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남,,, 한집안의 공식적인 상족자이며 최선의 교육 혜택을 받는자그는 장차 죽음속에서 영속하는 조상의 제를 지낼 것이며 그를 낳아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족들 위기상황에서 최후의 보루로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해 줄 복지 가족의 가장이 될 것이며 낳은 자와 그를 통해 태어난 자 간의 오차 없는 기대와 보상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장남을 장남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아내 즉 장남의 역할 수행을 성공시키거나 좌절시키는 실체는 사실상 그의 아내라는것 장남이 자신의 출생순위 덕에 보모로부터 정신적 물질적 특혜를 받으며 사회화된 존재라면 그의 아내는 바로 장남인 남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시집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보은의 가치를 수용해야하는 존재 아내의 입장에서 장남인 남성과의 결혼은 남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이 연루되는 이중적 현실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다들 부부일심동체를 부르짖는데 시댁일때는 부부일심동체고 친정일때는 남이다 지금도 시댁사람들은 시댁이 우선이고 친정은 출가외인이라고 부르짖는데 딸 시누는 출가외인을 시키지못하고 감나라 하고 있는것은 뭘까? 맏며느리를 왜 다들 못 잡아 먹어 안달인지 모든일은 장남이 해야한다고 해놓고 좋은것은 자기들이 다하는 현실 그러고 보니 만남과 결혼의 경우 장남들은 은연중에 장남으로써 자기 배우자를 자기 식구들을 생각해서 하는 경향이 너무 많더라구요 선택도 시부모가 할려구 하고 마냥 인형처럼 옆에 부모가 시키는데로만 해야하는 줏대없는 장남들이 참 많죠 아마 울신랑도 그런 경우에서 많은 여자를 만나면서 이번만은 내가 선택한 여자와 살고 싶다고 시어머니한테 말을 당당하게 했다는데 그런 시어머니는 자기 아들이랑 떨어져 살 거라고 생각조차도 아니 동생들도 당연히 장남이 해야지 하는 생각들로 가득차여 있다가 분가를 요구했었을때 큰 분란이 일어나더라구요 하지만 장남 못지 않게 장남 노릇을 할려구 하는 사위때문에도 참 시끄러웠네요 이런 역할들을 감당하고 잘라야 하는게 맏며느리가 하다보니 언쟁이 끝이 없고 동생도 그렇게 큰소리 치더니만 결혼할때는 식도 올리기전 집을 구하는데 벌써 따로 구해뒀더라구요 그러구는 못하느니 잘하느니 말 할 수 있을까요 자기들은 하기 싫고 장남은 꼭 해야하고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는 시댁식구들이 너무나 아니 조선시대를 방불케하고 있어요 아니 지금도 시댁에선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요구하니 내가 조선시대 사람도 아니구 21세기를 살아가는 이싯점에서 이러구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맏며느리들이 엄청 많다는사실에 너무 놀라웠어요 그리고 페이지 114:밑에서5에서 115: 4줄까지 맏며느리는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이라고 칭하면서 모든 짐을 다 어깨에 메여준다 효부며느리를 맞기 원하는 어머니들은 자신의 딸이 누군가에게 효부 며느리가 되는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참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만 정말 친정어머니가 갖는 딸에 대한 연민으로 아들을 장가보내어 맞게 되는 누군가의 딸을 감싸 주었다면 오늘날의 젊은 딸들은 좀더 나은 현실을 살고 있을 것이다 큰며느리한테는 난 한번도 따로 산다고 생각안해봤다고 울고 불고 했지만 둘째며느리한테는 말도 못꺼내네요 그리고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말은 안 들어도 자기 딸 만은 잘 듣잖아요 이책에도 시누하기 나름인것 같아요 시누가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맏며느리입장이 편할 수도 불편할 수도 있지요 시누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한것 또한 나스스로도 느껴요 그리고 계속 불행만 얘기했지만 정말 알고 보면 좋은 시부모님들도 너무 많더라구요 시어머니들의 행동에 감탄을 받는 맏며느리가 참 많아요 그런 시어머니를 보면서 맏며느리가 느끼는 것은 뭘까요? 존경하게 되고 친정부모이상으로 서로 의지해가면 살아갈 수 있듯이 행복이 따로 없을 것 같아요 장남의 부부관계는 단순히 부부 당사자간의 관계를 넘어서 시부모와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남과 부모 간의 증여 며느리와 시부모 간의 증여 부부간의 증여가 사슬처럼 엮여 교차된 접점에 위치하게 된다 시집내의 가족 관계에서 윗세대의 권위가 당위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주장되지 않을 때 그리고 시부모로부터 부부관계의 자율성이 존중받을 때 장남과 결혼한 여성들은 세대관계에서 기대되는 증여의 회귀에 가장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
<장남과 그의 아내> (2001, 김현주) - 결혼을 통해 형성되는 ‘셋’의 관계 -
1. 들어가며
