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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젖이 두 개 모자르기 때문에 숙명적인 배고픔을 타고 난 카시페로의 고행은 그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형제의 잘못으로 인하여 엄마의 품을 벗어나게 된 카시페로는 볼품없고 굴욕적인 이름의 행진과 함께 잔인하기까지한 인간들에게서 온갖 고통을 당하게 된다. 개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은 잔인하다 못해 끔찍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다른 생명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서 작가 그라시엘라 몬테스는 가슴 서늘한 문장으로 꼬집고 있다. 그 고달픈 여정 속에서도 외로움을 견디고,우정의 가치와,존재의 의미 등을 얻고 깨달아가는 카시페로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장의 고통을 고민하고 깨달음을 얻어가려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아울러 어른들에게도... [인상깊은구절] 배고픈 카시펠 공작.그리고 진짜 내 이름이었던 귀돌이,거기다 신사까지.나는 생명이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단지 내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름없음''이 아닌 제대로 된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게 붙여 준 이름이 무척 완벽하고 분에 넘쳐서 또 계속해서 볼품없어지는 나를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
| 사회에서 소외되고 대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굶주리고 버림받아 온갖 고난을 겪는개로 풍자한 이 소설은 우리가 가족처럼 친구처럼 친숙하게 여겨온 애완동물의 입장에서 서술한 만큼 크나큰 느낌을 가졌다. 여러개의 상처를 지니가 떠돌아다니다 주인에게 버림받는 유기견들의 일생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인간의 실험견으로 쓰이거나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명체의 한 목숨을 마치 장난감처럼 다루는 사람들을 보고 두려움과 후회감을 느꼈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없는 일생이 고독하고 가엽게 여겨진다. 나의 사소한 삶등을 되돌아보며 내가 한 생명체를 가벼이 여기고 괴롭히지 않았나 하며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은 특징은 중간중간나는 맛깔스러운 유머라고 볼 수 있는것 같다. 순간적인 유머로 뜨끔하게 만드는 이 책은 독특한 서술자의 입장으로 책의 또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좋았던 책인것 같습니다. |
| 먼저, 이 책은 책 소개가 너무 흥미로워 관심이 갔다. ‘젖이 10개뿐인 엄마의 11번째 아이’라면, 말 그대로 숙명적인 배고픔을 안고 날 텐데...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떤 과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여 행복에 이를 것인가? 이게 참 궁금했다. 배고픔, 허기라는 건 참 대단한 것이, 이 본능은 그 어떤 욕구보다도 우선한다는 점이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더 많은 지식, 더 아름다운 예술, 더 고상한 태도 등.... 뭐랄까, 보다 다듬어지는 삶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무조건 ‘어떻게 하면 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정신이 집중되니까. 게다가 성장과도 직결되므로, 11번째 막내라면 안 그래도 가장 작을 공산이 큰데 먹는 것도 보장되지 않으니 발육이 늦고, 작고 약하니까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는 악순환. 그래서 다른 형제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면서 뛰어놀고, 주변을 탐색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성장해 가고 있을 때 카시페로는(그 때 당시는 귀돌이) 엄마 곁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고 ‘행복의 샘’ 주변만 맴돌게 된다. 그래도 카시페로는 그런 상황에서도 머리가 명석했던지 궁핍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어느 정도 선까지의 자유(혹은 성향)’을 지켜나간다. 아무리 안락하고 배부른 곳이라 하더라도 참아줄 수 없는 상황이 있는 법이다. 카시페로는 애완견 1기, 2기 시절을 거쳐 서커스 한 곳과 두 곳의 연구소(하나는 장난감, 하나는 제약-화장품?- 회사)를 거친 후, 연인 하나와 친구 하나와 더불어 홈리스(로 추정되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회전 목마. 끝도 없이 돌며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하는 회전목마. 행복과 불행의 회전목마라 해야 하나... 