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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니콜스의 의뢰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순진하게만 볼 것 같은 여인 카렌의 의뢰는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스토킹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다. 양말도 다려 입을 것 같은 여자. 자신이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의뢰를 한다는 것에 미안함을 가진 여자. 켄지는 그의 친구 부바와 함께 일을 처리한다. 제나로는 전작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선택의 문제 때문에 켄지와 결별한 상태다. 전직 군인, 지금은 무기 거래상. 얼굴은 동안에 덩치는 거대한 친구 부바는 카렌의 스토킹남 코디 포크를 만나 총알이 없는 총으로 잔뜩 겁을 준다. 그 와중에도 코디는 자신은 절대 카렌의 차를 망가뜨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켄지는 그 말을 흘려듣는다. 카렌은 일의 보수로 수표를 보내온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수표를 보내온 지 6주 후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휴가를 떠나는 켄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켄지는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카렌의 쉰 목소리를 듣는다. 그게, 무슨 문제가 있으니, 자신에게 전화 한 통 걸어 달라는 말이 담긴 전화였다. 밖에서는 여자친구가 클랙슨을 누르고 있고 켄지는 휴가를 다녀온 뒤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녹음을 지운다. 그 후 켄지는 전화 거는 것을 잊어버렸다. 길이 막히고 차 뒤쪽에는 술 취한 범죄자가 있는 상황에서 켄지는 카렌 니콜스가 26층 건물에서 뛰어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도시에는 카렌 니콜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쉰 목소리로 전화 한 통을 부탁했던 그녀였다.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 켄지는 한 번 사건을 해결한 죽은 의뢰인의 사건을 파고 들어간다. 카렌을 스토킹 한 코디 포크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쫓아다닌 건 맞지만 카렌의 차는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말을. 그리고 켄지는 카렌의 전화 부탁에 응했어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차분하고 아름답고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미래는 밝고 희망차고 원하기만 하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불과 6개월 만에 인생을 끝장낸 것이다. 켄지는 그녀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녀 주변을 조사해 들어간다. 자신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미안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연이었고 사고였다. 목격자가 존재하고 증언이 있었다. 카렌의 애인 데이비드 워터로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면서 그녀는 무너졌다. 켄지는 교통사고 역시 조작된 것임을 밝혀 낸다. 사막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카렌은 타인은 모르는 자신만의 두려움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어 했다. 그것은 끔찍이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26층으로 올라가던 한 여인의 머릿속에는 생을 끝장내는 것이 아닌 간절히 살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날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러 상대와 통화를 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한 수사는 인간의 잔혹한 욕망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죽음으로 고통을 끝낼 수 없다. 고통은 끝까지 생을 살아내는 사람만이 끝낼 수 있다. 구원의 기도는 우리의 삶이 끝날 때 비로소 하늘에 가닿는다. 비는 그때서야 내리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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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비를 바라는 기도>를 읽게된 이유는 오로지 그 전에 읽었던 <미스틱 리버>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봤던 영화로만 기억하던 <미스틱 리버>를 도서관 서가에서 보고 반가운 마음에 꺼냈었다. 사실 영화는 어딘지 음울한 내용이었던 것과 주인공 숀 펜의 문신한 뒷모습만 기억이 났고, 그다지 감동이 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그러나 소설은 아주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을 골라드는 데 아무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결론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 소설의 주인공 패트릭 켄지는 아주 매력적인 모양이다. 그를 만나는 여자마다 그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니 말이다. 그는 데니스 루헤인의 다른 소설들에도 등장하는 사립 탐정이다. 미스 마플이나 포와로 정도는 되는 것같다. 그에게는 근사한 파트너 안젤라와 전직 군인이면서 어둠의 조직과 가까운 절친 부바가 있다. 이들이 벌이는 모험은 때때로 법을 위반하고, 폭력을 쓰지만, 그 의도는 선한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카렌 니콜스라는 아름답고도 가냘픈 여자로부터이다. 그녀는 자기를 스토킹하는 남자에게서 자기를 구해달라고 켄지를 찾아온다. 카렌은 남자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는 타입의 여자이다. 가느다란 체구, 순수한 표정과 예의바른 말투는 남자라면 누구나 그녀를 보호하고 싶게 한다. 부바와 켄지는 바로 그 일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잊고 지내던 켄지에게 어느 날 전호가 걸려왔다. 