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친한 후배 중에 겹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가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들을 만나지요. 이를테면 여름날 낮잠을 자다 깨어나려고 할 때 누군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곳을 바라보면 그윽한 눈길을 보내다가 스르르 사라지는 존재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축복의 기운을 퍼뜨리는 것도 아니랍니다. 다만 그렇게 같은 공간이면서도 다른 차원의 시간대에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곳에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믿지 못할 노릇이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충분히 가능한 실재라고 여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장소엔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현실이 존재할 뿐 아니라, 한 장소에도 여러 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는 지금 현재의 나의 다른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황선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전격 발표한 『나온의 숨어 있는 방』또한 같은 공간이면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나의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들에 대해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한 아이들. 건강하면서 아프기도 한 아이들. 여기 있으면서 다른 곳을 꿈꾸는 아이들. 평범하면서 특별한 아이들. 때로는 이 모든 걸 자기 속에다 다 가진 아이들. 바로 우리 아이들’(「머리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에서 작가의 말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신비스런 넝쿨 집 공간에서 나온이가 자신의 병과 가족에 얽힌, 숨겨진 과거를 헤쳐 나가는 암시가 조금씩 보이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이야기의 힘은 느껴지지만 보편적인 공감으로는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판타지 동화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온이의 아픔이 나온이의 아픔으로만 여겨집니다. 아울러 인물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그림도 공감을 방해합니다. |
| <해리포터>,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등등이 환타지이면서 한편 성장소설이듯이, 이 책도 그렇다. 귀신이라 불러도 될 존재가 등장하지만, 딱 그렇게 부르기에는 뭣한 다른 시간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먼곳에서 부르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사랑처럼 보이는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몸과 마음이 아픈 가운데서 아이는 성장한다. 그러면서 참 한국적이다. 재개발을 앞두고 앞집, 뒷집 모두 이사나간 휑뎅그렁한 아파트. 그곳에서 현실적 이유로 선뜻 이사를 가지 못하는 한 가정이 주인공 나온의 집이다. 천식환자인 나온의 건강을 회복시키려 애면글면하는 엄마, 조금은 멀찍이 서 있는 아버지, 장난꾸러기 동생의 가족구성은 지극히 평범하고 한국적이다. 그래서 익숙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다. 그리고 과거는 집과 관련된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나온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비밀은 저마다의 상처이다. 이제 독자는 점점 익숙함과 낯섬을 넘나든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집과 핏줄이라는 모티브가 지극히 한국적인, 우리 식으로 잘 다듬은 환타지+추리+성장소설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비밀이 다 드러나도 명확한 해답을 본 것처럼 개운하지는 않다. 선문답처럼 주고받는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사람들끼리의 대화가 "아하!"라는 느낌으로 오지 않고 알아서 생각하라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보통 아이들 읽으라고 나온 장편동화는 길다 싶어도 단숨에 읽게 되는데, 이 책은 한 이틀 걸렸던 것 같다. 재미있어 할 아이는 무척 재미있어 하고, 흥미 없는 아이는 또 흥미 없어 할 것 같기도 하지만, 독특한 재미가 있다. 혹여 내게도 분신이 존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만드는 책. 아주 어린 시절엔 그랬을 법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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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의 숨어 있는 방은 천식에 걸린 나온이라는 아이와 넝쿨 집을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라온이라는 아이도 나온다. 나온이는 라온이라는 아이와 쌍둥이이다. 그러나 라온이는 급성 폐렴에 걸려 죽었고, 나온이는 천식에 걸리게 된 것이다. 나온이의 엄마는 나온이의 아빠가 넝쿨 집에서 서성대고 있는 모습을 본 뒤로 꿈을 꿀 때마다 "라온아, 라온아,"하면서 잠꼬대를 했다. 나온이의 아빠는 라온이가 죽은 그 집을 지키기위해 일부러 치밀하게 작전을 세워 다시 나온이 가족이 그 곳에서 살게 된다. 