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과 동영상이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로 가는 방법은 기록밖에 없다. 기록물의 종류에 따라서 과거를 보는 형태가 다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졌음에도, 아쉬운 건 우리 선조들이 무엇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면서 무엇을 마시고 무엇에 웃고 울었으며 무엇에 감동하였을까 하는 점이다.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시가이며 4음보의 율격 속에 시적 정서를 담아내어, 전기에는 노래 가사로, 후기에는 읽을 거리로 전해져왔다(작품해설). 짧고 압축적인 아름다움이 특징인 시조와는 달리 가사는 운율이 있으되 장시의 개념으로 길게 내용을 전한다. 사대부들은 여행 후기도 가사로 썼고, 집들이 축하글도 가사로 썼고, 유배지에서도 가사를 썼다. 책은 크게 강호가사, 유배가사, 기행가사, 교훈가사와 민요의 사설과 후렴구와 같은 민요의 형식을 차용한 가사의 갈래교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일 보는 자연이 늘 새롭고 늘 노래말에 담을 만큼 아름다울까. 강호가사를 쓴 사람들은 깊은 숲 속에서 홀로 집을 짓고, 그곳에서 살면서 매일 보는 들과 산과 강과 꽃과 나무와 계절의 변화를 노래한다. 이런 것을 원림문학이라고 하는데, 원림문학의 정의는 '거처와 그 주변의 자연 사물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양태와 거처하는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한다. 강호가사의 대표적인 작품은 정극인의 상춘곡, 정철의 성산별곡과 면앙정가 등이고, 그 밖에도 누황사, 탄궁과 우활가, 봉산곡 월선헌십육경가가 실려있다. 모두들, 현실과는 먼 이상향을 동경하며,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의 생활을 추구하는 성리학적 이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호 가사는 일반적으로 정치 현실을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외부와 차단된 은둔을 지향하는 데, 책에 실린 면앙정가와 성산별곡은 사대부가 희구했던 이상적인 세계상을 담는다. 즉, 누정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사물들에 유가적 이상세계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면앙정가와 성산별곡에서 찬양 대상 원림인 면앙정과 식영정은 광주에서 가까운 담양, 소쇄원 근처에 있고, 그 주변으로 가사문학관이 있다. 대부분이 자연의 주변 원림을 조금은 지나치게 찬양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사대부의 이상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니,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가옥 자체와 산세는 남아있는 그곳들은 소쇄원과 더불어 누가 오면 볼 것 없는 광주 대신 관광지로 데리고 다니는 필수 코스 중 하나기에, 머리속으로 시를 짓던 풍경을 꽤나 선명하게 시각화해볼 수 있었다. 유배가사도 그렇지만, 대개는 가사문학이 다소 자유로운 형식이라고는 하나, 대략 자연을 먼저 노래하고, 그 다음에 개인의 서정과 그리움과 같은 감정을 담는데, 거의 모든 가사에서 느낀 점은 작가들의 임금에 대한 충정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많은 가사문학들이 기승전왕에대한충성인데,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아부가 아니라 군주에 대한 충성심의 표출이 하나의 관념적 미학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그리움과 애절함이 절절히 넘쳐나기 때문에, 아 시적으로도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그 임이 왕을 말한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음에도, 당시 사대부들의 유교적 관념이라는 것의 실체를 희미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상춘곡을 비롯해 관동별곡 속미인곡 사미인곡 등을 많이 언급했지만, 가사 문학은 조선전기의 유교적이고 관념적인 형태에서 조선후기로 갈 수록 현실적인 묘사나 내용으로 좀더 생생한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해 주므로, 내게는 상대적으로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작가의 후기 문학이 훨씬 더 흥미로왔다. 우리가 그림을 보더라도 산수문경화보다는 생생한 씨름판과 목욕하는 모습, 훔쳐보는 모습들을 재현한 풍속화를 더욱 좋아하는 것처럼 가사를 통해 과거 시대를 만나는 데 있어서도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유학자들의 사상을 만나는 것보다는 가난하고 고단하지만 그들의 먹고 일하고 생활하는 생생한 일상을 만나는 방법이 더욱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기행가사인 관동별곡과 권섭의 영삼별곡의 예를 보자. 정철과 권섭은 모두 화룡소라는 같은 곳을 노래하고 있다. <관동별곡> 중 원통골 가는 길로 사자봉을 찾아가니 그 앞의 너럭바위 화룡소가 되었어라 천년 노룡(용)이 굽이굽이 서려 있어 밤낮으로 흘러내려 바다로 이었으니 풍운을 언제 얻어 삼일우를 내릴까 음지에 시든 풀을 다 살려 내었으면 <영삼별곡>중 뫼 밑에 서린 용이 변화도 무궁하여 음심한 오랜 소에 소굴을 삼고 있어 층층 절벽 백 척에 비단 한 필 걸어 두고 한 낮의 천둥소리 골짜기에 가득하니 구부리고 보던 것이 내 일이 싱겁구나 정철이 현실에 용의 이념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풍운을 얻고 삼일우를 기원하는 데 비해, 영삼별곡은 용과같은 변화무쌍한 자연, 깊은 소(웅덩이)와 높은 폭포, 천둥같은 폭포물 쏟아지는 소리, 구부리고 보는 화자 자신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권섭(1671~1759)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여행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다른 기행 가사들이 부임지로 가면서 지은 데 비해, 권섭의 가사는 개인의 순수한 여행 체험을 작품으로 옮겼다. 영삼별곡은 여행을 하게 되는 계기부터가 병이 나 초가를 닫았는데 오지랍넓은 병이 자연에 든 병이라 떠나게 되었다는 다소 코믹하게 시작되어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풍경, 귀리밥에 풋나물 삶아 데쳐 싫도록 권하는 인심좋은 산골집 고즈넉한 저녁 풍경, 앞 내에 빠진 옷을 쥐어 짜서 손에 쥐고 벌불에 쬐는 것 같은 자잘한 기행 풍경을 세세하게 담아내었다. 기행가사에서 특히 탐라별고 일동별유가 연행가는 각각 제주도, 일본, 북경 여행기를 담고 있는데, 전혀 새로운 풍경을 완전히 다른 가치관으로 바라보는 시대의 시각이 재미있었다. 연행가는 꽤나 조선 후기에 쓰여졌는데도 여전히 명을 숭상하고, 청을 멸시하는 가치관이 엿보였고, 일본에서 호화로운 거리와 가옥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미개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재미있었다.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에 어떠한가 옛사람 풍류를 미칠까 못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 한 이 많건마는 신림에 묻혀 있어 지략을 맡겠는가 ... 이봐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스라 답청을랑 오늘하고 욕기 일랑 내일 하세 아침에 나물 뜯고 저녁에 낚시 하세 ... <상춘곡> 중 |
