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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모르는="" 반야심경="">, 제목 자체가 여느 반야심경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제목뿐이랴, 읽어내려가는 행마다 여는 반야심경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수행이라고, 번뇌를 어떻게라도 떨쳐버릴까해서 여러단체나 서적, 스승(선지식)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거기에서 얻어진 것은 허망함이었다. 처음에는 번뇌가 내려지고, 탐진치도 내려진 것처럼 한동안 평안으로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고 안부라도 묻듯 번뇌는 치솟아 올랐다. 이 번뇌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도대체 앙다물고있는 이 허물어지지않는 존재는 무엇일까? 본질이니 참나를 찾으면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 하는데 쭈그려 앉아 참나라는 것을 찾으려 참선이니 명상인 해봤자 몸만 망가지고, 도를 구하겠다는 마음 자체가 허망하다는 생각이 일때 이 책을 만났다.
사람들은 공이라 하면 허망공에 매달리고 진공실상이라 하면 또 다른 어떠한 참된 실체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범부중생들은 허망공에 빠져 허덕이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수행하는 자들은 진공실상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는 중도 연기를 또렷이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 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바름을 등지고 맹목적 신앙에 매달려 오는 세상에 기복이나 구하고 내세를 바라는 부질없는 행위만 일삼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모든 법이란 단지 이름을 빌린 것에 불과하다. 단지 명칭과 문자에 의지해서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떠나서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다 실체가 없는 것이나 어쩔 수 없이 명칭으로 명칭을 표현하는 것이다.”고 하셨다.
진공실상이라는 것은 오온의 허망상을 또렷이 꿰뚫어 봄으로 인하여 더 이상 미혹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일 뿐 별개의 진공실상이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도 연기의 참된 이치를 바르게 아는 것을 개념적인 명칭을 빌려 진공실상이라 표현한 것이다.
<본문 내용중="">
진공실상의 실체를 알고자, 다시말해 선사들이 말하는 성품이니, 근원이니, 참나를 보고자 했던 것이 허망했다. 단지 진공실상이란 중도연기를 관하는 것이고 이 진공실상의 실체란 없고 단지 언어를 빌린 개념이었다는 말이었다. 오늘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참나니 성품이니, 마음이니 하면서 개념에 붙들려 그것이 존재하는 줄 알고 세월을 보내며 허송하고 있다. 부처님의 중도 연기로 보자면-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라는 말에는 전혀 맞지 않다. 참나라는 또다른 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또렷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참으로 사람들은 왜 이런 것을 몰랐던가? 왜 여태 이런 내용의 책을 만나기가 힘들었을까? 왜 이런 진리를 놓치고 있었을까?
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이 어리석음의 원인을 기술하고 있었다.
전적으로 傳統에 의지하는 것은 정당하게 善惡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報告 혹은 바람을 타고 온 소문 , 그리고 경전의 권위에 대한 의존도 마찬가지다. 論理的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거나 그럴싸한 推論이 진실한 것이 될 수도 없다. 생김새로 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린 前提니까 이 경우에는 이게 옳을 듯해서, 혹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 등의 이유는 바르게 선악을 판단하는 준거가 되지 못한다. -중아함경, 증일아함경 중에서-
그러므로 수행을 하면 무조건 맹신하는 버릇과 선사들이 ‘말없이 하라’면서 화두나 들먹거리는 수행서만 들추어보았지 진정으로 부처님의 원음(근본불교)과 철저한 사고의 검증을 하지 못한 이유였다.
번뇌만 일고 무엇이 무엇인지 실상 똥오줌 못가리는 상태가 돼버린 것이었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그토록 염불로만 인식했던 반야심경의 전체의 의미가 주문이 아니고 수행의 지침서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통이 자재해 우리를 구원해 줄것이라고 여겼던 관자재보살의 의미도 신적인 존재에서 수행하는 자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곳곳에 어리석은 의식을 깰수 있는 - 저자의 수행을 통해 증득한 결과로써 얻어진- 해설들이 반야심경을 단지 주문으로만 생각했던 의식들이 저절로 물러나게 하고 수행의 지침서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고 있었다.
저자는 기존에 나와있는 해설서들의 미흡한 부분을 통해 일반 수행자들이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몇 가지 부분을 중점적으로 해설하고자 한다.
첫째, 반야심경은 과연 관자재보살이 사리자에게 부처님의 근원설을 바탕으로 해서 설한 내용의 경전인가와
둘째, 수행자들이 오온의 공함을 말하면서 오온의 허망한 실체를 자기 안에서 비추지 않고 바깥의 대상을 통해 찾으려는 것과
셋째, 삼세제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와
넷째,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가 뜻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와
다섯째, 그렇다면 반야바라밀다주가 뜻하는 의미는 또한 무엇인가에 대하여 해설 하고자 한다.<들어가는 말="" 주에서="">
위의 내용을 저자의 해설과 함께 <잡아함경>, <육조단경>. <선문촬요>들을 옮겨 사용하여 이 해설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었고, 저자 해설 외에 부처님 말씀(아함경)과 선사어록등을 구성해 놓은 본문에는 이것들의 관련성을 생략하여 그 내용의 연관성을 고스란히 독자로 하여금 사고할 수 있는 기회로 남겨 주고 있었다.
