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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이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시점이라는 것을 느낀다면 우리는 무엇이 하고 싶을까. 수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남기는 일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그들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 마지막 눈을 감기 전에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표현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서술자인 존 에임스 목사의 마음도 그러하다.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는 76세의 에임스 목사는, 심장병으로 나날이 약해지는 자신의 건강을 느끼며 늙어가는 아내의 모습과 장성하는 아들의 모습을 곁에서 내내 지켜보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한다. 어린 아들이 커가면서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함을 대신에 나중에 아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데 <길리아드>는 그러한 에임스 목사의 편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쁘게 살아온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라 이제는 한결 느긋하고 넓어진 마음으로 나직하게 차근차근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들. 삼 대째 목사를 지낸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그 속에 다툼과 치유, 용서와 화해의 이야기가 묻어난다. 그리하여 길리아드 속의 이야기는 평생을 길리아드에서 살아온 존 에임스 목사의 가족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겪어온 미국의 역사와 여러 상황이 녹아든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되고,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이미지가 각광받는 요즘 시대엔 문학도 그런 속도와 이미지에 충실해지는 추세다. 또한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가벼움의 미학 또한 많이 반영된다. 그런 가벼운 이야기들, 특히 요즘 많이 나오는 일본소설들에 질릴 때쯤, 찬찬히 조용하게 삶의 진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런 책을 만나 반갑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의 이야기를 담아낸 <길리아드>는 책표지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붙어있는 ''200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성에 걸맞는 작품수준을 선보인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이 목사인 까닭에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관점으로 진행되며 곳곳에 그 색채가 풍겨난다. 그러나 그 종교적 신념을 독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렇다;;)
어떤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게 아니라 조곤조곤 자신의 일상과 생각, 기억들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터라 읽는 이에 따라 살짝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깊어가는 가을, 어느 조용한 시간에 찬찬히 이 책을 읽으며 노목사의 삶의 이야기를 음미해보자. 그 순간동안 그의 아들이 되어 그의 편지를 읽고 음미한다면 내 삶에 필요한 소중한 조언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 [인상깊은구절] 네가 용감한 곳에서 용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마. 네가 쓸모있는 삶을 살 길을 찾도록 기도한련다. (302쪽)길리아드>길리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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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에 대해서 한번 정도는 생각해볼 것입니다. 길리아드(길리앗)란 구약성서에서 언급되는 지명이라고 책에는 소개됩니다. 아프거나 다친사람을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는 발삼 나무의 서식지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길리아드''라는 이름은 정신적, 육체적 온점함에 대한 소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정신적, 육체적의 온전함이라 인간이라면 원하는 모두 원하는 희망사항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이를 들면 정신적으로 성숙이 더해지지만 어느덧 육체는 약해져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둘이 모두 온전하게 공존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공자의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는 말처럼 나이에 따라 인생의 경륜이 생기고 정신적 성숙이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육체적 온전함의 대한 인간의 생각은 영원한 숙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아버지에게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입니다. 한 늙은 목사가 자신의 아들이 청년이 될 때까지 살 수 없다는 알면서 그를 위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글을 써간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설정된 책입니다.
편지글로 된 소설은 어릴 적에 읽었던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속에 드러나는 주디의 생기발람함이 서간문의 형식으로 잘 드러납니다. 간간히 그려진 주디의 그림 또한 그녀의 생활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편지글로 된 소설을 평소에 독서량이 부족한 독자들을 책을 읽는 지루하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각각의 편지들이 날짜별로 연이어 이어지지 않고 며칠 혹은 몇 달의 터울을 두고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비는 기간을 읽는 이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하기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글이 보급되면서 쓰여지기 시작한 일상적인 체험이나 느낌을 담은 섬세한 관찰력과 표현력이 들어나는 내간체 형식의 편지글 보면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에 대한 진솔한 감정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글들을 보면서 편지만큼 글을 쓰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드러내기 쉬운 글 형식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영복씨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쓴 <감옥으로부터 사색="">도 있기는 하지만 특히 요즘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글이 눈에 많이 띱니다. 