|
다양한 삶의 양상이 배태하는 일상 풍경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통찰력 있게 인생을 살아갈 에너지를 주는 문학 작품은 개별성을 띠고 보편적인 깨달음을 준다. 시대와 민족의 벽을 넘어 독자들이 공감할 가치를 담고 항구적인 생명력을 지닌 고전 작품은 민족이 살아온 궤적을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4·4조 4음보 리듬에 서정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 작품을 접할 때마다 조선 시대로 돌아가 동시대를 사는 여염집 규수로 타자의 삶에 공감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다지는 자신을 그려본다. <<가려 뽑은 가사>>를 읽는 시간은, 가사 문학의 진수를 보인 송강 정철과 노계 박인로의 작품을 넘어 작자 미상의 규방 가사까지 담아 당대에 창작돼 향유되었던 스물두 편을 감상하며 잔잔한 울림에 공명하는 시간이었다.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심(機心)에서 벗어나 무심(無心)한 가운데 자연과 더불어 흥취에 젖어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한중진미(閑中珍味)를 담은 강호 가사에서는 가난한 삶을 구차하게 여기지 않았다. 유가의 사대부들은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우주 만물에 깃든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며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를 지향하였다. 빈이 무원을 어렵다 하건마는 내 생애 이러하니 서러운 뜻은 없노라 모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강호에서 빈이 무원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정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가치를 실현하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누항사’에서처럼 투박한 풍속 하에서도 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다짐을 ‘우활가’에서 드러냈다.
임금의 눈에 나서 은택을 입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나라를 걱정하며 변함없는 충성심을 견지하며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로 여겼던 관습의 미학을 드러냈다. 중세적 가치를 기반에 둔 전형적 주제를 선명히 드러냈다. 유배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조위의 만분가는 그가 무오사화에 연루돼 유배지를 의주에서 순천으로 옮긴 뒤 지었다. 임금과 이별하게 된 이유와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이별의 원통함을 옥황상제에게 하소연하는 구조를 띤다. 임과 살던 곳을 천상으로 설정한 정철의 ‘사미인곡’은 임의 사랑을 잃고 지상으로 내쳐진 처지임에도 임에 대한 사랑을 부각하였다.
여행자로 미답(未踏)의 공간을 찾아 길 위에 서는 일을 즐기다보니 낯선 곳에서의 적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현지에서의 생활이 어떠할는지 궁금해 하는 호기심은 발동한다. 문장가로서 외국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조선의 문화를 알리며 일본의 문물과 제도, 인정과 풍속 등을 소상히 기록한 김인겸의 ‘일동장유가’는 통신사 행렬에 함께 한 자신의 사행 경험을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고종이 명성황후를 왕비로 맞자 왕비 책봉을 청나라에 알리고 허락을 받기 위한 가례 주청사의 서기관으로 넉 달 남짓 북경에 다녀온 경험을 서술한 장편 기행가사 ‘연행가’가 있다. 명나라의 유풍인 전족을 이상하게 보면서도 그것이 명나라의 유풍이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명나라 숭배 의식이 주목된다.
필자의 사상과 정서를 통해 일상을 반추함으로써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효용적 가치를 따져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전근대적인 봉건적 이념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여 평등의 이념과는 거리가 있지만 당대의 인물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인 장면에 담아 직접 명령을 통한 구체적인 윤리 강령을 제시하였다. 선악의 구별이 분명한 인물을 등장시켜 긍정적 인물을 부각시키는 역할에 충실할 뿐인 부정적인 인물을 표면화하여 권선에 충실하여 독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목적 문학적 성향이 강하다. '남의 집 이야기와 이웃집 시비 말은 / 잡계집의 악행이니 부디 조심 실체마라 하인들의 그른 일을 못 듣는 데 말을 말고 / 좋은 의복 곱게 입고 헐벗은 이 비웃지 말고 제 몸을 제 자랑해 남의 비웃음 사지 마라..........' '복선화음록'에 나오는 구절들을 보며서 선업으로 복을 짓는 일의 종요로움을 알아차리고 현재에 걸맞은 행동 강령으로 소통하는 시간 속에 서로를 배려하며 화합하여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
|
가사 문학 양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별한 문학 양식이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의 사상 감정을 잘 담아 낸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고려 말에 어느 정도 양식이 만들어져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애용되게 되었다. 지금도 많이 창작되는 시조라는 양식과 더불어 발전되었다고 보여 진다. 시조가 4.4조 3장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가사도 4.4조 4음보로 이루어져 있다. 비슷한 면이 있고, 그것이 길게 이어진 형태라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우리 민족이 이처럼 4.4조의 언어 리듬을 즐겨 사용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조도 사설시조를 보면 중간이 길어져 길이가 길어진 모습을 보인다. 가사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사는 처음부터 4.4조의 길게 길게 이어져 내려간 형태로 산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시조가 압축된 내용을 담아 정서를 표현했다면 가사는 다양한 일상을 자세하게 서술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기에 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운문과 산문의 중간쯤에 가사를 놓는다. 시조와는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말이다.