나는 라온이의 탯줄을 태울 때 너무 슬펐다. 하지만 라온이는 탯줄을 태움으로써 자신이 묶여있었던 넝쿨 집에서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간다. 그러니까 라온이는 귀신과 같은 존재라고 보면된다. 사람의 생사와 관계있는 일이라서 나는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사람은 왜 죽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세포가 늙어서 죽는 것이라는데, 그럼 세포는 왜 죽지? 많이 일을 해서 힘이 들어 포기해버리는 순간 사람은 죽는 것일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죽을수가있을까... 나온이가 나라면 자신의 쌍둥이의 존재를 알았을때 두려움에 휩싸일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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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너무나 감동있게 읽은 나는 이책을 읽기 전에 황선미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만으로도 믿음이 같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책을 읽는 내내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수없는 짜임새와 완벽한 묘사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매끄러운 환타지 동화이면서 성장소설이면서 가족소설이다. 황선미씨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
| <마당을 나온 암탉>과 <나쁜 어린이표>로 잘 알려진 황선미의 신작이다. 이책을 읽기 위해 접했던 작가의 대표작들처럼 우화나 동화의 방식을 빌어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은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는 작가의 노력이 이책에도 묻어나고 있다. 이번에 작가가 빼어든 주제는 가족간의 애정이다. 맞벌이 부부에 주말 부부인 나온의 부모와 가족,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랑 둘이서 철거를 기다리는 아파트에 사는 강우의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예전의 우리가 가족에서 느끼고 기대했던 사랑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활 속에서 스며들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천식을 앓고 있는 나온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뛰어 놀고 싶어하지만 나온이의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는 항상 모든 행동을 제약하고 하기 싫은 음악을 배우게 할려고 애쓰고 옷입는 것도 나온이의 취향을 무시한 공주풍의 옷만을 강요한다. 또 나온이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강우에 대해서도 엄마는 결손가정에 나쁜아이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색안경을 쓰고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을 반대한다. 엄마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에서 벗어나고픈 나온은 아빠 심부름 갔다 우연히 들른 넝쿨집에서 낯선 경험을 하고 엄마가 팔려고 애쓰는 그집에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알게된다. 나온이 태어나고 가족의 슬픈 사연이 담겨진 '넝쿨집'과 밤마다 꿈속에 나온을 찾아온 누군가에 대한 기록인 '나의 왼손'을 통해 엄마 아빠가 마음 속에 품고 살았던 아픔을 알게되고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린 자식을 잃어 그 죄책감과 부담으로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는 나온의 엄마와 아내가 그고통을 겪는 동안 옆에서 지켜주지 못했던 아빠의 미안함이 '넝쿨집'에서 라온을 만나며 풀어지게 된다. 철거 아파트에서 이사가는 집들이 있을 때마다 깨지는 전구를 바꿔 끼우며 아빠를 기다리는 강우네 가족의 기다림 같이 가족이란 내가 어디에 가 있더라도 나를 기다리고 품어주는 존재임을,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한 가정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항상 진지한 주제로 다가왔던 작가가 판타지란 쟝르를 통해 소개한 것들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지만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항상 고민해야 하는 작가의 고통도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
| <들키고 싶은 비밀>, <마당을 나온 암탉>, <일기 감추는 날>등의 많은 작품을 선보인 황선미씨는 작가 인지도 만으로도 신간이 나올 때면 주목 받는 작자이다. 이번에 발표한 <나온의 숨어 있는 방>은 현실과 판타지 공간이 교차되는 ''넝쿨집''을 배경으로 나온이라는 여자 아이가 겪게 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나온이는 지병인 천식 때문에 독감에라도 걸리게 되면 종종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할 만큼 몸이 약한 편이다.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철렁하고, 행여 열이라도 많이 나는 날에는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지켜보는 것이 부모 아니던가. 특히 나온이처럼 지병이 있는 아이에게는 늘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매사에 조심을 시키느라 잔소리가 늘 수 밖에 없다. 