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30%
  • 리뷰 총점4 1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6.0
리뷰 총점 종이책
사회과학과 신학의 만남
"사회과학과 신학의 만남" 내용보기
도올 김용옥이 요한복음 강해를 써서 기독교부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모 방송국이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방영하며 예수가 인간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마당에, 기독교 신학자의 역할은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런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몹시나 대담한 오산이다.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가장 큰 부분은, 기독교가 시대에 뒤쳐져 있
"사회과학과 신학의 만남" 내용보기

 도올 김용옥이 요한복음 강해를 써서 기독교부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모 방송국이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방영하며 예수가 인간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마당에, 기독교 신학자의 역할은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런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몹시나 대담한 오산이다.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가장 큰 부분은, 기독교가 시대에 뒤쳐져 있기 때문에 오늘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과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명징하고 객관적으로 적용할 경우 기독교는 잘못된 것으로 결론날 것이라고 여기는 점이다.

 

 과연 갈릴레이 이래로 다윈을 거치면서 기독교는 자연과학의 위대한 발견들과 담을 쌓고 퇴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프로이트 이래로 기독교는 정신분석학의 대담한 이론들과 거리를 두고 오직 믿음(Sola fide)의 기치만을 내걸고 있는가? 과연 기독교는 여러 사회과학과 심리학의 주장들을 무시하고 홀대하며 고립의 공간으로 스스로를 가두어가고 있는 것일까?

 

 기실 기독교 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만이 이러한 질문에 긍정하며, 그들 대다수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심리학 등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기독교 신학을 깊이있게 공부한다면, 기독교를 공격하는 많은 이론들의 바탕에 기독교 신학자들의 주장이 깔려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새롭게 발견해내거나 스스로 입증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은 19세기에 흥왕하다가 20세기 들어서 폐기된 자유주의를 주창한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것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과학의 발달이 칼날같이 완전한 법칙성의 세계로 나타나 기독교를 해체시키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냉정히 말하건대 그들은 현대 물리학을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중학교 때 배운 뉴턴 역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라는 책은 미국 UCLA 대학의 근동언어문화학과 교수인 윌리엄 슈니더윈드의 저작으로, 성서 신학과 사회 과학을 접목시키고 있는 빼어난 책이다. 사회 과학 분야의 고전 중의 고전으로 월터 J. 옹의 "구술문자와 문자문화"라는 저서를 들 수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라는 책의 내용도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 개략적인 설명은 본문 중에 나와 있다.

 

 저자는 고대 근동의 여러 유물 및 역사 기록들과 성경을 비교 분석하면서 그 안에서 일차적 구술성과 문자성의 특징들을 찾아간다.(이러한 용어는 옹이 사용한 것으로서 슈니더윈드는 직접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동일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 일차적 구술성이란 아직 문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문자를 배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니는 특성을 말한다. 그들은 문자라는 매체를 일체 사용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한 구술성의 특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미 문자라는 매체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이러한 일차적 구술성의 세계에 완전히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다만 일차적 구술성이라는 우리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독특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주지하고, 그 특성을 짐작코자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다. 슈니더윈드는 이러한 점을 잘 이해한 채로 고대 근동의 기록들과 성경의 기록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성경과 고대 근동 기록 양자에서) 놀랄 만큼의 자료들이 일차적 구술성을 띠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며, 그에 상응하여 문자화를 신성시하는 보다 후대의 특징들도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다.

 

 슈니더윈드는 이러한 발견들을 바탕으로 우리를 새로운 통찰로 초대한다. 그것은 '성경이 도대체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이다. 리처드 프리드만의 대작 "성경은 누가 썼을까?"의 빼어난 작품성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저자는 그 질문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잘라 말한다. 성경을 누가 썼는지 궁금해 하는 것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의 관습이다. 책을 썼다면 저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헬레니즘 시대 사람들과 그 정신적 유산을 물려 받은 우리 시대 사람들 뿐이다. 그보다 더 고대의 사람들은 책이 있을 때 그 저자가 누구인지 묻는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며, 그보다도 더 고대의 - 문자를 모르던 - 사람들은 책이라는 것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었다. 슈니더윈드는 성경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기존의 성서 신학자들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여러가지 성경 내외의 증거를 통해 성경이 언제쯤 쓰여졌는지에 대해 한 가지 포괄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일차적 구술성의 세계가 지나가고, 문자 문화가 사회 전반을 광범위하게 휩쓸었던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의 유다 왕국이 그 답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에 모든 성경이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훨씬 오랜 옛날부터 성경의 내용이 구술로 전승되어 왔을 것이고, 비록 사회 전반에 문자 문화가 퍼지지 않았던 시절에도 왕궁에서는 서기관들이 문자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 구술 전승들이 문자화되어 단편적인 기록으로 전수되었을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왕궁 서기관들을 통해 많은 내용들이 문자화되거나 수집되었을 것이고, 북왕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 이후에 성경이 전혀 안 쓰여졌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 변화되는 대전환이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의 유다 왕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현재의 성서의 큰 틀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대다수의 성경이 이 당시에 쓰여졌을 것으로 본다.