이 책은 이 가사들을 일목요연하게 뽑아 제시해 주고 있다. 가사 문학에 입문하려면 쉽게 찾아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있다. 양반들이 즐겨 마음을 나누었던 자연에 대한 노래 강호 가사, 유배의 설움과 그리움을 노래한 유배 가사, 기행의 여러 내용들을 담은 기행 가사, 교훈 가사 그리고 약간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사계의 작품들 이렇게 다섯 갈래로 나누어 작품을 실어 주고 있다. 비교적 잘 골라 가사 문학 전반적인 것을 살펴보게 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금 문제가 되는 것은 가사 문학의 일반화에 크게 공헌한 내방 가사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로 소개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사 문학이라면 ‘규원가’를 필두로 이 내방 가사가 위의 모든 작품에 버금갈 정도로 분량도 많고 사람들의 삶에도 함께 했다. 조선 말기에는 ‘두루마리’로 불려 진, 이 내방 가사는 여인들의 학력을 점검하는 요인으로까지 인식될 정도로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런 내방 가사를 빼놓고는 가사 문학 전반을 논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저자는 고전 읽기에서 고어로 되어 있기에 독자들이 접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번역을 하여 제시해 놓음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선조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기에 우리들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이렇게 번역된 고전은 우리들의 삶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일반인에게 생소하리라 여겨지는 이런 가사 문학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책으로 묶어 내어준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가사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러한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여기고, 좀 더 많은 분량의 가사 작품이 현대어로 고쳐져 읽게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구체적인 내용의 배열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먼저 강호 가사에 해당하는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박인로의 누항사 등이 제시되면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유려하게, 질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위의 만분가 송강의 사, 속미인곡 등은 유배지에서 안타까움, 간절한 마음, 그리움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홍순학의 연행가 등은 기행을 하면서 그 지방의 풍속, 지리, 인심 들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부가, 용부가 등은 당사자들에게 넌지시 깨달음을 주고 있다. 저자는 이 글들을 정리하면서 지어지게 된 배경, 그리고 글의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해설까지 곁들이고 있다. 작품을 읽어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문학 양식, 상당히 운율적으로 매력적이고 기지와 해학을 잘 담을 수 있는 문학의 그릇으로 여겨진다. 이 양식은 일제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자유시에 밀려 사라져 버렸는데, 시조처럼 오늘날에도 부활되어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발전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참으로 가사 문학 양식이 사라진 것은 민족의 정감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가사 문학은 우리말의 유려한 멋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 되어 있다. 아름답고 멋있는 표현들로 민족의 문학적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러한 것들을 잘 알려서 자라는 후학들이 가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많이 편찬되어 가사 문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또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과 노계 박인로 등을 잘 아는 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어디에서든 우리들이 문학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
|
[ 가려뽑은 가사 ]가 이다지도 좋을 수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이 맞다. 현암사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 시리즈가 참 좋구나 싶었다. 민음사 서양고전 시리즈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19세기 기행가사를 열심히 파고 다녔던 나였기에 시중에 나온 시가 책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12년 전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논문에 좀 더 도움을 받았을 텐데 참 아쉽구나 싶은 대목이다. 항상 왜 한 발짝 늦게 나타나는건지...당시엔 국문학과에서 나온 논문이나 그냥 가사모음집이 많았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건 가사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가사에 대한 저자의 해설글이 함께 실려있어서다. 이런 글들이 쉽게 '나 여기 있소'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항상 옛 서적들을 뒤져 어딘가 숨겨져 있던 가사를 건져내거나 학자들이 모아 놓은 가사집을 뒤져서 내가 필요했던 기행가사를 발췌하곤 했었다. 이건 내가 공부해야할 능력 밖의 일들이라 항상 피곤하고 이런 책들이 마구마구 내 눈 앞에 나타나길 바랬는데, 이제서야 나타나다니 혀를 끌끌 찰 일이다.
박현호 님이 쓰신 <가려 뽑은 가사> 에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가사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가사는 시조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국문 시가이다. 4음보 율격 속에 유장한 정서를 담아낸 가사에는 성리학적 이념에 대한 깨달음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다양한 계층의 관심사와 경험이 녹아 있다. 조선 후기에 가면 시조 보다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사대부들은 유배지에서도, 여행을 가서도 가사를 지었다. 여기에서 내가 예전에 지겹게 찾아다녔던 기행가사가 등장한다. 오늘날 다시 가사를 읽는 것은 가사 문학을 향유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몸담았던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 우리 고전 읽기의 즐거움
강호가사 중에서 대표적으로 <면앙정가>를 살펴보겠다. <면앙정가>는 1533년에 송순(1493~1582) 이 지은 면앙정을 노래한 가사이다.
사대부들은 거처와 그 주변의 자연 사물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양태와 거처하는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냈다. 이런 문학을 여기선 원림 문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원림 문학을 알 필요는 없으나, 사대부들이 본인의 재력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정자를 짓고 이를 기념하는 가사들을 많이 만들어내어 마치 그 공간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찬양하고 그 곳을 만든 본인을 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만 이해하면 되리라.
유배 가사 중에 대표적인 <사미인곡>은 유명한 정철(1536~1593)의 가사이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정철은 자기 삶에 대한 회한, 자기 번민에 대한 글을 쓰지않고 님을 향한 사랑을 썼다. 님에 대한 사랑은 문학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 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왜 사랑에 관한 가사를 썼을까.