반면 아이 입장에서는 그것이 간섭이고 속박으로 여겨져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특히 배우고 싶은 것은 못 배우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억지로 배우게 하는 엄마가 미운 나온. 아이들은 이런 나온이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을 하지 싶다. 엄마는 나온이에게 운동도 못하게 하고 여자다워야 한다면서 바지도 못 입게 하니 과잉보호에다 극성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나온이를 공주과처럼 차려 입히고 단장을 시키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졌지만 나중에서야 엄마 나름대로도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였지만 그렇게라도 자식을 지키고 싶은 것이 어미의 마음임을 알기에 수긍하기로 했다. 나온은 근무하는 학교가 멀리 있어서 주말에나 만날 수 있는 아빠가 집에 빠트리고 간 물건을 갖다 드리러 갔다가 아빠와 함께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 보게 된다. 벽에 싱싱한 담쟁이 넝쿨이 숲처럼 우겨져 있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한 그 집을 ''넝쿨집''이라고 부르기로 한 나온. 그런데 그 곳에서 또 다른 세상의 공간과 내내 자신을 불렀다는 ''라온''이라는 남자 아이를 만나게 된다. 라온이는 나온이를 잘 알고 있는 것 마냥 대한다. ''나온''과 ''라온''은 하나이면서 둘인 존재이다. 다만 머물고 있는 세계가 다른 탓에 둘의 만남은 늘 꿈속인 냥 희뿌연 안개와 향기로운 꽃들로 싸여 있다. 현실에서 나온이가 힘들어 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같은 아파트에 할머니와 사는 강우는 예전에 나온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등 한동안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으나 나온이가 심하게 앓으면서 멀어진 친구이다. 조각난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은 탓에 비틀린 모습으로 비춰지는 강우를 엄마는 편견이 실린 시선으로 대하는데,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오해가 자리해 있다. 나온과 강우 간에도 오해와 반목이 거듭되지만 결국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나온이에게는 ''나의 왼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꾼 꿈을 기록하곤 하는 일기장이 있다. 이와 대조적인 상징물로 라온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를 연상시키는, ''오른눈이''이라는 토끼가 있다. 그리고 넝쿨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이 베어버린 모과나무도 엄마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나무이다. 아이에게 알려 주지 못할 아픔을 오래 전 가슴에 묻은 엄마.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다. 나온의 엄마는 그 커다란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기에 더욱 나온이 각별하고 조바심이 생겼던 것이다. 대화의 단절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나온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한 박자씩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나온과 라온이 주고받는 대화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함을 지니고 있다. 판타지 동화 형식을 취한 것은 좋았으나 마지막까지 비밀을 끌고 가려다 보니 대화 속에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제약이 따른 탓이지 싶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궁금증을 유발하여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은 있으나 글이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삽화는 깔끔하면서도 선명한 느낌을 주며 라온이 속한 세계의 풍경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저자의 머리말을 읽고 검색창에서 ''나온''이라는 단어를 한 번 찾아보았는데 나오질 않아 이번엔 ''라온''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단어는 ''라온''의 기본형인 랍다- 형용사로 ''즐겁다''의 옛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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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2 눈과 마음을 모두 닫은 사람들 ― 나온의 숨어 있는 방 황선미 글 김윤주 그림 창비 펴냄, 2006.9.7. 우리는 누구나 모두 다 볼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누구나 모두 다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모두 다 보는 눈’을 차츰 잃거나 잊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없으나,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보는 일’을 잃거나 잊으면서 쳇바퀴에 올라탑니다.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시험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서로 어우러져 놀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따돌림이나 편가르기나 괴롭히기 따위를 하거나, 홀로 컴퓨터게임으로 빠져듭니다.