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라고 하면 우선 보지 않아도 어렵다는 선입견이 작용하게 마련인데..
박씨전은 선뜻 손이 가는게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나왔다는 점이다.
병자호란이란 역사적 배경을 두고 박씨 부인이 펼치는 활약상을 다룬 소설이라
책을 받아들자마자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가 역사를 좋아해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병자호란은 어느 왕 때 일어났지?" " 인조."
"소현세자, 봉림대군은 어디로 피난갔어?" "강화도."
"그런 인조는?" " 남한산성."
"그럼 병자호란때 쳐들어온 나라는 어디야?" " 청나라."
"그럼 청나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세운 비는?" "삼전도비."
묻는 말마다 척척 대답하는 아이가 역사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아 대견스러웠다.
뿌듯함을 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여자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는 자체도 매우 파격적인데... 더군다나
여자가 청나라 군대를 상대로 물리치는 여장부로 등장하는 것은 그 시대의 여자들에게
어떤 분출구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어 그 시대의 여자의 입장이 되어 잠시 생각해보니
참으로 통쾌한 작품이다.
그리고 박씨부인의 사람됨을 보지 못하고 외모가 박색인 것 때문에 부인을 푸대접하는
이시백은 참으로 용량이 부족한 사람이다. 부인이 허물을 벗은 후 미인으로 환골탈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때서야 부인을 보고 싶어하나 그 동안 자신이 부인을
푸대접한 것 때문에 선뜻 만나기를 주저한다.
'여자가 못생겼으면 성격이 좋던지...','못생긴 여자를 사귀는 건 여자가 돈이 많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들이 만연하고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해 있는 요즘인데
이 책의 박씨부인이 꼭 얼굴이 예뻐졌어야 했는지.... 허물은 왜 벗는지?, 외모가
출중해져야 그 능력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는지... 조선시대에도 외모지상주의가
있었나 싶은게 읽으면서도 왠지 쓴 약을 먹은 후 남는 씁쓸한 뒷맛같이 한참을 내게도
그 씁쓸함이 남아있었다.
삼전도비를 생각하면 참으로 그 항복이 치욕적이다. 침략자를 향해 왕이 이마를 땅에
찧으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식을 치루고 게다가 청나라 황제의
은혜를 찬양하는 비석, 삼전도비를 세웠다. 청나라에 항복은 했지만 청나라 군대와
싸워 이겼다는 박씨전은 그나마 위안을 삼게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을 가진 신통력을 가진 박씨부인은 청나라 비밀 임무를 띠고
박씨부인을 죽이러 온 기홍대의 계략을 미리 간파하여 위험을 모면하고 뒤뜰 별채주변
사방에 나무를 심고 피화당을 지어 청나라 장수들을 무릎꿇게 만든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지어진 이 작품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거의
없는 조선시대에서 그나마 여성이 한 몫을 한다는 대리만족적인 작품으로 선봉에 선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책의 뒷장에는 고전 속의 또 다른 고전이란 코너에서 <박씨전>과 <방한림전>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어찌보면 닮은 듯 하면서 다른 두개의 작품이 나온다.
<박씨전>은 여성 주인공인 박씨가 신통한 능력으로 공을 세우고 임금에게서 인정받는
다는 이야기인데 반해 <방한림전>은 여자로 태어나 남자처럼 공부하여 과거시험에도
합격하는 방관주와 시집가서 남편만 시중들며 사는 여자처럼 살기 싫어하는 영혜빙이
등장한다. 기존의(조선시대의) 여성관에 과감히 도전하는 파격적인 내용의 작품이다.
<박씨전>도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방한림전>도 참으로 재미있는 내용인 것 같아
찾아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