정철의 <사미인곡>은 여인에 대한 사랑을 쓴게 아니다. 바로 변치않는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쓴 것이다. 이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유배지에서 무엇을 써서 남기겠는가. 변치않는 충성심이라도 보여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야할 것이 아닌가. 나라를 걱정하며 충성심이 변치 않는 것이 당시 사대부가 견지해야 할 올바른 삶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시기에 상사에게 비비는 것과 뭐가 다르리. 내가 지금 공장으로 좌천되어 일이 꼬여만 간다면 싹싹 비비더라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 뭐, 조금은 구겨진 내 자존감은 자리로 돌아간다음 찾는 걸로 해두자.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기행가사 차례가 왔구나. 아하! 좋다, 좋아. 우선 대표작품으로 여기선 정철의 <관동별곡>을 다뤄 보고자 한다.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원더니..." 로 시작하는 <관동별곡>은 결국 벼슬을 버리고 강호자연에 은거했다는 의미이리라. 여기서 죽림은 바로 죽림칠현에서 나온 말로써 죽림칠현이란 중국 위, 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를 말한다. (가려뽑은 가사 중 125쪽 주석 참조)
"회양 옛 이름이 마침 같을시고 급장유 풍채를 다시 아니 볼 것인가"
-<관동별곡> 중 14~15줄 부분 발췌-
회양은 강원도 북부의 지명이고, 급장유는 중국 한나라 때 회양 태수를 지낸 인물로, 선정을 베푼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결국 강원도에 관찰사로 온 정철은 이름이 같은 회양의 태수였던 급장유를 본인과 동급으로 이야기하며 본인을 선정을 베푸는 벼슬아치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옛 가사를 살펴보면 숨겨진 의미들이 많아 재미있다. 왜냐하면 이 가사는 정철이 정치적으로 불우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관찰사로 좌천되어 신세한탄을 하기보다 본인의 치적을 올리는 가사를 쓴 이유는 정철의 정치적 상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으로 봐도 될 것이다.
내가 <관동별곡> 이 좋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저자가 정철이 관료로서 직분과 포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담아낸 점을 높이 평가하여 이 가사를 보자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원래대로 금강산을 포함한 관동 지방의 빼어난 풍광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했다는 데 주목하고자 한다.
"영중이 무사하고 시절이 삼월인 제 화천 시대 길이 풍악으로 뻗어 있다 여행 짐을 다 버리고 돌길에 막대 짚어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섞여 돌며 뿜는 소리 십 리에 퍼졌으니 들을 제는 우래더니 직접 보니 눈이로다"
-<관동별곡> 중 16~22줄 부분 발췌-
여기서 풍악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고, 백천동과 만폭동은 금강산여행의 대표적인 여행장소이다.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섞여 돌며 뿜는 소리 십 리에 퍼졌으니" 이 부분을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묘사인가. 만폭동의 지형은 물살이 세서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형세라 이를 저렇게 정철은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 기행가사들은 미술사적으로도 주목되는 이유이다. 금강산 그림들을 연구할 때 그 시기에 함께 나온 가사들에서 금강산화집을 소장하고자 하는 사대부들의 욕망까지도 읽어내는 이유이다. 이는 여기까지만 논하고 다음 교훈 가사로 넘어가겠다.
교훈 가사 중 대표작품으로는 <용부편>이 눈에 띈다. 여기에서 '저 부인'과 '뺑덕어미'를 통해 제시된 부도덕한 행위는 게으름, 사치, 음란한 행동들은 자신의 신분 하락, 가문의 명예와 경제적 기반의 붕괴를 뜻한다고 한다. 19세기 교훈 가사에 제시된 부녀자의 악행과 대한 과한 평가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규제와 억압을 뜻하는 것이리라.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규제와 억압은 이렇게 가사로도 잘 나타나 있다. 여성에게 특히 강조된 것이 바로 정절이었다. 그리하여 이를 어긴 여성을 질타하는 가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현대에서 보면 무식하다 못해 어이없을 지경이나 이 글이 쓰여진 시기를 참조하고 참아야하지 않을까. 조선시대 후기 아직도 몽매한 시기였고 여성에 대한 지위를 논할 시기가 아니었다. 윤리적으로 여성의 사랑은 비난만 받았던 시절 태어나지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안타깝다. 그 시절 여자의 삶이란....
마지막으로 가사의 갈래 교섭의 대표작품으로는 <세장가>를 들 수 있다. 이운영의 가사 작품들은 한시를 통한 민요적 세계를 수용하고 우리말 노래인 가사로까지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한다.
이렇게 <가려 뽑은 가사>를 살펴보니 조선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일상에 가끔은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이해해보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에서 찾아야겠구나 싶었다.