 

 저자의 입장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물론 진정한 보수를 자부하는 교파에서 본다면 굉장히 파괴적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오늘의 신학을 성실히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가진 근본적인 입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의한다고 해서 그 놀라운 파격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신선한 고찰은 문화인류학자 잭 구디, 언어학자 월터 J. 옹, 커뮤니케이션학자 마셜 맥루한 등의 사회 과학 이론들의 도움을 충분히 받고 있으면서도 새롭고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매우 바람직한 시도이며 아름다운 시도이다. 신학과 사회과학(신문방송학)을 모두 전공한 리뷰 필자로서는 이 책의 신학적인 우수성과 사회과학적인 우수성 모두에 높은 별점을 주고 싶다.

b***k 2009.11.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앙서적이 아니고 성경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로군요.
"신앙서적이 아니고 성경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로군요." 내용보기
지금 한국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합해서 총 66권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니까 제1권인 창세기에서부터 마지막 66권이 요한계시록까지이다. 이 성경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도난이 많이 되는 책이라고도 한다(호텔에 가면 방에 성경 한 권씩 있지 않은가. 그 책들이 가장 많이 도난당한다고 한
"신앙서적이 아니고 성경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로군요." 내용보기
지금 한국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합해서 총 66권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니까 제1권인 창세기에서부터 마지막 66권이 요한계시록까지이다. 이 성경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도난이 많이 되는 책이라고도 한다(호텔에 가면 방에 성경 한 권씩 있지 않은가. 그 책들이 가장 많이 도난당한다고 한다). 이 책은 기독교인들을 위한 책이 아니고 문자문화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는 책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좀 어렵게 여겨지게 될 것이다. 나조차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성경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선데이 크리스천인 관계로 성경을 잘 모르고 이 책을 읽는 사람과 거의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인문학 수준으로 이 책을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문자화의 역사에 대한 책으로 읽었다. 성경 각 권을 보면 저자로 추정되는 사람과 어느 시기에 쓰여 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많은 성경연구자들과 고고학자들에 의해 그 비밀들이 서서히 그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처럼 ‘성경은 언제 책이 되었을까?’지금 우리들은 보통 가죽 표지에 쌓여 있는 품격있는 책으로서 성경을 만나고 있지만, 이러한 형태의 책의 모습을 갖추게 되기 훨씬 전일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오듯이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단순히 구전으로 그 내용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자가 발명되고 이것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는 필요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글자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Literacy)은 소수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성경을 일반인들이 읽은 시기는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의 금속활자를 가지고 자국어(유럽 여러 나라들의 언어로)로 성경을 인쇄한 이후였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성직자나 귀족 등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그 시기를 정보의 독점시대라고나 할까? 하여간 구전되어오던 각 성경은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각기 문자로 정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시기를 찾고자 하는 연구의 결과이다. 그 시기를 알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성경이 탄생한 지역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그 지역에서 사용하던 문자, 그리고 후대에 발굴되는 유물 등이 연구의 기본적인 도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몇 가지의 도구만 가지고 쉽게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으리라. 성경이 탄생한 그 지역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민족들의 흥망성쇄가 급격히 이루어졌던 곳이다. 지금도 지구의 화약고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지금도 성경이 책으로 된 시기나 저자들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 아니겠는가! 몇 년 전에 본 영화인 에서 보면 예수님이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그랬을 터인데, 그 언어가 바로 ‘아람어’라고 한다. 이는 페르시아가 중동지역을 통치할 때 사용하던 언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만약 성경을 적은 두루마리나 글이 쓰여 있는 재료에 적혀있는 언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저작의 시기를 추정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엄청나게 출간되는 책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들에는 언제 그것이 출판되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서지사항이 나와 있어 출간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서지 사항이 책에 수록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서지사항이 없더라도 저자를 알면 그 출간 시기를 유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천 년이 넘는 오래된 과거에 쓰여진 책의 출간시기와 저자를 알 수 있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 책이 바로 이런 점을 알려고 연구한 결과를 적은 책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문자를 전달하는 도구는 처음에는 대나무였다. 대나무에 글을 쓰고는 가죽으로 엮어서 옆으로 붙여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본 딴 글자가 바로 책(冊)이다. 그리고 후한 시대에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는 현재 우리가 보는 책 같은 형태의 종이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파피루스나 양피지, 그 이전에는 점토판에다가 글씨를 적었다. 아마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구했을 것이다. 서양에 종이가 전래된 것은 오래되었을 테지만 서영에서 종이를 직접 생산한 것은 8세기의 탈라스 전투 이후였을 것이다. 아무튼 서양도 동양과 마찬가지로 양면에 글을 써놓은 종이들을 한 데 묶어 책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코덱스(codex)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쉽지는 않은 책이지만 이 책 안에는 중동의 역사와 언어,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특히나 성서에 관해 종교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에 자신의 신앙에 관계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 보여진다.
e****n 2006.10.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타종교인으로서 성경 이해하기
"타종교인으로서 성경 이해하기" 내용보기
솔직히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성경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가 아닌, 불교인으로서 이 책을 읽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성경에 대한 기본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과연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덥썩 이 책을 집어들게 만든 것은 깔끔한 표지 디자인과 작가의 깔끔한 문체때문이었다. 게다가 역사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책 제