예전에 읽은 김대중씨 <옥중서신>부터해서 우연히 읽은 정약용이 아들에게 근검 절약에 대해 쓴 편지 그리고 최근에 읽은 공병호씨의 <초코렛>에서의 ''아들에게 주는 말'' 등 여러 책을 통해 부자지간의 정을 담긴 글들을 다양하게 읽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길리아드>라는 책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길리아드는 편지글의 형식을 빌려 마치 아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쓰여진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러가지 일상적인 체험을 통해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편지글의 형식인 서두. 본문, 결미의 틀에서 벗어났습니다. 서두와 결미를 생략한 본문에 충실한 글이란 생각이 듭니다. 본문에 충실한 그러니까 편지를 쓰는 목적에 중점을 둔 편지글 형식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상이라도 서두에 쓴 날짜나 그 날의 날씨 등이나 혹은 결미 부분의 서명 부분에 ''너를 매우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든지..아니면 너를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아버지'' 등등 편지쓴 날짜의 쓴 사람의 심정을 간략하게 적어주었으면 나중에 편지를 읽는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친밀감을 좀 더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자가 편지를 통한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좀 더 되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의나 격식을 갖춘 편지는 아니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글이란 것은 확실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편지에서 날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편지에 쓰여진 날짜와 시간을 기입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짜와 시간을 쓰는 것을 통해 비록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지만 편지를 읽는 이와 쓴 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편지를 읽은 이에게 날짜나 쓴 시간 등과 그날의 날씨를 통해 편지 쓴 이의 정서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지쓴 이가 나에게 편지를 쓴 날짜와 그 시간대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지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이 소설은 자신의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살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식과 함께 할 수 없는 늙은 아버지의 슬픈 심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읽는 이를 심금을 울리면서 깊은 감동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라는 직업에서 드러나는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그와 관련된 구절에 대한 적절한 언급과 종교를 통한 정신적 성숙함을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 (아가 5: 8)길리아드>초코렛>옥중서신>감옥으로부터>키다리> |
| 아직은, 죽음이란 단어가 나와 익숙하지 않은듯 하고.. 내가 늙어갈 모습도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리고 나의 죽음앞에 자녀가 있다면 나는 어떤글을 남기고 싶어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 길리아드란? 길리아드란 구약성서에서 자주 나오는 지명으로 아프거나 다친사람을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는 발삼 나무의 서식지로 알려졌으며, ''길리아드''는 정신적, 육체적 온점함에 대한 소망과 친절과 정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죽음을 마주한 목사인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자신의 인생의 모습과 경험들을 통한 삶의 지혜와 생각을 조근조근 나열하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 청년으로 성장할때까지 그가 함께 해줄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라는 본분을 벗어나고 아들과 아버지라는 조건에서라도 이 부분은 감동을 줄수 있는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분적으로 나오는 말씀을 통한 지식들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큰 거부감 없이 읽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무겁지 않다. (오히려 나는 목사님이라는 부분에 이책을 더 호감있게 바라보고 기대함이 있었지만, 그런 틀을 버리고 삶의 다양한 나눔을 보여줄 수 있었던 듯 하다) 그렇지만, 그 감동을 주기에 쉬운 소재를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쉬운 감동적인 구도나 방식으로 풀어나가지 않아 다소 지루한감도 느껴졌지만, 또 다른 생각과 시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생각은.. 많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학문이 아닌.. 본인의 살아온 여러가지의 삶의 모습들을 통해 아들도 그렇게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될것이며,,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또 역사도 그렇게 흘러갈것이며, 본인의 전심으로 원하는 온전함과 정의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결국, 자신만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은 본인 스스로 해야할 몫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나는 이책을 읽으며 어떤 확실하고 결단있는 문구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우 동일하게 진행되는 문체와 일률적인 흐름이 다소 생소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왜냐면 그동안 4단계가 확실한 책들을 즐겨읽었고 확실한 결단이나 조언을 기대함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각과 느낌으로 아주 사소하지만, 그의 사랑과 삶의 방향점들을 공감하며 책을 덮었다. 이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하얀눈위에 발자국을 내밀었을때 하얗고 깨끗하던 눈위가 발자국으로 자국을 남기는.. 그리고 그 뒤에 조그마한 발자국이.. 그 발자국을 따라가는 모습.. 과도 같았다.. |