[ 가려 뽑은 가사 ]가 이다지도 좋을 수가. 가끔은 옛 글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그게 다 인생이 아닌가. 돌고 돌아가는 만폭동의 물줄기처럼 돌아돌아 여기까지 흘러들어온게 아닐까. 다만 재미로 보기엔 어려울 수 있으니, 진지하게 옛 고전에 빠져볼 각오가 된 독자에게 권해주고 싶다. |
|
40대 후반 이상의 연령대에 속한 사람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정극인의 '상춘곡'이나 정철의 '관동별곡' 같은 가사 작품을 외워본 기억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입을 딱 벌리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저 작품들을 외우라고 한다면 당장에 난리가 날 것인데, 그 당시 고등학생들이야 외우라면 외우는 것이지 무슨 다른 말이 필요했던가? 그러나 요즘 다시 생각해 보면 외우는 것이야말로 시가 읽기의 기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가사 작품은 일정한 음보율을 가지고 있기에 눈으로 한두 번 보는 것으로는 그 율격적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고등학교 당시 수도 없이 읽고 외우며 자연스레 가사의 율격을 머리가 아닌 입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려 뽑은 가사>는 <몽유록: 꿈속 이야기로 되살아난 기억들>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현암사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시리즈에 속한 책이다. 책의 차례를 보면 크게 ‘강호 가사’, ‘유배 가사’, ‘기행 가사’, ‘교훈 가사’, ‘가사의 갈래 교섭’이라는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고, ‘조선 시대, 다양한 사람들이 짓고 즐기던 유장한 노래’라는 작품 해설이 권말에 붙어 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장에는 중등 과정에서 많이 다루는 상춘곡, 면앙정가,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일동장유가, 연행가, 우부편, 용부편 등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많이 생소한 우활가, 봉산곡, 월선헌십육경가, 영삼별곡, 탐라별곡, 복선화음록, 세장가, 계한가 들이 실려 있다. 아무래도 낯선 작품들은 술술 읽히지 않고 막히는 경우가 많이 있었지만, 같은 주제로 작품들이 묶여 있다 보니 표현이나 주제에서 서로 유사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어 비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가사들을 읽다 보면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경우 비슷한 소재와 수사적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사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철의 세 편의 가사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관동별곡’에서 보았던 다양하고 다채로운 비유도 다른 이의 작품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개성적인 표현보다 주제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관습(慣習)의 미학(美學)’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세 문학의 특징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주제의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함으로써 가사 갈래가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며 변화해 가는 모습을 어설프게나마 살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은 ‘세장가’와 ‘계한가’였는데, ‘세장가’는 민요 형식을 활용한 표현과 상피(相避) 규정에 의해 벼슬길에서 물러난 화자가 자신의 심정을 장난스러운 해학으로 풀어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계한가’는 닭의 일생을 서술한 우화 형식의 가사를 통해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당했던 부녀자들의 삶을 포착하고 있어 가사의 새로운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가사의 옛 표기를 음보율을 고려하며 현대어로 고쳐 놓았기에 읽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고전 표기에 익숙한 작품들에 있어서는 읽는 즐거움이 좀 들어든 듯한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편이었는데,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실린 작품 해설은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해설에서는 먼저 작가의 간략한 생애를 소개하고, 그런 작가의 생애가 작품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구성에 따라 표현의 특징과 주제, 가사의 갈래적 특성과 변모 양상, 작품이 창작된 시대적·문화적 특징 등에 대해 친절하게 풀이해 주고 있어 작품을 읽으며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 수 있게끔 해 놓았다. 권말에 실린 ‘조선 시대, 다양한 사람들이 짓고 즐기던 유장한 노래’라는 작품 해설에서는 가사 문학 전반에 관한 특성을 설명해 놓아서, 작품 개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사 갈래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좋았다. 유장한 가락 속에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드러낸 조선 전기의 가사들과 전기에 비해 이완된 리듬 속에 기행이나 유배 등 서사성이 더 잘 드러나는 조선 후기의 가사들은, 곱씹어 보면 옛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문학 작품인데 요즘은 단지 어려운 것, 시험을 위해 억지로 봐야 하는 것 등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한자나 고사성어가 많이 사용되고, 중세적인 유교 이념이 중심을 이루는 가사를 가깝게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 옛사람들의 삶과 사고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과 사고를 더욱 새롭게 하는 것이 고전의 가치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가사가 갖는 소중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옛사람들의 멋과 혼이 가사 작품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우리 문학의 깊이도 남다를텐데 우리 역사가 반만년에 이르니 우리 문학도 그만큼 유구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도 유구한 우리 문학을 향유하지 못하고 외국 문학에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비록 우리 문학일지라도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표현되지 아니 하고 오랫동안 '한자어'로 표현되었고, 우리 식 표현인 '이두'나 '향찰'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표기법이 매우 어려워 읽고 쓰는데 상당한 글공부가 필요했기에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 어려웠다.
그러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고 반포하여 비로소 우리 말을 우리 생각대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나 이것조차 널리 쓰이고 즐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바로 문학적 향유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이 '훈민정음'을 업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 글'을 갖게 된 뒤에도 여전히 '남의 말'을 쓰게 된 까닭이다.
우리 글을 창제하였는데도 어찌하여 남의 글에 열심인고 난 고등학교 시절에 이 점에 대해 굉장히 궁금증을 느꼈다. 왜 편한 '한글' 대신에 어려운 '한자어'를 고집했었는지 말이다. 쉽게 배우고 익혀 쓸 수 있는 문자를 냅두고, 왜 어려운 글자를, 그것도 '남의 나라' 문자를 쓰지 못해 안달(?) 났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고민은 국어시간 중에서도 어려운 '고문(古文)' 시간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양의 구텐베르크가 인쇄 혁명을 일으키며 성직자나 귀족과 같은 소수계층만 향유하던 '지식'을 일반대중들도 향유할 수 있게 되어서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상황을 공부할 때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고서도, 세계 최고의 문자를 만들고서도 강대국에 낑기지 못했는지, 왜 로마제국과 같은 지정학적으로 유사한 반도국가이면서도 '팍스 코리아나'를 이룩하지 못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오랜 궁금증들이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풀려 나갔고, 이 책을 보니 더욱 확실히 해결이 되었다.