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들을 시험공부와 학원에 몰아넣으면서 삶과 사랑과 꿈하고는 등을 지도록 합니다. 삶과 사랑과 꿈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들은 이제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코앞에 있는 것조차 두 눈으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밥 한 그릇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농약을 친 푸성귀를 알아채지 못하며, 햇볕·바람·빗물을 먹은 싱그러운 나물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오직 돈만 벌어야 한다는 사회·경제 얼거리에 갇힙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자리가 아니라면 아무 뜻이 없는 줄 여깁니다. 삶을 가꾸는 일이나, 사랑을 나누는 일이나, 꿈을 키우는 일하고는 아예 등을 집니다. 이리하여, 스무 살쯤 될 무렵에는 사람을 제대로 마주할 줄 모르고, 서른 살쯤 될 무렵에는 사람한테 깃든 착한 숨결을 찬찬히 바라볼 줄 모르며, 마흔 살쯤 될 무렵에는 사람한테 서린 참된 넋을 옳게 읽을 줄 모릅니다. .. “나무 좀 베었다고 세 살던 사람을 내보낸 건 성급한 처사지. 나무가 워낙 커서 창문도 가리고, 볕도 안 들어 그랬다는데.” “그럼, 집주인에게 물어 봤어야죠. 그렇게 오래 살고 약이 되는 나무를 물어 보지도 않고 벤 걸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요. 당숙모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던 나문데.” … 여기에 살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오늘은 여기가 꼭 우리 집인 것처럼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 (13, 68쪽) 오늘날 꽤 많은 사람들은 장삿속을 가리지 못합니다. 장삿속을 가릴 줄 알더라도 그냥 장삿속에 휘둘립니다. 오늘날 퍽 많은 사람들은 겉치레나 눈속임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를 휘어잡은 이들이 꾸미는 겉치레나 눈속임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거짓말에 쉬 넘어갑니다. 참이 아닌 거짓을 쏟아내는 신문과 방송이 흘러넘쳐도, 참과 거짓을 스스로 가릴 줄 모릅니다. 곁에서 눈밝은 사람이 참과 거짓을 제대로 가려내어 알려주어도 이를 귀담아듣거나 눈여겨보지 못합니다. 아주 종(노예)이 되고 맙니다. 이를테면, 요즈음 아이들은 딸기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돋는 열매인지 모릅니다. 딸기꽃을 아는 아이는 매우 드뭅니다. 딸기는 비닐집이 아니라 들과 숲에서 나는 열매인 줄 생각하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가게에 나도는 거의 모든 딸기는 비닐집에서 겨우내 석유난로 기름내음을 먹으면서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와 수돗물로 자란 줄 생각하지 못하고, 이런 모습을 보더라도 아무것도 못 깨닫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막걸리라 ‘쌀로 빚은 술’인 줄 잊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막걸리는 ‘쌀’로도 안 빚고 수입밀로 빚습니다. 한국에서 나는 쌀로도 안 빚고 수입쌀로 빚기 일쑤입니다. 여기에 갖가지 첨가물과 화학약품을 집어넣어 단맛을 돋웁니다. 그렇지만 이를 깨닫는 어른은 대단히 드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닭우리에 갇힌 닭처럼 길드는 오늘날 사람인 탓에, 비닐집에서 농약과 비료와 수돗물로 키우는 딸기나 푸성귀를 먹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학교와 사회와 제도권에 길들여진 사람은 ‘길들여진 밥’과 ‘공장에서 똑같이 찍은 밥’만 먹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도 길드는 종이 되는 길로 접어드니까, 스스로 놀이를 새롭게 지어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컴퓨터게임에만 빠져들어야 할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눈은 있으되 눈으로 못 보고, 귀가 있으되 귀로 못 듣고, 마음이 있으되 마음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 강우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는 일을 겪기는 했다. 아파트가 떠들썩하게 싸워대던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가 버려서 할머니랑 살게 된 것이다. 그게 우리 집 일이었다면 난 미쳐 버렸을지 모른다 … 엄마는 내가 여자답기만 바라지, 그게 나를 힘들게 한다는 건 모른다 … “너네는 어디로 간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야말로 갈 데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넝쿨 집. 어쩌면,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좋은 집인가 보다. 이름이 예쁘네.” “응. 거긴, 예쁘고 좋아.” .. (27, 33, 222쪽) 황선미 님이 쓴 어린이문학 《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2006)을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내 삶’이 없습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학교를 다니고, 옷을 입으며, 밥을 먹습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학원을 다니고, 하루를 보냅니다. 이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놀 줄 모릅니다. 