예쁜 여자와 휴가를 떠나던 중인 켄지는 그녀의 전화를 잊어버리고 몇 달 후 그녀가 세관전망대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켄지는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던 카렌의 전화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관심을 가지고 그녀의 주위를 탐문하던 중 그녀가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닌 낯선 모습으로 등장을 하고, 그녀의 주위를 둘러 쌌던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다. 그녀의 순탄치 않은 삶과 그녀의 연인, 그리고 그녀의 가족까지도 철저히 파괴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범죄의 냄새를 맡았고, 그 배후가 거대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와 부바, 그리고 아름다운 변호사 안젤라는 카렌을 둘러 싼 미스터리를 향하여 한발짝 씩 나가지만, 그들은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읽는 내내 한 순간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와 안젤라, 부바의 팀플레이는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했고, 세상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빛났었다. 이 책 말고도 켄지 탐정 시리즈가 더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어떤 완벽한 팀플레이를 보게 될까 벌써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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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제 마지막 작품인 ‘문라이트 마일’만이 남았다) ‘비를 바라는 기도’는 제목만으로는 서정적이거나 감상적인 기분이 들게 만들지만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그동안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잔혹하고 비정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고, 현실-세상을 보여줌과 함께 음울한 결론으로 끝을 맺는 방식은 여전하기만 하다.
이전보다 좀 더 암울한 결론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가라, 아이야, 가라’와 같이 논쟁적인 끝맺음을 보여주진 않고 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스턴에 대한 상세한 묘사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민한 시선을 보여주지 않고 있고,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는 읽는 이에 따라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쉽다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이야기가 갖고 있는 재미와 흥미가 부족하진 않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가라, 아이야, 가라’가 전체적으로 큰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그와 같은 방식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로서는 처음의 시작에 비해서 조금씩 이야기가 축소되고, 결국에는 한 가족의 문제로 최소화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종의 가족 내부의 갈등의 무척 거대한 이야기처럼 확대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개입 속에서 기형적인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는 결말이기 때문에 이런 결말에 대해서 좀 더 흥미로운 분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비를 바라는 기도’는 침울함과 피곤함이라는 정서로 가득한데, 작품의 중심인 패트릭 켄지는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부러진 인생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하기만 한다.
이렇게 좌절한-낙오된 정서 속에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고, 그의 피곤함으로 가득한 수사는 패배감 속에서도 자신이 정한 방식 속에서, 어떤 정당함 속에서 삶을 살아가려고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긴장을 통해서 ‘비를 바라는 기도’는 범죄소설이면서도 일반적인 범죄소설의 영역을 넘어서고도 있다.
개인적인 고뇌와 방황 그리고 계속되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함께 그와 별개로서 점차 흥미와 궁금증을 더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두 개의 축으로 데니스 루헤인은 여러 가지를 탐구하려고 하고 있고, 그 시도는 무척 성공적이다.
누구도 의문부호를 보이고, 어떤 이들도 의미를 느끼지 않는 사건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집착하는 켄지의 모습과 그 열중으로 인해서 점차 밝혀지게 되는 진실들, 그리고 그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은 점점 더해지는 박진감과 함께 ‘비를 바라는 기도’가 탐구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눈치를 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에서의 반전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마지막의 지독한 쓰디씀이 좀 더 구원에 대한 열망과 의미,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이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좋은 정리를 보여주면서도 결국 사건은 해결되지만 해결됨과 함께 패배자가 된다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이야기 구성을 철저하게 따른다는 점 또한 인상적인 것 같다.
씁쓸함이 가득한 패트릭 켄지의 독백들과 함께 언제나처럼 개성이 넘치고 즐거움을 안겨주는 여러 등장인물들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단단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째서 켄지 / 제나로 시리즈가 현대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고전으로 통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대한 환멸로 가득하면서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패트릭 켄지의 노력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이 나 자신에게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는 것 같다.
