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개의 고원> 사이의 육교와도 같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의 사유에서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욕망 그 자체가 분열적이며, 혁명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카프카>에서 '배치된 욕망'에 대해서 사유합니다. 이것이 <천개의 고원>의 아홉 번째 고원에 그대로 이어지면서, 탈주의 선, 견고한 선, 유연한 선이라는 개념을 창조합니다. 이 '배치된 선'의 개념 역시도 <카프카>에서 이미 보여진 것이기도 하죠.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바로 '배치'의 문제니까요. 또한 책제목에서도 나타나있듯이 '다수'와 대립되는 소수'의 개념도 빼놓을 수 없겠죠. 때문에 이 책은 <안티 오이디푸스>읽은 후 <천개의 고원>으로 넘어가려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들뢰즈를 깊게 공부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특히 카프카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그것은 무익한 짓입니다. 이 글은 카프카의 입을 빌렸을 뿐, 결국 말하고 있는 것은 카프카가 아니라 들뢰즈와 가타리이니까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언급된 그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카프카는 그저 '개념적 인물'일 뿐입니다.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한 이진경씨와 <의미의 논리>를 번역한 이정우씨, <칸트의 비판철학>, <프루스트와 기호들>의 서동욱 씨 등이 같은 용어들을 서로 다른 용어들로 번역하였는 점에 꼭 유의하시며 읽으시길 바랍니다. 이 점을 꼭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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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문학을 (성, 변신, 아메리카 등) 들뢰즈 철학을 통해 읽고 있다. 들뢰즈를 해석 틀로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들뢰즈는 카프카가 자신이 말하는 철학적 내용들을 문학을 통해 선취했다고 말하고 있다. 문학을 통해 재미있게 들뢰즈 철학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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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 바라본 카프카는 일반독자에게 친숙한 그런 상식적인 차원의 실존주의 작가나 모더니즘 작가가 아니다. 들뢰즈의 문학담론에서 카프카는 삶과 문학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 문학기계와 '소수문학'의 증인으로 등장한다. 카프카의 일기,편지,단편, 미완성의 소설 모두가 이런 글쓰기기계의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들뢰즈는 카프카 문학의 혁명성을 분열분석적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욕망기계의 미시정치학을 드러냈다는 데에서 찾는다. 카프카의 문학은 서양의 나무모양의 전통코드와는 다른 리좀 코드 또는 동굴 코드다.
여기서 카프카는 현대성 문화를 진단하는 문화의사가 된다. 카프카는 미래의 악마적인 권력을 진단하고 그러한 권력으로부터 탈주선을 처방하는 문화의사이다. 카프카는 더이상 오이디푸스적 서사, 고독, 고행, 신비, 우울의 작가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기쁨과 유머가 녹아든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지닌 반개인적인 문학기계의 창조자로 거듭난다.
들뢰즈의 소수문학이란 언어적 문화적 소수 집단에 의해 쓰여진 문학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언어의 소수적인 사용, 즉 언어적 변수들을 불균형 상태에 처하도록 조종하여 생성되는 문학을 가리킨다. 학자들은 소수문학의 개념을 문화적 소수자나 문화적 정체성에서의 아웃사이더적 관점과도 밀접한 관계를 짓는다. 가령 소수문학과 소수연극과 같은 '소수'스타일은 커밍스나 베케트의 사례를 포함한다.
문학에서 들뢰즈의 생성론은 소수문학과 생성동물(becoming-animal)의 개념으로 변주된다. 들뢰즈는 소수문학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조작적 정의는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언어적 측면에서 주류언어를 사용하지만 내부에서 주류언어를 전복하는 소수문학의 특징을 언급한다. 예컨대 언어문화의 탈영토화, 정치성(반정신분석), 집단가치 등이 그러하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소수문학은 단순한 동일성 정치학에도 반대하고 무분별한 잡식성 정치학에도 반대하는 글쓰기다. 이런 소수문학의 목적은 미래의 사람을 발명하는 것,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집단성을 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변신]에서 재현되는 생성동물은 존재동물(being-animal)의 대립되는 개념으로 비인류적인 생성을 말한다.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본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과 동물의 이원적 대립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상호간의 탈영역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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