아이는 스스로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그저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도시를 보면 사람도 많고, 어른과 아이도 많습니다. 그러나, 도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은 서로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지 않습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는 얼마나 크고, 학급도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면, 그 많은 ‘학교 아이’는 서로 동무일까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이웃이나 언니 오빠 누나 동생으로 지내는가요? 시골에는 마을마다 아이가 없어서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동네마다 아이가 넘치지만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똑같습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막힌 모습은 똑같습니다. .. “와아! 누가 이걸 다 키웠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사방이 꽃이었다. 평평한 곳이든 언덕진 곳이든, 돌 틈이든, 장독 옆이든, 나무 근처든 어디든 갖가지 색의 크고 작은 꽃들이 들쭉날쭉한 풀과 더불어 사방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꽃이 진 자리에는 갈색이나 짙은 보라색 열매가 맺혀 있었다. 그 애는 콧노래를 부르며 꽃들 사이를 걸어갔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머리가 시원해!” .. (146쪽)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눈을 감아도 서로 알아봅니다. 마음을 열면,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어떤 느낌이요 생각인지 환하게 알아챕니다. 마음이 없기에, 우리는 눈을 떠도 서로 살가이 사귀지 못합니다. 거짓과 속임수와 눈가림과 겉치레만 판칩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니, 우리는 하루 내내 한곳에 함께 있어도 기쁘게 웃거나 노래하지 못합니다. .. 울음이 멎자 할머니가 다시 나를 마주보고 섰다. “아가. 무엇이든 자신이 속한 시간에 살아야 한단다. 라온과 내가 속한 시간, 네가 속한 시간은 달라. 넌 살아 있는 영혼이고, 우린 아니지. 그런데 네가 여기 있구나. 그래서 내가 찾아내기 어려웠던 게야. 넌 지금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 위험해. 자기 시간에 속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냐. 떠돌이나 마찬가지란다. 라온과 나는 곧 우리만의 시간을 따라갈 거야. 네가 속해야 할 시간으로 가렴. 내가 도와주마.” … “할머니가 잊으신 게 저 신발이에요?” “아니다. 그리고 난 무얼 잊은 적이 없다. 아주 요긴한 때 쓰려고 잘 숨겨 두었지. 봐라, 나뭇잎 신발을 받쳐 줄 바람이 오고 있지 않느냐. 태 항아리 덕분이야. 저 바람은 라온을 잡아 주는 삼신할미 손길이란다. 오랜만에 저걸 타는구나. 라온은 바람의 잔등을 타는 걸 참 좋아했지.” .. (238, 239쪽) 눈과 마음을 뜨지 못하면, 몸뚱이는 ‘산 목숨’으로 보여도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눈과 마음을 뜨면, 몸과 마음이 싱그럽게 빛납니다. 눈과 마음을 닫으려 하면, 몸뚱이와 마음은 그저 죽음길로 치닫습니다. 눈과 마음을 열려 하면, 몸과 마음은 눈부시게 깨어나서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풀과 나무와 꽃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흙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새와 짐승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섞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도시나 시골 모두 풀·나무·꽃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들이나 숲을 삽차로 밀어붙여서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나 발전소나 송전탑이나 군부대나 아파트나 이런저런 쓰레기더미로 바꾸고 맙니다. 오늘날에는 도시와 시골 모두 흙이나 새나 짐승을 동무로 삼지 않습니다. 흙이 죽든, 새와 짐승이 숨을 거두든, 참말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평화하고는 동떨어진 전쟁무기를 잔뜩 갖추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지만, 막상 더 무섭고 아프며 괴로운 사회가 되는 줄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짓밟는 전쟁무기를 갖춘 군부대에 젊은이를 집어넣어 바보로 만들지만, 정작 이렇게 스스로 바보가 되는 줄 옳게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나온의 숨어 있는 방》에 나오는 아이 ‘나온’은 몸뚱이가 깃든 이곳(이승)에서 즐겁지 않습니다. 즐거운 날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쌍둥이로 함께 태어났으나 먼저 저곳(저승)으로 떠난 ‘라온’과 함께 가려 합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없어 보이는 이곳에 있을 뜻이나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린 ‘나온’은 이곳에서 삶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온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라도 뉘우치고 깨달으면서 사랑과 꿈을 키우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옆에 있는 아이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 ‘나온’과 ‘라온’을 함께 바라보도록 눈을 뜨면서 삶을 새롭게 지을 수 있을까요? ‘라온’은 바람을 타고 저곳으로 갑니다. ‘나온’은 할머니가 가로막아서 라온과 함께 바람 타고 가는 길로 가지 못합니다. 