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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의 키워드, 그 12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나름대로 테마를 잘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르페우스 열전, 금지된 사랑, 소설 속에 흐르는 클래식, 팜므 파탈 이야기, 신화를 동경한 음악, 복수의 아리아, 파우스트에 매혹되다, 죽음에 대한 3가지 명상, 음표로 새겨진 전쟁의 참상, 독일음악 속의 영웅들, 나로 하여금 취하게 하라, 백조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듣는 음악은 들어서 즐겁고 편안함을 주는 음악이 대부분이다. 현대 생활에서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악으로 해결한다. 그러다가 요즘은 좀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도 들어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을 읽다가 듣는 좀 복잡한 음악도 한 번 들어볼 필요성이 있지 않나 한다. 너무 편한 음악보다는 가끔은 좀 이상해 보이는 클래식 음악도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세상에는 타당한 이유 없이 남을 괴롭히는 인간들이 많으며 그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복수의 일환으로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없을까? 어차피 인간의 한계상 사랑과 관용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우주의 섭리를 믿고 인내하는 것도 ‘훌륭한 복수’라는 생각이 든다(142-143쪽). 매우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런 길이라도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죽음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우리들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왜 내일이나 밤 혹은 겨울에 대해서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오직 한 가지,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것뿐이다. 보다 나은 삶을 살수록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사라지고 좀더 자연스럽게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184쪽).
이건 톨스토이의 저서인 인생의 길에 나온 내용이라고 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회피한다고 해서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렇다. 그저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한다.
<영웅>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베토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굴의 의지와 뛰어난 통찰력으로 많은 걸작을 작곡했고 오늘날까지 그의 음악이 숭배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로망 롤랑은 「베토벤의 생애」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총칼로 승리한 사람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오직 마음으로 위대했던 자들이다.”(214-215쪽)
과연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큰 자가 영웅이다. 아마도 이렇게 보면 평범한 개인들도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은 명곡을 낳고 깊은 슬픔은 아름다움을 낳는 것 같다. 강한 것만이 영웅은 아닌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이 생각난다.
12음기법은 열두 음을 공평하게 쓰자는 합리적인 작곡 기법이기는 하지만 이 기법으로 작곡된 음악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즐거워할 수 있는 종류가 되지 못한다. 12음음악은 일단 조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의 음악적 해결이 없다. 불협화음과 협화음의 관계는 마치 직장생활에 있어서의 출근과 퇴근의 관계와 같다. 음악에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부여하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기 낭만파에 오게 되면서 이른바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니, 12음 음악에 이르러 아예 퇴근이란 것이 없어지게 되고 24시간 내내 일하는 듯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현대 음악 작곡가들은 수십 년이 지나면 자신들의 음악도 말러의 음악처럼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미술은 추상적인 작품에서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음악은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12음기법은 우리 뇌 속에 그러한 음악을 받아들일 수용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바르샤바의 생존자>를 감상할 때면 12음기법도 나름의 효용성은 있다고 느껴진다. 그 어떤 조성음악도 전쟁의 공포와 홀로코스트의 망령을 이토록 강하게 웅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곡 연주시간이 7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감상에 부담도 적은 편이다(198-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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