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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 도매업을 하면서 좁은 가게에 앉아있다보면 나의 점포가 세계의 전부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30여 년 세월 동안 "한일장식"을 지켜온 녹이 낀 청동난로도 나 만큼이나 늙었다. 나와 나의 난로는 겨울이건 여름이건 열평 남짓한 공간에서 묵묵히 먼지의 더께를 시간만큼이나 쌓아온 것이다. 그 시간동안 삶이 얼마나 무료한 것인가, 세상은 이토록 단순한 것인가, 인간은 또 오죽이나 지루한 것인가를 두고 나는 적막을 견디며 궁리해왔다. 궁리하는 나와 아무것도 궁리하지 않는 난로는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더딤을 버텨왔다. 가게 문을 열 때 울리는 문 위의 조그만 종소리만이 "딸랑"하며 우리의 "수"를 읽고 가끔씩 초재기를 해 줄 뿐이다.
이런 내가 근래 십 년 사이 책을 읽는다. 적게는 하루에 한 권에서 많을 땐 주마간산 식으로 그냥 읽어제낀다. 하지만 그냥 읽고 나면 잊었다. 읽은 것이 도둑맞은 것처럼 아깝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후회는 후천적인 것이어서 이렇듯 늘 지각생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읽은 책을 조금씩 정리해 두자는 취지로 오늘부터 이 글을 쓴다.
오늘은 그 처녀로서 "강영숙"의 "리나"를 올린다. 일기 같이 두서없고 격식없는 미욱한 사견이며 잡문이니 혹여 나그네 벗님들이 보시더라도 책하지는 말으시기를 부탁드린다.
나는 기실 우리 마누라의 말처럼 "목석도 그런 목석이 없는" 늙은 영감이 되어놔서인지 여작가들이 쓴 글이 썩 좋지는 않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니 미국이니 하는 것을 떠나서 그저 촌에서 조그만 가게를 열어 자영업을 하며 늙어온 보수적인 경상도 아저씨여서 그러한 것일진데, 무릇 글이란 무게가 있고 거침이 없어야 하며 읽는 이에게 아양을 떨거나 잔기술을 부리며 눈물을 자아내고 혹은 자잘한 이야기나 붙잡고 깔깔대는 뒷골방의 아낙들마냥 가벼워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고 나는 생각해왔다. 촌영감이네, 구닥다리네, 해도 이런 내 기준을 바꿀 용의는 없다. 소설인든 시든, 그것이 철학을 담고 있는 글이라면 형식을 떠나 하나의 깊은 수양이 필요하며 그 수양이 울그락불그락한 험상궃은 면상이라도 진지한 자세로 표현되어야한다. 좁고 잘잘한 몇 마디 토막이야기나 나누자고 글을 쓸 양이면 일기장에나 끼적거릴 일이지 작가랍시고 책을 내고 세상에 내어놓아서는 곤란하다. 요즘같이 빠르고 빠른 세상에 이런 캐캐묵은 훈장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싫어라 하겠지만 글을 쓰는 자는 무릇 지식인이어야 하고 그 지식은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계몽주의를 새삼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붓을 든 자의 의무이고, 자신의 지조와 신념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벼랑에 날려버릴 수 있는 선비의 그것이어야 한다. 최신의 작가들은 기교나 즐거움 면에서 훌륭한 경지에 이른듯 보이지만 이런 것만은 퇴보하니 그 이유를 "작가치들"은 고쳐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이런 나의 "꼰대식" 저울에 올려놓고 보자면 한국의 많은 여류작가(이 말은 잘못된 말이긴 하나 분류하기 위함이니 편의를 먼저 생각하자)들은 낙제점이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나 불륜, 사랑, 이별, 내면이니 하며 아까운 종이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무리 속에서도 간혹 눈에 띄는 발군의 봉황이 있으니 오늘의 작품이 그러하다.
내가 평론을 하는 학자는 아니어서 밑줄을 쳐가며 문구를 인용하고 근사한 최신 유행의 서구이론을 대입시킬 깜냥은 없다. 하지만 나름 다독을 하고 의견을 정리해 온 "짬밥"이 있으니 "좋고 나쁨"은 분명히 느낄 줄 안다.
문화의 경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달았던 중국 명나라에 그림을 매우 잘 감정하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슬쩍 치어다보고도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혹은 명인이 그린 것이지 무명씨의 붓놀림이더라도 깊이 있는 장인의 그것이지를 단박에 알아내는 신묘한 재주를 가져 장안에서 그를 모르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임금도 그에게 그림을 묻곤 했으니 그 능력을 부정할 길은 없을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빼어난 그림 평론가나 감정사 정도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 노인은 그림을 그릴 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어찌 그 누구보다 뛰어난 그림 감정을 한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공부를 잘 하는 것"과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이 다른 이치와 같다. 먹물이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까막눈 여인네가 슬하의 아이들을 모두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과도 같다. 오래도록 그림을 보아온 그가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다가 하나 덧붙이자면 그는 단순히 종이 위에 뎦혀진 색과 문양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이의 마음을 보려고 애썼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부족하나마 세월과 연륜이라는 것이 쌓여 이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그래서 감히 단언하건데
"리나"는 꽤나 묵직한 준작이다.