"타종교인으로서 성경 이해하기" 내용보기
솔직히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성경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가 아닌, 불교인으로서 이 책을 읽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성경에 대한 기본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과연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덥썩 이 책을 집어들게 만든 것은 깔끔한 표지 디자인과 작가의 깔끔한 문체때문이었다. 게다가 역사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책 제목은 ''성경''이라는 주제를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주요 주제로 성경의 문자화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기원전과 그 이후의 시대상을 함께 곁들여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독자들이 기본적으로 성경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세한 내용설명이 군데군데 생략된 것은 좀 아쉽다. 이 책의 주요 독자층으로는 기본적으로 성경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나같이 성경이라고는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소 벅찼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성경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다시 성경 내용을 읽는 것 또한 힘들테니 작가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는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각주를 달았으나 설명은 책 뒤쪽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각 장의 밑에 있는 각주들이 너무 길어서 본문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예 책 뒤쪽에 두툼하게 정리를 해 놓으니 본문을 읽을 때는 전혀 방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번역이 무난하게 되어 읽기 어렵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심도있는 이해는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성경에 대해서, 이스라엘 인들에 대해서 알게 되어 기쁘다. 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을 위해 보다 자세한 설명이나 더 많은 사진을 곁들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k******8 200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입말과 글말의 힘겨루기 살펴보기.
"입말과 글말의 힘겨루기 살펴보기." 내용보기
입말과 글말, 어느 것이 먼저일까? 너무 당연한 궁금증일까?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지식에 기대지 않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하다. 꽥꽥거리던 소리의 분화에서 시작된 인간 언어의 시작은 분명히 입말부터다. 그럼, 또 하나의 질문을 해보자. 입말과 글말,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신빙성과 권위가 있을까? 말에 대한 옛 고사 성어는 변질되기 쉬운 입말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가
"입말과 글말의 힘겨루기 살펴보기." 내용보기
입말과 글말, 어느 것이 먼저일까? 너무 당연한 궁금증일까?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지식에 기대지 않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하다. 꽥꽥거리던 소리의 분화에서 시작된 인간 언어의 시작은 분명히 입말부터다. 그럼, 또 하나의 질문을 해보자. 입말과 글말,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신빙성과 권위가 있을까? 말에 대한 옛 고사 성어는 변질되기 쉬운 입말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가담항설(街談巷說)이라든가, 삼인성호(三人成虎)라든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입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붙어다닌다. 말 속에 담긴 내용의 권위와 신빙성은 때때로, 오로지 말하는 사람의 권위와 믿음에 의존한다. 어떤 사건이 터졌다 하면, 어디선지 나타나는 "전문가"들처럼.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출판되고,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성경''이라는 것 자체로 21세기 오늘에는 종교를 상징하고, 그 권위를 스스로 부여하는 책. ''하나님의 말씀''이 담겼다는 이 책. 윌리엄 슈니더윈드가 지은 이 책은 제목을 전략적으로 꽤 잘 붙였다.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예비 독자들을 향한 질문은 16,500원이라는 꽤 무거운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들춰보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책 자체가 학문의 대상이 되고, 믿음의 대상이 되는 책. 그 스스로 권위를 부여하고 누리는 책. 성경에 대해 쓴 이 책은, 독자층이 어느 정도 확실히 있다는 점과, 예비독자들이 흥미를 끌 수 있는 제목을 달았다는 점에서 절반은 성공했다.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 작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계속 질문에 이은 답변으로 글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문자로 된 성경이 있던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얘기부터 시작하면서, 글말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문자는 어느 때나, 신령한 힘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오늘도 태어난 아기들을 위해서 많은 부모들은 철학관을 찾는다. 조금이라도 밝고 나은 운명을 갖기 바라며, 한자(漢字)의 획수와 금-수-목-화-토의 오행에 맞추어 이름을 지을 테다. 잠깐 다른 소리를 하자면, 동양-중화 문화권에는 파자점(破字占)도 있었다. 요즘에도 장난삼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조선에서는 웃지 못 할 파자 사건도 있었다.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나뭇잎. 지금 우리 시각으로 바라보면 “저걸 누가 믿어”라고 툭 내뱉을 일이지만, 저래 봬도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중종시대에도 “문자의 신령한 힘”을 믿었다는 증거라고 해도 될 만큼. 솔직하게 말해, 이 책은 재미없다. 나는 기독교-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성경의 내용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성경학교”에서 받은 기억이 전부다. 노래로 배웠던 요한복음 (3:16)같은 것들만 유령처럼 기억을 떠돌고 있는 판에, 성경학자가 반전문적―아니면, 이미 교리, 성경공부를 어느 정도 했던 독자를 겨냥해― 교양서로 쓴 이 책은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대학에서 언어-문자학을 공부했던 내게 당연한 것을 근거로 고리들을 엮어갔다. 반농반목(半農半牧)의 근동지역 유태인들의 문화에서 출발해 보면, 고리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이어진다. 처음에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직접적인 행동과 입말로 ‘하나님의 율법’을 전파했다. 그러다 점차 국가가 생겨나고, 행정을 위한 문자 업무와 국가의 위엄과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문자 생활을 슬슬 시작한다. 그랬기에 쉬운 문자를 쓸 필요가 없었고, 상징이 담긴 문자형(文字形)이 더 예쁨 받았다. 이집트의 서기관의 밥벌이 도구였던 신관문자처럼. 국가가 커지고,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면서 도시화가 진행된다. 국제 무역도 활발해지고, 상업-공업에서도 실용적 목적으로 문자를 쓰기 시작한다. 조직의 정점에 서있는 사람은 자신의 지시가 그대로 끄트머리까지 전달되기를 바란다. 말은 사람을 거치며 개개인의 언어로 바뀌기 때문에, 글로 작성되어 변하지 않는 문서의 힘이 필요하다. 입말권위 문화에서 글말권위 문화시기로 넘어간다. 어려운 문자에서 쉬운 문자로 넘어갔고, 살아있는 선생님의 말씀보다, 두루마리에 적힌 글이 힘을 얻었다―등등. 이 책에는 이 같은 얘기들을 줄줄 풀어 놓으며, 성경 속 인물들과 고고학적 연구들, 사례들을 들어가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구약을 많이 읽어 무불통달한 교인이거나, 사회상에 따라 달라지는 입말과 글말의 힘겨루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읽는다면 꽤 삼삼할 책이다. 신학, 고고학, 사회언어학, 문자학 등의 영역에 뻗어 있는 작자의 글쓰기 덕에, 교양 인문서적으로 권하기엔 약간 벅찬 느낌을 감추기는 어렵다.