그가 느끼는 환멸과 좌절이 어쩐지 그만이 아닌 누구나가 느낄 법한 기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고, 그렇기 때문에 패트릭 켄지의 고민들과 괴로움들에 많은 이들이 설득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개인적인 고뇌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의문의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의 긴박감과 재미는 패트릭 켄지의 내면적 갈등과 정반대되는 외향성을 만들어 내면서 절묘한 균형을 찾아내고 있는 것 같다.
흔히들 말하는 문학적인 관심을 추구하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으려고 하는 시도가 성공한 보기 드문 작품이기 때문에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좀 더 정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롭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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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스토커 피해를 호소했던 카렌이 알몸으로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를 본 사립탐정 켄지는 의문에 사로잡힙니다. 당시 스토커는 확실히 제압했었고, 자신이 기억하는 카렌은 이런 식으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의뢰인도 없는 조사를 시작한 켄지는 그녀의 가족과 정신과 의사 등 주변 인물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9개월 전 파트너였던 제나로와 헤어진 뒤 탐정으로선 밑바닥을 전전하던 켄지는 혼자 힘으론 이 사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 제나로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폭력의 화신인 부바까지 가세하여 범인의 뒤를 쫓던 켄지 일행은 결정적 단서를 포착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 그 어느 스릴러 시리즈보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강렬한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아껴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실은 한없이 게으름을 부린 탓에 전작인 ‘가라, 아이야 가라’ 이후 7년 만에 읽게 됐는데, 그래선지 이 시리즈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새삼 여러 차례 놀라며 페이지를 넘기곤 했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야박한 평점을 매긴 서평 대부분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시리즈 첫 편부터 설정됐던 주인공 패트릭 켄지의 캐릭터(폭력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에 잠식돼버린 인물)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별 저항감 없이, 오히려 재미있게 읽어온 게 사실입니다. 9개월 전, 그러니까 전작인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 때문에 결별했던 켄지와 제나로가 재결합하여 로맨스는 물론 추리와 액션에서도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데다 두 사람의 동료이자 뼛속까지 폭력의 DNA로 가득 찬 전직 군인 부바가 그 어느 때보다 광폭 행보를 보여서 읽는 내내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작인 ‘작은 자비들’에서 인종차별을 소재 삼아 묵직한 사회파 스릴러를 선보였던 데니스 루헤인의 필력도 너무 좋았지만, 제겐 피와 살이 난무하는 거친 액션 스릴러 속에 풍자와 비아냥과 진한 블랙 유머를 자유자재로 섞어 넣는 그의 재능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비교적 사이즈도 크고 ‘조직’이 등장하는 큰 사건들을 다뤘던 전작들에 비해 ‘비를 바라는 기도’는 의뢰인도 없고 보수도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한 여자의 죽음의 진상을 조사하는 켄지의 범죄 미스터리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역대급 사이코패스가 등장하여 연이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켄지 일행에게 닥치는 위기 역시 결코 소소하다고 할 순 없지만, 사립탐정 본연의 역할과 임무에 어울리는 사건이라 더 현실감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의 비극적인 사고로 풍비박산이 난 가족, 그 가족의 비밀을 파고들어 살인과 갈취를 일삼는 것은 물론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범인, 그리고 추리와 상상력과 폭력을 적절히 버무려가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켄지와 제나로 등 선악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생생하면서도 극단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에 도달할 때까지 잠시도 쉬어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켄지와 제나로의 애틋한 재회 로맨스가 끼어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부바의 웃지 못 할 코미디까지 가세해서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나절이면 금세 마지막에 이를 수 있습니다. ![]()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이 다음 작품인 ‘문라이트 마일’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매번 “왜 데니스 루헤인이 이 시리즈를 여섯 편밖에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서평에 담곤 했는데, ‘문라이트 마일’이 미국에서 2010년에 출간됐으니 신작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그래도 언젠가 프리퀄이든 스핀오프든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켄지와 제나로의 이야기를 한번쯤은 더 읽어보고 싶은 욕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과도한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제겐 애정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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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시적인 제목 때문에 덥석 읽게 된 책인데, 고요한 수행이라도 할 것 같은 인상의 제목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제목을 보고 예상했던 기대가 완전히 깨진 셈인데, 그러면서도 오히려 기분이 좋은 진기한 경험을 했다. 