독서 후 가지는 심정이 이다지도 복잡한 경우는 처음이다. 슬프거나 즐겁거나 담담하거나 하는 식의 정리된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다" 하고 스스로를 진단할 수 없으니 작가에게 좀 섭섭한 기분마저 든다. 사는 것이 별반 다를 것도 없고 흥이 날만한 일이 아님을 아는, 그저 사니까 사는 중년에게 이런 파장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파장이다.
돌아가신 춘부장께서 이 책을 보신다면 어떤 감회를 가지셨을까. 그는 함경도 회령이 고향인 이북5도 출신이었다. 나는 해방둥이니 그의 감정을 반쪽도 이해 못하지만 내가 이 책을 손에 잡고 느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하긴. 그는 내가 소설 읽는 것을 못마땅해 하셨다.
나라는 무엇이고 국경은 무엇이며 국민은 또 무엇인가. 행복과 자유와 정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빨자고 이렇게 살아내고 있는가.
리나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듯 나도 내게 묻고 있다.
"지금까지 난 얼마나 걸었지. 내 허벅지는 그걸 알까?"
답은 리나 안에 "있고" 또 리나 안에 "없다."
독자제위들에게 감히 일독을 강권한다!!! [인상깊은구절] ................ 이 동네에 아프지 않은 사람있냐?.................................... ........누나는 이 나라 말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니까 여기서 살아. 누나 얼굴을 봐. 누나는 이 나라 사람보다 훨씬 더 이 나라 사람같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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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보고 구입했다. 나는 가정주부이면서 직장인이라 책 볼 시간이 진짜 없다. 그런데 가끔 책을 산다. 물론 영어회화책이나 다이어트책을 사지만, 그냥 무조건, 눈에 보이는 책을 사기도 한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만화같다. 재밌고 슬프고 웃기는 만화. 리나라는 여자애가 어느 순간 굉장히 친근하게 통통 튀어오르는 느낌이다. 창녀촌에서 몸이 부실한 애들이 공차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제일좋다.또 공단이 무너져내리고 다 무너져내린 공단에 흰눈이 내리고 난 뒤 거기서 사람들이 뛰어노는 장면들이 굉장히 영화처럼 다가온다. 제일 충격적인 장면은 할머니 몸에서 나비가 나오는 장면이다. 나비가 몸에서 나온다는 상상은 정말 작가들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제일 압권은 리나가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하다가 남자애,, 삐랑 사랑을 나누는 부분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섹스가 등장하는 소설이 좋다. 이 소설은 관념적이지도 않고 그저 말로 다 설명하는 소설도 아니고 구체적인 통증 같은 게 살아 있어서 책 읽는 맛이 난다.
마지막에 리나가 다시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는데 왠지 마음이 아프면서도 가슴이 후련하다. [인상깊은구절] 시링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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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냥하세용, (--)(__) 꾸뻑.
[제 소개]
저는 고2이구요, 미용고에 다니고 있는 어여쁜 ㅋㅋ 여고생이랍니다. 미용 디자이너가 되려고 준비중이에요. 지난 학기엔 자격증도 땄답니다. ^^v 한 번만에 붙었어용. ㅎㅎㅎ
이 글은 독후감 형식으로 여기 남기는 리뷰이면서 학교에 제출하는 수행평가 숙제이기도 합니다. 참고하시길. ㅡㅡㅋ
[리나 - 소녀와 소년, 어쩌면 어른이면서 사람도 아닌]
“리나”는 제목이 주제이면서 상징이고 주인공이에요.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싶어요.
리나. 처음에는 그저 참 이쁜 이름이다. 북한에서도 이렇게 예쁜 이름 지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하긴, 작가가 지은거죠.) 그런데 이 이름은 책을 한장 한장 읽어나갈수록 그저 갸냘프고 여린 소녀에서 거대하고 육중한 몸집의 괴물(?)로 변해가더군요. 이 아이의 살집을 잡아뜯으려 한다면 질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해서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고무같다, 라는 말 어울릴 것 같죠?
저도 짧지만 17년 4개월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힘겨운 일이 많았는데요. 그래서 좀 아는데 슬픈데 웃거나 아픈데 안 아픈 척 하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불쌍하다는 말을 싫어해요. 친척 어른들이 어릴 때 우리 남매보고 불쌍하다, 불쌍한 것들…. 이런 말 자주 하셔서 더 그래요. 그래서 저는 더 큰 소리로 말하고 보폭도 크게 걷고 그래요. 근데 가끔 아빠가 없으니까 눈물 날 때도 있고 그러거든요. 그래도 엄마나 동생이 맘 아파할까봐 티는 절대 안내요. 늘 웃어요.
