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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의 시자가 된 조주는 어느날 스승 남전에게 묻는다
-선생님, 도가 무엇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지.
-평상심에는 어떻게 이르지요?
-이를려는 생각에 이르면 곧 삐뚜루 가나니라.
-도라는 건, 아는 것도 아니요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은 妄覺이요,
알지 못하는 것은 마비상태요 혼란이다. 의심할 바 없는 大道를 증득한다는 것은
우주의 텅 빈 확연한 공간과 같다. 이러쿵 저러쿵 관념으로 그를 속박하려 들지말라!
(道不屬知不知. 知是妄覺, 不知是無記. 若是眞達不疑之道, 猶如太虛廓然虛豁, 豈可强是非邪?)
도불속지부지 지시망각 부지시무기 약시진달불의지도 유여태허확연허활 기가강시비사
어느날 조주는 남전과 선원 뜨락을 같이 거닐다가 문득 스승님께 여쭌다.
-있음을 깨달은 사람(知有底人지유저인)은 결국 어디로 가야하지요?
-저 아랫동네에 내려가 밭가는 소가 되거라
갑자기 예상 외로 들이닥친 남전스승님의 반전에 놀란 조주.
그러나 조주의 깨달은 환한 얼굴을 바라보는 남전, 침묵의 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 사이에
교감된 언어는 인간의 언어를 억만배 초월하는 무진장의 언어였으리라!
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르쳐 주신 것 정말 감사하옵니다.(謝指示사지시)
그리고 조주는 말없이 떠났다.
조주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남전은 이와 같은 짧은 게송을 읊는다.
-간 밤 깊은 야경 창가에 달이 드리웠지. (昨夜三更月到窓 작야삼경월도창)
도올 김용옥 「벽암록 講話 제2화 」중에서
이어지는 도올선생의 해설을 요약해보면
조주의 득도의 가장 중심언어가 된 계기는 '평상심'이란 한마디.
平常心是道평상심시도!
이 평상심이란 한마디야 말로 그가 남전 스승으로 부터 얻은 가르침의 전부..
지유저인의 知有란,, 有를 안다, 有를 깨닫는다, 있음을 깨닫는다,..
조주가 말하는 知有는 존재의 여여한 모습에 대한 궁극적 깨달음이다.
無를 깨닫는 것은 쉽다.
어설픈 선승들의 객끼가 그러하듯 무를 깨닫고 무를 운운하고 무를 실천 하기는 쉽다.
허나 有를 깨닫고 유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知有! 그것은 지무를 초월하는 것이요
理事無碍法界이사무애법계를 초월한 事事無碍法界사사무애법계인 것이다.
그것은 평상심의 구극적 표현이다.
이러한 구극적 경지에 이른 인간은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하나?
단순한 질문 같지만 남전은 조주의 깨달음의 깊이를 이미 깨달았다.
-저 아랫동네에 내려가 밭가는 소가 되라!
여기에 소라고 하는 상징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그 순간 남전의 머리에 스친 어떤 대상이라도 되라했을 것이다.
깨달음의 道는 곧 나무든 돌이든 똥이든 소든 어디든지 불문하고 내재하는 것이다.
"간 밤 깊은 삼경에 달빛이 창가에 드러웠지!"
제자 조주에 대한 최고의 찬사, 禪의 세계란 다름아닌 생명의 찬가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평삼심시도에 이를 수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겁도 없이 당돌한 질문,
너무도 쉽게 던진 물음에 내 벗은 심호흡 한 번 하고 나서 뭐라했던가.
어렵지요, 어려워요. 쉬운 거 아닙니다.
거기에 냉큼 이르지 못한다고 좌절하진 마시길...
뜻 헤아리는 데 한 세월이고,
헤아린 뜻 몸으로 살아지긴 더 긴 세월 흐른 다음이겠지만
아마도 그러하겠지만......
조주의 평상심은 끝내 가 보고 싶은 곳이며
그곳이 지금 여기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욕심이라면 과한 욕심이고
희망이라면 이 역시 당찬 희망일 것이나
이미 나선 길
부지런히 오늘도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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