[인상깊은구절]
사해사본에 들어 있는 위의 성전 사본은 말하는 이를 하나님으로 바꿈으로써 엄청난 권위를 부여받는다. -pp.24 글에 대한 고대의 개념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여전히 사람들의 이름은 저마다 의미를 지니며, 이름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짐작할 수 있다. …… 오늘날까지도 유대교 회당에서는 토라가 적힌 두루마리를 궤 안에 보관하고, 예배 시간에 그것을 꺼내어 들고 순회하며 경축한다. 교회에서는 성경을 높은 단 위에 자리잡은 강대상에서 읽는다. 우리는 여전히 기록된 글을 경외하는 경향이 있다. -pp.66 구전은 듣는 이가 눈앞에 있고 즉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글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과는 다르다. 글을 통한 의사소통은 외형적이고 추상적이며, 객관적이다. -pp.344
YES마니아 : 골드 c***m 2006.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종교와 인류의 문화역사의 결합. 성경, 책이 되다.
"종교와 인류의 문화역사의 결합. 성경, 책이 되다." 내용보기
나는 천성이 ''무교''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요즘은 어딜가도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믿음이 있는 종교를 가지고 있고 ''무교입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양에서는 ''나는 무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무교''가 아니라 ''특정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가
"종교와 인류의 문화역사의 결합. 성경, 책이 되다." 내용보기
나는 천성이 ''무교''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요즘은 어딜가도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믿음이 있는 종교를 가지고 있고 ''무교입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양에서는 ''나는 무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무교''가 아니라 ''특정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가 맞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도 여러차례 신앙을 가져보려 노력했던적이 있었는데 나는 종교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신앙이 없이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중생이랄까. 그런 나도 종교의 교리만큼은 철학적인 의미에서 접근해보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대학 때 기독교인인 친구를 따라 기독교 동아리의 전무후무할 ''명예회원''으로 약 한달 성경공부를 했었다.(무교라서 ''회원''은 아니었음^^;) 전적으로 종교적인 의미에서 동아리를 이끄는 사람의 지도와 전적으로 철학적인 의미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나와의 마찰로 길지 않은 기간에 끝을 맺었지만 말이다. 그 때 나는 새삼스럽게 ''종교는 따지면 안되는 것. 종교적인 것으로 다투면 안된다는 것''을 되새겼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그 선배에게 토론하듯 교리를 물었던 나도 참 우습다.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미래에도 계속 나는 종교에 대한 것이라면 기독교든 불교든 옴진리교든 호불호를 구분하거나 과학적으로 따져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문과 관심이라도 비종교인이기에 신앙이 아닌 철학적인 고찰로 이어지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종교인에게도, 비종교인에게도 유익한 책이 아닐까 싶다. ''종교서적''에 꼽아두기엔 아까운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관련 서적이 ''종교의 내용''이라거나 ''종교의 실증''등을 따져들거나 한다면 이 책은 그저 ''종교교리인 성경이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지고 현재에까지 이어졌는지''를 연구한 논문에 가깝다. 그렇기에 100% 종교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100% 학문적이지도 않다. 민족의 탄생에는 종교적인 신화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도 그러하다. 이러한 신화가 신앙으로 발전하여 민족의 종교로 오랜세월 함께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신화나 신앙이 아닌 역사가 된다. 역사란 그 안에 무수한 팽창과 소멸이 있다.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것은 지도 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 또한 그 역사의 파란과 함께 팽창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겪어왔다. 그렇다면 성경에 담긴 신앙은 역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종교가 역사가 될 때 그것은 신앙을 넘어서 현실이 된다. 신의 말씀은 그 민족의 뿌리가 되고 그 말씀을 전하는 기록의 책은 역사적 사실과 합해지게 된다. 성경 또한 무수한 시간동안 기록되고 덧붙여지고 해석되어왔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내용이 아닌 ''성경이 어떻게 책이 되었는가''라는 주제이다. 그래서 작가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구전되던 시대에서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 문자가 보편화 된 시대에서의 성경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흔히 ''객관적''인 문명의 상징으로 여기는 문자기록이 생각처럼 ''객관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기록이라는 것도 인간과 함께 변화하고, 단순한 대화도 시대와 함께 달라진다. 그래서 고문을 현대어로 다시 해석하는 것에서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이며, 그 오류는 문자적인 것 외에 해석하는 사람의 개인적 사상과도 관련되어진다. 그래서 성경의 고문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여러 교파의 주장이 달라지는 것 같다. 성경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경과 함께 역사를 향유한 민족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이스라엘 등의 성경 안에 있는 민족의 역사도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철학적 의미에서 기독교(종교)를 알고자 했던 나에게 일종의 교과서가 되어줄거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비종교인에게 종교의 교리나 언어는 쉽지 않았다. 