| 일흔 여섯의 에임스 목사는 자신의 일곱살 난 아들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신이 죽고 나면 아비없이 자랄 아들에게 남기는 편지로 이루어진 이 글은.. 그의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요즘들어 주위에서 이런저런 소식을 들려옵니다. 지인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할머니 생각도 납니다. 에임스 목사님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꼭 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이 느껴지네요. 내 나이 5살때 저희 아버지도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는데.. 힘든 생활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돌봄으로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랐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과연 나는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너무 오냐오냐 철없이 큰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요. 한편으론 내가 만약 제임스 목사처럼 삶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자식이나 남편을 남기고 떠나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고민을 하고 나니 더 열심히 살아가고픈 욕심이 생기네요. 길리아드 미래에 아들에게, 딸에게 들려주고픈 책이예요. |
| 마릴린 로빈슨의『길리아드』를 읽고 이 책은 조금 특이하였다. 지금까지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내가 읽어온 책 중에서도 특별한 편에 속한다. 약간 양이 많고 어려운 부분도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느끼고 배운 것이 많은 책읽기였다. 즉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소망의 의미를 담담하게 알려주는 책이었으며,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가는 인생을 만들어야겠다는 나지막한 기원도 해보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우선 ‘길리아드’라는 제목부터가 어려웠다. 구약성서에 언급된 지명이므로 종교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과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온전함에 대한 소망과 친절과 관련되어 진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결국 이 지명은 소설에서 전개되는 존 에임스 목사와 관련된 지명이라는 것과 함께 여기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가족과 종교와 친구와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심부에 속한 아이오와 주의 길리아드에 사는 목사 존 에임스가 70대 중반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어 곧 세상을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서, 뒤늦게 얻는 어린 아내와 아직 어린 아들이 자라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집안의 내력과 신과의 관계에 대한 관점, 자기의 일생 등을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배경이 미국의 남북전쟁을 둘러싼 당시의 미국 역사와 관련되어지면서 그 당시 상황 특히 남부와 북부의 가장 큰 갈등이었던 흑인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함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가족사이의 갈등과 사랑, 후회와 아쉬움을 있는 그대로 특히 가슴속에 묻어 둔 고백까지도 자상하게 알려주는 그 진지함을 많이 본받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과 함께 훈훈함과 진실이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 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아울러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특히 인간의 소외현상과 함께 인간의 상실성의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종과 인질문제, 질병과 굶주림 문제, 이념 문제나 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삶을 파괴하는 현상이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전 세계가 하나의 마을, 하나의 가족처럼 되어 정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가는 지구촌, 지구가족 시대에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판단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이 책은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어른들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가르침과 메시지를 통하여 교화시켜 나가고, 알찬 유산으로 남기게 할 것인지도 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좋은 방향을 모색하여야 할 시점에서 바로 이 책 ‘길리아드’는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바로 내 자신부터 이 책을 통하여 느끼는 점이 많다. 만약에 내 세 딸들에게 자신 있게 내가 자라온 배경과 우리 윗대 조상들의 자세한 내력 등 나의 가족사들을 알려 줄 수 있는지 정말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과 함께 자세한 활동 내용에 대해서도 말이다. 나중에 존 에임스 목사처럼 마지막에 다다라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도록 하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성과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체험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한 노력도 해나가야겠다는 다짐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후기도 인상이 깊었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 했고, 선한 삶을 살고자 애쓰는 이들을 수년간 지켜보면서 흥미롭고 아름답다.’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책을 탄생시키는데 필요한 세월과 생각을 담기 위해 모든 것을 이 책에 집중했다는 집념과 함께 우리 모두는 아이들과 이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보호하고 즐거워하는 데 우리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나가자.’ 라는 외침도 꼭 필요한 것이다. 존 에임스 목사라는 인물을 통해 나이 들어 갊, 고독, 사랑, 추억, 그리고 살아있음의 느낌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숙고의 시간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이 책의 주인공인 존 에임스 목사처럼 되도록 노력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을 얻은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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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에 사은품에 눈이 어두워 구입한책이지만,'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란 제목이 유달리 눈에 들어온터라 구입한 도서중에 먼저보게된 책이다 .
이책이 다시한번 나에게 묻는다. 주가 나에게 건네준것은 뭘까? 나에게 말씀하시는건 너무나 잘알고있지않은가라고 묻고한다.
아직다읽어본지않았지만,그리고 아직 아이가 없지만. 조용히 묵상하며 나 자신을 반성하고 평온함 속에 나태하지말며 기도하자.
