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네디와 나]를 연관시키기까지 참 오래도록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끝까지 이야기의 결말을 예상하기 또한 어려웠다. 비록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 동안 내가 읽었왔던 프랑스소설에 비추자면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장폴 뒤부아의 작품은 접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써내려간 문체들은 독특하면서도 문장들이 섬세하고 정교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때론 돌발적인 이야기 전개 설정들이 책의 흥미를 더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흔다섯 살 중년 남자의 진정한 자아 찾기! 우스꽝스런 일탈과 방황을 통해 무기력한 생으로부터의 탈출을 모색하는 한 남자 이야기! 어찌보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능력에 무기력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중년남자, 그리고 그의 아내 안나의 외도에는 정확히 누구만의 잘못으로 치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사무엘 폴라리스는 권총을 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권총은 외도한 그들이 대상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이에게 들이대는 과정이 지켜보게 된다. 또한,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보이는 소설 속 케네디의 존재도 이 책을 한층 더 흥미롭게 이끄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마흔 다섯의 중년 남성 사무엘처럼 과연 무능력과 무기력인 삶으로 일관하고 아내가 대신 경제적 능력을 책임지는 삶을 살아간다는 상상은 쉽지 않다. 경제력을 상실한 사무엘은 마치 가족들에겐 투명인간과 같은 존재로 비추어지고 있다. 그러던 중 25년 함께 살아온 부부이지만 서로를 잘 모르겠다고 표현하는 내용을 접하게 된다. 오랜동안 가족으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관심보다는 무관심이 오히려 편할 때가 있는데 그런 측면을 비판적으로 잘 꼬집어 표현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그런 사소함의 무관심이 주인공 부부에겐 아내의 외도와 남편의 방황과 분노를 이끌어 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진정한 부부의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는 책이다. 다행히 처음과 끝의 권총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결말도 아니요, 멀어진 부부의 관계도 어느 순간 서서히 자기 자리를 잡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케네디가 마지막 순간에 차고 있다던 시계의 진실은 작가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책의 표현대로 시계를 소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의심과 불안으로 살아가지는 않을까? 케네디의 시계를 우리의 인생에서 다르게 비유하자면 과연 무엇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듯 [케네디와 나]는 소설이지만 나름의 생각을 많이 갖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
케네디와 나 처음 책을 접할 때는, 케네디라는 책의 이름 때문에 미국 대통령인 케네디와 관련이 있는 소설인줄 알았다. 헌데 착각이었다. 전혀 상관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폴 뒤부아 작가는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한 적이 있지만, 그 내용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장폴 뒤부아라는 작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전혀 생소하지 않은 작가였다. 그의 대한 검색을 해보고, 난생 처음 보는 이름에, 프랑스의 신인작가인줄 알았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케네디와 나의 작품은 절대 쉽게 쓸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총을 샀다는 말로 시작한 이 소설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황을 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돌파구를 찾는 한 남성의, 전혀 남 이야기 같지 않은 소설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지루할 때도, 숨이 막힐 때도, 답답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여기 이 남자도 일상이 지루하고, 업무에 지쳐서 힘들어한다. 그가 이럴 때, 어떤 일탈은 꿈꾸었을까? 어떤 것들을 하면서, 자신을 되찾고 있을까? 그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정말 극단적이다. 권총을 산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보면 지극하게 정상이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권총을 사라고 자꾸 재촉하지 않는가.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 해결되지 않는, 알 수 없는 감정들. 그에게 남은 고통들을 어떻게 극복해낼까. 서재가 지하에 있는 느낌을 어떨까. 정말 제일 궁금하다. 이 작품에 또 특이한 점이 많다. 특이한 것에 관심을 보인다. 평범해보였던 것들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도요타 자동차, 담배, 치과의사, 바다... 굉장히 매력적인 남성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하지 못할 일들을 그가 대신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시크한 매력이 정말 매력적이다. 시크한 행동, 시크한 말투, 왠지 시크해서 더 끌린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장폴 뒤푸아란 작가는 굉장히 까만 매력의 소유자란 생각이 들었다. 삶의 절망적인 부분을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하기도,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마냥 웃기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지만, 진지한 이야기다. 읽으면 읽을 수록 그 깊이가 점점 느껴진다. 새롭고 진부하지 않아서 좋다. 소설의 중간 중간 조금 지루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점점 더 빠져드는 매력은 스릴러소설이 아닌 타 소설에서 보기 힘든 점이라 작가의 재능에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울한 감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남이야기 같지 않고, 암울한 현실이 녹아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일탈을 꿈꾸는 남자를 보면서, 이 시대의 남성들도 조금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의 우스꽝스런 탈출을 말이다. |
|
1인칭 "나"는 사무엘 폴라리스이다. 2류작가 수준쯤 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백수이다. 아내 안나 폴라리스가 언어 치료사로 가장의 역활을 하고 있다. 생방송에서의 방송사고후 수년동안! 집에서 칩거한다. |
|
케네디와 나, 이름이 어떠한가? 뜬구름잡는 느낌? 케네디가 개 이름도 아니고, 미국의 사랑받던 대통령 이름인데 왜 갑자기 나왔을까. 여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이다. 뭔가 '왕과 나' 같이 로맨틱한 내용일지도, 혹은 정말로 주인을 지키는 충직한 개犬와 그와 함께 늙어가는 장년 남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니었다. 나는 첫 장에서부터 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거장의 숨막히는 사건 전개 때문에 나는 정말, 숨이 막혀 이 책을 읽는 내내 어쩔 줄을 몰랐다.
