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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역자는 이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냈다. 지젝의 번역사 가운데 최악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역자 자체가 지젝이 참조틀로 쓰는 대중문화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가령, 저 유명한 할리우드 고전 <수색자>를 <검시관>으로 번역한다든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은 셀 수도 없으며, '참조'라는 뜻으로 쓰인 구절을 '지시대상'으로 기계적으로 번역한다든지, '단락'short circuit을 짧은 순환으로 번역한다든가, 전혀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번역어를 채택해 도저히 한국어로 해독할 수가 없다.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등장하는 부분은 압권인데, 아예 무슨 말을 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가령, 다음 같은 문장.
346쪽 "이러한 이유로 영화의 또 다른 핵심적 장면은 악과의 싸움 이후 육식성 공룡들, 닐, 그리고 두명의 아동이 커다란 나무 안에서 피난처를 구할 때 일어난다..."
공격을 가하는 공룡이 아이들과 나무 안에서 피신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해석은, 영문판과 비교해봐야 겨우 뜻이 해독된다.
결국 이런 뜻이다. "악과의 싸움, 공룡과의 싸움 이후, 닐과 두명의 아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공룡들을 피한다"
더 앞으로 가보자. "그의 탈바꿈은 그들 중 세명이 떨어지고, 작은 뼈, 사악한 대상이..." 아버지와 아이들이 화해를 해서 그가 좋은 아버지로 개종(탈바꿈)헸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화해를 하고 잠에 떨어진 이후 상황을 전하고 있는데, 역자는 마치 바닥에 떨어졌다는듯이 번역을 했다. 전혀 앞뒤 말이 통하지가 않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영어에 대한 무지, 대중문화 이론에 대한 무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젝과 관련한 다른 연구자들의 번역서를 전혀 읽어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학계와 동떨어진 독서, 상호영향을 받지 않은 채 혼자 읽고 마는 독서, 성실하지 않은 태도 등이 빚어낸 대참사물이다.
인간사랑이 펴낸 지젝의 역서들 가운데 이같은 재앙 수준은 아니지만 김종주의 번역(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 환상의 돌림병)도 사정이 비슷하다. (박정수와 김수련의 다른 번역들은 훌륭하다.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있으며, 지젝의 문화적 영역을 잘 이해하고 있는 번역자들이다)
인간사랑은 자신이 펴낸 재앙과 같은 번역을 절판시키고 다른 역자를 찾아서 전면적으로 번역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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