아~~언제 정신차리지,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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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로미오와 줄리엇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어쩌면 아련하고 아름답기 까지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까. 남겨하 할 것들과 남긴 것들 사이에서 끝내 숨을 멈춘다는 것은 비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는다 라는 가정을 해볼까. 비로소 우리는 그 비극의 실체와 대면할 수 있다. 그것은 상실감이다. 익숙하고 또 다정했던 사람이 영원히 내 곁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비극, 그래 그 이상이다. 목사는 자신이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자신에게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다. 시쳇말로 눈이 감아지지 않을 상황인 것이다. 그런 그가 남겨질 사람들에게 남겨줄 것을 쓰기 시작했다. 막대한 유산도 아니오 수백 번 했던 설교문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역사이자 진실이 담긴 조언이었다. 살아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을 알기에 그저 묵묵히 편지를 쓸 뿐인 것이다. 상기했득 편지 않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자신, 부인, 친구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족의 역사이자 어쩌면 시대에 따라 변모하고 심지어는 몰락했던 미국의 가슴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아들을 위한 편지라고는 하지만 그 무게나 애용으로 보아서 목사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을 정리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담담함과 아련함은 눈물을 빼게 하려는 것도 아니오 감동과 족보와도 같은 정보를 주기 위함도 아니다. 이미 관조하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황혼의 오박빛을 즐길 수 있는 자의 것이다. 남은 자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다. 햇빛을 받은 찰랑거리는 머리와 제 어미를 닮은 진지한 눈빛을 가진 이 아이와 함께 알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유언도 편지도 아닌 듯한 이 장문의 글은 여타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의 처절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슬펐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내가 그의 나이에 이르러 어린 자식을 둔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세상에는 이해하고 타협해야 할 것이 많음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많은 가족들이 있음을, 그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또한 너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 것 임을 이토록 담담하게 쓸 수 있을까. 아이는 먼 미래에 또한 편지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남긴 것들을 보면서 남겨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은 아닐런지. 늦가을의 매서운 바람에 낙엽들이 무자비하게 떨어지는 이 계절에 이토록 아름답고도 잔잔하게 떨어지는 생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가을을 생각케 할 것이다. |
| 지난 여름방학때 담임선생님께서 특별하게 내주신 방학숙제중에 ''죽기전에 꼭 하고싶은말 .. - 유서''라는 숙제가 있었다. 물론 나는 그다지 숙제를 잘 하고 칭찬받는 그런아이가 아니다. 맨날 친구들꺼 배껴적고 , 인터넷에 있는거 배껴적고 .. 그렇게 숙제는 나에게 배껴적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었지만 , 이 숙제는 형식적이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숙제라고 느꼈다. 그리고 몇일동안 틈만 나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아직 죽음을 알기에 너무 어린나이 .. 하지만 죽음은 교통사고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그동안 몇몇분들의 죽음을 봤다. 그중에는 친구도 있었고 , 사촌오빠도 있었고 , 정말 따랐던 이웃집 할아버지도 있었다. 너무너무 슬퍼했던 친구들 .. 가족 .. 이웃사람들 .... 하지만 하루이틀지나갈수록 사람들은 예전의 모습을 찾고있었다. 예전처럼 웃고 떠들고 떠나간 그 사람들 없이도 잘 살았다. 그때는 없으면 안될것 처럼 .. 그렇게 울고 또 울었는데 결국 죽음이란 그런건가보다.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고 유서를 쓰다보니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잘 못한것만 생각나고 .. 못해준것만 생각나고 .. 잘 안보이던 가까운사람들이 보였다. 나 없이도 잘 살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왠지 모르게 울컥했었던 ... 길리아드의 작가인 에임스 목사도 같은 생각을 했을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아주 사소한 얘기들까지 .. 모두 아들에게 해주고싶은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한번쯤 내일 죽을것이라는 생각으로 유서를 써보는 것도 나쁘지않을것같다. 그동안 몰랐던 가까이에 있던 소중한것들이 눈에 하나씩 들어오니까 말이다. |