그런데 리나도 저랑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아니 어떻게 보면 좀더 어른스럽고……아니다. 어른보다도 더 어른스럽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우려면 타고난 성품도 있어야겠지만 아무래도 많이 겪고 참고 해야하잖아요. 리나가 몹쓸 일 많이 당하고 죽을 고비 넘기면서도 살려고 자꾸만 달아나는 게 마음 많이 아팠습니다. 조그만한 개구리를 손으로 뒷다리를 움켜쥐고 있으면 막 다리를 뻗으면서 도망치려 하잖아요. 힘도 없는 게…… 꼭 그래 보여요. 그래도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개구리에게는 자신의 개구리생명이 제일이니까…..숭고한 거잖아요.
리나는 어느 순간 어른이 됐을까요. 처음 국경을 벗어날 때? 강간을 당했을 때? 일행과 떨어졌을 때? 아니면 도망쳤다가 다시 붙잡혀 왔을 때?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걸 지켜봤을 때? 과연 언제일까요? 리나도 아마 모를 것 같아요.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목숨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 좀 모질고 또 좀 당차고 야물딱진 거여야 하잖아요. 내가 살려고 남도 밟고 해야 하는 거잖아요. 어쩌면 인간에게 정말 서글픈 건 ‘슬플 때 슬픔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슬퍼해야 할 때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왜 인간극장 같은 것 보면 그런 것 있잖아요. 너무 모진 일을 많이 당한 사람은 어지간한 일이 닥쳐도 눈하나 깜짝 안하고 큰 일로 여기지도 않는 거…… 리나는 그래서 정말 서글플 것 같은데요. 본인 스스로가 모르니까 말을 해줘도 ‘픽’하고 비웃을 것 같아요.
자신이 원해서 시작된 탈출기는 아니지만 사실 리나가 원한 건 ‘P’국이 아니라 뭔가 여기보단 조금 나은 무언가가 있는 곳이 아닐까요. 학교도 다니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놀러도 가는 그런 평범함을 갖고 싶었을 거에요. 리나 본인도 정확히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지 모르고 막연한 “이러이러한 나라”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잖아요. 마치 무지개를 쫓는 것처럼 도저히 갈 수 없는 나라를 향해 리나는 떠난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서글픈 감정을 지닌 이 아이는 서글픈 꿈마저 꾸고 있으니 “서글픈 리나”라기보다는 살아있는 “슬픔 그 자체” 또는 “아이도 어른도 사람도 괴물도 아닌” 그 무엇이 아닐까 해요.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건 리나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전쟁과 가난과 노동과 죽음]
며칠 전에 뉴스를 봤는데 전 세계에 전쟁 때문에 학교 못 가고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아이가 1억2천만 명이나 된대요. 아프리카에서는 1분에 40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지요.
어쩌면 살고 싶지 않을지도 않겠다, 이런 생각 해봤는데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리나를 읽다가 깨달은 건데 사람은 배 부르고 살만 해야 자살도 생각하겠구나. 저렇게 자꾸 죽어라 하고 밟고 죽이려 들면 더 살려고 하고 살고 싶겠구나. 목숨은 그런 거구나, 질기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반성이 생겼어요. 죽으려고 하지 않아도 가만 있으면 곧 죽게 되는데 굳이 누가 죽으려 할까요. 살고 싶어지겠죠.
사기열전에 보면 “죽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렇죠. 죽는 거야 그냥 죽으면 되니까, 순간이니까, 어찌 보면 쉽죠. 하지만 죽음을 대한다는 건 꽤 용기와 무모함을 필요로 하잖아요. 죽어도 좋다는 심정이어야지만 마주할 수 있을 거에요. 죽겠다고 마음 먹으면 온갖 용기가 생긴다는데, 어쩜 리나가 가진 용기가 그런 게 아닐까.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그 여자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모진 그것의 정체가 이 비슷한 거 아닐까요.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리나가 꿈꾼 건 자유가 아닐 거에요. 전쟁과 가난과 노동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살고 싶다는 걸 거에요. 살기 위한 걸음을 걷는 것만이 리나의 선택이라면 나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두 주먹에 힘주어 파이팅을 외쳐 줘야할 것 같아요. 벗어난다는 건 산다는 것이니까요. 살고 싶다는 건 이들에게 탈출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요.
가만 생각해보면 리나 뿐 아니라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지향하는 나라는 “P”국이 아니라 전쟁과 가난과 노동과 죽음의 현실에서부터 가장 멀고 먼 나라, 그래서 영원히 가 볼 수 없는 나라가 아닐까, 하는 쓸쓸한 마음이 듭니다. [인상깊은구절] 리나는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울지도 웃지도 않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서, 이건 나의 달이야, 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