이 책에선 주인공에게 케네디가 암살 당시 차고 있었다는 해밀턴 시계가 운명처럼 다가온다. 주인공에게 다가온 케네디의 시계처럼, 나에겐 이 책이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어떤 책도 45세 즈음의 중년 남성-혹은 여성- 어쨌든 45세를 먹어가는 인간에 대한 분석과 그들 마음의 공허를 이렇게 잘 표현해 준 책이 없었다. 고백하건대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주루룩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이 책을 던져 구석에 쳐 넣을 뻔 했다. 중간 중간 성적인 묘사들 때문이었다. 나는 지레 짐작하기를, 이 책은'어떤' 프랑스의 고약한 심미학자가 쓴 미치광이의 글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상까지 받은 고상한 책 속에서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인가? 라고 '오 말도 안돼'라는 탄식이 머리 속을 휘저었다. 하지만 첫장부터 어쩔 수 없이 글을 읽게 되는 순간 - 작가의 탁월한 문체와 마음을 빼앗는 표현들, 독자의 공감대를 끌어내며 동료의식을 느끼게 하는 통쾌함, 배배꼬지 않고 자신의 느낀바를 모두 유머로 표현하는 솔직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된다.-그런 성적인 묘사들은 그냥, 현실 속의 한 장면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다른 부분을 읽지 않으면 그냥 포르노일 뿐인 성묘사들은 책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들로 그냥, 그 자리에 있다. 요새 영화에서 외설이니 예술이니 하는데 연극 무대에서 여배우가 옷을 다 벗고 연기하고, 그 연극이 매진사례가 되고, 여배우가 정신병원에 실려가서 다른 여배우로 바꾸고 하는 해프닝을 벌이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외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나는 단지, 이 책을 30세 이상만 읽을 수 있도록 법으로 제정해 놓고 그런 헛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산다는 것의 아이러니.. 전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족이라는 집단.. 이해 불가능한 개인 개인의 삶은 가끔씩 툭툭 터져나오는 말썽들로 부각되고, 곧 잊혀지기도 하고, 가족들 가슴에 상처로 남게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이해못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이 되는 이유는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20년 이상 같이 살게 되면 아무것도 모르게 되기 때문이랜다. 처음엔 잘 알 것 같은데 결국 정말 모르는 사람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100% 이해 받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답답하고, 반항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싫어하고 내다 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부부끼리 바람이 나고, 외도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저자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섬세한 필체로 담아냈다. 그리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같은 로맨틱 코미디 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든다. 당신이 책에서 45세를 살아가는 중년의 삶을 맛보고 싶다면, 나는 이 책이 바로 당신이 찾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 평범한 45세의 인생이라 할 때, 그는 FBI이거나 암살자이거나 기호학자이거나 마법사이어서는 안된다.) |
|
어제나는 권총을샀다로 시작하는 케네디와 나 제목갖는 의미가 무얼까 생각했다. 사무엘 폴라리스란 남자는 중년의 나이에 무기력증에 빠져 가족과 세상 모두와 단절하고 섬에 갖혀버린것 같다.