| 이 책이 내 손에 오기 전에 난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기전에 하는 얘기가 길어봤자 얼마나 길겠어 하면서 금방 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니 그 두께는 여느 책의 두배가량이였다. 그냥 단순한 얘기가 아니였다. 얘기 형식을 빌린 종교 인종 사회 정치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의 이야기이다. 정말 다 읽은 다음에 위대함이란 단어와 함께 상을 왜 받았는지에 대한 완벽한 수긍이 가능해졌다. 나이가 지긋한 죽음을 앞둔 목사님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보니 잔잔한 느낌과 조용한 느낌으로 가끔 피곤한 지하철안에서 살짝 단잠에 빠지게도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아차 싶었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꼭꼭 읽어야 하는 손으로 글을 따라가면서 그렇게 읽어야 하는 책이였다. 이 책 한권으로 미국의 근대의 전반적인 모습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그 에임스 목사 자신도 아주 젊은 여인을 67세에 아내로 맞아 7살의 아들이 있는 77세의 죽음을 앞둔 목사이다. 진보적인 할아버지와 방관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아들에게 조곤조곤 말을 해준다. 이런 소설을 쓰다니 작가 또한 보통 사람이 아님을 간파했다. 요즘 읽게 되는 책이 한권 한권 쌓여가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읽을 때 날 힘들게 했던 책들이 그리고 한장 넘기기가 어려웠던 책들이 결국에 나에게 많은 것을 주려고 했음을 그리고 내 기억속에 더 많이 남음을 말이다. 분명 난 또 이 책이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것 또한 쉽지 않음을 난 알고 있다. 미국 하면 흔히들 미국와 LA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중심에 서서 그 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중부 또한 매력이 가는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머리맡에 붙여 놓은 세계지도를 그리고 미국을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약간 아쉬웠던 점은 내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교회 이야기에서 완전히 몰입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약간 아쉬웠다. 그렇다고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였다. 사실 난 그동안 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종교들을 보았다. 우물 안에서 우물 밖이 어떻다 저렇다 말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넓은 내 가슴에 이 책을 가득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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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여섯의 아버지는 곁에서 노는 여섯 살배기 아들의 노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편지를 쓴다. 젊은 아내와 어린 외아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무엇도 없다. 목사로서 살아온 인생은 신앙심으로 검소하게 살아왔지만 첫 아내와 딸을 여읜 후 기나긴 독신의 삶 끝에 뒤늦게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인과 결혼하여 얻은 결실이다.
아들의 재롱을 볼 때쯤에는 이미 황혼으로 저물어가는 자신을 노환으로 허물어진 육체와 함께 서서히 마지막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내와 아들을 향한 가슴에 차오르는 사랑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까? 아이가 성장할 때 곁에서 지켜봐 주지 못하는 아버지로서 무엇을 남겨주면 좋을까? 존 에임스 목사는 그래서 편지로써 그 답을 준비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글이다.
긴 호흡과 느린 흐름으로 한 땀 한 땀 진솔한 삶을 아들에게 고백한다.
삼 대째 이어온 목사로서 아버지의 아버지 얘기와 그들의 반목, 형 에드워드의 신앙을 버릴 때 벌어진 아버지와의 갈등 등. 그런 발자취는 근래 친구 보턴 목사와 그의 아들 존 에임스 보턴의 등장으로 빚어지는 또 다른 애증과 고뇌 속에 과거와 현재가 씨줄과 날줄로써 이야기를 엮어간다.
길리아드는 구약의 치유의 장소로 미국 중부 아이오와 주에 자리하고 있다.
전통과 관습으로 변화가 느린 시골마을로 미국 역사 속에 많은 아픔과 경험을 담아놓은 한적한 장소다. 역사와 사회 속에 개개인이 따로 동떨어져 살아갈 수 없듯이 물결치듯 벌어지는 사건들이 그대로 날숨을 쉬며 개인의 삶 속에 용해되어 있다.
삶이 역사의 자락인 것이다. 역사의 상처라면 개인에게도 상처로 흔적이 남아있고 그런 토대 속에 중첩되는 경험이 다시 쌓이는 반복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곳에 사는 그들은 치유가 되었을까? 아니, 과연 무엇이 치유라 할 수 있을까?
소설 마지막 존 에임스 보턴을 향한 미움과 불안을 감추지 못하던 존 에임스 목사는 드디어 그의 아픔의 고백을 전해 듣고 용서와 축복의 기도를 올린다.
화해의 징조가 목격되는 순간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이곳이 길리아드의 한 변주된 모습과 장소가 아닐런지......
지난했던 삶을 화려하지 않은 수사로 고백을 표현한 소설은 2005년 퓰리처상이라는 화려한 수상의 소개에 나는 잠시 안도감을 느꼈다.
요즘처럼 속도와 감각위주의 소설이 대접받는 세태 속에 그윽한 인간적 향기로 읊조리는, 치장 없는 수수한 이야기에 아직도 손을 들어주는 가치가 살아있어 다행이다 싶다.
한 가지, 읽는 과정에서 좀 거슬리는 부분은 서간체어투여야 한다는 강박적 상황 때문이었을까? 어미가 어색하게 반복하고 나열된 번역 탓에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더욱 지루하게 읽혀졌다. [인상깊은구절] 창조의 신성한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드러나는 경우는 두 가지이고, 그것은 함께 일어난단다. 하나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절대적인 부족함을 느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이 우리에 대해 절대적인 부족함을 느낄 때이지.(p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