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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시위가 벌어 연일 벌어지고 있어서 '논술책'으로 삼았답니다. '흑인인권 운동가'의 선구자였던 '마틴 루터 킹'의 삶을 엿보고 '인권 운동의 발자취'를 다시금 살펴보는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더불어 '인종차별의 기원'도 이야기하면서 흑인노예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흑인노예 해방'을 선언했던 링컨과 미국의 '남북전쟁', 그리고 <톰 아저씨의 오두막> (해리엇 비처 스토 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해주어야 할 듯 합니다.
![]() <버스는 텅텅 비었다. 전용석에 앉으라 강요할 만한 상황이었을까?> (출처: 나무위키)
마틴 루터 킹의 인권 운동은 '로사 아줌마'가 체포되면서 시작합니다. 1955년 12월 1일 목요일에 로사 아줌마가 버스 좌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흑백차별법'이 있었기 때문에 백인과 흑인에게 따로 지정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버스 좌석도 마찬가지였지요. 앞자리는 백인전용, 가운뎃자리는 백인우선, 불편한 뒷자리는 흑인전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버스 좌석이 텅텅 비었습니다. 백인들이 많이 타지 않았죠. 그래서 몸이 불편했던 로사 파크스는 가운뎃자리에 앉았습니다. 몇 정거장 지나 백인 승객이 한 명 탔습니다. 그 승객은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했는데 다짜고짜 로사 아줌마에게 다가가 당장 일어나 뒷자리로 가라고 협박했습니다. 로사 아줌마는 피곤하기도 했고 백인 승객의 말투가 너무 고압적이어서 뒷자리로 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버스운전사까지 나서서 로사 아줌마를 향해 윽박질렀습니다.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입니다. 그 결과 로사 아줌마는 철창에 가둬지게 되었습니다. 고작 버스 좌석에 앉았다는 죄목으로 말입니다.
![]() <미국에서 '지문찍기'는 범죄자에게만 하는 일이다.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은 사진> (출처: 나무위키)
이 사건은 그동안 울분에 쌓였던 흑인들이 '버스 안 타기 운동'에 동참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무려 1년이나 넘게 말입니다. 당장 흑인들은 버스 대신 '같은 흑인끼리' 자동차를 함께 타거나 '흑인 택시운전사'가 싼 값으로 태워주거나 직장까지 먼 거리를 두 발로 걸어다녔습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흑인이라면 누구나 동참했답니다. 그러자 백인들은 흑인들의 행동을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폭동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고작 '버스 안 타기 운동'이나 한다면서 어리석다고 저들끼리 낄낄 거렸습니다. 하지만 버스회사 운영자는 달랐지요. 버스를 타는 것은 대부분 '흑인'이었는데, 흑인이 버스를 타지 않자 수입이 '급감'했던 겁니다.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매출로 인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승객이 없어도 버스는 제 시간에 운행을 해야 했기에 '휘발유 값'과 '버스운전사 임금'까지 매달 지출해야 했으니까요. 결국 버스 회사는 시당국에 이런 어려움을 호소했고 시당국은 1년 만에 '흑백차별법'을 철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흑백차별 금지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불법이었던 '흑백차별법'이 사라졌어도 백인들은 여전히 '흑인'을 차별했습니다. 물론 이젠 법에 저촉이 되기 때문에 대놓고 차별을 하진 않았습니다. 교묘하게 '흑백분리'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이 흑인과 함께 있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그러니 백인들끼리만 있을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논리로 백인들은 흑인이 학교에 등교하는 것도 거부했고, 각종 편의시설도 '함께' 이용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차별법'은 마련되었지만 '사회분위기'는 달라진 것이 없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킹 목사'는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흑백차별'이든 '흑백분리'든 어떠한 이유로든 흑인에게 불리한 짓을 하는 회사나 단체에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비폭력 무저항'인 방법으로 말입니다. '킹 목사'는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을 높이 샀던 겁니다. 그래서 '백인들이 사는 세상'에 '흑인들의 힘(black power)'을 보여주기 시작한 겁니다. 흑인들은 '킹 목사'의 연설에 귀기울이고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쳐나가 미국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킵니다. 더 나아가 흑인들은 '연대'를 통해 시위를 펼쳐나갔습니다. 백인경찰은 이들에게 해산명령을 내렸지만 흑인들은 해산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감옥은 흑인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당혹스러운 것은 '백인들'이었습니다.
