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위치우위가 지은 유럽문화기행 1권과 2권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이전에 중국문화답사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어려움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계문명기행이라는 책을 사서 읽어 보기로 했다.
약간의 아쉬움은 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유럽문화기행은 사진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좋았었는데 그보다 먼저 나온 책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하긴 사진을 넣으면 책값이 비싼 한계가 있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너무나 좋은 내용이다. 여행하는 도중에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고 하는데 현장감이 넘친다. 물론 일기 형식이므로 약간의 중복되는 내용도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부제는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를 찾아서’이다. 부제가 그런 만큼 그리스,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인도, 네팔을 거치는 4만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주로 지프를 이용해서 여행하고 있다. 1999년 9월 29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천년의 산등성이를 넘어가려는 시점에 고개를 돌려 몇 겹으로 이어진 천 년의 산등성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25쪽)고 그 의의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라크의 바빌론 고성을 방문하면서 그곳이 단장된 것을 보고 이렇게 비판한다. ‘옛것을 새것처럼 정리하는 것’은 나이든 할머니의 피부를 예쁘게 단장한다고 피부 이식 수술을 하고 화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적지를 정리하여 새롭게 단장하는 일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어린 시절의 모습을 찾아, 그것으로 할머니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받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346쪽)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우리도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란의 테헤란 교통난에 대해 말하면서 복잡하고 조급한 환경에 사는 이들은 쉽게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를 보이게 된다(423쪽)고 한다. 이런 내용은 서울로 들어가면 왜 운전자들이 좀 과격해지는가를 설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아주 복잡하고 밀리면 포기하고 유연해 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배화교의 몰락은 하나의 비극이다. 처음 자라투스트라가 배화교를 창시한 것은 사람들이 원시 종교의 점술이나 무술(巫術)로부터 벗어나 더욱 지혜로운 종교적 경지에 이르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화교가 통치자의 후광 아래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수적으로 방대해지고 구성원도 복잡해지면서 신도들이 점복이나 무술적인 내용에 심취하여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이성을 거부하고 황당한 억측과 상상의 세계, 종교적 광신으로 빠져들기 쉽다(458쪽)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매료되어 배화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니체가 말하는 자라투스트라는 그 이름만 빌렸지 배화교와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을 빌린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종교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은 나로서는 위의 배화교의 비극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면서 우리의 종교는 어떤지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중국문명이 다른 문명과 비교할 때, 철저하게 자신을 본분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다(672쪽)고 말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만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중국인의 생각일 뿐이요, 변방을 공격한 일은 왜 언급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내용들이 옮긴이들이 언급하듯이 저자의 중화주의를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인지도 모른다. 티벳의 문제는 어떻고 고구려 역사왜곡은 왜 언급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철저하게 지켰다니 아무리 중화주의라 하더라도 학자로서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보수주의자들은 항상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질서를 파괴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차 사회 변혁기에 정말로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이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685쪽)는 저자의 생각은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유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은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 인류가 동족에 대해 결코 오만해서는 안 될 것이며, 자연에 대해서도 오만방자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696쪽)는 내용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신토불이라는 말은 많이 들으면서 인자불이(人自不二)라는 말은 왜 아직도 많이 들리지 않는지 아쉬움이 든다. 문명이라는 이름, 종교라는 이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정복대상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존경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문명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미케네로, 미케네에서 그리스로,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졌으리라. 나는 저자가 방문한 나라 중에서 그리스와 이집트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저자가 가 본 나라들을 가보았으면 한다. 특히 문명의 발상지와 큰 관계가 없다고 하면서도 자연과 있는 그대로를 잘 간직한 네팔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확실히 위치우위는 대단한 학자이다. 그 어려운 여정을 지프로 여행하는 저자의 용감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저자의 글은 저자의 많은 공부와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경험이 유려하게 표현되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다. 인류문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볼만한 하다고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세상의 경물들은 주로 자연이 전체적인 형상을 만들고 인간이 세세한 부분을 꾸미지만, 피라미드는 이와 정반대로 인간이 전체 모습을 구성하고 자연이 세부적인 부분을 갈고 깎아 놓았다(127쪽).
지면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모래땅이었다. 그러나 다른 곳과 달리 수도관이 길게 늘어져 있고, 수도관 마디마다 물을 분사할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비법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수도관을 타고 물과 비료, 그리고 영양액이 한 방울도 낭비됨 없이 그대로 식물에 투입되고 있었다. (중략) 메마른 사막, 악성 말라리아가 판을 치는 늪지가 태반인 이스라엘은 천연자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동 전체에서 가장 뒤떨어지는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십 년 만에 농업 생산물의 가치를 16배나 증가시켜, 자급자족은 물론이고 대량으로 유럽에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유럽은 매일 이스라엘 사막에서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진귀한 과일과 생화를 수입하고 있다. 당연히 이스라엘의 관개 설비나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218-219쪽).
초창기에 산뜻한 모습으로 출발한 종교는 능히 인류의 귀감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신도가 늘어가면서 안팎으로 투쟁이 벌어지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특히 신화를 만들고 이단을 배척하며 행위를 구속하고 교의를 해석하는 데 극단적으로 치닫기 시작하면, 더 이상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처음의 모습에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고 결국 전쟁이란 참담한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 때로 동일한 종교 내부에서 피범벅이 되도록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시체가 즐비한 전쟁터의 모습에서 종교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는 종교를 처음 만든 이들이 금과옥조로 삼았던 자선(慈善)의 원칙과 완전히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680쪽).
일부 종교는 또 다른 악의 열매를 품고 있다. 정상적인 생명의 가치나 생활 수준, 그리고 사회의 진보 등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저 전생과 사후의 일에만 신경 쓰도록 함으로써 현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세만 주장하고 현실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황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6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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