정말로, 정말로 재미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비를 바라는 기도>는 일단 겉으로는 평탄함에서 아주 약간 소란스러운, 해프닝 정도로 넘어가라면 넘어갈 수도 있을 법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초반부에 드러난 모습만 언뜻 보면 좀 미심쩍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일어날 법한 일 정도로 보이고, 겉으로는 별 탈 없이 해결된 것만 같다. 막상 끝까지 읽고 난 뒤에 다시 재독하면 복선과 암시가 눈에 보이고, 아무 것도 모를 때는 별 생각 없던 문장과 표현이 진상과 결말을 알고 읽으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대목도 여럿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겉으로는 사소한 의뢰를 탐정이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얼마 후 그 의뢰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망한 상황 자체는 타살의 흔적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누가 봐도 자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살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자살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냥 넘겼다면, 모든 것은 묻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탐정 켄지는 미심쩍인 부분을 조사한다. 그런데 조사할수록 이상한 이야기만 나온다. 그 의뢰인의 주변에 이상할 정도로 비극적인 사건이 연달아 터졌는가 하면, 의뢰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부러 파멸과 몰락의 길로 제 발로 걸어간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행보를 보이다가 끝내 자살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와중에 켄지의 주변에 어쩐지 심상찮은 일이 하나둘씩 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켄지도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만다. 끝내 꺾이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일어난 탐정 켄지는 모든 실마리를 추적하고 파헤친다. 그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는 순간, 그리고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야말로 소름이 쫙 끼쳤다. 사람의 몸과 목숨에는 일체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자살을 그야말로 도피처로 여기게 만드는 상태로 사람을 몰아넣을 수 있다니. 이렇게 집요하고 치밀하고 무시무시하게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파멸시키는 계획이라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없이 완벽하게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좀 미심쩍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흔한 사건처럼 보였다가, 여기저기를 파헤치니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관계 없고 뜬금없어 보이는 단서만 연달아 나오다가, 그 모든 퍼즐이 점차 맞춰져서 원래 모습을 드러내는 구성은 놀랍고, 긴박한 분위기 묘사도 압권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고,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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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서 추천받아서 읽게 된 책인데, 막상 추천해준 친구는 별다른 설명이나 소개 없이 일단 그냥 읽어보라고만 말했다. 조금이라도 내용을 소개하면 곧바로 내용 누설이 되어버리는 작품이라고. 그리고 읽어보니, 그런 추천사로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도입부는 전형적이면서 동시에 범상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탐정 사무소에 일부러 의뢰까지 했고, 사건 자체는 스토커라는 꽤 심각한 범죄사건이지만, 막상 의뢰한 직후에 간단히 해결된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사회에서 모범적인 여성상을 체현한 듯한 의뢰인의 인상이 더욱 기억에 남을 정도로. 하지만 그 의뢰인은 그야말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선택을 하고, 그 의뢰인에 대해 조사할수록 더욱 뜻밖의 사실이 튀어나온다. 작위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과 선택만 연달아 이어지는 가운데, 주인공 탐정 일행은 끝내 진상에 다가가는데...... 평범하고 전형적인 이야기인 듯하다가, 조금씩 무언가 거대한 배후가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더니,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전율이 일었다. 그게 그 이야기였구나! 그게 그 뜻이었구나! 그게 이걸 암시하는 거였어! 이런 감탄사가 연달아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말 재미있다. 책 속에 빠져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책장을 넘기는 시간마저 아까울 정도다. 촘촘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이 정말 멋지다. 