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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목수가 추천한 책이다. 대목에서부터 소목까지 나무를 다루는 그 양반에게 어느 날 읽을 만할 책이 있느냐고 묻자 ‘목수일기’라는 책이 있다며 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은근히 갖고 싶어서 사양하고 인터넷 서점을 뒤졌지만 판매가 안 되고 있었다. 헌책방을 뒤져 결국 만나게 된 책이다.
저자는 목수김씨. 본명은 김진송으로 미술사를 전공하고 평론이나 기획 일을 하다 어느 날 부모님이 사는 곳에서 소목으로 일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나무를 이용해 의자나 책상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그렇다고 거창한 나무가 아닌 인근에서 구한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이런저런 생활목가구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만들고 팔면서 만나는 나무이야기, 목수 이야기를 잔잔하게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이다.
2001년 7월에 초판 인쇄된 후 2004년 11월까지 4쇄 발행됐으니 제법 알려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시골은, 전원은, 자연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런 공간은 이미 없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아직 이 땅에 있어본 적도 없는 공간이다.” (280쪽) |
| 이책에는 갖가지 종류의 나무로 만든 작품들이 나온다. 물론 작품이라고 해야하겠지만.. 작품이전의 생활 용품이라고 해야 더 제대로된 말이 아닐까 한다. 책전반에 많은 그림들이 나오는데... 읽기전에 그냥 그림만 훓어 보아도 재미가 쏠쏠하다. 목수는 완성된 작품과 나무의 생김을 보고 그속에 만들려는 물건을 그려 넣는데 그 모양이 재미있고도 또 그렇게 이쁠수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디자인의 룰을 확 뒤집어 놓는다. 이대목이 참..인상이 깊었다. 디자인학과 학생과의 대화부분이었는데.. 무엇을 만들까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고안해 또 그에 맞는 목재를 구하는 디자인의 룰과는 반대로 목수 김씨는 나무를 보고.. 나무의 재질을 보고 '이나무는 이런 특성때문에 이런물건을 만드면 좋겠구나' 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수많은 나무들.. 굵은 가지는 굵은데로..가는 가지는 또 가는가지대로.. 쓸모 없는 나무가 없다. 굵은 부분은 몸체를 만들고 가는가지로는 못의 역할을 하거나.. 또 질긴나무라면 의자의 다리부분으로도 쓰일수 있다. 그나무의 생김대로 그대로 살려 쓸모있게 만드는것.. 이것을 목수김씨의 작업철학이라고 하면... 너무 뚝잘라버린 것인지... 책 전반에 걸쳐 겸손으로 일관하지만.. 그 겸손이 그렇게 자신감일수가 없다. 기록과 암기 없이 자연스럽게 나무를 대한다. 나무를 느끼는 것이다. 자기의 직업을 참.. 잘이해하는 구나 싶다. 읽는동안 나는 내 직업에 대한 나의 마음을 한번 되짚어 보았다. 지금 직업에 충실한지.. 책임감은 있는지.. 그리고 비록 직업으로 하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아우라가 있는지.... 말이다. 짬짬이 조금씩 읽기에 좋을 듯 싶다. 특히 장편소설 읽는 도중에 좋다. 그렇지만.. 가끔씩 걸리는 뜨끔함과 예리함은 놓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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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는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무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목수라는 사실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어디 나무뿐이랴. 연장에 있어서는 또 어떻고. 도무지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무를 보고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알아갈까. 일일이 외우는 것일까. 이 나무는 이름이 무엇이며, 성질은 어떠하며, 무슨 꽃이 피고, 무슨 재목으로 쓸 수 있고, 다룰 때는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한다는 둥, 그런 나무의 속성을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일까. 나는 나무를 참 모른다. 나무를 보고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열 손가락도 헤아리지 못한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그만큼 나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할 것인데, 그렇지만 나는 나무를 좋아하고 싶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무의 이름을 불러 주면서 나무와 대화도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되지 않는다. 내가 너무 무식한 탓이 아닐까 싶다. 목수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나무에 대한 나의 무식과 무심함을 다시 확인했다. 