나온은 앞으로 어떻게 살까요? 나온은 앞으로 스스로 눈을 뜰 수 있을까요? 4348.2.2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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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마을 몽당깨비><마당을 나온 암탉><나쁜 어린이표> 등으로 황선미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 작가 중의 한명이 되었다. ’황선미의 신작 판타지 동화’라는 소개문구가, 그리고 단지 황선미 작가의 책이라는 것만으로 이 책을 읽고 싶게 하는 동기는 충분했다. 내딸과 같은 초등5학년인 주인공 나온. 천식 때문에 엄마의 지나친 간섭을 받는 나온은 피아노와 바이올린보다는 자전거 타기와 같은 운동을 더 좋아한다. 엄마가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다는 것을 잘 아는 나온이지만, 그런 간섭이 싫고 못마땅하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친구 강우에게 자전거를 배웠지만, 왠지 모르게 강우는 자신에게 쌀쌀맞기만 하다. 요즘들어 나온은 악몽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아이와 만나게 되고, 구덩이에 빠지는 등의 가위에 눌리는 나온은 아빠가 사준 일기장 ’나의 왼손’에 꿈을 기록하곤 한다. 어린 시절 살았던 ’넝쿨집’으로 인해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나온은 아빠와 함께 가게 된 넝쿨집에서 꿈같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꿈속에서 보았던 아이를 만나게 되고, 나온은 혼란을 겪으며 점점 몸이 악화되곤 한다. 집을 팔겠다는 엄마와 넝쿨집에서 살고 싶다는 아빠의 대립 속에서 나온은 알 수 없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꿈속에 나타나는 아이를 통해서 넝쿨집에 대한 애뜻함을 가지게 된다. 나는 두 아이의 생일날 수수팥떡으로 해서, 아이들이 자는 머리맡에 놓아준다. 삼신할머니에게 아이들을 잘 돌봐달라는 의미로 올리는 거라며, 꼭 해야한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시작했던 일이였지만, 몇 해가 지나자 스스로 그 일을 챙겨서 하게 된다. 아픈 나온을 지켜주던 삼신할미의 모습이 나온 부분을 읽고 있자니, 왠지 어디선가 삼시할머니가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고, 보살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이 책속에는 삼시할미와 라온, 꿈, 넝쿨집에서의 라온과의 만남, 토끼 오른눈이 등 다양한 소재로 판타지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가족’’사랑’이라는 잔잔함을 깔아놓고 있다. 엄마아빠의 이혼으로 집을 나간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살아가는 강우는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현관의 전등이 꺼지지 않도록 전구를 깔아끼운다. 엄마가 전에 살던 집으로 올까 싶어서 며칠 동안 기다리는 강우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을 전한다. 나온과 라온의 이야기 속에서도 ’가족’’사랑’’아픔’’상처’ 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꿈과 알수없는 세계에서의 경험은 나온에게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엄마의 상처를 어루만 질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강우와 나온은 서로 다른 환경에 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는 아닐까 싶다. 늘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황선미 작가는 이 책속에서는 판타지라는 소재를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감동과 함께 전하고 있다. 황선미 작가의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동화책이라는 느낌을 가져본다. 그 느낌이 새롭기도 하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겨지기도 한 것은 이전의 동화에서 느꼈던 황선미 작가만의 느낌이 조금은 배제된 느낌이라서 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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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한 아이들이 각자 살아갈 세상에서 더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라온과 나온'이라는 뜻 깊은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기억 속에만 남아야 하는 아이가 되고 말았기에 왠지모를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커져만 가는 엄마는 다시금 그러한 아픔이 생겨날까봐 늘상 전전긍긍 한다. 그러한 속내를 알지 못하는 아이는 단지 자신의 병약함만으로 모두를 간섭하는 엄마가 귀찮고 불만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우연히 이성적인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 느낌으로 만남을 하게 된 아이들은 낯설지만 왠지 서로를 잘 아는 것같이 느끼게 된다. 어느 한편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음으로 해서 더욱 혼란스럽지만 자꾸만 넝쿨 집으로 이끌리게 되는 마음처럼 그렇게 그곳을 찾게 된다.
