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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은 지난 4주차 리뷰에서 언급된 것처럼 명문 거족 출신입니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 보면 이성계의 입으로 "... 이 나라에는 한다 하는 가문이 많은데...." 라고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 말의 숨은 뜻은, 전주 이씨가 왕위에는 올랐으나 행여 실책이라도 하면 그를 대신하려는 불온한 움직임이 언제든 일 수 있으니 후손들더러 처신에 주의하라는 취지였죠. 조선이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나서는 그 권위에 도전하려는(적어도 성씨 자체를 교체하려는) 레벨의 저항은 사라지지만 저때는 왕조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런 걱정이 그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을 텝니다. "설마" 하는 건 결과(오백 년 왕업)를 다 아는 현대인들의 해석과 느낌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서는 정치란 철저히 힘의 논리를 따를 뿐이죠. 12. 12 군사정변 역시 국민들 사이에서 어떤 정치인들이 명망을 얻었느냐와 무관하게, 군부의 실력자(아무리 인지도가 떨어져도)가 당연하다는 듯 실권을 거머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하물며, 이숙번은 세력도 모았고 정권에 기여한 바도 컸으며 무엇보다 이성계의 집안보다는 평판이 높았으므로 태종이 경계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숙번은 조선 최초의 문과(대과) 급제자로 기록되며, 이 점은 드라마 <용의 눈물>에도 분명히 묘사됩니다. 하륜 등이 최종 면접관으로 그를 만났는데 대담한 언행으로 좌중을 당혹게 했다는 식이지만 실제 역사가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 조선에서 시행된 문과가 처음이었으니 아무래도 어설픈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과거 자체는 고려 광종 때 처음 도입되었으므로 이숙번의 시점에서 근 오백 년의 역사를 지닌 노숙한 제도였겠습니다. <추동궁마마>에 보면 과거라는 게 여러 번 시행된 적 있다는 듯 "이번" 같은 관형어구를 붙여 말하는 대사가(원경왕후, 즉 "추동궁마마"의 입을 통해) 나옵니다. 신봉승의 <추동궁마마>는 시청자의 재미를 위한 각색이건 고증 오류이건 간에 저 이숙번을 가노 비슷한 위인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실제 역사와는 분명히 어긋납니다. 여기서는 대배우 김승호씨의 아들 김희라씨가 이 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당시에는 탤런트들이 KBS이건 MBC건 양사 중 한 군데에 전속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후에는 이분이 KBS로 옮겨 시청자들을 만나게 되죠. 김희라씨는 영화에도 자주 나왔고, 주로 호쾌한 액션물에서 시청자들과 관객들에게 어필했었습니다. 저 드라마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인데, 하륜이 종종 방문하는 어느 산사에 고려 왕실 출신 처녀 하나가 유모와 함께 신분을 숨기고 피신을 합니다. 청년 이숙번은 그런 사정이야 전혀 모르고, 예쁘장하게 생긴 처녀를 보고는 "절 소속만 아니면 내가 당장 업어갈 텐데."라며 더러운 눈빛을 던집니다. 이후 숙번은 대과에 급제한 후 드디어 "자격"이 생겼다 여겼는지 바로 패거리를 이끌고 와서는 이 여성을 납치하는데, 처녀는 불과 며칠 전 어느 불목하니와 혼례도 올린 유부녀인 터라 문제가 커집니다. 내가 대과까지 급제했으니 이제는 이 정도 비위가 눈감아질 거라 여긴 건지... 이때 경기감사 하륜이 몸소 말을 타고 숙번의 집에 찾아와 혼을 내 주는 ㅎㅎ 물론 터무니없는 소립니다. 그 후손들이 알면 문제의 소지가 충분합니다. 극의 재미를 위한 픽션에 불과하죠. 이때 왕씨 종실 출신 처녀 역을 맡은 이가 바로 김한길 전 대표의 부인인 최명길씨입니다. 대사도 별로 없는데 그야말로 리즈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