사무엘은 소설작가로 방송에 페널로 출연중 진행자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괴성을지르면 나가버린다. 사무엘은 침묵의 순간에 다른사람의 당황하는 모습속에서 기쁨과 자유를 느낀다. 그이후 그는 절필을하게되고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못한다. 그렇게 그날의 사건이후로 세상과 담을쌓고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버린 사무엘은 자신의 무기력한 상황을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남아 그가 생각하고 느끼는건 이질감이다. 가족들의 행동하나 하나에 이질감을 느끼며 동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자식들조차 불편한 존재로 인식한다. 쌍둥이가 태어났을때부터 그들의 관심거리인 컴퓨터까지 모든것에 거부감을 느끼며 불편해한다. 딸의 선택인 치과의사또한 경멸한다. 정신적인 내면에대한 성찰없이 물질에만 집착하고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사무엘은 가족구성원에대한 애정이 없을뿐만 아니라 자신에대한 애정또한 그날이후로 땅속에 뭍어버린것 같다.
사무엘의 가족은 유령처럼 겉도는 사무엘의 존재감을 잊어버린다. 그로인해 가족들은 사무엘이 없는 생활을 만들어가고 사무엘은 그런 가족의 행동을 자신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평가한다. 사무엘은 안나의 불륜을 알고있다. 같은병원의 귀전문의 잔센을 찾아가 진료를 하고나온다. 잔센의 행동을통해 자신이 안나의 남편임을 알고 불편해하는 그의행동을 관찰한다.
사무엘의 무기력은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게되면서 서서히 깨어난다. 그는 자신안에 내제되어 있던 분노의 일부분을 밖으로 표출한다. 치과의사를 무는 행동 그리고 자신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권총을 들이대면서 나의시계를 달라고 요구할때 그는 실제 그의 모습은 총이 발사될까봐 방아쇠에 손락을 멀리 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었다. 일탈된 행동을통해 자신을 찿게된다.
너무도 엉뚱한 사무엘의 정신세계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자식을 거부하고 아내를 거부하며 혼자 칩거하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어느날 아무런 이유없이 무력감에 빠질수 있을수 있다는 짐작만 할뿐이다. 스스로를 가둬버린 그가 정신과의사로부터 찾은 자신의 시계를 통해 무기력에서 어나올때 모든걸 다 이해할수는 없었지만 한가지는 알수있었다. 다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는걸 말이다. |
|
폴라리느는 그의 가족에도,일에도, 돈에도 관심이 없다
자신의 삶에 조차도 열정이 없이 사는데 무엇이 그를 열광케 할까...
그의 아내 안나또한 그의 동반자답게 그와 다른듯 닮은꼴이다
그의 딸 사라는 20대 초중반의 나이로(나와 같은 나이인데 많은 이질감을 느끼게한다)
성공이 눈앞에 있으며 출세의 욕망에 사로잡힌 속물이다
외아들인 폴라리스의 쌍둥이 아들들또한 그에게 삶의 혼란을 주는 존재들이다
이럿듯 가족이란, 서로에게 숨막히는 존재이며 끝없이 다르고 그저 책임감이라는 사회적
요구때문에 서로를 부양해야 하는것이다
작가는(폴라리스) "관심없다"는 듯이 가족들을 묘사하지만 끝없이 되풀이되는 불평속에
그가 얼마나 그것들에 지쳐있는지를 나타내고있다
''무엇이 되느냐'' 보다는 ''어떻게 되느냐''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단어하나,문장 한줄에도
회의감과 우울함이 배어나와 파랑색과 흰색으로 경쾌하고 발랄하게 전체를 감싼 책 커버
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특별한 희망이 존재하지 않은 삶에 아둥바둥하기 보다는 체념한 듯한 그들의 모습에
나이도 어린 내가 비슷한점을 발견했다며 공감한다면 사람들은 건방지게 느낄까?