기독교인이라면 좀 더 쉽게 이해되었을 성경의 인용구나 관련 배경지식이 부족하니 처음부터 끝 까지 암호해독을 하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책 자체는 성경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 구전되던 인류의 문화가 기록되어지는 역사를 담고있다보니 그런 것에서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해서 서양의 고대사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마치 외계어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책을 좀 더 꼼꼼히 읽고 사료하지 못한점이 많다. 너무 학문적이고 너무 종교적이어서 머리를 싸매가며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달까. ''성경''이라고 하면 ''책''이라는 물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성경은 전세계적으로 깰 수 없는 기록을 가진 베스트셀러라고 하지 않던가. 성경이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진 교리가 되고 그 교세를 수많은 나라로 뻗게 된 것은 성경의 힘인 동시에 문자의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을 포함한 많은 종교 교리서들은 그 종교의 교리이기도 하지만 기록으로 이어져온 인류의 문화유산이 아닌가 싶다.
y*******0 2006.10.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여행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여행" 내용보기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는 고대 이스라엘의 구두전승문화에서 기록된 문자화로 변화하는 과정을 고고학적 증거와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대 초기에는 글은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권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선전활동을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교적 권위와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오랫세월동안 신비로운 형태로 소수에게 남아있었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여행" 내용보기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는 고대 이스라엘의 구두전승문화에서 기록된 문자화로 변화하는 과정을 고고학적 증거와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대 초기에는 글은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권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선전활동을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교적 권위와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오랫세월동안 신비로운 형태로 소수에게 남아있었다. 그후 기원전 8세기에 예언자 이사야와 유다 왕 히스기아의 시기에 성경은 비로소 모양새를 갖추면서 문자기록이 활발해진 시기를 걸쳐왔다. 이 과정에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사이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오랜 세월동안 논쟁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랍비 유대교에서는 구전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와 랍비 유대교에서는 지배 계층에서 시작된 종교가 아니었으므로 처음에는 구전을 중시하였지만 그후에 글로 기록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모든 성경이 글로 기록되어지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왔던 것은 비록 성경에만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것이었다. 배경은 고대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고 성경이 구전에서 문자화되어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 인류사에서의 모든 문자탄생을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되었다. 소수 지배계층에게 신성시되던 문자에서 대중화된 문자로의 거듭된 변천사를 보는 듯했고, 당연시 되었던 성경의 기록과정을 되짚어 볼 수 있어서 나름 즐거웠다. 하지만 너무나 광범위한 배경을 설명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던 점은 글의 읽는 집중도를 흐트려 놓는 부분이 되었다는 점이 아쉽다.
YES마니아 : 로얄 r*****0 2006.10.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문학적 호기심으로 읽어도 좋을 책!
"인문학적 호기심으로 읽어도 좋을 책!" 내용보기
좀 된 일이다.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 있어 혼자 씩씩거리며 전철을 탔었다.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중에 목소리가 정말 큰 남자 ''전도사'' 한 분이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에 와 서서 큰 소리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했다. 그 목소리가 하도 정례화된 데다가, 커서 맘도 거북한 데다가 차마 들을 마음이 아니라, 옆 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세상에, 또 따라와서 얘
"인문학적 호기심으로 읽어도 좋을 책!" 내용보기
좀 된 일이다.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 있어 혼자 씩씩거리며 전철을 탔었다.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중에 목소리가 정말 큰 남자 ''전도사'' 한 분이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에 와 서서 큰 소리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했다. 그 목소리가 하도 정례화된 데다가, 커서 맘도 거북한 데다가 차마 들을 마음이 아니라, 옆 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세상에, 또 따라와서 얘기를 한다. 순간, 자제하지 못했다면, 지하철 안에서 큰일이 날 뻔했다. 나는 종종 그렇게 크게 외치고 다니는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무교) 나는 그네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포교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데, 왜 그네들은 듣고 싶지 않아하는, 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지 않는 걸까. 이렇게 얘기하면 니가 무지해서 그렇다고, 얼른 은혜받으라고 하겠지.