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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연주회에서 종종 소개되는 서곡들은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독립적인 쟝르로도 인정받고 있어서 간혹 오페라를 듣다보면 어디선가 들었던 곡으로 귓가에 친숙하게 다가오는 일이 있다. 그럴 때는 아주 가슴이 설레이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앞으로 전개될 무대위의 상황에 큰 기대를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이 클래식과 오페라가 밋밋하고 차가운 바닥같은 심장에 뜨겁고도 열렬한 불화살을 당기는 역할을 한다. 오늘 소개하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생애 마지막 악극인 <파르지팔>의 서곡 중 "성배의 동기"는 머리끝에서 시작해서 턱언저리를 지나 명치끝에 맺혀있던 스트레스의 찌꺼기들을 쏴악 밀어내는 그런 경쾌함을 지닌 장중하고도 숭고한 전주곡이다. 미디어의 특집 뉴스보도물에 종종 등장하던 음악이기도 해서 듣자마자 모두가 알아챌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들은 이렇듯 우리 일상 요소요소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알고 모르는 자는 모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이 오페라가 다분히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서 비쥬얼의 감각, 즉 무대연출과 의상 디자인만으로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다. 어렵게 접근하는 바그너 오페라의 신화적, 반우화적인 줄거리나 작곡의 배경등은 솔직히 일반적 소견을 지닌 나로서도 친근하지가 않다. 일단 그의 음악적 세계를 이해하려면 북유럽 신화와 역사를 이해할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장시간 계속 연결되는 연주로 실시간 겪게 되는 졸음의 압박을 견뎌야만 한다. 인고의 시간이 흐르면 다른 음악들은 쉽게 들어온다. 이상한 일이지만 음악이 내게 무작정 들어오는 그런 시기가 온다. 그러니 정작 연주는 불가능한 사람이 듣고 보고 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을 한다면 꽤나 멋진 클래식 컬럼니스트가 되는 것처럼....
![]() 리하르트 바그너 <파르지팔> ,함부르크 오페라
<파르지팔>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 이후의 그의 만년의 철학관과 종교관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옛날 전설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기독교 사상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는 카톨릭의 <성배 수호의 성찬>과 프로테스탄트의 <성(聖) 금요일의 기적>등의 신앙이 기초로 있을 뿐 아니라, 더러움을 모르고 또 세속적인 욕망이나 인간적인 정욕도 모르고, 오직 사랑과 연민만을 느끼고 있는 파르지팔이 인간의 구제를 고양한다는 기독교적이면서도 일면 불교의 열반의 정신, 그리고 동양적 염세(厭世)와 유혹도 콘토리라는 이중 인격을 가진 우화적 여성을 등장시켜서 표현하고 있다.
신비적이며 종교적 종합예술인 일대 종교극의 완성으로 바그너는 일반극장에서의 <파르지팔> 상연을 금했으며 그 결과 흥행권이 소멸되는 1913년 말까지 연주회 형식을 제외하고는 오직 바이로이트 축전 극장에서만 독점 상연되어 왔지만 1903년 뉴욕 메트공연과 1905년 암스테르담에서 공연된 바 있다. 현재도 오페라 시즌이 비수기에 들어가는 여름, 독일 오페라는 잠시 휴지기에 들어가지만 바이로이트에서는 바그너 오페라의 축제가 열린다.
약 5시간 연주되는 오페라 <파르지팔>의 전위적인 퍼포먼스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칫 일본적 요소로 인지되는 겐조풍의 의상과 가부키 스타일의 분장도 동양적인 묘미로 다가왔다. 보통 무대연출이나 의상디자인에 가감없이 수용하는 개인취향덕분에 어떤 식으로든 문화적 성취를 느낀다. 그 날의 독특한 무대상황 변화에 감흥하는 기분은 꽤 짜릿하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만끽하려고 노력한다. 내용이 중세이니까, 내용이 고전이니까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연출이 되면 무척 뻔한 진행으로 지루하고 하품나오는 틀만 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연은 신선한 발상에 객석 발콘에서의 장중한 합창연주가 돋보였다. 종종 지휘자에 따라 그런 연출을 하는데 꽤 매력있고 객석과의 호흡도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아보인다. 가끔 국내 상연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무대위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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