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클래식 음악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은 모를 수가 없는 곡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그래서 명연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어지간히 연주를 잘하지 않고서는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만큼이나 많은 음반 가운데 도드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어렸을 때 언젠가 들은 합창 교향곡에 영혼이 송두리째 흔들렸던 그 감동을 다시 맛보고 싶어 유명하다는 합창 교향곡을 여러 장 모으다시피 했다. 베를린필의 아바도, 빈 필의 래틀, 뮌헬 필의 첼리비다케, 로얄 필의 포스터, 유럽 체임버의 아르농쿠르, 그 유명한 푸르트벵글러 49년 녹음과 카라얀의 70년대반, 그리고 이 가디너 반까지...2장짜리 칼 뵘의 마지막 녹음만 빼고는 웬만큼 알려진 합창교향곡은 다 들어본 것 같다. 가디너 반은 최근 이뤄진 녹음 가운데 가장 호평을 받던 것이고 구하기도 어려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재출시돼 말 그대로 득달같이 구매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CD를 돌렸는데... 우선 연주가 진짜 빠르다. 호흡을 유장하게 가져간 첼리비다케나 푸르트벵글러는 물론이고 꽤 속도를 냈다는 아바도나 래틀과 비교해도 한 1.5배쯤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쾌속 연주를 하면서도 음이 뭉쳐지거나 실수를 하거나 하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마치 몸이 가벼운 플라이급의 복서가 화려한 풋워크를 바탕으로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고...그래서 평론가들이 '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나보다. 그런데 솔직히 뭔가 아쉽다. 베토벤이 청력도 잃고 조카의 사랑도 잃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무런 희망도 찾기 어려운 고통과 번뇌 속에서 오히려 천상의 소리를 찾아낸 곡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비할데 없는 가벼움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베를린필이나 빈필의 무게와 파워도 아쉬워지고 고뇌와 절망속에 짜내는 듯한 희망의 느낌도 자로 잰 듯한 깔끔함 속에 부족해졌다. 이런 느낌은 역시 소편성의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아르농쿠르 반에서도 가졌던 것이다.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인가 보다. 어떻든 색다른 '합창교향곡'을 찾는다면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그렇게 완전한 '합창 교향곡'을 찾아 헤맨 끝에 낸 결론은 역시 60년대 녹음의 '카라얀'이었다. 이것은 내 취향이니까 동의하지 않으셔도 어쩔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