가고 영상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던 특정한 형태의 읽기는 확실히 줄고 있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들고 한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책'말이다'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이상 p.177) 그러면서 저자는 '대중문화가 일방형의 장문 활자 이야기에 익숙해지도록 우리 두뇌를 훈련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가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무시되는 대중문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이지 독서 교육 전반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하는 것이리라.

<바보상자의 역습>은 재미있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책이다. 스티븐 존슨은 결코 대중문화의 절대적인 옹호론자는 아니다. 그는 자연과학과 미디어이론의 개념을 빌어 우리가 소비하는 대중 문화의 수준이 엄청난 지적 노동과 유희를 동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게임에 푹 빠져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게임기를 조작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 본 사람이라면 게임 자체가 실은 그다지 아드레날린이 끊임 없이 분비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게임은 엄청난 인내 뒤에 얻어지는 보상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바보 상자의 역습>의 주장은 새롭다. 당신의 자녀를 게임기에 매달리게 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친 편견에 빠질만한 이유도 없으리라...
YES마니아 : 플래티넘 p*****o 2007.05.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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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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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대중매체라고 할 수 있는 TV, 인터넷, 영화, 게임산업은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하향 평준화를 만들며 저급문화를 확산시키는 사회악인가?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중매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일침을 놓는다. 저급하다고 평가하는 대중매체 덕분에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해 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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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대중매체라고 할 수 있는 TV, 인터넷, 영화, 게임산업은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하향 평준화를 만들며 저급문화를 확산시키는 사회악인가?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중매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일침을 놓는다. 저급하다고 평가하는 대중매체 덕분에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해 졌는지 이야기하면서 대중매체가 가져다 준 축복스러운 일들에 대해서 말한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들이 많다. 분명 대중매체가 가지고 있는 과도한 폭력성, 선정성등 부정적인 요인들도 많다. 그러나 너무 부정적인 면들만을 우리가 들여다 본 것은 아닐까? 그림자 속에 들어있는 빛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PC방에서 게임속에 몰두해 며칠간 폐인이 되어 결국 목숨까지 잃는 사례를 알고 있다. 이러한 게임의 중독성 및 해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게임은 현실세계에 대한 도피처이며 사회부적응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피해사례를 너무 과대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게임의 장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작해야 시각적인 능력의 향상과 손놀림의 숙달밖에는 없는 것일까? 그게 다일까?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심시티같은 게임은 여러 변수들이 많은 게임이다. 뚜렷한 정답이 없다. 자기만의 개성스러운 도시를 창조해가면서 도시의 시장이 되어 공학적인 도시설계 및 재정관리, 시민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사고능력이 요구되는 종류의 게임을 하다보면 우리의 두뇌는 충분히 훈련되고 계발된다.

또한 온라인게임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함에 따라 그 안에서 다양한 가상의 인간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며칠에 걸쳐서 온라인상에서 집을 구매한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서 게임자는 성취동기를 얻는다. 그런데 게임이 주는 유용성은 이렇게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 게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초기 오락실게임의 단순 대명사인 테트리스를 생각해보자. 테트리스를 자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공간적인 도형감각을 더 빨리 익힐 수 있다. 학창시절 IQ검사때 등장하는 도형을 비틀어 놓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묻는 질문에 테트리스를 통달한 게임자라면 휠씬 더 높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게임에도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이 들어있던가?