소설은 삶의 모습을 하나의 이야기로 응축시킨,아니면 그 삶의 단면을 세밀하게 묘사시킨
것이다
이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야기는 무엇일까
삶은 하나의 결정적 순간을 위해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운명적으로 전개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를 괴롭혔던 가족들간의 소통문제도,치통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도,무관심으로 인한 자
기혐오적 정신적 고통도, 결국 케네디의 시계를 그의 손목위에 얹기위해 일어나는 것일
듯하다
허무한 마음을 그리고 있지만 인생은 결코 헛되이 살면 안되며,결코 허무하지 않다는것
을 깨닫게 해준다 [인상깊은구절] 폴라리스의 정신과 의사가 시계에 대해 설명하는구절 "폴라리스 선생,결국 그날 저는 상당한 값을 치르고 그 시계를 샀습니다 그런데 제가 산 것은 시계가 아닌 의심이었단 느낌이 듭니다 끝을 알수없는 의심이지요 그뒤로 해밀턴 시계는 제 곁을 떠난적이 없습니다.저는 그 시계를 잃어버릴까봐 겁이 나 서 손목에는 절대 차지 않습니다. 바지 주머니속에 넣어두고 왼손으로 시계를 항상 꽉 움쳐쥐고 있지요 |
|
작가의 자서전 같은 책 입니다. 모든 걸 쏟아부어 책을 집필 하지만 더 많은 걸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 어느날 토크쇼에서 작가는 자신의 모든 걸 토해내 듯 소리를 질러 대고는 자신의 안에 침잠 합니다. 글도 안쓰고 부인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고... 자식들의 생활 방식에 환멸을 느끼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그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세상이 뭔가 이상하고, 자기식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작가가 담백해 보입니다. 명성과 형식과 본능만을 따라 가는 세상... 조용히 바라보며 자신안에 뭔가 채워가는 작가... 처음과 이어지는 끝을 보며 뭔가 젠채하는 프랑스 문학의 특성 보다는 작가의 고뇌와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담백하게 그려내 호감가는 책입니다. 원제 역시 '케네디와 나' 네요~ 어째서 케네디가 나오는지는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
|
'장폴 뒤푸아'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프랑스 작가다. <케네디와 나>는 1996년에 발간된 소설이다. 14년이나 된 소설이고 번역본인 이 책이 나온 것도 2006년도이니 4년이나 된 소설이다. 소설은 제목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면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 하는 소설이다. 조금은 독특한 일상이랄까..
주인공 폴라리스, 전직 작가로 열 편 정도의 글을 쓰고는 절필한 사나이다. 병원에서 언어치료사로 일을 하는 마누라 안나와 치의대 다니는 큰 딸 사라, 그리고 전자공학에 빠져있는 쌍둥이 아들인 자콥과 나탄, 이렇게 네 사람이 주인공의 가족 전부다. 가족들에게 주인공 폴라리스는 집에서는 없는 듯 한 사람이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을 뿐아니라, 자신도 다른 식구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부인인 안나가 다니는 병원의 치과의사와 불륜의 관계인 것을. 그런데도 아내와 헤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 불륜의 현장을 보고싶어하는 좀 엉뚱한 사람이다.
소설은 처음 시작하는 문장이 우낀다. '어제 나는 권총을 샀다. 그것 전혀 나답지 않는 행동이다.' 케네디가 나왔기에 1963년에 암살당했기에 이 문장이 처음에 주는 분위기는 제법 뭔가가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고 책을 덮을 때까지 궁금증이 나래를 펴고 다녔다.
주인공이 허무주의로 빠져든 가장 큰 이유가 작가 시절에 자신의 모든 삶을 글로 담아내고 나니 더 이상 담아낼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러한 허무주의를 일탈할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가족들 몰래 쿠리아킨이라는 정신과 의사로 부터 치료를 받았고, 치료비가 떨어질 무렵 두 사람은 재미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가 일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들을 주고 받는다. 이 대화속에서 케네디가 등장한다. 암살당하기 1년전에 케네디가 누군가로 부터 받았다는 해밀턴 시계가 바로 허무주의를 일탈하는 계기가 된다.
가식이 싫어 절필을 하게 되었던 주인공 폴라리스의 시각에서 보면 하루하루가 지루한 하루지만 가족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남편이고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가 본 폴라리스는 속으로 꽁한 감정을 숨기면서 가족에게 무관심한 듯이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안나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소설도 재미를 더한다. 느닷없이 보게되는 권총 때문에 겪게되는 정신적인 갈등이 있는가 하면, 불륜의 장면을 보았던 과거 어린시절이나 처녀시절을 넘나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덮고나서도 한참 동안을 그냥 멍하니 있었다. 프랑스적인 삶이 나에게는 많이 낫설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풀려버리는 사건의 진행마저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그러면서 문뜩 든 생각은 나라면 하는 생각이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인공과 똑같지 않았을까?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에 쓴 웃음만 나온다.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집에서 논다면 아마 우리집에서는 무능한 가장 일하러 나가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
|