우선 목수김씨의 나무에 대한 끔찍한 사랑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나무를 향한 애정, 그게 나무를 깎는 일이든지 베는 일이든지 혹은 나무를 심는 일이든지, 그 모든 것이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무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해 버리면 너무 건조한 표현이 될 것 같고, 오로지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존경스러운 목수김씨. 나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목수김씨를 통해 내가 깨달은 또 한 가지. 나무 하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나무를 넘어 모든 대상물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므로 나무 하나도 제대로 바라볼 줄 모른다면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어떠한 생명체 앞에서라도 절대 잘난 척 해서는 안된다는 것. 하나의 생명과 하나의 사랑은 곧 바로 다른 하나로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 고마운 마음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목수김씨가 나무와 더불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다 못해 나무 한 짝을 들고서라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인상깊은구절] "만일 마당에 잔디를 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석양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우아를 떨겠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단 오 분만에 그 꿈은 깨질 것이다"라거나, "시골 사람들의 풋풋한 정을 생각한다면, 시골 사람들이 얼마나 우악스러운지를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머리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며, 동네에 들어선 음식점의 노래방 기계 소음에 매일밤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동호인 주택이란 그럴 듯한 공간은 단지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도시 여피들의 공간이지, 그게 시골의 전원은 아닐 것이다"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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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 이 책처럼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서점에서 이것저것 책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 때의 "이 책"이 바로 <목수 일기>이다.
자신의 일상을 약간의 사진과 함께 실은 책. 거기에다 책 디자인이 아주 멋졌다. 멋스럽다고나 할까.. 사실 책표지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읽고 나니 책 내용이 더 맘에 들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거기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그게 바로 삶의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이 그 행복에 대해(행복이라는 말은 책 어디에도 없지만 ^^;;) 아니, 그 행복의 모습과 일상에 대해 적고 있다.
읽으면서 보니 지은이가 단순히, 원래부터 목수였던 사람이 아니라 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가방끈이 길다고 말하던가??) 출판에도 몸담은 적이 있는(어쩐지 책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았어.....) 도시인이었다(지금은 도시 근교 시골에서 살고 있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다. 나의 즐거움을 알고 싶은 사람은 직접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지난번 전시회 때에는 자작나무 토막을 대충 도끼로 쪼개 만든 날벌레와 톱밥으로 빚어 만든 도깨비를 천장에 매달았는데, 아이들이 더없이 좋아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든 물건을 알아보는 건 역시 아무 생각 없는 아이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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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술술 잘 읽히는 에세이집 같다. 특히 앞부분에서는 작가가 줍거나 구한 나무로 만들었던 아이디어 상품(?)에 관한 것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목수일기>를 읽다보면 나도 나무와 연장만 있으면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까지 할 정도로 김진송씨는 작품을 너무 쉽게 만드는 것 같이 읽힌다.
그리고 나무에 관련된 상식은 DIY를 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 어떤 나무로 물건을 만들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김진송씨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을 알려주고 있다.