(얼마 전, 나와 견해가 꼭 같은 교수님을 만나서 무지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은혜로 가득찬 책이라고 어떤 목사님이 설교하셔서 소설가가 상당히 당황했었다고 했던 기억도 난다. 알폰스 쉬바이게르트의 <책>에 보면 ''비블리(bibli)''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오래 된 훌륭한 책에 ''바이블(bible)''에 비유한다. 그만큼 성경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수천 년 동안 세계의 베스트셀러였으며, 인류의 정신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다. 비록 누가, 언제, 어떻게 성경을 만들었는 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말이다. 얼마전에 우연히 기회가 되어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과 이 책은 어떤 맥락이 같고 다를까 궁금하여 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UCLA 근동언어문화학과 교수라고 하는 윌리엄 슈니더윈드는 최근의 고고학적 증거와 언어학 분석을 토대로 성경에 얽힌 비밀들을 추적하고 있다. 각주를 아무리 많이 달고 있다고는 하지만, 성경의 내용을 다 알고 있지 못한 나는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그는 최초의 구약성경 대부분이 기원전 7-8세기경 유다 왕국 히스기야ㆍ요시야 왕 시절에서 바빌론 유수기(기원전 6세기) 사이 기록됐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이는 문자문화의 시초인 그리스 문명보다 몇 세기 앞선 시기라는 의의를 가진다.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랑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성경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필사자의 주관적 견해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변개될 수밖에 없었던 부분들, 구전 문화와 기록 문화의 충돌, 글이 유다 왕실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서 작용했다는 점, 결국 ''글''이 ''말''의 권위를 누른 부분 등은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전시학습과 함께 구전 문학의 공통적인 특성을 생각하며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을 보면서 단순히 지식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기독교의 기원을 한참 앞당긴 사해문서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1947년 발견된 사해문서는 성경의 기원과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인문학적 호기심으로, 기회가 되면 사해 문서와 복음서들에 관련된 논문들을 한 번 살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w*******r 2006.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내용보기
성경을 읽기도 하고, 성경공부도 했고, 주해석서도 읽어봤고.... 그런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이 책을 읽는데 좀 더 수월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기본적인 얘기를 건너 뛰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그나마 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참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겨우겨우, 뜻도 내용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장수만 넘길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내용보기
성경을 읽기도 하고, 성경공부도 했고, 주해석서도 읽어봤고.... 그런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이 책을 읽는데 좀 더 수월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기본적인 얘기를 건너 뛰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그나마 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참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겨우겨우, 뜻도 내용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장수만 넘길뿐이었다. 문자화된 기록으로 남는 것의 의미를 말하고자 한 것인지, 성경이 기록되어가는 과정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 경계선의 모호함속에서 나는 저자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후다닥 책을 덮어버렸다. 나같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한다면 대부분이 한번쯤은 성경필사라는 것을 해 봤을 것이다. 책을 그대로 베껴 옮기는 일에도 수많은 오자가 생기고 문장이 빠져나가 문맥의 흐름이 이상해져버릴 때도 있는데 과거에 구술되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것은 당시의 기록문자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뜻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기본적인 전제, 그러니까 성경이 구두전승되어 온 신앙을 기록한 것에 중점을 둔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잡은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기록문자를 이용해먹은 것인지 분명히 밝혀두고 있지 않다. 책을 너무 허술하게 읽어버려서 깨닫지 못하고 있는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서평이라는 걸 쓰고 있는 것도 거짓이 될 수 밖에 없네. 아, 어쩌나. 이것도 기록으로 남아버릴텐데 말이다. "글은 무엇보다 국가에의해 통제되었고, 국력의 과시 수단이자 행정의 도구였다. 두번째로 글은 신의 선물이었다. 그런 경우 글은 저주문이나 ''쓴 물''의 의식과 같은 마술적 의식의 일부로 사용되었다. 글은 또한 하늘에서, 즉 ''생명의 책''에 사람들의 이름을 올리는 데 쓰이거나 하느님이 땅위에 거하실 처소의 설계방법을 기록한 점토판 위에 씌어지기도 했다. 반면에 구두전승은 문화를 후대로 이어주는 매개 수단이었다.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불렀다. 금언과 옛 이야기, 노래를 통해 각 세대는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유산을 전수받고 또 전했다"(312)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나''의 의문이 풀리기 보다는 유대 랍비들의 권위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나,를 알게 된 것 같다. 