한두 대목만 빠뜨려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워낙 매력적인 작품이라서, 한눈을 팔 겨를 같은 것은 전혀 없으니까.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작가의 저력을 절감하게 된 작품이다. 이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 작품을 읽어본 적 없는 사람도 <비를 바라는 기도>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즉시 이 책에 푹 빠지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별 일 아닌 것 같아 보이던 일이 조금씩 미궁에 빠지고, 더욱 미스터리해지고, 종국에 선보이는 결말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잊지 못할 것 같다. 푹 빠져서 읽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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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패트릭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의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또다시 느끼게 된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패트릭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아직은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느꼈으니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악'을 처단하여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내가 바라는 '정의'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선과 악의 대립, 그 악의 기준을 누가 만들었나. 결국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패트릭이 누군가에게 잠시동안의 시간을 준다고 해도 그로 인해 다른 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처음에 "비를 바라는 기도"를 읽으면서 왜 패트릭이 앤지와 함께 있지 않은지 의아했다. 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앤지가 없는 패트릭은 의욕이 없어 보였다. 정의를 위해 일하던 그의 신념조차 빛을 잃은 것 같았으니까. "가라, 아이야, 가라"를 읽었다면 이들에게 그 사건이 끝난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패트릭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패트릭이 자세하게 독자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으나 그가 던지는 말들 속에서, 앤지를 그리워하는 상황들속에서 예측할 수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만나게 되지만 다시 만난 패트릭과 앤지의 사랑이 더 굳건해 보였으니 이제 두 사람이 헤어질 것이란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패트릭과 앤지가 대면한 이번 사건은 카렌의 죽음이 출발점이 되긴 하지만 이 죽음 뒤에는 아주 많은 세월과 많은 이들의 죽음이 함께 얽혀 있다. 도움을 요청한 카렌을 돕지 않아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일에 뛰어 든 패트릭, 타인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이겠지만 그에겐 이것이 신념이고 정의이다. 자신을 위해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부바와 앤지가 있는데 무엇을 해결하지 못할 것인가. 하지만 이번 일은 그에게도 쉽지 않아 보인다. 책의 중반까지 읽을 때까진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의 다른 사건들과 분위기가 달라 사건의 핵심이 드러나기까지 범인의 윤곽을 그리질 못하는 패트릭으로 인해 나의 시선까지 산만해졌으나 역시 데니스 루헤인이다. 중반을 넘어서고는 숨을 몰아쉴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몰아붙이고 마지막 책장까지 그 어떤 생각조차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책장만을 넘길 수 있었을 뿐이다.
"비를 바라는 기도". 책 제목에는 도움을 바라는 누군가의 절실한 소망이 들어가 있다. 카렌의 인생이 어떻게 파괴 되어 갔는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본다면 데니스 루헤인이 패트릭과 앤지를 통해 독자들이 무엇을 느끼고자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패트릭이 싸워야 하는 살인범, 그는 대체 누구인가. 마지막 책장에 이르렀을 때 진짜 악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알게 되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언제 나를 향해 총을 겨누는 범인과 두 눈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 나는 그렇게 의지가 약하지 않다고 자신하지 말자. 내가 카렌이 될 수도 있다. 약점을 찾아내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범인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도 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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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ers for Rain :: Dennis Lehane 부모가 범죄자면 아이도 범죄자가 될까? 이혼 부모 혹은 편부모 밑에서 자라면 정서가 불안한 사람으로 클까? 어려서 맞고 자라면 아이도 반드시 폭력적이 되고 방임해서 키우면 반사회적인 아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등 부모의 영향이 100% 전사된다는 이론은 확률적으론 맞을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일반화는 위험하다. 사회를 통해 지성을 습득한 아이라면 처해졌던 과거의 환경이 있더라도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의식적으로 그른 방향에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애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배경을 족쇄삼아 단정하고 편견을 갖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선 폭력의 연장 선상이고, 그에 따른 반응조차 과거와 연관지어 섣불리 분석하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자의 교만이다. 