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르네상스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천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카라바조 같은 거장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조토, 마사초, 프라 안젤리코, 도나텔로, 티치아노, 베르니니 등 이번 여행에서 만나야 할 예술가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로마에서 4일을 보내고 이탈리아 남부 3박4일을 유로자전거나라 투어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성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가 화제에 올랐다. 당연히 발다키노를 제작했다고 알려진 베르니니와 그의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가이드님이 '보로미니'라는 이름을 이야기 하시는데,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성 베드로 성당의 그 발다키노가, 그리고 성 베드로 성당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라는 사람에게 빚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디자인 천재>라는 바로 이 책을 추천해 주셨다.
이미 절판된 책이었는데 다행히 중고 주문이 가능하여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천재적 재능을 지닌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와 '잔 로렌초 베르니니'. 하지만 그 둘의 성격과 성향은 판이하게 달랐고 시대를 살아가는 요령과 처세의 차이가 그 둘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요즘말로 하자면 사회성이 결여되고 처세술에 능하지 않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큰 명성과 인기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책은 그 두 천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누가 옳고 어느 누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건축에 있어서 독창성과 전문성은 보로미니가 베르니니보다 한 수 위라고 보여진다. 베르니니는 건축 보다는 조각과 회화에서 탁월하였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기교는 당시 로마와 세상이 원하던 것과 잘 맞아 떨어졌으며 외향적이고 수완이 좋아 교황 우르바누스 8세의 신임을 얻게 되면서 성 베드로 성당의 공식 주임이었던 마데르노를 제치고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마데르노의 제자이자 그를 존경했던 보로미니로서는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베르니니가 마음에 들리가 없었지만 운명은 보로미니와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성당에서 함께 일했던 9년의 시간을 포함하여 일생동안 경쟁자로 살아가게 만든다.
이 책을 여행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보로미니가 묻힌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그의 천재성을 볼 수 있는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이나 산 필리포 네리 성당의 오라토리 같은 곳을 둘러볼 짬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보나 광장의 4대강 분수를 보면서 베르니니의 위대함에만 감탄하지 않고 실제 그 아이디어를 내 사람은 보로미니였다는 것도 기억했으리라. 보로미니의 등장과 그의 불운함에 대한 안타까움이 베르니니의 업적과 천재성에 흠집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로마가 위대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보로미니가 남긴 유산도 있었음을 기억해 주는 것이 이 불운한 천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