그럼 우리가 대표적인 바보상자라 일컫는 TV는 정말 바보스럽기만 한 것일까? 저자는 TV가 점점 진화되어 똑똑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덩달아 TV시청자도 똑똑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하면 TV가 점점 복잡하게 변모하면서 시청자들도 이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드라마를 보자. 요즘의 많은 프로그램은 과거의 단순한 스토리를 지양하고 복선과 암시로 시청자들을 긴장시킨다. 단순하게 눈으로만 따라가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전개가 진행되는 것이다. 오늘날 영화든, TV든 복잡한 사건구조가 얼개가 되고 마지막에 반전이 유행인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게 머리를 싸매야 이해가 되는 드라마를 보면 저절로 이해력과 추리력, 사고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드라마, 토크쇼, 리얼리티쇼등을 통해 인간관계와 얼굴표정등에서 주는 미묘한 감정변화까지 배울 수 있어 실제 생활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왜 드라마는 점점 복잡해져 갔을까? TV의 속성은 심각함이 아닌 단순성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놓아 시청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단순무지(?)한 대중의 이러한 속성과는 달리 왜 요즘 드라마는 많은 복선을 깔아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재방송이라는 반복 재생산적인 대중매체의 경제논리속에 숨어있다. 공중파등을 통해 1차 방영된 드라마는 케이블TV등을 통해 계속 재방영되며 DVD등으로 출시되어 확대재생산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런데 이미 한번 본 방송을 시청자들이 계속 다시 보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는 드라마에 많은 복선을 깔아놓아야 하다.

그래야만 몇번을 보더라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여 질리지가 않아 시청자의 시선을 끌게 되는 것이다. 모순된 것 같지만 이러한 상업적인 이유때문에 드라마는 점점 더 복잡해져가고 이에 따라 시청자들의 두뇌훈련을 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인 인터넷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이 사람들의 지식수준을 향상시켰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책에서 제시된 내용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우를 보자. 현재 한국인의 인터넷관(?)을 지배하고 있는 네이버의 지식인은 한국사람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 한국인의 지식수준을 상향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물론 네이버의 독점이(한국인의 50%이상이 초기화면에 네이버를 걸어놓고 있다) 몰고 오는 부작용도 많다. 

커질대로 커진 네이버는 가공된 정보를 독점함으로서 타사이트의 활성화와 시장진입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가하면 자칫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을 사이트내 접목시킴으로서 오히려 균형잡힌 정보통신산업 발전에 저해될 소지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긍정적인 효과만 놓고 보면 인터넷이라는 대중매체는 지식수준의 평균상향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장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저자는 대중매체를 많이 접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IQ를 향상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IQ가 천부적인 개인능력을 평가한다기보다 환경적인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직시해 본다면 이 말은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대중매체는 끊임없이 복잡하게 진화되면서 우리의 두뇌를 훈련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대중은 더 똑똑하게 진화되었다.

또한 이렇게 다양한 대중매체의 수혜를 받은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듯 폐쇄적이고 외톨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다름없는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사고와 행동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껏 대중매체에 대해 너무 안좋은 방향에서만 생각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말하듯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는 자녀를 무조건 방관하라는 말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테트리스를 통해 도형에 대한 공간적인 개념을 훈련하고 온라인 게임을 통해 가상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한들, 또 복선이 깔린 TV프로그램을 통해 추리력을 향상시킨다 한들...... 그래서 평균적인 대중들의 IQ가 향상되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TV를 바보상자라고 말하는 것은 괜히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만한 폭력성과 선정성등의 이유가 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옥석을 골라내는 일이다. 어차피 대중매체를 피할 수 없다면(그리고 대중매체안의 긍정적인 요소에 주목해본다면) TV프로나 게임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맹목적으로 폭력과 선동만 일삼는지, 아주 유치찬란한 단순함으로만 치장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 와중에서도 두뇌훈련을 시킬 수 있는 적절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지 판단하고 보라는 이야기다.

이 점이 이 책의 핵심이며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참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때 전체모습을 조명할 수 있다. 그때에만이 바람직한 대안의 제시와 건전하며 합리적인 문제제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 곁에서 단 한시간조차 떨어져있지 않은 대중매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책에서 소개된 대중매체의 사례들이 모두 미국의 사례에만 집중되어 있어 한국인이 실감나고 재미있게 책을 보기는 조금 힘들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거의 모든 드라마나 프로그램, 혹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저자가 한국인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이 한국독자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떠 오르는 의문 한가지, 왜 대중매체는 지금껏 그렇게 매도당해왔던 것일까? 거기에는 어떤 함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교양스럽고 지적인 것들은 소수가 향유하고 있는 활자화된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기득권층인 지식인들의 고정관념말이다. 모두가 향유하고 즐기는 대중화된 것들은 더 이상 희소의 가치가 없어져 교양적인 것이 되어버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j******7 2007.03.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