친구가 있고, 자유가 있고, 먹을 것이 있는 행복과... 친구는 없고 자유도 없되 먹을 것이 있는 한시적 행복, 친구는 있고 자유도 있되 먹을 것이 없는 불행(...? 그러고 보니, 친구와 함께 있어도 먹을 게 없으면 불행했던가;) 카시페로는 별의 별 경험을 하며 행복이 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결말도,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주는 인간과의 평화로운(썩 넉넉하지는 않아도 배고픔은 면할 수 있는) 공존을 해 가는, 행복한 상황으로 맺어지나 이 행복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비록 자기 입으로는 언제 이 회전목마가 배신을 할지 알 수 없다고는 했는데, 그럭저럭 행복해 보여 다행이긴 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방향의 카시페로의 어떤...행복에 대한 깨달음하고는 약간 거리가 있다고 느꼈다. 뭐랄까, 숙명적인 불행의 굴레에서도 ‘행복’을 찾아내는 유쾌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했는데, 그보다는 카시페로의 모험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카시페로의 풍자 어린 인간 세상 조망이랄까. 그런 느낌? 뭔가 외부적 영향으로 기인하는 게 아닌, 내부에서 샘솟는 행복...에 대한 깨달음, 이런 걸 기대하긴 했는데... 그것보다는 세상에 굴복하지는 않지만, 충돌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존심과 생존을 위한 처세를 적당히 얼버무린 유쾌한 여정이랄까. 재미있고, 날카로운 시선이 나름 유쾌해서 쉽게 빨리 읽히는 책이라 즐거웠다. 다만, 귀돌이에서 토토, 로드, 트룩스, 마지막의 카시페로(이 단계 바로 앞에는 무명씨가 될까봐 전전긍긍하긴 했는데)에 이르는 여정이 다소 공감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왜냐하면 귀돌이, 라면 왜 그렇게 붙여졌는지 알 만한 이름인데(카시페로는 귀가 특징이니까) 이 귀돌이가 인간들로부터 부여받는 토토, 로드, 트룩스라는 이름에는 치를 떤다. 게다가 점점 ‘나빠진다’고 한다. 트룩스는 뭐, 재채기가 되고 말았다, 라고 했던가? 이름의 뜻을 모르니까... 아르헨티나에서는 토토, 로드, 트룩스, 그리고 카시페로가 무슨 뜻인지, 왜 토토, 로드, 트룩스라는 이름을 나쁘게(혹은 의기소침하게) 받아들이고, 카시페로라는 이름에는 그렇게 기뻐했는지(게다가 책 제목인 카시페로는 장장-?- 20챕터 중 마지막 한 챕터에서만 나온다;;) 모르니까, 카시페로의 흥미진진한 입담에 홀려 책을 읽는 와중에서도 다소 껄끄러워 다소 아쉬웠다. 특히 카시페로는 ‘공작’이라는 게 붙고... 어쨌거나 이 홈리스(?)는 각 개들의 본질을 알아차리고 적당한 걸 붙여줬으니,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베이스가 있는 듯 한데... 아르헨티나에선 이름만 대도 알만한 코드려나...;; 새삼 내가 갖고 있는 배경 지식도 어느 한쪽에만 몰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 제 3세계 문학도 보다 많이 접해봐야겠다는 다짐을 새삼 하게 됐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유쾌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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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굶주린 개를 통해 인간들의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에 의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달픈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이리저리 치이는 동안 이름도 여러번 바뀌게 된다. 그 때마다 자신의 존재가 점점 하찮아짐을 느꼈다. 자신의 주체성을 무시당한 채 사람들에 의해 이름이 정해지고, 정작 자신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것이다. 부유한 집안의 애완견으로서 여정을 시작하게 되지만, 그러한 삶은 사람들이 만족스러워하는 것이지 카시페로 자신의 주체성은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멀리 도망치게 된다. 여러번 시련을 겪지만 친구들도 생기고, 마지막에는 자신들을 진정으로 가치있게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카시페로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카시페로의 여정에서 인간의 삶과 비슷한 것들을 끄집어내 지배층과 피지배 계층의 이데올로기, 계급화에 따른 세상의 부조리등의 사회문제를 풍자와 유머, 해학으로 경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유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카시페로의 여정을 통해 배운점이 참 많다.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정신 바짝 차리고 벗어나려고 노력할 것. 사회 부조리와 타협하지 말고 맞서 싸워 바르고 아름다운 사회를 쟁취할 것.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 등의 교훈을 얻었다.