저자는 또 글을 끝맺으면서 "랍비 유대교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서기관 출신을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 지도층이나 학식 있는 제사장들이 주도하던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랍비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는 평민이나 배우지 못한 이들 사이에 퍼져나갔고, 그에 따라 구두전승과 선생에게 권위가 주어졌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조금 비약해서 이 말을 받아들이자면 문자로 기록된 성경이 구두전승을 이어나가는 유대랍비의 권위에 못미친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아, 요즘 유행어처럼 ''그건 아니잖아~''를 외치고 싶은 심정은 또 뭔가. 문자,라는 것이 단지 지식인층이 점유하는 것이고 문자로 기록된 것은 지배자지식층의 것이다 라고 단정지을수는 없다. 물론 저자의 뜻도 그런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덮고나서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다. 오히려 기록문자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좋았을지 모르겠다. 그런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명확해보일 것 같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성경''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고말이다.
r***2 2006.10.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술의 문화에서 기록의 문화로의 이행에서 셩경의 길을 엿보다
"구술의 문화에서 기록의 문화로의 이행에서 셩경의 길을 엿보다" 내용보기
저는 찔레꽃머리[여름]부터 성당을 다니고 있습니다. 교리를 배우고 예절을 배우면서 주로 접하는 책이 성경입니다. 당연히 이 책에 책읽는 자로써의 호기심과 관심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일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 속의 세계 그 곳으로 들어가기 이 책을 읽으면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비전승 ,문자 언어와의 관계 , 정치 권력의 개
"구술의 문화에서 기록의 문화로의 이행에서 셩경의 길을 엿보다" 내용보기
저는 찔레꽃머리[여름]부터 성당을 다니고 있습니다. 교리를 배우고 예절을 배우면서 주로 접하는 책이 성경입니다. 당연히 이 책에 책읽는 자로써의 호기심과 관심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일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 속의 세계 그 곳으로 들어가기 이 책을 읽으면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비전승 ,문자 언어와의 관계 , 정치 권력의 개입 정도가 그것입니다. 글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보편화되기 이전부터 있어온 말씀의 종교인 유대교가 이 글의 기본 베이스인데요 당연히 음성언어를 기반으로 하고 구비전승의 길을 걸어오다가 유대인의 선생 모세가 시니아 산에서 언약의 궤를 가져내려오면서부터 기록이라는 문자의 태동이 보이게 됩니다. 글자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유는 글자 자체가 하느님의 선물로 보고 일부 선택받은 자들 제사장이나 왕들이 그 것을 사용하기에 이르지요 기원전 8세기에 유다에서 글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를 이끄는 수단으로 상용됩니다. 성경이 만들어지는 길을 따라가 보죠 그 처음에 히스기야 왕이 있습니다. 히스기야 유다왕은 그 자신의 왕국의 정통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을 계승한다는 기록을 모으고 예루살렘에 도서관을 건설하여 많은 저작들을 수집하고 남겼습니다만 아직까진 글자란 것이 대중화의 길을 간 것도 아니고 그저 국가 권력의 시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전환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요시아 왕 때입니다. 이 때는 글이라는 것이 한정된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신의 선물이라는 위치에서 내려와 대중을 만나기에 이르고 하층민까지도 글자를 익히고 쓸 수 있게 됩니다. 이 때어 어느 때 보다 많은 저작활동이 이루어진 성경 기록의 융성기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만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다는 역사는 사라지게 됩니다. 포로기 시대에는 말그대로 성경의 암흑기라고 보아야하고 스룹바벨은 왕실의 건재를 위해 성전을 짓고 저작활동을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게 됩니다. 히스기야에섭터 시작된 정치권력과 종교의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런 암흑기를 지나고 헬레니즘 문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여 유대 문학이 꽃 피는데 예루살렘을 이집트가 통치하면서 어느정도의 평화와 번영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하층민부터 시작되었기에 문자화된 성경은 또 다시 구전의 길을 걷게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으로 다시 나오기 이 책을 쓰신 분은 성서를 전공하시는 분이어서 그런지 또한 번역자이신 분도 성경을 공부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자신의 생각의 높이에서 글을 쓰시고 번역을 하신 것 같습니다.. 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많은 대중 독자들을 위해 쓰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좀 더 평이한 언어와 예들을 들어서 설명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더 즐거운 책 읽기를 하였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다 일기에 벅찬데 유대인의 고대사까지 섭렵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초반에 포진되어 있어서 나락으로 빠져들고 초반의 언술들은 언듯보면 제목과도 거리도 상당해 보이는 점이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y*******n 2006.10.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전이 문자화 되는 게 그렇게도 놀라운 일인가? 단지 성경이라는 이유 때문에?
"구전이 문자화 되는 게 그렇게도 놀라운 일인가? 단지 성경이라는 이유 때문에?" 내용보기
책 이름을 잘못 지었어. 좀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제목이야.   '성경이 어떻게 책이 되었는가'   이러면 교회에 다니던 아니던 책 내용을 궁금해 할만한 제목이기는 하겠지. 그리고 사람들 관심을 끌어야 책이 좀 팔리겠지. - 어떤 내용을 담고 있던지, 혹은 어떤 가치가 있는 책이던지 관계없이   하지만 정작 책 내용은 제목과는 별 상관이 없는것 같아. 이 책에 정확한 제목은
"구전이 문자화 되는 게 그렇게도 놀라운 일인가? 단지 성경이라는 이유 때문에?" 내용보기