노예제사회-종교적사회-자본·민주사회=가진 자만 누리는 사회? 세계 역사를 '고대-중세-근대'로 시대별 나눔을 하였을 때, 우리 역사의 고대는 '고조선부터 삼국시대까지', 중세는 '통일신라부터 조선후기까지', 근대는 '조선말기부터 오늘날까지'라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고대사회를 지배한 것은 활발한 정복활동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왕권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노예의 생산력이라 볼 수 있고, 중세사회는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와 같은 거대종교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의 모든 것을 지배한 시대였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근대사회는 산업혁명으로 불거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의 원동력인 자본주의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성장한 민중들의 각성, 즉, 민주화혁명으로 정치, 경제, 사회의 주인공이 소수에서 다수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뭐, 내 나름의 시대적 구분이니 다른 역사책에서 나눈 것과 비슷할 수도 아닐 수도 있음을 밝힌다. 다만 내가 이해하기 편리하여 구분한 것이고, 그동안 읽은 수많은 역사책을 참고 하였다는 점도 밝혀둔다.
이것으로 보면, 우리 역사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고대사회의 주인공은 얼마나 많은 노예를 거느릴 수 있는지로 결정할 수 있음으로 '왕과 귀족의 주도권 경쟁'을 살펴 볼 수 있다. 비록 평민이라 할 지라도 왕과 귀족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이었고, 노예, 즉 노비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가진 것이 많아 누리고 사는 계층인 왕과 귀족들만이 '문학적 향유'를 누릴 것만 같다. 그런데 우리 문학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황조가와 같이 왕이 직접 노래한 내용도 있으나 '공무도하가'나 '정읍사'와 같이 아낙내들의 삶을 노래하거나 '구지가'와 같은 주술적 노동요가 많이 보이는 것처럼 참으로 모든 계층이 춤과 노래를 즐길 줄 아는 흥이 많은 민족이었던 것이다.
중세사회는 어떤가 하면, 아무래도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판을 시대였기 때문에 종교적 이권으로 경제적 부를 쌓은 계층이 적극적으로 문학을 향유하는 계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부터 흥이 많아 모든 계층이 춤과 노래를 하던 민족이다. 그러나 종교적 부를 쌓은 계층인 승려나 귀족계층은 문자를 향유하였기에 이를 표기하고 오늘날까지 남길 수 있었던데 반해, 하층민들은 문자를 배울 기회조차 없어 자신들의 문학을 남기지 못한 것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자를 향유할 계층인 사대부들만이 고려시대의 자유분방한 '가요'를 정형미를 가미한 '시조'와 '가사'로 더욱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러다 비로소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 덕분에 민중들도 문자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나 사대부들의 고의적 농간(?)으로 인해 그 전파 속도는 느리고 파급 효과도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화로 이어질 민중혁명이 뒤늦게 나타났단 말이다. 프랑스혁명이 1789년, 동학농민혁명이 1894년이니 한참 늦었다.
하지만 뒤늦게 시작된 근대화는 뼈아픈 식민지 경험과 오랜 군사독재의 그늘속에서 격동의 시대였음에도 폭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나마 서서히 진행된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에 이르게 되었다. 바로 이 시절에 바뀐 것이 비로소 '우리 말'과 '우리 글'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음 것이고, 오래도록 향유되었던 '한자어'를 벗어나 '한글'로 표기되어 누구나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표기는 되고 있으나 '한자어'를 대신해서 '영어식 표현'을 해야 시쳇말로 '좀 있어 보인다'고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또 다시 '영어'를 배우지 않고서는 '우리 생각'을 '우리 글'로 표현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는 첨단기술 덕분(?)에 '우리 글' 표기를 축약하고 변형하는 속도도 함께 빨라져서 갈수록 '세대간 소통'이 힘들어지는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근대에 들어서고도 오랜 아픔을 겪고서야 겨우 '단절'을 극복했는데, '또 다른 단절'을 겪는 우리 사회의 풍조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려 뽑아 더욱 값진 책 지금에서야 소개하지만, 이 책은 조선시대 문학 가운데 문학적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가사문학' 중에서도 '가려 뽑은 가사' 책이다. 그만큼 우리가 꼭 읽어야 할 필요성이 가득한 책이자, 중고등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필독서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까지 소개해서 '가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교과서나 참고서에 다 담을 수 없는 자세한 작품 해설까지 수록된 탓에 읽으면 바로 공부가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참 좋은 책이다. 읽을수록 고교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으며, 그 시절에 겪었던 '독해의 어려움'도 친절한 설명으로 해결해주었기에 읽을수록 맛이 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남는다. 조선시대가 유교라는 거대종교의 틀 안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던 시대이기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사대부계층이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더 넓은 세계를 향한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려는 도전적인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고 안빈낙도와 같은 피안(彼岸)의 행태만 보여주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허나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 시절을 비판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기에 올바른 비평은 될 수 없다. 아무리 사후약방문을 잘 짓는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문학을 이해하려 할 때 '단절'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처럼 당시에 쓰인 원문을 오늘날의 정서에 맞게 고치는 작업이 필요한 게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그 시절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고뇌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곁들여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색안경을 걷어내고 '진면목'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바로 읽고, 거꾸로 읽고, 되새겨 읽고 이 책은 읽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처음에 '원문'에 해당하는 글을 오늘날의 정서로 풀어놓은 부분이 있고, 그 다음에 그 원문을 쓴 저자소개와 작품소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순서대로 읽으면 고교시절의 향수를 만끽하다 뒤늦게 해묵은 궁금증이 풀리는 경험을 할 수도 있으며, 거꾸로 읽으면, 익히 알고 있던 작품의 이해를 충분히 한 뒤에 이어서 원작의 맛을 느낄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순서대로 읽다가 다시 거꾸로 읽어 '느낌'을 되새김하여 '뜻'을 더욱 깊이 음미하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아련한 추억으로 빠져드는 경험이 주는 행복도 나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완연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 까닭은 행복감 빠져 허우적거렸을 때 문득 든 나의 늙음에 대한 각성이 산통을 깬 덕분이다. 바로 엇그제가 등교하던 그 시절이었던 듯 싶게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청소년 필독서-현암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시가 문학이다. 시조는 짧은 노래(단가)이고, 가사는 긴 노래(장가)이다. 시조는 주로 하나의 소재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된 단상을 세 줄이라는 짧은 형식에 압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화자의 정서를 표출하고 주제를 표현하는 양식이다. 반면에 가사는 다양한 소재들이 가진 이미지의 연쇄나 인과적 결합을 통해 화자가 구현하고자 하는 공간(세계)이나 현실의 모습, 사건의 전말 등을 길게 표현하는 양식이다. 이런 점에서 시조가 스냅 사진이라면 가사는 여러 장의 스냅 사진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문 254p)