한 권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부담없이 가벼이 읽히는 책이다. |
| 배고픔에서 시작되는 불행과 행복, 형제는 열하나인데 엄마 젖은 열개 뿐이라서 무녀리처럼 힘없이 태어난 나는 다른 형제가 쭉쭉 젖을 빨아 댈때 배고픔과 외로움과 추위에 맞서야했다. 그 처절한 굶주림때문에 나는 떠돌이 삶을 시작하게된다. 개의 눈으로 보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지가 나타난다. 자신의 취미나 만족을 위해서 생명을 가진 개를 대하는 모습은 같은 인간으로서도 이해하지 못할부분이기도 했다. 나 카시페로가 만족스런 이 이름을 갖기 전에 여러가지 이름을 갖게 되고 또 그 이름에 따라 내 고닮픈 삶도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재미있다. 내 삶이 고달프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을때 이처럼 자신의 삶에 대항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하거나 자유와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는 인간조차 쉽게 하지 못할 일 일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개 카시페로는 행복뿐 아니라 떠돌아 다니면서 만나는 친구를 통해 우정이나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 내지 의미를 찾기도 한다. 배고픈 개를 통해 행복을 찾게 되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개가 무슨....이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라 카시페로가 어떻게 행복을 찾게되는지 어떻게 고난을 견디는지가 우리 인간사와 닮아 있다면 우리가 카시페로를 닮아야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
| 동생과 함께 읽기 위해 이 책을 신청했었다. 동생이 책을 너무 싫어해서, 재미있는 동화같아 고르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동생보다 내가 더 재미있게 보게 되었다. 이야기의 카시페로는 날때부터 굶주림에 시달리고, 거의 평생에 걸쳐 배고픔과 싸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순간 순간 즐거움을 찾고, 희망을 찾고..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게 살아간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책을 읽었다. 따뜻한 교실에서, 친구와 몰래몰래 귤을 까먹으며... -.-; 어찌 개와 사람의 인생을 비교할 수 있겠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편안한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난 참 행복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카시페로는 개이고, 또 소설이지만 카시페로와 비슷한 사람들은 현실속에 넘쳐나게 많다. 이 순간에도 현실속의 카시페로들은 배를 곯고 있을지도 모른다, 갈 곳이 없어 철길 옆을 방랑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절대 현실속에서 늘 품고 살아가긴 힘든 일이다. 동화속에 너무나도 많은 일생의 어려움이 담겨있었다. 이제 3학년인 동생이, 과연 그 많은 어려움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밥 굶어본 일 없이 산 동생이 카시페로의 행복감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_-;;)에 느낀점을 묻고, 묻고, 또 물었다. 지금은 내 생각대로, 그저 한마리 개의 이야기를 쓴 동화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나이만큼이라도 되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평생 옆에 두고 읽을 책으로 선물해도 좋고, 조금 머리가 큰 중고생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다 큰 성인에게 선물해도 아주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
| 청소년 도서라 해서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고 읽는 어른 나.. 하지만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시페로가 살아가면서 걲은 여러가지 일들이 우리 인간들의 세상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힘이 약해서 어미의 젖을 먹지 못하고 큰 모습이며, 애완견으로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생각하는 동물 강아지로 시작한 것이 우리 인간의 못브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유쾌하기도 했고, 웃음을 짓기도했고, 여러가지 묘사 한 부분이 참 재미있었다. 누구나가 읽어서도 재미를 느낄 소지가 많은 책이다. 이제 이 책은 조카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오랜만에 청소년 도서를 접해보았다. 옆에서 9살 난 조카가 무슨 내용이냐고 자꾸만 물어온다. 두꺼운 두께가 아니어서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오랜만에 읽은 도서..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청소년 도서가 흥미롭다 |
