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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소개했던 <동화로 읽는 그리스 신화>처럼, 그리스 신화의 열풍이 불어닥쳤던 2001년에는 정말 많은 수의 그리스 신화 관련 서적들이 앞다투어 출간되었다. 여러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신화 관련 서적들이 있었지만, 만화라는 표현방식을 빌어 나온 책 중에서도 매우 즐겁게 만났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만화 그리스 신화>이다. 전 8권으로 완간된 이 책은, 순정 장르 쪽에서는 상당한 중견이라고 들었을 뿐 실제로는 처음 접하는 사토나카 마치코의 작품.(나중에 알고 보니 90년대 초반에 보았던 <이오나>에서, 학생회장 선거용 포스터로 패러디 된 적이 있는 작가)
신들의 희노애락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그리스 신화의 세계이지만, 읽다 보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거나 사후처리가 애매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 작가는, 섬세함으로 그런 부분들까지 잘 조율해서 전체적으로 상당히 무리없이 정리함과 동시에 순정만화 특유의 감성을 조합하여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아레스로부터 저주받은 테바이의 흥망성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만 봐도 작가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분류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동화로 읽는 그리스 신화>의 경우 신들에 대한 경외심이나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명확한 가치 판단이 표현되어 있는 대신 동화라고 하기엔 다소 경직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만화 그리스 신화>는 등장인물의 마음가짐이나 상황에 감정이입을 쉽게 할 수 있게끔 접근한 점이 돋보인다. 적지 않게 등장하는 동성애적인 분위기도, 순정 풍의 그림과 정서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고전적이고 촌스럽게 보일 수 있는 작화 풍임에도 불구하고, 각 캐릭터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미묘한 개성들이 적절히 부여되어 있는 것도 새삼 감탄스러운 부분이다. 표현하기에 모호한 소재나 상황들도 교묘한 연출로 잘 처리하는 것도, 오랜기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얻은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대략 400여편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 8권이 모두 재미있었지만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을 하나만 고르라면 3권을 꼽고 싶다.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어떻게 명계의 왕인 하데스에게 출가하게 되는가에 관한 부분. 보통 하데스라고 하면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명계에서 벗어나지 않고(올림포스에도 그의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던가) 있는 관계로, 음습하고 어두운 존재 또는 디즈니의 <헤라클레스>나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아리온>에서 처럼 악인에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의 하데스는, 수염도 기르지 않은 미남에다 우수에 찬 존재로 등장한다. 피에 굶주려 자신의 백성을 늘리려는 야욕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죽음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정말이지 '바른생활 신'이 따로 없다.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새 생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며 죽음이 두렵지 않도록 신 앞에 부끄럼 없이 살면 되는 것이라는 말 그대로의 정론을 품고 있는 섬세한 신인 것이다. '이곳엔 밝은 빛도 없고 사랑의 기쁨도 없다. 명계의 입구로 스며드는 지상의 미풍, 거기 실려 있는 생명의 향내가 마음을 저민다. 외로운 건가.... 나는.' 고백하듯 속마음을 토로하는 이 시점에서 하데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데메테르의 딸인 코레(페르세포네의 출가 전 이름). 사토나카 마치코는 이 가녀린 명계의 신께서 바로 지상으로 나가 그녀를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제우스(게다가 자기 동생 아닌가)에게 찾아가 의견을 묻기 위해 몸소 올림퍼스에 올라가는데 정작 '여자란 적당히 거칠게 대하면 싫어 싫어 하면서도 따라온다'라며 하데스에게 잘못된 여자관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제우스였다라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기본적으로는 순정만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괴물 등의 표현에 있어서는 한계가 보이기도 하지만 소품이나 시대상에 관한 고증은 세세한 부분까지 충실하고,(정확한 정의나 기준은 사실 나도 잘 모르니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일단 재미있다. 중간중간 작가의 입을 빌어 주석처럼 달아놓은 설명들도 괜찮고, 각종 계보나 흐름 등도 표로 보기좋게 만들어 놓은데다가 각 권 말미에 딸려있는 해설도 충실하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는 너무 많이 읽어서 외울 정도라든가, 땀내나는 근육질의 영웅 묘사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만나봐도 좋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황금가지/ 사토나카 마치코 지음/ 최은석 옮김/ 이윤기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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