고전 문학 작품은 시대가 바뀌었어도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는 근본적인 가치가 담겨 있어 오늘날에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살아온 궤적을 담고 있는 우리 고전은 많이 읽어야 한다는 자각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의 언어로 쓰인 탓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 저자 역시 고전은 지난 시대의 언어로 쓰인 까닭에 지금 우리가, 우리의 청소년이 읽으려면 지금의 언어로 고쳐 쓰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세계의 고전 작품 역시 시대마다 새롭게 고쳐 쓰는 작업이 거듭한 결과물인데, 우리 고전은 그런 작업에서 많이 늦어졌다고 한다. 이에 현재 우리가 겪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해결의 실마리가 고전에 있다고 확신하면서 우리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고쳐 쓰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현암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품,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글맛을 살리는 원칙 아래 고전 읽기를 통해 한국인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게 하는 문화의 힘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아래 쓰여진 <<가려 뽑은 가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가치관을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서 문학 작품에 표현된 가사들을 산수 자연에서 노닐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노래인 [강호 가사], 귀양지에서 지었거나 귀양지를 소재로 한 [유배 가사], 여행을 통하여 얻은 견문과 소감 등을 적은 [기행 가사],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잘 가르쳐서 타이르는 것을 주제로 한 [교훈 가사] 그리고 다양한 시도를 보이며 다채로운 양상을 보이는 가사 등 총 다섯 장으로 나누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 책 속에 수록된 작품은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한 것이 대부분인 탓에 흔히 알고 있는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서별곡, 관동별곡 외에는 굉장히 생소한 가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행이 어렵고 까다롭다는 느낌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앎에 대한 기쁨에 대한 느낌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이는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글맛을 살리되 지금의 언어로 고쳐써 읽기 쉽고, 글에 대한 해설을 통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처음 가는 장소에서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을 때의 그 어리둥절한 생소함, 바로 그 신선한 충동을 우리 고전 작품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거기에는 일상을 벗어났으되 나의 뿌리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까지 함께 있다. 그것은 남의 나라 고전이 아닌 우리 고전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본문 中)
우리가 고전 문학을 읽는 것은 그 시대 사회의 문화를 이해함은 물론이요,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일 것일 게다. <<가려 뽑은 가사>>는 앞서 언급한 원칙 아래 쓰여진 구성을 통해 그 시대와 소통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이에 우리 고전 문학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데도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가려 뽑은 만큼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가 읽어야 할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은 이 책은 아름답고 멋스럽지만 그 매력을 미처 알지 못했던 가사에 대한 앎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원문의 느낌 그대로 수록되어 가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고전 문학의 어려움으로 우리 문학을 접하지 못했다면 <<가려 뽑은 가사>>를 적극 추천해본다.
(이미지출처: '가려 뽑은 가사' 표지에서 발췌) |
|
가사는 시조와 함께 조선시대의 시가문학을 이룬다. 시조는 짧은 노래로, 가사는 긴 노래로 생각하면 된다. 시조보다는 가사라는 단어에 더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이라고 하면 아! 하는 탄성이 나올것이다. 학교에서 외국어 독해하듯 단어를 고치고 구절을 해석하면서 공부했던 그 글들, 그게 가사이다. 나도 그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어렵다는 인상도 있었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책을 펼쳐 차례를 보았을때 눈에 익은 제목이 보이자 반가웠다.
저자는 새삼 고전의 가치를 강조하지 않는다. 고전의 중요성은 다들 알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겪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해결의 실마리를 고전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우리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고쳐쓰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글 안에는 사랑과 같은 감정의 문제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깨달음, 현실의 어려움등 많은 소재가 들어간다. 보고있으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을때가 있다. 그러니 고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이해된다.
저자가 우리 고전, 가사를 지금의 언어로 고치면서 기대한 또 하나가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이다. 아름답고 바른 이 글들을 지금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고침으로서 유연성을 얻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또다른 상상력이 더해지고 발판이 되어 새로운 형식, 새로운 작품으로 끝없이 재생산되리라고 믿는다고 했다. 아직 우리 고전을 원작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비전문가인 내눈에도 미흡해보인다. 그만큼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해도 좋을것 같다. 당장 이 책만 봐도 몇가지 추려낸 것인데 눈에 익은 제목은 정말 일부분이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다리는 우리의 글과 그림, 음악, 신화 등이 가득 쌓여있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즐겁고 기대되며 빨리 우리문화, 우리 고전을 알고싶어진다.
각 작품의 전공 학자들과 함께 젖극적으로 판본 선정과 내용 고증에 최대한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글맛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 윤문을 거쳤다고 한다. 덕분에 이해정도는 둘째치고 우선 글이 큰 어려움 없이 읽혀졌다. 옛 단어의 뜻은 페이지 아래에 주석으로 달렸고 원문이 끝나면 저자와 시대상에 대한 소개, 글의 설명과 주제, 눈여겨 볼 점등이 명료하게 쓰여있다.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은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이해가 더해지는걸 느꼈다. 차례는 가사 내용의 주제에 따라 나누어져 있었기때문에 그 자체로 가사가 자연의 아름다움, 사람의 도리, 유배지 이야기 등을 담고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유배와 기행을 담은 가사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엿보여 인상적이었다.