도리어 그렇게 사회에서 습득하는 지성을 교만으로만 맞바꾸어 비뚤어지는 케이스를 불행한 과거나 배경을 통해 비뚤어지는 케이스 못지않게 발견하게 되는 게 오늘날 아닌가?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논리는 방임하는 부모의 위험도와 자식에게 올인하는 부모의 위험도는 같다는 논리다. 또한 확률만이 모든 사람의 경우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편견 속에 산다. 악질 범죄자가 나타나면 미디어부터 앞장 서서 그의 과거를 캐고 이런 배경에 그런 일들을 겪었으니 그리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조장한다. 핵심적인 부분은 그가 지성을 습득할 기회를 충분히 얻었느냐 아니냐, 사회가 그것을 제공 했느냐에 맞춰져야 할텐데, 그 모든 책임을 오로지 그의 부모에게만 일임한다. 사회와 대중은 결코 그 책임을 함께 분담하려 하지 않는다. 그 경우가 반복되어 체내에 학습이 되고 결국 [저런 식으로 살면 범죄자가 된다] 는 논리를 설정하여 그 최저 한도에 해당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물질에 기댄다. 그리고 물질로 사들인 지성이 자신을 참되고 바른 인간이 되게 해준다 절실히 믿는다. 지성을 습득할수록 사회적 책임 의무가 커져야한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거나 아예 망각한 채 말이다. 최근에는 그나마 의식있는 소셜 솔루션 전문가들이 많이 나서서 성실한 의무를 다해주고 있지만 전반적인 사회 통념이 깨지기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별 문제 없는 부모를 만나 적절히 배우면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에 100% 문제 없는 부모가 있을 수 있을까? 법전을 통째로 외울만큼 똑똑한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 이퀄이 될 수 있을까? 겉보기에 험악한 사람은 관상에 따라 언제든지 범죄를 저지를 여지가 높을까? 겉보기에 순진해보이는 사람은 아무런 고생없이 그저 편하게만 살아왔을까? 소설은 이러한 의문들로부터 시작된다. 어느날 사립탐정 켄지 앞에 귀엽고 순진해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자신을 쫓아다니는 스토커를 쫓아달라는 의뢰를 들고 찾아온다. 시시한 일이라며 간단히 처리해버린 켄지는 그 뒤로 그 아가씨의 존재를 잊고있다 몇달 뒤 그녀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자살 직전 그녀가 자신을 한번 더 찾았지만 별 고민 아닐거라 무시해버렸던 점이 마음에 걸린 켄지는 아무런 댓가없이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겉보기에 세상 힘들 게 하나 없을 것 같았던 젊은 아가씨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사건에 파고들수록 그녀의 처참한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진다. 더이상 불행이라 말할 수 없는 불행에 처하게 해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장본인은 누구일까. 그녀의 불행에 무심하고 방기적이었던 부모일까. 아니면 그녀의 여리고 다친 마음을 이용할 줄 알았던 어느 머리 좋은 이의 잔인한 소행일까. 반전을 거듭하며 밝혀진 범인은 자신의 부모가 나빴기에 이런 성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정당화 한다. 그러나 켄지는 그것은 네가 잘못 배웠기 때문이지 전적으로 부모탓은 아니라고 냉정히 비판한다. 켄지 그 자신의 부모가 범인의 부모보다 더 악질인 케이스였지만 그는 결코 어긋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끔찍이 위하려던 부모와 끔찍한 체벌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모, 그들 밑에서 난 자식들인 범인과 켄지, 결과적으로 누가 범죄자가 되었는가? 뛰어난 두뇌를 타고 태어난 범인과 그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켄지, 누가 더 옳은 판단을 했는가? 준수한(혹은 나약한) 외모를 갖고 있었던 범인과 험악한 인상의 부바, 어느 쪽의 정의가 더 사회에 이로웠는가? 작가 루헤인은 이 모든 의문을 철저히 반전된 이미지로서 그려낸다. 프롤로그에는 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대화가 적혀있다. 이것은 아마도 루헤인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고민한 것이라 여겨진다. 분명 부모의 모든 것이 아이에게 100% 전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절대적이진 않아도 전반적일 수는 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포지티브만 주려해도 피할 수 없는 네가티브를 물려받으며, 네가티브적 영향이 팽배해도 그 안에서 포지티브를 숙지하는 것이 자식이다. 그러니 부모는 되도록 자식을 '안전' 하게 키우려면 늘 깨어있을 수 밖에 없다. 죽을 때까지 달려야한다. 그러나 자식은 언젠간 부모를 잃는다. 부모의 영향권에서 자랐어도 부모의 영향권을 벗어나 별개의 존재로서 성장하여야만 한다. 언제까지 자신의 처지를 부모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0대? 20대? 30대? 만약 그 나이가 되도록 [부모가 이러하기에] 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성이 모자란 탓이다. 사회에서 배우고 습득한 지성이란 것이 고작 이론적인 것일뿐 책임성을 함께 깨우친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설줄 몰라 그런 대답만을 고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에 나온 5편으로, 우리나라에선 시리즈 4편인 [가라, 아이야, 가라] 에 이어 두번째로 소개 되었다. 보통 하드보일드라 하면 마초적인 성향이 강한 편인데 비해 루헤인의 이 시리즈는 간지럽다 싶을 만큼 로맨틱하고 신사적이다. 신사적이라 해서 대단히 댄디한 캐릭터가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라기엔 리스크도 많은 체구에 허름한 외양이지만 조용하면서도 정의롭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향한 측은지심 강한 성향이 패트릭 켄지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빛나게 한다. 