또 하나 이 책에서는 '자연'에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진송씨는 전작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에서처럼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신화를 여지없이 깨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다'라는 신화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김진송씨는 이야기한다. 어떠한 물건이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연'을 떠난 이상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특히 자연을 떠나 인간 사회로 들어온 물건은 도저히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고 김진송씨는 강변한다. 이 강변속에는 자신도 자연 속에서 나무를 가져다 작품을 만들지만, 나무는 자연속에 있어야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들이 손쉽게 자연속에서 난 재료로 실생활과 어울리는 물건을 만들면서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욕심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울을 떠나 농촌에서 목수일을 하고 있지만, 김진송씨는 역시 일상의 상식을 뒤집을 줄 아는 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목수일기>에 나온 작품 중에서 '게으름뱅이를 위한 테레비 시청용 두개골 받침대'를 가지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목수일도 그런 일 중 하나이다. 제대로 된 목수의 작업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하지만, 대부분의 일의 내용은 있는 그대로보다 과장되어 있다. 정교한 작업조차 단순한 일의 반복에서 오는 과정의 복잡함일지언정 그 내용의 치밀함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지식의 상당 부분은 학습과 경험이 가져다준 것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을 터이지만 사람들은 경험의 축적을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는 자신만의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터무니없이 인색한 경우가 없지 않다. 어저면 축적된 정보나 지식의 내용이 빈약한 일일수록 그런 경우가 더욱 많다. 만일 자신의 노하우를 드러내기를 몹시 꺼리는 사람이 있다면, 대개는 그 사람이 지닌 정보가 매우 단순하고 손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빈약한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있다. 때로는 손으로 터득하여 오랜 시일이 걸려 완성된 기술에서도 그런 경우는 흔하다.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투여한 기간을 보상받으려는 심리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게 되고, 그게 정보를 공유하는 데 철저하게 배타적인 태도를 낳게 된다. 이게 어디 손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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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들렸다가 새로 나온 책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다른 책 같으면 그냥 빌려볼 텐데, 왠지 나무에는 관심도 없는 내게 이 책을 사야겠다는 강렬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일까. 아마도 짙은 나무 의자와 판화체 글씨가 어우러진 표지디자인이 그 이유였으리라 생각한다. 책 속에 간간히 보이는 작가의 작품 스케치 또한 내 마음을 끌었다.
잠깐 책을 보면서 기대하던 내용과 약간은 틀렸지만 읽어가면서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경험에서 나온 지식의 세세함을 느꼈다. 비록 내가 하고 싶은 분야가 아닐지라도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사랑스럽다.
후반부의 '목수생각'들은 잘 끼워 맞춘 나무처럼 작가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디자인에 관심이 가서 선택하게 된 책에서 나는 새로운 소재-나무-와 그리고 자연에 덧붙여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보기에는 푸르고 좋은 나무숲에서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따져보는 건 골치 아픈 일이긴 하다. 어쨌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나무를 주워 무얼 만드는 것이 꼭 직업적인 장이가 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진 셈이다. 하지만 일상 속의 간단한 쓰임새조차도 산업적인 생산구조에 기대야 하는 이즈음의 삶에서 조금만 그럴 듯 한 걸 만들면 창작이니 예술이니 이름 붙이고, 그걸 업으로 삼으려면 직업적인 장이가 되어버리니, 그 한가운데 있으려면 나 같은 얼치기 목수가 제격이 아닌가 싶다. |
| 나무를 깎고 다음어서 나에게 꼭 필요한 무엇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이렇게 흥미로운 일일줄이야... 물론 덩치가 큰 나무를 옮기고,자르고,다듬느데 드는 노력이야 말로 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일일테지만, 물건이 완성되어 집안에 그럴듯한 가구로 자리잡은 후에 바라보는 맛은 말로 형용키 어려운 짜릿한 기분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나무를 한번 다루어 보고 싶다는 욕심과 작가가 만든 멋진 나무의자 하나쯤 사고 싶다는-사실은 하나 얻어오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크지만-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목수라는 직업은 장롱,식탁,의자 등등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내다파는...