책을 보기 전까지는 내게도 가사문학은 많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면서 동경의 기분이 강했다. 이 책 한권으로 자신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한결 익숙하고 친숙해진듯해서 기쁘다. 책의 말미에 가사에 대한 이해를 더해지는 설명이 있어 많은 참고가 되었다. 언제 어디선가 책속에서 본 가사 작품을 마주하면 정말 반가울것 같다. |
|
학창시절엔 역사와 문학을 가장 좋아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한 순간부터 역사와 문학은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가까이 한적이 없는거 같아요. 그러다 올해 이십대의 마지막에 무언갈 하자 해서 한국어학을 사이버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와는 다르게 가사 한 편, 가요 한 편, 시 한 편 모두가 가슴에 와닿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이런 상황에서 <가려 뽑은 가사>를 읽어서였을까요? 이 책은 학창시절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중요한 단락과 중요 단어, 배경 등에만 집중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사 한편을 오롯이 집중해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려운 한자어나 구문을 페이지 밑에 설명을 넣어 주어 이해가 쉬웠고 가사 한편이 끝나면 그 가사의 배경이나 왜 그런 가사가 나왔는지 설명이 되어있어 그 작품의 배경까지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이 책을 학창시절에 만났다면 언어영역을 공부할 때 머리로만 공부하는 것이아니라 가슴으로도 공부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을 만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
|
오래되고 낡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가치는 바래지 않는 것이
고전이다. 또한 고전은 보편적이고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우리가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거나 우리의 문화 유산인 아리랑이나
명성황후 같은 작품들이 해외에서 각색하여 연극무대에 오를 때 관객들에게 발수갈채를 받는 이유가 바로 고전이 지닌 힘이 아닐까?
우리는 세계유수의 고전 작품들을 접하고 느끼고 감명을 받는데 정작
우리의 고전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입시위주의 실용성만을 내세우는 교육세태
때문에 우리 고전을 제대로 인식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학생 시절을 그대로 답습이라도 하듯이 자기계발, 실용서 위주로 책을 보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 누구나 다 아는 옛 가사들이지만 가사 전문을 접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하다. 이러한 가사들에는 유가사상과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그 안에서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고 또한 풍류와 해학을
느낄 수 있다.
‘가려 뽑은 가사’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들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초, 중, 고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을 우선하되 새롭게 발굴된 고전 가사(歌辭, 조선 초기에 나타난, 기가와 산문
중간 형태의 문학)들을 포함하여 구성하였다. 가사들은 크게 상춘곡, 성산별곡 등의 강호 가사와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유배 가사, 관동별곡 탐라별곡 등의 기행가사 그리고 교훈가사 및 가사의 갈래교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사에 있는 고어(古語)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각 작품 뒤에 지은이와 작품의 배경에 대한 해설이 있어 각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주석의 도움 없이 고어를 해석할 수는 없기에 고어가 많이 포함된 작품일수록 한 호흡으로 읽기가 힘들어 작품을 한 번 읽고 전부 이해하기는 힘들다. 세월에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언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고어를 이해하는 데는 살아있던
언어를 고어로 만들어 버린 우리 후손의 책임이 더 크다 할 수 있을까?
노랫말이 된 조선 사대부의 시선인 가사를 통해 가사문학을 향유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꾀할 수 있으며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고전의 프레임으로 재조명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속미인곡 續美人曲 [갑녀] 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하구나 천상 백옥경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 다 져 저문 날에 누굴 보러 가시는고
[을녀] 내 얼굴 이 거동이 임 사랑할 만한가마는 어쩐지 날 보시고 너로구나 여기실세 나도 임을 믿어 다른 뜻이 전혀 없어 응석이야 교태야 어지러이 하였던지 반기시는 낯빛이 예와 어찌 다르신고 누워 생각하고 일어나 앉아 헤아리니 내 몸에 지은 죄 산같이 쌓였으니 하늘이라 원망하며 사람이라 허물하랴 서러워 풀어 생각하니 조물주의 탓이로다
[갑녀] 그것일랑 생각 마오 맺힌 일이 있소이다
[을녀] 임을 모신 바 있어 임의 일을 내 알거니, 물 같은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인고 봄추위 무더위 어찌하여 지내시며 가을철 겨울날은 누가 모셨는고 죽조반 조석 진지 예와 같이 드시는고 임 계신 곳 소식을 어떻게든 알자 하니 오늘도 저물었네 내일이나 사람 올까? 내 마음 둘 데 없다 어디로 가잔 말고 잡거니 밀거니 높은 산에 올라가니 구름은 물론이고 안개는 무슨 일고 산천이 어두우니 일월을 어찌 보며 지척을 모르거든 천 리를 바라보랴 차라리 물가에 가 뱃길이나 보려 하니 바람이야 물결이야 어지럽게 되었구나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렸는고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보니 임 계신 곳 소식이 더욱 아득하구나 초가 찬 자리에 밤중에 돌아오니 벽에 걸린 청등은 누굴 위해 밝았는고 오르며 내리며 헤매며 서성이니 잠깐 사이 지쳐서 풋잠을 잠깐 드니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 임을 보니 옥 같은 얼굴이 반이 넘게 늙었구나 마음에 먹은 말씀 실컷 사뢰자 하니 눔눌이 바로 나니 말씀인들 어이하며 정회를 못다 풀고 목조차 메어 오니 방정맞은 닭 소리에 잠은 어찌 깨었던고 어와 허사로다 이 임이 어디 갔나 잠결에 일어나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가여운 그림자 날 따를 뿐이로다 차라리 죽어서 지는 달이나 되어서 임 계신 창 안에 환하게 비추리라
[갑녀] 각시님 달은 물론이려니와 궂은비나 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