자칫 늘어지거나 침침해질 수 있는 장르를 밝게 환기 시키는 유머 감각도 루헤인을 흥행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인기 요인인 듯 싶다. 게다가 작품마다 사회적 담론을 충분히 반영해 함께 고민하게하니,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가. 조만간 시리즈 6편을 기획할 예정이라는데, 모쪼록 나머지 앞의 세권만이라도 얼른 번역 발간해주었으면 좋겠다. 팬으로서 애가 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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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를 끝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도 많으니 루헤인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구해 읽을 수 있는 건 모두 읽었다는 점에서 뿌듯한 기분이 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의 모든 작품이 훌륭했다. 한 작품도 버릴 작품이 없었다. 비를 바라는 기도는 가라 아이야 가라 다음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의 사건 때문에 켄지와 제나로는 헤어진 상태다. 둘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켄지는 여전히 탐정 일을 하고 있지만, 제나로와 헤어졌기 때문에 혼자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 물론 절친한 친구 부바가 적극적으로 일을 돕는다. 카렌이라는 여자가 사건을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소가 아름다운 여자 카렌은 스토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순수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켄지는 부바와 함께 스토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준다. 사건은 그렇게 해결되고 카렌은 고마움을 전한다. 일은 그렇게 행복하게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카렌은 나중에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해 버린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연락해 달라는 카렌의 전화를 잊어버리고 연락을 하지 않았던 켄지는 묘한 죄책감을 느끼고 그 사건을 수사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거대한 음모가 개입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자살을 한 게 아니고 살해당했는데 자살로 꾸며진 것이라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자살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음모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맞았다. 내가 짐작한 조직적인 음모는 아닌 개인의 음모였지만, 그래서 더욱 악랄해 보였다. 순수한 악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은 악이 그녀를 자살로 내몬 것이다. 켄지는 복수를 원한다. 카렌을 자살로 내몬 악을 처벌하고 싶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할 수는 없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경찰과 다른 탐정의 매력이 부각된다. 경찰은 성격상 사적인 복수가 불가능하지만(법을 어기고 사적 복수를 하는 경찰도 있긴 하겠지만) 탐정은 그것보다는 입장이 자유롭다. 카렌이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는 켄지의 복수가 통쾌하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미식축구를 하는 장면이었다. 거친 사내의 호흡과 땀 방울, 몸과 몸이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고통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지는 가운데 켄지에게 가해지는 은근한 폭력과 협박.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다.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는 마피아가 켄지를 협박하는 장면이다. 왁자지껄 파티가 벌어지는 가운데 가해지는 노골적인 협박, 마치 대부나 소프라노스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부바의 로맨스 장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졌다.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훌륭하다. 강렬한 재미를 선사하면서도 선명하게 부각되는 주제의식은 여타의 미스터리 작가와의 비교를 불허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은 읽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다. 종종 가슴이 먹먹해진다. 데니스 루헤인의 모든 작품을 읽으라고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
| ''살인자들의 섬''을 본 후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 책을 구입했다. 헛되이 이름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잘 들어맞지 않는 요즘에는 널리 알려진 것 만으로는 책을 사선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책 좋아하는 친구들의 추천을 받거나, 내가 직접 본 작가의 책이 아니면 잘 구입하지 않는 습관덕에, 비교적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그 가치는 충분히 하는 책을 구하게 되었다. 역시나, 영화적인 영상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펼쳐지는 점과 그 액션의 화려함이나 잔인함 혹은 사실적인 묘사가 멋드러지게 표현되서 글자들의 액션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화려하게 머리속에서 펼쳐진다. 남자, 여자 그리고 친구라는 세 명의 인물들의 재기넘치는 대화도 사실적이고 재미나다. ''프라이멀 피어''에 나온 ''애드워드 노튼''의 ''미소''와 같은 끝내주는 장면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