늘상 병약한 아픔으로 인해 외로울 수 밖에 없었던 나온이가 자신의 일기인 '나의 왼손'에만 그 모든 하소연을 했었는데...., 그동안 어색할 수 밖에 없었던 강우와 오해를 풀고 화해할 수 있게 되고 또 다른 만남으로 묘한 새로움을 찾게 된다. 어떻게든 팔아 버리려고 하는 엄마의 넝쿨 집에 있는 잘려 버린 모과 나무와 자신이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 방에서 향기를 모으는 일을 하는 아이는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 하면서......
그러나 모과 나무가 잘려 버림과 동시에 그 아이가 길을 잃고 갇혀 버린 것임을 알 게 된다. 왠지 직감적으로 두 아이들이 연관되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는 엄마는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라온의 표시를 따라 여행을 하게 되었다면 불안이 슬픔으로 다가왔겠지만 할머니의 타이름으로 라온과의 만남을 가슴에만 기억해야 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이끌림을 뒤로한채 서로가 속한 시간속으로 각자 헤어져야만 하게 된 것이다. 비록 라온의 시간은 끝이 났어도 그의 방이 남아 있기에 그 안에서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을 떨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태어나 같은 기쁨을 누리고 살지 못한 라온의 외로움을 따스하게 위로하고 그 몫까지 알차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온이는 깨닫고 다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얽매이듯 옥죄는 삶을 살아야만 했던 엄마 아빠도 조금은 편안해져서 이전의 라온이가 가꾸던 아름다운 정원과도 같은 모습으로 넝쿨 집도 변해져 가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
| 황선미의 책을 기다려온 독자라면, 또 그것이 환타지라는 장르라 하니 더더욱 궁금증을 일으켰었던 책이다. 신간이 나올때마다 빨리 구입해보지 않으면 불안 할(?)만큼 그의 작품은 늘 기대를 가지게 한다. <나온의 숨어 있는 방>역시 독특한 소재와 구성, 치밀한 플롯으로 단숨에 독자를 매료시킨다. 그것이 작가의 힘이겠지만.... 환타지를 좋아하는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나온은 평범한 집에서 자란다. 조금 다르다면 천식을 앓고 있고 엄마의 지나친 간섭과 사랑으로 아이의 옷을 입는것에서 부터 모든것을 엄마의 취향에 맞추어 키운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 였는지는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면서 화해를 하게되고 모든 비밀이 밝혀지기도 한다. 나온은 엄마가 팔려던 넝쿨집에서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또 다른 ''나-라온''을 만나게 된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안개속에서 헤매이듯 그 비밀에 하나씩 다가가는 방식이 추리소설을 읽는 듯 했다. 쌍둥이는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도 다른 이를 조정할 만한 힘을 가질수도 있을것같은 신비감과 함께 나온이 현실로 올 수 있었던 이유를, 강우가 매번 깨진 전구를 갈아끼우며 불을 켜두는 이유를 가족애를 통해 풀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와 더불어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