저자는 이 반야 심경의 풀이를 중도 연기에 맞추어 해설해 놓고 있기 때문에 이책에서는 저자의 냄새가 묻어나오지 않고 있다. 중도연기에는 사견이 있을 수 없다.- 인간 사고 때문에 부처님은 팔만 사천 법문을 개념을 빌어 설명을 해 놓았을 뿐이지, 결국은 중도연기를 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종교적 틀과 神的인 개념이 없으며, 절대적인 스승의 권위와 그 스승의 지시어가 이책에는 없어 누구라도 이 책을 읽고 번뇌를 벗을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인간 번뇌의 본질을 안팎으로 철저하게 꿰뚫어보고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난 괴로움의 원인인 탐(貪) ․ 진(瞋) ․ 치(癡) 등 무명(無明)을 제거함으로써 구경의 열반을 실현할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으로 어리석은 범부의 눈으로는 온전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이어서 부처님께서는 “‘괴로움[苦]’과 ‘일어남[集]’의 진리는 보기 어렵기 때문에 심오하고 ‘소멸[滅]’과 ‘도[道]’의 진리는 심오하기 때문에 보기 어렵다.” 고 하셨다.선문촬요>육조단경>잡아함경>들어가는>본문>스님도> |
| 반야심경을 불교경전으로만 알고 있었고 정독을 한 적이 없던 나에게 스님도 모르는 반야심경은 제목부터가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려워서 못 읽을 책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저자의 구절풀이가 약간 어렵다? 싶으면 바로 이어지는 경전과 선사들의 말씀(잡아함경, 육조단경, 선문촬요) 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며칠전 버스안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천수경을 코팅해서 열심히 외우시던것이 생각났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아마 이 아주머니도 천수경 주문을 무조건 외우면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빌어 앞으로 나가고 싶은 세상을 그렸으리라..... 이 책은 수행이 어떤것인가? 라는 것을~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내 것''도 없고 , ''나''도 없고, ''나의 자아''라는 실체도 없는 중도연기법이란 것을 마치 시험문제를 콕 콕 찝어주는 쪽집게강사처럼 핵심을 찝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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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불교신자라 제목이 영 거슬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왠지 끌리더군요. 그래서 읽어 봤죠.
근데 우째 이런 일이... 그동안 열심히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절도 부처님께 하고
있거든요.
제 나이 칠십이 넘도록 해온 일상입니다요. 그러니 내 자신이 기가 막힐 수 밖에요.
첨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이 나이가 되도록 뻑하면 화내고 등등... 하나도 나를 콘트롤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 결국 나름대로의 그런 방법으로는 이 책을 통해 조금 알게씁디다.
제 주변 친구에게도 몇 권 주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 다 살아서...
정말 소중한 책입니다. [인상깊은구절] <들어가는 말=""> 7쪽에 있는 글입니다. "일체 유위법은 꿈만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들어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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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모르는...? 라는 제목이 굉장히 신선하고 화~악 끌리더군요.
오랜 세월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스님도 모른다는 것이 과연 무슨 얘기일까?
<들어가는 말="">에 저자가 피력해 놓은 것을 읽어가는 동안 하나하나 이해하게 되더군요.
풀이에 있어서는 글 자체는 평이한 문체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엔 어려웠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부처님말씀>에서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안을 땐 <선사어록 및="" 게송="">에서 그 뜻을 조금씩 알게 해주는
구성방식에서조차 참으로 친절한 책이더군요.
특히 궁극의 가르침 그 핵심을 명확히 풀어내시어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다는 막연한
생각은 더이상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책크기나 두께도 무겁지 않아 맘에 쏘옥 드는 책입니다.
귀중한 책을 찾고자 하시는 분들께이 책를 적극 추천합니다.
특히 전문가들에게는 필독하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인상깊은구절] ...중도연기의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중도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림으로써 올바른 지견 과 지혜를 이끌며 평정과 깨달음, 그리고 해탈로 이끄는 성스러운 팔정도 행을 말하는 것 이다. 연기는 어떠한 조건에 의지하여 발생하는 원리를 말한다. ''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게 되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선사어록>부처님말씀>들어가는> |
|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투자 내지는 보험이랄까? 인생살이에서 지치고 고갈되어가는 나 자신에 대한 위안이랄까? 뭐 이런저런 이유로 불교나 명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음에도 한없는 동경의 마음을 품고 기웃거렸던 적이 있다. 한없이 자비로운 신으로서의 부처님은 고단한 인생살이의 의지처가 됐고 선이나 명상은 나를 조금은 평안하게 해 주었지만, 그 뿐이었다.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속에서 나는 여저히 괴로웠고 그 놈의 <진정한 나="">, <참 나="">라고 하는 것의 묘연한 실체는 나를 불교라는 종교적 울타리 속에 적당히 안주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만난 반야심경은 마치 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안내서 같았다. 영혼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어떤 존재로만 비쳐졌던 <참 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오온개공이 무엇이며 이를 중도연기를 바탕으로 또렷이 인식하고 관하는 행만이 부처에게로 향하는 진정한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또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하여, 여기에 세상에 대한 탐욕부터 깨달음에 대한 갈망까지 빌고 또 비는 행위가 합리적 이성과 사고를 전제로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와 있는지도 아울러서.... 소중히 간직하여 보고 또 보며 숙고해야겠다참>참>진정한> |
|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깨달음을 열망하게 되었다. 여러 경전과 불교 서적들을 보면서 진심이니, 참나니, 진아니, 불성이니 하는 것을 찾아야 내가 열망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과 바람을 가지고 그걸 찾기 위해 몇 년동안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말씀하신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좀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그동안 열심히 찾을려고 했던 진심이니, 참나니, 불성이니 하는 것들이 결국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또렷하게 보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허망상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참고서적에 소개된 책 중 ‘혁명가 붓다’를 사서 읽었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깨달음이란 무상, 고, 무아를 또렷이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탐ㆍ진ㆍ치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 그 외에 또 다른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걸 바라는 것은 단지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공주를 찾아 헤매는 바람둥이와 같다고.. 깊이 음미해볼 말씀인 것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저자님께 감사를 드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