훗날 남부에서도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앨라배마에서 시위를 벌일 때에는 가장 격렬했습니다. '코너 경찰서장'은 흑인을 난폭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시위에 나선 흑인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물대포를 쏘고 감옥에 쳐넣었습니다. 급기야 '시위 금지'를 선포했지만 '킹 목사'는 어린이와 여자들까지 시위에 참여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물론 비폭력 저항으로 말입니다. 감옥이 흑인들로 넘쳐나자 흑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예감했습니다. 결국 코너 서장은 화를 있는대로 부리면서 흑인들을 향해 폭력을 지시했습니다.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무차별적으로 시위대를 향해 공격을 퍼부은 것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여론은 '코너 서장'에게서 차갑게 돌아서며 '흑인 인권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킹 목사'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닙니다. 킹 목사네 집에서 폭탄이 터지는가 하면 연일 '백인우월주의자'에게서 공격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운동을 해나갑니다. 또 흑인사회에서도 비난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백인들이 '비폭적 저항 운동'을 보고 비웃는 일이 점점 많아지자 흑인사회에서도 '비폭력 저항'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실력행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말콤 X'가 있었습니다. '말콤 X'를 지지하는 흑인들은 '킹 목사'를 배신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백인경찰에 의해 순순히 감옥에 들어가는 동료들을 보고서도 모른 척하고 오히려 '킹 목사'는 백인들과 어울려다니는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킹 목사'는 케네디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부터 함께 어울려다니며 '백인들과 친분'을 쌓는 일에만 열중인 듯 했습니다. 언론의 교묘한 플레이였던 겁니다. '킹 목사'는 백인 기득권층과 만나면서 '흑인인권'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인데, 감옥에 수감되어도 풀려나는 것은 오직 '킹 목사'뿐이었기 때문에 흑인사회가 오해를 한 것입니다.
'킹 목사'의 진정성을 크게 의심했던 사건은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쳤기 때문입니다. 미국시민들은 애국적인 행동을 반대하는 거라고 오해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세계 평화를 구하는데 앞장서는 미국의 자존심을 심하게 모욕했다고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킹 목사'는 미국 젊은이들에게 베트남전에 참가하지 말라고 설파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시민들은 '베트남 전쟁의 실체'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서 미국이 무리하게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과 실제 전쟁에서 엄청난 피해와 사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킹 목사'의 주장에 힘이 실린 것입니다. '킹 목사'는 말했습니다. "베트남전에 흑인 젊은이들은 참가하지 말라. 미국내에서도 자유를 얻지 못한 흑인들이 베트남의 자유를 위해 아까운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미국사회는 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국내에 '완전한 자유'를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리가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수치'가 되어버렸습니다.
![]() <나는 꿈을 꿉니다. 옛 노예의 후손과 옛 주인의 후손이 형제처럼 손 잡는 꿈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그리고 '킹 목사'는 연설을 합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연설 말입니다. 그리고 1968년 4월 4일에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 소속된 암살범이 쏜 총에 맞아 킹 목사는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서거하게 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된 지 5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이에 전 세계 사람들은 킹 목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사회는 '흑백차별'을 비롯한 '인종차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현재는 '인종차별법'이 강화되어 로사 아줌마처럼 '백인전용 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체포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엄청난 비난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흑인시위'도 바로 그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흑인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백인경찰이 무자비한 방법으로 목을 졸랐고 그로 인해 사망한 사건에 흑인들이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변화'의 일환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많습니다. 흑인시위는 종종 '폭동, 방화, 약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한인타운'과 같은 곳으로 폭동의 불길이 번져 '아시안계 차별'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왜 백인들에게서 받은 차별을 다른 유색인종에게 분풀이하는 걸까요? 이를 두고 '한인사회'가 백인우월주의에 편승하며 흑인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별개인 '구차한 핑계'에 불과합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는 격이란 말입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백인사회'의 우월주의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백인, 흑인, 황인이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세상을 모두가 이야기하고 노래해야 합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사회도 '다문화가정'이 빠르게 늘면서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전세계가 '지구마을'처럼 아주 좁은 사회처럼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마당에 '차별의식'이 여전하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차별'을 없애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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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서 킹]
출판사 : 다섯수레
<흑인 백인을 나누는 것 자체가 차별인가?>
로사 파크스는 버스의 좌석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빈 자리가 없어서 어떤 백인이 로사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지만 로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체포되었다. 흑인들은 참을 수 없는 감정과 마음 때문에 여러 흑인들과 손잡고 '버스 안타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백인 경찰들은 킹목사와 흑인들을 체포하려고 했다. 하지만, 흑인들은 오히려 단결하였다. 흑인 지도자들은 분리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하였다.
흑인과 백인을 나누는 것 자체가 차별인가? 아니다. 그 이유는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것 뿐이지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흑과 백을 나누는 게 차별이라면 초코우유, 흰우유로 나누는 것이 그럼 차별이 되는 것이다. 또 대륙별로 나는 것도 엄청난 차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륙별로 나누는 이유는 구별을 하기 위해서다. 구별이 차별이라면 우리반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남탕과 여탕으로 나누는 것도 차별이 된다. 예를들어, 차별이란 3명의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1명을 무시하고 괴롭히고 심지어는 고문하거나 죽이는 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나누는 것이 차별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리고 흑인과 백인으로 나누는 이유 중에 한가지는 기록을 할 때 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흑과 백으로 나누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는데, 안일어나서 감옥에 갔대'이렇게 이해하기 어렵게 설명을 해야 하니 나눈 것 뿐이다. 이게 차별이라면 세상 모든 것, 피구할 때 팀을 나누는 것도 차별이라는 것이다. 흑인과 백인으로 나누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것을 차별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흑과 백을 구별이 아닌 차별을 하기 위해서 이용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로사가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었다면 과연 감옥에 갔을까? 그녀가 백인이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아서 감옥에 갔다고 하면 차별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만, 그녀가 흑인이었다는 이유때문에 감옥에 갔다면 심각한 차별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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