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의반 타의반 받아든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고 나서 처음 떠오른 말이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이었다. 카산드라의 기구한 삶과 극적인 구원에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미국이라는 사회가 참 좋은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무척이나 심각하고 전문적인 주제를 감동적으로 풀어내 필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결손가정, 윤리의식이 무너져 가는 사회속에서 상처받을 많은 아이들을 위한 불굴의 기록이다. 우리 사회에도 무지많을 이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치유하고 있을까? 아이를 둔 부모라면, 선생이라면 꼭 한번 읽어야할 필독서이다. 더구나 만만찮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원전을 참으로 근사하게 번역해낸 여자에게도 진심어린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처럼 보기드문 명번역이다. 앞으로의 길에 큰 기대를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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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에 선 한 심리학자의 생생하고 감동적인 치유의 기록
이것은 내가 책을 고르게 된 책 광고 문구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치유 그 자체보다 그 일을 하는 토리의 그 심리 상태였다. 한 사람의 치료자로서 심리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한다는 것은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없이 낯선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최선을 다해 매순간 임할 것이라는 것뿐.
이 책에서 나는 그런 치료자의 진솔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갈등과 실수를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고집이나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드러낸다. 치료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을 때의 절망감, 30년이 넘도록 상담과 치료에 종사해온 사람이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습에서 내가 위로를 받았다.
어줍잖은 나도 상담을 하면서 제대로 되지 않으면 초조해하고 절망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참고 기다리면서 애정을 잃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애정, 그것이 그녀를 기다리게 하고 절망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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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 여기 있어요 Twilight children, 2005 저자 : 토리 헤이든 역자 : 이중균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작성 : 2009.10.28. “실패와 성공은 중요한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즉흥 감상- 마침 근무시간동안 읽을 책이 필요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책을 정리하고 있던 중에 느낌의 화살이 날아와 박혔기 때문인지는 정확한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껍게만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술술 읽히고 말았다는 것으로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책은 ‘카산드라’라는 이름의 소녀에 대한 첫 느낌으로, 특수교육교사이자 교육심리학자라는 모습보다도 ‘친구’로서의 만남을 그려나가는 것으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저자 자신의 소개를 회상하는 듯 정리하던 이야기에 소녀의 이야기를 이어하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말을 하지 못해 고생하고 있던 소년까지 마주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으로 본론으로의 장이 열리게 되는데요. 두 아이를 번갈아가며 함께하게 되었음에 마음을 치유해주려 노력하게 되지만, 그녀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그 심각성의 바닥이 더욱더 깊어져 감을 실감할 뿐이었는데……. 거참. 분명 이건 일반적으로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야기책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 구성된 소설마냥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에서 정말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 세상에는 토리 헤이든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표지의 문구에도 동감해 볼 수 있었는데요. 사찰순례중인 버스 안에서 아버지의 ‘실패보다는 일단 성공한 사례만 적은 거겠지?’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딴지 같이 들리던지, 순간적으로는 욱!! 해버리고 말았지만, 음~ 심리치료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는 감히 추천장을 내밀어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 또한 이런 기록들을 접해오면서 ‘이거 성공한 사례만 있는 것 같은데, 실패한 사례를 따로 모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는데요. 계속되는 여러 만남을 통해서는 결국 결론보다 그 과정의 길을 걸어 나가는 용기와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자세가 진정으로 멋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선적인 즉흥 감상인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리고 당신은,’을 대신으로, 그리고 원제목을 직역하여 ‘황혼의 아이’ 또는 ‘위기의 아이’라 판단이 섰기에 다음 순위의 즉흥 감상을 적어보게 되었는데요. 뭐 어떻습니까? 어디에 있는가나 가치의 기준에 대한 것이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시점’이라는 단어로 묶어볼 수 있으니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첫 즉흥 감상에 대해서도 말해보고 싶어 물음표를 날려보자면,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 누구라 생각하시는지요? 생각의 주체는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나일뿐!’이라구요? 아무리 혼자 잘났다고 떠들어 덴다 할지라도 결국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구요? 네?! 너나 잘 하세요! 라구요? 크핫핫핫핫! 개인적으로는 현재에 이르는 오늘날까지도 저는 저 인 동시에 사회의 작은 단위라 할 수 있는 가족, 학교, 직장, 모임 속에 알맞은 역할모델을 실천하고 있느라 알게 모르게 정도에 따른 압력을 받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한때는 정말이지 정신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심각히 생각해 본적도 있을 정도였으니, 아아. 모르겠습니다. 그럼, 피아노를 항해 달려가 ‘미’를 치지 않기 위한,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한 기억의 봉인을 원한다는 혼자만의 중얼거림으로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그리고 벗이여. 자네가 이미 죽어있음을 나에게까지 전가시키지 말게나. 자꾸 까불면, 내가 자네를 이미 죽어있는 상태로 취급해줄 용의가 충분히 있으니 말일세.”
TEXT No. 1058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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