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끊임없이 새로운 무질서를 꿈꾼다.
"끊임없이 새로운 무질서를 꿈꾼다." 내용보기
질서의 심화는 경직이다. 경직은 모순, 특권을 낳는다. 우리는 유교문화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살았다. 질서의 파괴는 무례가 된다.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은 사회 속에서 배척된다. 질서는 조화이며 규칙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질서도 조화이며, 질서와 무질서의 변증법적 관계가 비로소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정에서의 예의(가부장적 권위),
"끊임없이 새로운 무질서를 꿈꾼다." 내용보기
질서의 심화는 경직이다. 경직은 모순, 특권을 낳는다. 우리는 유교문화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살았다. 질서의 파괴는 무례가 된다.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은 사회 속에서 배척된다. 질서는 조화이며 규칙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질서도 조화이며, 질서와 무질서의 변증법적 관계가 비로소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정에서의 예의(가부장적 권위), 사회에서의 권위(노인, 윗사람에게의 종속적 권위)는 수평을 파괴하고 수직을 강조하는 질서의 미학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질서 속에 무질서의 충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 대한 무질서의 도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혼란 속에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이 혼란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꿈을 위한 혼란이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한 혼란이다. 질서와 무질서는 만난다. 우리의 전통사상은 음양(陰陽)이 있고 음양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질서와 무질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5천년 전통은 이 질서와 무질서의 조화를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무질서를 인정하는 성숙된 사회의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무질서를 인정하는 관용적인 사회, 다양성을 가진 사회가 부럽다. 우리사회의 쏠림현상(syndrome)은 다양성을 배척하고, 일종의 질서를 만든다. 유행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질서는 비관용적이다. 그래서 질서 속에서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개체가 생긴다. 모든 행동의 책임을 개인에게로 덮어씌운다. 사회가 책임질 상황은 분명히 있다.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과 거기에 편승하여 자신의 지식을 파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침묵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도 책임이 있다. 선과 악 그리고 회색지대, 우리는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삶이 아닌, 다양한 삶 속에 인간의 노력과 영혼을 쏟아 넣을 수 있다. 그것은 가능성의 삶이고, 변화의 삶이고, 퇴보의 삶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책임을 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책임을 인간 스스로가 진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제도 속에 갇혀 있기도 하다. 거대한 벽 속에 있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 벽은 높고, 투명하여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역사상 몇 개의 제도 - 원시 공산제, 노예제,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 -를 가졌다. 우리는 견고한 것처럼 보였던 문화와 제도를 바꾸어 나갔다. 우리는 바꿀 수 있다. 무질서 와 질서는 변증법의 관계이다. 우리는 관계성의 산물이다. 우리의 관계는 질서와 무질서의 변주곡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새로운 무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성된 질서- 자본주의 사회-도 완성된 무질서-반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다.
t******s 2004.05.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혼돈, 그 안의 질서.
"혼돈, 그 안의 질서." 내용보기
세상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기 보다는, 찢어진 청바지를 선호한다! 그의 책은 신선하다. 기존의 정도를 따라 걷는 철학과는 무언가 다르다. 가벼운 듯 하면서도 심오한 무언가가 있고, 그러면서도 쉽게 쉽게 읽힌다. 그렇다 하여 너무도 대중적이어서 무게감 없고 속되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엔 익숙한 것들이 너
"혼돈, 그 안의 질서." 내용보기
세상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기 보다는, 찢어진 청바지를 선호한다! 그의 책은 신선하다. 기존의 정도를 따라 걷는 철학과는 무언가 다르다. 가벼운 듯 하면서도 심오한 무언가가 있고, 그러면서도 쉽게 쉽게 읽힌다. 그렇다 하여 너무도 대중적이어서 무게감 없고 속되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엔 익숙한 것들이 너무도 많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당연시 여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감고, 옷 입고, 밥 먹고 하는 일상의 행위들. 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지 아니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기억할 따름이며, 그 안에 있는 질서와 무질서의 혼돈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떠한 행위도 무가치할 순 없다. 사회적 흐름 속에서, 사회가 옹호하는 하나의 틀 내에서 '질서'로서 존재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인정받는 모든 것들은 질서일지도 모르겠다. 1+1은 2이고, 원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파이알의 제곱이라는 공식을 이용하는 것 까지도... 우리는 당연히 진리이고, 수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질서의 틀을 깨고, 사회에 도전할 때, 비로소 우리는 '무질서'에 눈을 뜨게 된다. 무질서는 질서와 양립하는 것이 아니다. 질서 내에 늘 존재하는 무질서는 질서의 완고하고 완벽해 보이는 틈을 공략하고 있다. 조금 무디어진다 싶으면 언제나 깨고나올 수 있을 정도로 긴장한 체 말이다.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담론, 패러다임의 생성과 소멸이 바로 질서와 무질서의 반복을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질서한 것이 좋다고 과감히 말하는 그는, 얽매인 틀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이며, 스스로를 해방시켜온 존재인 듯 하다. 번듯한 직장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으며, 자신이 하고팠던 것에 대해서는 과감히 추진하는,.. 그런 그가 쓴 책 역시 과감하다. 모든 세상은 무질서로 이루어져있다. 나는 무질서 속에서 또 다른 질서를 발견하며, 내가 그 질서를 발견할 때쯤, 세상에 존재하는 무질서는 질서가 되어 있으며,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무질서가 탄생하고 있을 것이다.