‘결혼’이라는 것만큼 일상적이면서도 일생에 있어 그토록 큰 의미를 차지하는 사건이 또 있을까. 연구자가 초반에 기록한 감상 중 여성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주로 가슴에 쌓인 것을 쏟아내는 듯한 느낌을 준 반면, 남성들과의 인터뷰는 지나온 것들에 대한 어눌한 추리이며, 진정 처음으로 ‘의미’에 접근하는 과정으로 비쳐졌다는 부분을 읽던 중 얼마 전 본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가 또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그와도 결혼하고 싶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그 이후 세 사람이 어떻게 현실에 대처해 나가는가에 관한 내용인데 비현실적이게도 영화는 두 명의 남편과 한 명의 아내가 함께 살아가는 결론으로 끝이 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여성이 이기적인 사랑법은 둘째치고서라도, 그런 상황을 절대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행동이 여성에 비해 감정적이고 일차원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역시 남편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내, 책과 비유해서 보자면 장남을 완성시키는 역할은 장남 당사자보다는 장남의 아내되는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었다. 2. 본문 내용 인터뷰 대상자들과의 만남은 주위사람들의 소개와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들의 연속적인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1995년도와 1996년도 7~8월, 두 시기에 걸쳐 서울(서울 근교 포함)에 거주하는 장남과 외아들 부부 33쌍과의 인터뷰가 남편과 아내 각각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사대상자 중 절반 이상이 전문대졸 이상으로 교육수준은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다. 조사대상자 선정에는 두 가지 기준이 중요하게 고려되었는데, 첫 번째 기준은 결혼기간의 제한(10년 이하), 조사대상자의 연령은 여성은 25~36세, 남성은 26~41세의 분포를 이루도록 했다. 두 번째 주요 기준사항은 시부모와의 동거 및 분가상황을 추적하는 주거의 이동성이다. ‘분가로 시작하가’, 지속적인 동거‘, ’동거에서 분가로‘, ’분가에서 동거로‘, 이 네 가지의 공간적 이동에 따른 가족 내 경험이 고르게 접근될 수 있도록 했다. 역시 이러한 조사대상자 선정 과정에 있어서 개입하는 여러 가지 변수 요인들에 대한 선지식 역시 연구자의 사적인 배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의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았다는 부분에서 과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부부의 사례가 우리나라 장남부부의 전체를 대표할 만한 보편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연구대상이 너무 고학력이거나 경제적으로도 중산층 부부에 편중된 듯 한 인상이 든다. 물론 연구대상의 특성에 대한 고찰을 심도 있게 함으로써 장남부부가 갖는 문화사회적 함의를 충분히 설명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부부의 다양한 문화, 교육, 경제적 수준에 따른 표본 추출이 한정되었다는 부분은 독자가 충분히 고려를 해야 할 사항일 듯 하다. 저자는 이 작업에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상처받은 여성들의 혼란스러운 결혼생활의 경험을 학문적으로 공유하는 작업이라고 의의를 부여하며 좀더 설득력을 얻기 위해 수필과 콩트와 문학작품의 일부분을 도입하디고 한다. 필요한 형식을 자유롭게 도입할 수 있는 질적 연구 방법론상의 장점이라고 보여 진다. 이후 저자는 장남부부와 결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미혼 여성과 남성이 서로 만났을 때 결혼결정을 내리는 데에 영향을 주는 요소, 각각의 다양한 감정들이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에 따라 보이는 차이, 자신이 장남이기 때문에 혹은 배우자가 장남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는 데 작용하는 감정, 배우자 선택과정에 개입되는 부모의 견해는 어떠하며 그 영향력은 어떤지에 대해 분석한다. 그리고 혼수를 마련할 때 남녀 역할에 적용되는 메커니즘과 그 변화, 주거관련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이 책은 장남의 가족관계 사례를 통해서 보는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을 둘러싼 관계 형성의 문제를 가족 문화의 흐름 속에서 재조명해 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남성보다는 아무래도 여성의 삶의 변화가 더욱 크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또한 자녀의 결혼에 있어 부모와 자녀 간의 의사가 소통되는 방식도 대부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가족의 전체 지위를 형성하는 것보다 내부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데 있어서의 역할은 여성이 남성보다 그 관여도가 높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남녀의 결혼이 단지 남녀 둘 간의 결합일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시어머니가 개입하는 ‘셋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남자가 장남일 경우, 또 외동아들일 경우에 더욱 도드라진다. 저자가 일부러 외동아들에 대한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관계가 아들의 가문 내 위치에 의해 그 정도가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좀더 특성화도리 수 있는 경우를 골라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취한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방법론적으로 ‘구성주의(constructivisme)'라는 현대사회학의 새로운 방법론에 주목하고 있다. ’나‘와 ’우리‘, 그리고 ’사회화된 나(moi)'와 ‘경험적인 나(je)'의 연계적(왕복적) 성찰을 통해 사회행위자가 구조로부터 독립하여 주관적 논리로 현실을 구축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탐색해보고자 시도한다. 