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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의 기억]
역시 브로델의 역사는 폭이 넓은 만큼 난해하고 복잡하고 산만하게 느껴진다.
사전에 브로델의 역사서를 읽기 위한 워밍업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중해의 기억]은 지중해의 탄생과정뿐만 아니라 그 주변 세계의, 그리고 그 선대 세계까지 올라간다. 자그마치 수 백 만년을 오르내리며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기술하고 있다. 역자의 말대로 이 책은 지중해의 종합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기간 중에 다루는 시기는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를 거쳐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다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지점까지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역사 기술방법이 다소 서술적이고 사건 중심이 아닌 구조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어차피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수 백 만년 동안의 역사를 사실 추론적이긴 하지만 실마리를 찾아 역사시대까지 끌고 온다는 것은 저자로서도 힘든 과정이었겠지만 역자나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브로델에 대한 사전 워밍업과 이후로 이어질 그의 역작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기 위해서는 한번은 넘어야할 산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사실 지중해 역사나 대부분의 세계 역사에 일면식도 없는 나로서는 이런 도전을 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가다가 중단한들 어떠리. 간만큼은 이익이 아니던가?
이 책 [지중해의 기억]은 그동안 미발표작으로 남아 있다가 최근에 출판된 책이다. 그동안 왜 미발표작으로 남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페르낭 브로델은 중세유럽 역사의 전문가이다. 중세 유럽, 그것도 지중해 중심의 역사에 전문가인 그가 이런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과감한 도전을 했던 것은 그가 저자의 말에서 밝힌 바대로 ‘본령을 떠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한다는 개척자적인 정신이었다.
16세기 중세의 중상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선사시대도 그의 눈에서는 개척의 역사로 보인 듯 하다. 그리고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지중해 주변지역의 지리적 환경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지중해에서 문명이 꽃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눈에는 신기하고 놀랍게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 감탄과 추론의 역사가 가득하다. 하긴 역사 이후 시대도 제대로 밝혀내기 어려운데 하물며 수 백 만년을 거슬러 올라간 선사시대를 기술함에 있어 추론인들 어떻겠는가. 다만 이런 추론마저도 독자로 하여금 감탄하게 하는 그의 광범위한 지식의 세계는 과연 그가 역사학의 거장으로 불리고도 남을만하다.
1부에서는 문명의 바다 지중해가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되어왔는가에 초점을 두고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아우르는 조감도를 펼친다. 이 과정은 석기시대부터 기원전 12~8세기까지로 대략 마무리 짓는다. 이 기간동안의 초기시대,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지중해는 지금의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대륙을 둘로 갈라놓았다. 그리고 신석기 문화의 혁명에 이은 초기 농경문화를 이곳에서 꽃피우며 인류가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수렵민에서 농경과 채집의 시대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여기서 브로델은 문명의 근원을 중동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유럽 중심의 문명을 기술해 왔던데 비해 브로델은 문명의 모태는 중동일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따라서 중동지역과 지중해 지역은 전혀 별개의 지역이나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고 연관성을 지닌 지리학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 대륙의 북부지역도 역시 그의 역사 기술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중해가 대륙의 융기, 화산과 지진으로 인한 대륙의 굴절, 침하로부터 생겨나고 그 이후로 서양문명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는 역사학자의 눈길은 감출 수가 없다.
2부에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명들의 부침을 그리고 있다. 지중해를 가운데 두고 동서, 남북으로 종횡무진하며 문명들의 개괄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페니키아의 역할이다. 지금의 중근동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페니키아인들이 엮어가는 역사는 여러 생소함 중에도 단연 최고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에트루리아, 그리스, 로마 등의 문명의 생성과 소멸을 기록하고 있다.
읽고난 후의 느낌은 역시 어지럽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생소한 용어들, 지명들이 그의 지식 세계를 따라 춤추듯 펼쳐지지만 역시 생소한 용어들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이곳저곳을 예고 없이 거론하는 바람에 더더욱 어지럽다. 밑줄과 동그라미들을 쳐가면서 읽지만 조금 지나면 까맣게 잊혀져가는 바람에 이미 읽었던 부분으로 한참을 되돌아오기를 수없이 되풀이 했다. 역자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 땀깨나 흘렸다고 했는데 책을 읽는 과정에서 머리 속에 갈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나마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역자의 진땀 흘린 대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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