어찌보면 노동업쯤으로 여겨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왠만한 식물학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나무를 이해하고 느낄줄 알아야 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 하는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갖추고 있어야 하며, 하나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 말리고 다듬고 기다리며, 또 다듬고 또 기다리는 인내심도 있어야 할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내가 결코 접하지 못할것 같은 목수일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고, 목수들의 보람과 고생을 함께 한 것 같아서..이로 인하여 간접 경험의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주는 책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껴보았다. |
|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평소 나무를 무작정 좋아하는 나였기에, 목수일기라는 제목에 몇몇 나무로 만든 물건(?)들이 담겨 있는 이 책에 눈이 갔다. 글을 읽어가며, 나는 처음 접한 목수 김씨의 작품들을 하나 갖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수일을 접한지 몇년 되지 않은 얼치기 목수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에서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디자인이 특이해, 아이디어가 유별나서 이끌림이 일어난 것이라기 보다는, 그 무언가 정감이 담겨 있어 이끌렸다고 해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가 만든 작품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을 때도 있었으니까. 담담하게 나무를 만난 일에서부터 얻어와 물건을 만들어내기까지 적어내려간 글을 읽으며 나무에 대해, 자연에 대해, 그리고 내삶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만들었다. 의자 위에서 책상다리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자신과.. 고양이 울음소리를 무지 좋아하는 오빠를 위해 그가 만든 "자유로운 포즈를 위한 의자"와 "고양이 목침"을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과연 나도 이렇게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 책이다. 다음번 "목수 김씨전" 전시회가 열린다면, 꼭 가봐야겠다. |
| 책이 너무나 이쁘고 마음에 들어서 선물한 권 수만 해도 네 권이 된다. 읽는 내내 나무냄새에 기분까지 상쾌했다. 소탈한 생활을 하는 게 바로 환경을 위한 길이고 그 길이 우리네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거의 시멘트 바닥이고 아스팔트라 흙내음도, 거기에 심어져있는 나무내음도 느낄 기회가 없는 게 안타깝다. 목수라는 말이 이렇게 따듯하게 느껴진 적도 없었거니와 이렇게 나무가 있는 시골마당이 그리운 적도 없었다. 아마도, 자연을 멀리하고 살아온 이 사회의 각박함에서 온 마음병이 아닐런지... 아무래도 오늘저녁 식사때부터 나무 그릇으로 바꿔야 할라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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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 라는 책이 나왔단다. 글쓴이는 목수김씨란다. 참 특이했다. 목수김씨하니까 농부최씨 뭐 이런 것처럼 나이든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책을 사보니 그가 만든 작품이 꽤나 모던하다. 나이도 40대 초반이란다. 더군다가 목수김씨가 '딴스홀을 허하라' 뭐 이런 책을 썼던 사람이란다. 목수김씨의 어감과 '딴스홀'의 어감이 이렇게 다를 수가..
이 글은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와 나무에서는 나무를 구하는 데 얽힌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고, 물건 만들기에서는 구해온 나무로 물건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나타나 있다. 일과 놀이에서는 팔기 위한 물건, 쓸모있는 물건이라기 보다는 만드는 재미,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물건을 만든 이야기가 실려있다. 마지막 부분은 목수생각이라고 그의 사변이 담겨져 있는데, 앞의 세 부분에 비해 좀 지겨웠다. '딴스홀'의 이미지와 언뜻 일치될 정도로 그의 궤변? 독설? 이 드러나 있었다. 그 자신이 이미 그 맹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마지막 부분만 빼면 모두 재미있었다. 그래도 이 부분이 있어서 이 책에 무게가 실리는 거라 생각하면 그리 나쁠 것도 없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목수도 아닌 얼치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글쎄 세 가지 역할 모두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 국문학을 전공했다더니 그의 표현력도 상당했다. 나무에 대한 애정, 예술에 대한 시각 등도 알찼다. 참 특이하고 새로운 수필집을 만났다. 행복했다. [인상깊은구절] 전동 공구들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그것들이 대부분 회전력을 이용하는 데 국한되어 있으며, 그것조차 수월하게 조절하는 장치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말하자면 매우 복잡한 기계가 하는 일이 늘 단순한 작업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매우 단순한 손 도구들은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 혹은 비기계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결국 매우 발달된 기계라는 것은 인간의 작업을 단순화하고, 그 단순한 작업을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묶어버리기 위한 문명의 산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