또한 면접조사를 통한 질적 연구를 시행함으로써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을 가능케 하고 그를 통해 변화의 명확한 흐름을 볼 수 있는 내용적 근거를 제공받는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연구는 막틴 스갈렝(Martine Segalen)의 말처럼 가족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노력이 가족구조라는 거시적 변동의 틀에 대한 관찰에 안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결혼을 둘러싼 의미와 감정의 변화, 더 나아가 결혼을 통해 맺어지는 인간 간의 관계와 의미가 오늘날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연구자는 오늘날 가족감정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강제된 증여’의 유형에서 가족간 관계는 전통적인 방식의 수집된 응집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남편은 지배자, 아내는 종속자로서의 역할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선택의 증여’ 유형과 ‘회귀의 증여’는 전통적인 ‘강제된 증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족의 화합을 위한 세대간·부부간의 긍정적 상호성이 밑받침될 것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장남의 지위는 전통적으로 세습되어 오던 것과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자유로운 증여’는 가족 내 역할이 적절하게 분배되고 서로의 사생활이 존중받는 측면을 보인다. 이럴 경우 때때로 일어나는 가족생활에서의 갈등 상황은 합의의 과정을 통해 해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네 번째, ‘단절된 증여(집단적 분열)’는 고부관계가 결혼을 전후로 하여 격렬한 파국으로 치달은 경험에 의해 부부 간의 친밀감이 형성된 상태를 말하며, 시부모가 이전의 태도로부터 후퇴함으로써 점차 긍정적인 상호성으로 나가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절된 증여(개인적 분열)’는 아내가 시집과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세대관계가 해체된 특성을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남편은 무의식적으로 장남의 역할을 포기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거나 아내를 그 자체로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유형 분석에 이어 저자는 세 가지 유형의 세대 간 응집의 유형을 분류한다. 이 세대 간 응집은 안정적이거나 불안정하거나 해체적인 유형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유형 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인 요소는 남편들의 아내에 대한 지원자 역할의 원활함 여부와 아내의 가정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가족 내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고 그것을 얼마나 개방적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른 시부모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친정 부모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지 않다는 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점은 장남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의 형성 안에서 여성의 지위가 주체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에는 논문이나 책의 마지막을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를 점차 유심히 보게 되는데 이 책의 저자는 한 가지 이론을 끌어와 그 안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관계와 그 지향성을 고찰함으로써 유연하게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바로 고드부와 샤르보노(Godbout et Charboneau)의 ‘세 가지 상태의 빚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정보와 함께 세대 상호 간의 ‘나눔’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효’가 아니라 상호 이해가 전제된 존중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질적연구의 방법론을 충실히 따른다기보다는 질적연구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3. 나오며 글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결혼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대한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게 되는지, 특히 그것이 여성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더 나아가 ‘장남과 결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서 여성이 자신의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전달해 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경제적 능력을 가질 것, 시댁에서 분가하여 능동적 응집을 꾀할 것, 시어머니에게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되 도리를 다 할 것 등등이 그것이다. 