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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전쟁입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결코 이런 전쟁이 없을 겁니다. 전쟁터였던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도 전쟁의 소용돌이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전쟁의 분기점은 뭐일까요? 미국의 참전,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의 승리, 미드웨이 해전, 엘 알레메인 전투의 승리 등등 수많은 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바로 이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뽑습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스케일의 전쟁
사실 미국이 독일과 전쟁에 돌입한 순간 독일은 더 이상 승산이 없는 전쟁이였습니다. 병력의 질적인 부분에서는 독일이 앞선다고 하지만 미국의 공업 생산력은 당시 어마어마 했습니다. 뉴딜정책으로 국가 전체가 공장이 되어버린 미국은 항공, 조선, 기계공업등 이미 어느 나라도 따로 올 수 없는 생산력을 갖춘 상태였습니다. 1942년 미국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면서 본격적인 독일과 전투를 개시합니다. 이렇게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 독일군을 몰아 붙였지만 독일군의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가 항복하고 연합군 편에 돌아섰지만 로마 이상 북진을 못하는 상황이였습니다. 소련도 스탈린그라드에서 전투를 승리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독일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유럽 본토인 프랑스를 해방하고 그를 발판 삼아 독일로 진격하는 방법뿐이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유럽에 어마어마한 양의 무기를 보내기 위해 영국에 쌓아 놓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을 독일이 모를리 없었습니다. 독일은 이에 대비해 대서양 지역에 병력과 장비를 모으고 요새를 준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의 공업 생산력은 독일이 생각보다 막강했습니다. 엄청난 병력과 장비가 영국에 모였고 그 병력과 장비를 유럽으로 보내기 위해 엄청난 함대가 영국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모으는데만 몇달이 걸립니다.
D-Day 그 이후
이 책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지기 직전과 그 후의 전투 기록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당시 양군의 지휘관, 무기 체계, 부대 편성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연합군은 관리형 장군인 아이젠하워가 총사령관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의 휘하에는 브랜들리와 몽고메리 같은 명장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야전 경험이 적은 만큼 야전 사령관들의 지휘권을 최대한 보장하며 이들이 전투를 잘 할 수 있게 조정하는 역할에 주력합니다. 반면 독일은 롬멜, 제프 디트리히, 하우저 등 백전노장들 포진해 있었지만 히틀러는 부대 명령을 직접 함으로서 이들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무기 체계는 독일군이 앞서 있었지만 문제는 제공권이였습니다. 당시 미8군과 영국공군의 사전 공격으로 이미 서부전선의 독일공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동부전선에서의 치열한 교전으로 전투기 보급과 조종사 충원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이라 피해를 복구하기도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은 결국 전투중 부대 이동중 공습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어 제때 지원을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독일군의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군의 개개인의 능력은 연합군을 앞섰으며 공습을 제외하고 전투중 손실은 양측이 비슷하거나 연합군이 더 손실을 입었습니다. 특히 영국군은 병력 보충이 힘든상황이였습니다. 기계화된 무기들의 전투에서 보병의 손실이 매우 컸던 겁니다. 이는 미군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였지만 그나마 미군은 여유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연합군측의 밀고 밀리는 전투는 결국 연합군측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3군 사령관으로 복귀한 조지 패튼은 기동전으로 적의 후방까지 깊숙이 밀고 들어가지 독일군은 결국 버티지 못했습니다. 특히 병력 및 장비의 손실을 제대로 보충할 수 없게 되자 전력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졌고 이로 인해 독일은 전투에서 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투의 결과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그 이후 벌어진 전투의 결과 프랑스는 해방되었습니다. 르끌레르 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스 기갑사단이 파리를 해방하고 독일은 독일 지역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독일은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서 병력 및 장비 손실을 채우지 못합니다. 또한 동부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오던 소련과의 균형도 급속히 깨지면서 끝없는 후퇴를 거듭하게 됩니다. 만약 노르망디에 상륙했던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격퇴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독일군은 연합군에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전쟁은 1년 내지 2년 정도 더 길어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겁니다. 혹은 미국 또는 영국과 강화가 체결되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지금의 유럽과는 또 다른 유럽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