q*****2 2002.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켁.켁.체한다.
"켁.켁.체한다." 내용보기
이탈리아에서 한가닥 하려면 참어렵겠다.  로마, 그리스 문명을 아우르지 않고, 라틴어, 그리스어를 쓸 줄 모르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는 척 하지 않고서는 배운척, 아는척 하기 어렵겠다. 그런데 그걸 다 배운 사람들은 정신이 약간 유머스럽게 되는 특성이 있나보다. 크레센초나 에코나 심각한 주제를 허무하게 사람을 웃긴다.(이런 사람들이 아니어도, 이탈리아 사
"켁.켁.체한다." 내용보기
이탈리아에서 한가닥 하려면 참어렵겠다.  로마, 그리스 문명을 아우르지 않고, 라틴어, 그리스어를 쓸 줄 모르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는 척 하지 않고서는 배운척, 아는척 하기 어렵겠다. 그런데 그걸 다 배운 사람들은 정신이 약간 유머스럽게 되는 특성이 있나보다. 크레센초나 에코나 심각한 주제를 허무하게 사람을 웃긴다.(이런 사람들이 아니어도, 이탈리아 사람하면 마피아 아니면 뚱뚱한 웃긴 아저씨가 생각나다가... 문득 실버스터 스탤론이 이탈리아계라는 생각에 움찔한다)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를 무질서하게 늘어 놓자면   0 은 무신론자들에게서의 죽음, ∞(무한) 은 유신론자들에게서의 죽음 0과 ∞을 곱하면 얼마일까?  n이 자연수 일때,  n ÷ 0 = ∞,  n  ÷ ∞ = 0 이므로 0 x ∞ = n 가 된다. (0 이 질서이고 ∞ 이 무질서면 이 둘이 곱해지면 모든 수가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무작위 점을 찍어서 면적을 구하기. 랜덤한 숫자 수만개를 10 x 10 에 다가 찍어서 도형안의 갯수와 도형 밖의 갯수를 구하고 전체 면적 대비를 구하면 그 대충의 너비가 나온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뽑아내는 방법을 통계하고 하였던가.   기원전 4세기에 에로스트라토스 라는 이름의 노인이 유명해지고자 하는  단하나의 이유만으로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에 불을 질렀다. 그나라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이름이 불릴 수 없도록 선고하고, 그의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게 법으로 금하였다. 그러나 에로스트라토스의 이름은 이탈리아 백과사전에 당당하게 실리었다. 불을 질러라. 새로운 것은 무질서와 같다. 새로운 것은 아름다움과 같다. 아름다운 것은 무질서와 같다. "인간은 색다른 것을 좋아한다." 예견한 것과 예기치 못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고 예견한 것은 질서이고, 예기치 못한 것은 무질서이다. 따라서 예술에서 사람은 무질서를 좋아한다. 연옥이란 곳은 천당도 지옥도 아닌, 가벼운 죄를 씻는 중간지점인데,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이곳은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개념이란다. 그전에는 저승에는 낙원과 불구덩이 뿐이었는데 연옥이 만들어지자 연옥은 모든 인류에게 크나큰 기회를 제공했다. 그 기회란.. "산자들은 고인들이 연옥을 벗어나서 천국으로 가도록 기도하고, 고인들은 산자의 꿈에 나타나 로토게임에 맞출 숫자를 준다."   등등등..   그래도, 무질서하게 늘어놓은 그의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 소화하지 못해서 켁켁거리고 있다.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대충 알겠는데, 좀 깊이가 있는 지성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그 심도에 접근을 하기 어렵다. 다만 밥먹고 나서 배불러진 후 바로 생겼다는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수학을 전공하고, IBM이라는 철학과 전혀 안어울리는 회사를 수십년 다니다가 소크라테스왈, 플라톤왈을 공부한 철학자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실없어 보이는 글도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기로 했다.  
g****r 2005.0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