남자는 여자와 결혼할 뿐이지만 여자는 시댁과 결혼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도 새삼 와 닿는다. 그리고 여성들끼리의 결속력이나 이해심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탓에 여성들의 지위가 오랜 기간 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것도 같다. 책에서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시어머니의 권위를 수용해야 했던 며느리가 다시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며느리를 이해하고,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어머니가 갖는 딸에 대한 연민으로 이번에는 아들이 데려오는 누군가의 딸을 감싸주었다면 그간 여성 간의 유대는 지위 향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성들의 권리는 대부분 시어머니가 아닌 며느리들의 반항(?)과 투쟁에 의해 획득된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여성들 간에는 여전히 갈등이 합리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촉발됨과 동시에 거의 며느리의 거센 반발 혹은 아예 포기하고 무시함으로써 평화가 찾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여전히 여성들 간의 연대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들 간의 유대감이나 공감대는 쉽게 형성이 되는 반면, 가족으로 맺게 되는 여성들 간의 관계나 서열의 부분에서는 여성이 여전히 다른 여성을 남자를 기준으로 한 반남성성의 존재로 다른 여성을 간주하고 적으로 여기게 되는 현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결혼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여성들 간의 관계 속에 진정한 유대는 존재할 수 없는지에 대한 연구도 흥미로울 듯하다.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를 평화롭게 유지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감내하는 보이지 않는 인내와 수용의 과정에 대한 가치를 제고하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신의 현실 속 경험에서 착안하게 되는 여성 연구자의 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성性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합리적인 공존을 위한 노력의 발현으로서의 남성 연구자의 연구도 보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 읽을 것을 더욱 권장하고 싶기도 하다. |
| 삭제 될지도 모르겠네...리뷰가 아니라 프리뷰이니까. 영역파괴, 발상의 전환을 외치는 지금 왜 책에 대한 리뷰만을 고집하는지. 기대하시라! 난 최초의 독자프리뷰를 쓴 사람이니까.난 장남!! 그것도 종손(비록 반계 종손이기는 하지만)그래서 프리뷰를 쓴다네. 읽기도 전에 여러 생각을 하지만, 책을 구입하기전 독자는 어떤 생각 끝에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지 알아야 하는 것은 책을 팔고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고민할만한 -그것도 충분히- 사항인데, 쯧쯧, 어느 한군데의 도서 관련 사이트도 그것을 고민하고 시행착오의 도전을 하지는 않고 있군. 몇날을 기다린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아~! 난 잘났다) 저자에 대해서, 그리고 출판사의 마케팅에 대해서는 늘 주의하고 경계하는 난.... 이 책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길을 거둘수가 없다. 왜? 나 역시 제도권의 연구자로서 심층있는 인터뷰를 하면서 늘 떨칠수가 없었던 것이 "자료의 임의적 해석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나?" 그 부분이었기에... 학위랑 인생이랑 성공. 그리고 그 밖에 많은 것이 날 유혹하고 타협하고자 했었기에. 참고로 난 건축설계를 하고 먹고 사는 사람이다. 생활설계사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 잘난 신문 기자도 건축설계사라고 잘못 아는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이다.(의사보고 의료기술사라면...) 다시 본길로 돌아가서 이책은 사서 읽고 아내랑 진지한 토론(?)을 하고 싶은 책이다. 더불어 주의가 상당히 요망되는 책이다. 왜냐고? 나의 누님과 나의 아내의 처신에서 저자가 파헤치고자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인지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남녀 차별 문제는 일부 문제있는 여자-왜 여자와 남자의 문제에서 여성과 남성의 단어가 나오는지 아직도 거부스럽다, 남자에게도 여성의 성향은 있으며 여자에게도 남성의 성향은 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여성, 남성 이라는 이상한 회색의 단어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지...- 인권운동자들의(영어로는 페미니즘이라고 한다는데) 억지도 있고 해서...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뇌하수체에서 강하게 발동한다(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