| 오! 행복한 카시페로. 제목이 무척 매력적이다. 카시페로라는 꽤 어감좋은 이름도 그렇고, 전체적인 제목의 뉘앙스가 매우 기분 좋다. 책도 예쁘다.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처음에 왠 말이랑 개가 있나. 했는데 그 말의 정체는 ''갈비씨'' 춤추는 듯한 형상이 귀엽다. 나이 들어서 청소년 도서는 왜 보냐고 한다면 할 말은 딱히 없지만; 나는 청소년 도서를 꽤 좋아한다. 우리 막둥이가 크면 보여 줄거라는 소망도 있긴 하지만; 청소년 도서는 힘들었던 청소년 시기에 날 돌이켜 볼 수도 있게 해 주고 꽤 기분 좋게 읽어나갈 수 있다. 지금 읽으면 좀 유치하고 하지만 역시 즐겁다. 오! 행복한 카시페로는 청소년 도서치고는 꽤 수준이 높다. 그냥 읽어나가면 카시페로가 역경을 헤쳐나가는 그런 이야기인데 그 뜻 하나하나를 생각해보면 꽤 그럴듯한 훌륭한 소설로 보인다. 카시페로를 괴롭히는 인간의 행태와 친구들과 지혜를 모아 살아나가는 카시페로의 모습은 사람으로 대입해 보아도 꽤 멋진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 자체는 꽤 즐겁다. 열 한명의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카시페로는 처음부터 힘겹게 살아간다. 엄마의 젖이 단 열 개 였기 때문에.. 열 한 번째이던 카시페로는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성장해 나간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많나고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래고 동료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멍멍이 동료들도 만나게 된다. 오! 행복한 카시페로에 나오는 인간들은 꽤나 잔인하다. 개를 서커스에서 장난거리로 쓰기도 하고 실험대상으로 쓰기도 한다. 그런 잔악한 인간들 속에서 카시페로는 깜순이와 갈비씨와 함께 탈출한다. 이 때까지의 카시페로는 누가 봐도 불행해 보인다. 늘 배고픔에 시달리고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을 때는 각종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지막에 가까워 질 때 쯤 카시페로와 갈비씨 깜순이는 머리 없는 인간을 만나게 되고 이로써 셋 모두가 행복해 진다. 이 때서야 비로소 제목과 같은 오! 행복한 카시페로가 탄생한다. 이 때 카시페로는 자신의 이름 카시페로를 얻게된다. 나머지 세 개들 역시 훌륭한 이름을 얻는다. 귀돌이에서 토토, 토토에서 로드, 트룩스 그리고 무명씨까지- 마지막 카시페로 공작이라는 칭호를 달면서 카시페로는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는다. 대충 초등학교 고학년에나 중학교 2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 이후의 학생들이 읽어도 꽤 재미난 책이다. 카시페로의 유쾌하지만은 않은 모험을 재미나게 그리고 있다. 분명 꽤나 어두운 모험임에도 즐겁다. 행복한 카시페로와 함께 즐거운 모험을 떠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을 추천한다. 물론 어른들이 봐도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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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카시페로..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 떠돌이 삶을 시작한다.
처음 시도한 것은 애완견이 되는 일, 그것을 시작으로 광대 노릇, 인형모델, 아름다움 연구소 실험용으로 전전하면서 주인이 바뀔때마다 그 사람의 취미와 직업에 따라서 이름이 바뀌는 수난을 감수해야했고, 변덕스럽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사람들에게 붙잡혀 온갖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살기 위해, 자유를 위해 더 나아가서 자신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놓치지 않았다..이러한 카시페로의 모습에서 진정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사회를 바라보고 느끼는 것 같았다. 카시페로가 자신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따뜻한 음식과 안락한 잠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용기는 우리에게 앞으로 사회생활 가운데 진정한 삷이 무엇인지 한번 더 느끼게 한다.. [인상깊은구절] "괜찮으시다면, 당신은 ''귀돌이 신사, 배고픈 카시페로 공작''이라고 부르고 싶소." |
| 너무나도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나서 생각하게 된다. ''왜 일에 치여 끌려다닐까?'' 내가 좋아해서 시작했음에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끌고 가기는 커녕 끌려다니기조차도 숨가쁘다. 하지만 카시페로는 아니다. 운명적으로 약한 존재로 태어나, 태어나자 마자 힘의 논리에 밀려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고 다녔고 그리했기에 드디어 천국이라 부를만한 곳에 이르렀다. 꽤 괜찮을것 같아 선택한 애완견의 삶은 카시페로가 꿈꾸던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도망쳐 나왔고 서커스의 개로, 장난감 모델의 개로, 실험용 개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 들어갔던 인생에서 용감히도 번번히 박차고 나왔다. 그런 고달픈 삶의 여정 속에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고 말한다. 내가 카시페로를 보며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주체되기이다. 고달픔이 예정되어있지만 버리고 나올 줄도 알아야 하고, 두렵지만 당당히 맞 설줄도 알아야한다. 사람들이 카시페로와 갈비씨 깜순이에게 벌이는 잔인하리만치 무서운 행각들은 우리 인간들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흡사하다. 기회는 잠시 폈다가 곧바로 시드는 꽃과 같다고 카시페로는 말했다. 그렇다. 그런 것이 기회란 것을 가슴에 새기고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살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읽었음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