제목만 본다면 정치색이 가득하다. 하지만 전혀 정치와 상관없다. 물론 케네디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케네디가 죽을 때 차고 있었던 시계와 관계있다. 그것이 비록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케네디와 나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루면서 어느 날 전혀 글을 쓸 수 없게 된 한 소설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권총을 샀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다시 글을 쓰게 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화자와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삶은 풍자적이고 뒤틀려 있고 우스꽝스럽다. 열 권의 책을 내었고 세 아이의 아버지인 마흔다섯 살의 사무엘은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쓸 수 없었다. 책을 쓸 수 없으니 아내는 다시 언어치료사로 취직을 했고, 그 병원의 이비인후과 의사와 불륜을 저지른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관심이 없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애정이 사라졌다. 권태와 무력감이 그를 지배한다. 그러다 산 권총은 그의 기분을 순간적으로 좋게 만든다. 2년 동안 쓸 수 없었던 글을 쓰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삶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 첫 걸음이 바로 아내의 불륜상대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다. 불륜상대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면서 그의 상상력은 멈추지 않는다. 기대와 빈정거림이 교차하고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런 그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한 줄기가 진행된다면 그의 아내는 또 다른 한 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부부가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이끌어 가는데 그 중심엔 언제나 사무엘이 있다. 그의 갑작스런 절필과 무관심은 아내로 하여금 일탈로 이어지게 만들고, 그 일탈은 그녀 자신의 바람이라기보다 상황이 만든 현실이다. 정부에게 실망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그에게 몸을 허락하고, 다시 멀리하는 상황은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처음 사무엘의 행동을 보면서 이렇게 뒤틀릴 수가 있나 생각했다. 어른으로 아버지로 참으면 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빨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자신의 학력을 위해 아빠의 이를 치료한 의사를 두둔하는 딸이나 직장 때문에 비호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가족이란 테두리가 없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아빠나 남편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이익이다. 특히 권위로 무장하고 환자를 무시하는 의사를 볼 때 공감대는 더욱 높아진다. 이 불안하고 무관심한 부부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은 바로 자신들의 세계가 침입 당했을 때다. 딸 사라의 남자 친구 한스가 그들에게 조언을 할 때 이 둘은 공통의 적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 공감대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무엘이 갑자기 집착을 가지게 되는 케네디의 시계는 환멸과 허무와 무관심을 세계를 깨트리는 역할을 한다. 조롱과 빈정거림과 순간적인 폭력을 보여줬던 그가 젊은 시절의 활기와 용기를 다시 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무엘이 총을 산 것이나 아내가 추운 날씨에 수영을 한 것은 살아온 흔적을 지우려는 서투른 의지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부부가 느낀 삶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따뜻하고 친밀하고 상호의존적인 가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사람이 아닌 지위나 권위나 물건에 집착하는 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사무엘이 지하로 내려가서 안정을 찾는다. 이것은 외부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 느낀 무력감이나 불안이 좁고 어둡고 안락한 환경의 지하와 집착하던 물건을 가지게 됨으로써 바뀌게 된다. 반대로 아내는 남편의 서재 속에서 갇혀 있던 감정을 해소하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 대조가 앞의 대립과 익숙함을 넘어 부부 사이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
|
간단한 어떤 말이라도 부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코 그 따위 어휘를 입 밖으로 꺼내 말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나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어휘와 지나치게 동떨어진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그 언어는 곧바로 금이 간 청동처럼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 232p-
나도 모르게, 이런 저런 사회적인 고정관념, 제도, 관습 같은 것에 물들어서 " 반드시 ~ 해야한다"는 쓸데없는 사명감(?)은 왜 종종 생기는걸까?
한 마디로 웃기는 짜장이다.--;;
45살 정도의 남자. 한국형으로 본다면, 주식이나 아파트 투기로 돈을 좀 벌어놨거나, 애들은 커가는데 명퇴같은 것으로 인하여 밥벌이를 잃게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혹은 돈버는 기계로 전락해 버린 남루한 가장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나이.
우리 문학작품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자식을 귀찮아 한다든지,와이프의 외도에 대한 사뭇 쿨~ 한 반응과 태도, 주류집단(치과의사)에 대한 냉소(책에서는 깨물어버리는 행위) 등이 읽는 내내 어찌나 통쾌하게 와 닿던지...
개개인의 인생이...마치, 인스턴트 라면 끓이듯, 똑 같은 양의 물과 스프만 넣어서 만들어질수는 없지 않을까??
대학은 꼭 가야하고, 결혼은 꼭 해야하며, 애들은 꼭 낳아야하고, 그렇게 만든 가정은 무조건 비둘기 가족처럼 행복해야하며, 나잇대에 맞는 아파트 평수는 반드시 확보해야하는가? 그리고...그렇게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살아면서... 이런 저런 가식으로 똘돌 뭉쳐야 제대로 된 인생인가...에 대한...(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살짝 맛이 간 사람처럼 낄낄 거리면서 읽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모습이 흐믓했고... 실제 권총은 아니지만...나도 총 한자루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그의 즉흥적인 행위 하나하나가 일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사람이 왜 태어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것 거리낌없이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짧은 책이 주는 여운이 강하다.
ps.자, 세상아 덤벼라.!! 까불면 확 깨물어버릴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