책 이름을 잘못 지었어. 좀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제목이야.

 

'성경이 어떻게 책이 되었는가'

 

이러면 교회에 다니던 아니던 책 내용을 궁금해 할만한 제목이기는 하겠지. 그리고 사람들 관심을 끌어야 책이 좀 팔리겠지. - 어떤 내용을 담고 있던지, 혹은 어떤 가치가 있는 책이던지 관계없이

 

하지만 정작 책 내용은 제목과는 별 상관이 없는것 같아. 이 책에 정확한 제목은 '구약 전승이 문자로 기록된 과정'이라고 해야 할거야.

 

그런데 정말 이런류의 책까지 많이 팔려야 하는걸까. 정말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가치있는 책이면 되는 것 아닐까. 모르겠네.. 뭐든지 정말 상업적으로만 만들어야 하는 건지. 책 제목은 꼭 광고 카피처럼 만들어야 하는 건지.

 

책 내용은 아주 간단해 유대 민족에게 구전되오던 종교 교리와 율법이 있었는데 시대가 흐르면서 그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되었다. 이상 끝.

 

구전되던 이야기가 문자화 되는것은 어느 문화 어떤 문명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야. 또, 당연하게도 문자화 되면서 구전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고, 이야기라는 건 초기에는 단편적으로 만들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의 이야기들이 논리적으로 연관지어지며 긴 이야기로 묶여가는 것이겠고... 하여간

 

저자는 당연한 사실을 굉장하고 놀랄만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니 읽으며서 좀 당황했어.

 

말 만 하던 아이가 문자를 배우니 글을 쓰더라.. 이게 그렇게도 놀라운 일인가??

 

차라리 유대민족의 역사적인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나가면서 경전의 문자화를 설명하는 방식이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문화 발전과정에 구전이 문자화 되는 경위를 설명하는 식으로 유대경전의 변화를 알아보는 내용이었다면 훨씬 가치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더라고.

 

'구전의 종교가 어떻게 책의 종교가 되었는가?  구전이 왜 기록되었나?' 이런 어이없고 애매모호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했기에 중구난방이 될 수 밖에 없던 책.

 

- 

저자가 근동언어문화학 교수라는데 이런 류의 책을 쓰려면 문화인류학이나 역사학을 조금 공부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어. 언어학자라면 이렇게 수식이 요란하면서 논리가 빈약한 책을 쓰지는 않았을텐데.

 

이도저도 아니라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단지 (책에서 밝혔듯이) 구약의 저자에 촛점을 맞추는 방법으로 연구했던 다른 학자의 업적에 대한 조급한 경쟁심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비추천.. 시간낭비.

 

차라리 시공디스커버리총서로 나온 '성경'과 '책의 역사' 이 두 권을 보는게 훨씬 유익함.

b******9 2008.11.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