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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체코하면 프라하의 봄이 우선 떠오를 정도로 저항정신이 투철한 민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체코의 작은 도시의 역에서 점령군과 체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흐르마는 수습과정에 있는 역무원입니다. 여자 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하고는 자괴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입니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그는 치료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게 되는데, 역무원도 네명이 불과한 작은 역이지만, 전선으로 가는 독일군이나 보급품을 실은 군용열차나 전선에서 돌아오는 부상병을 실은 열차가 자주 지나갑니다. 소심한 흐르마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프라하로 쳐들어오는 독일군 탱크에 맨손으로 맞선 유일한 체코사람이었습니다. 최면술사였던 할아버지는 당신의 최면으로 독일군들을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의병제대한 증조할아버지는 평생 연금을 받으며 동네사람들에게 뻐기다가 얻어터지기 일쑤였다고 하니 4차원을 사는 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전선으로 가는 열차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라고 열차운행표에 표시가 되어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열차가 예정보다 늦거나 하면 역무원들을 닦달하곤 했던 모양입니다. 역무원 몇 명 정도는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해도 아무 문제될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점령군의 위세가 등등했던 것입니다. 흐르마는 자신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기관차로 끌고 올라 간 친위대원의 모습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들은 시를 쓰거나, 아니면 테니스를 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43쪽)” 사실 나치의 광란에 휩쓸렸던 독일 국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추겨 전쟁터로, 강제수용소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흐르마와 같이 근무하는 후비치카씨도 별난 행동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같이 근무하는 전신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역의 직인을 마구 찍는 사건을 저질러 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후비치카씨는 조사관이 오던날 밤에 운행하는 독일군의 엄중하게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시키는 일을 제안하고 흐르마는 선뜻 일을 맡기로 합니다. 거사 전에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폭탄을 전하러 온 빅토리아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역장부인에게 부탁했다가 자신은 이미 갱년기에 접어들었다면서 거절을 당했던 참이었습니다. “이윽고 기관차가 내 밑을 지나갔다. (…) 열하나, 열둘, 열셋, 그 다음번 차량에, 들고 있던 폭탄을 마치 개울에 꽃송이를 던지는 것처럼 슬며시 아래로 떨어뜨렸다. 나는 정확하게 숫자를 세고 있다가, 목표 차량이 내 밑을 지나갈 때 그것을 던졌다. 폭탄은 투하하기로 정해진 차량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 작은 물건은 그곳에 있는 물건들과 함께 잠시 놓여 있다가, 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이다.(127쪽)” 흐르마와 같은 평범해 보이는 체코사람들까지도 점령군에 저항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자는 ‘일어나, 저항하라’라고 체코사람들을 일깨우는 주문을 걸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치 흐르마의 조부가 떨치고 일어나 독일군의 탱크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고서 “독일군은 탱크를 돌려 왔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라”라는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공산당에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말입니다. 프라하의 봄은 그렇게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영웅적으로 보이지 않는 보통의 체코 사람들의 핏속에서 잠자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한 전쟁에 나서는 일은 자의건 타의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흐라발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독일군 병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135쪽)” |
|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간이주점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부분=""> 사학과 1학년 교과과목중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강의가 있다고 한다. 갓 입학한 스무살 대학생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게 했을 교수의 첫 질문은 뻔했다. 교수는 학생들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자네는 역사가 뭐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자네는?''하며 묻고다녔다. 지겹도록 부딪혀온 그 질문에 학생들의 기대는 한풀 꺾였으리라. 그 뻔한 질문에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강의 첫 시간 내내 교수는 학생들의 역사에 대한 정의를 캐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강의시간이 끝나갈 때 교수는 말했다. ''역사란 말일세. 역사라네.'' 그렇다. 역사란 역사라네. 맥이 풀리는 동시에 명쾌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교수는 덧붙여 말했다. ''역사歷史는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서(止) 집을 짓고 (厂) 쌀을 재배(나무목木 두개가 있는 수풀림林위에 삐침이 두 개 붙으면 곡물을 재배하는 의미가 됨)하기 시작하면서 계층이 나뉘게 되고, 사람이 일어나는 일을 종이에 기록(史)하는 것이라네.'' 자의적인 해석인 것 같으나 현명한 해석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해석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사실의 역사와 기록의 역사이다. 사실의 역사가 과학적 고증을 통한 것이라면 사학자 자신이 고증을 통해 사료를 추려내어 주관적으로 정리는 것이 기록의 역사이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소설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 또한 작가의 눈으로 추려낸 기록의 역사가 될 것이다. 역사를 기록한 책을 보면서 그 책을 기술한 사학자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 처럼 나는 매번 책을 읽을 때면 작가의 이력을 꼭 살펴보고 그의 책에 녹아있는 의중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한다. 자칫 책의 흐름에만 감정을 내맡기면 작가의 눈에 나의 눈이 겹쳐보여 흐려지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를 보듯 조금 더 객관적인 눈으로 소설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 속의 모든 에피소드들을 작가의 생애와 연관시키는 의도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책은 유럽소설을 흥미있게 읽는 나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체코''의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작품이다. 유럽의 작가라면 체코 보다는 프랑스의 작가가 오히려 더 친숙하다. 그러나 찾아보고자 한다면 체코는 그리 생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란 쿤데라, 산도르 마라이 그리고 카프카도 체코 작가가 아닌가. 이들 작가들을 한꺼번에 떠올려보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체코''문학의 체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문호들 뒤를 잇는 작가가 바로 보흐밀 흐라발이다. 전쟁 때 독일군에 점령 당했던 체코에서 태어난 이 젊은이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경험으로 작가가 될 법도 했다. 명예로운 작가가 된 그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로맹가리와 더불어 정말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더이상 새로 탄생하는 그의 작품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왜 유럽의 작가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가는 돌연 죽어버리는 것일까.) 책의 제목인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병력이나 탄약을 수송하는 경계가 매우 삼엄한 독일군 열차를 의미한다. 이 책은 정치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의와는 관계 없이 역사에 의해 정신없이 사방으로 흔들리는 개개인의 역사를 비추고 있다. 그들의 컴컴한 역사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독일에 점령당해 엄중히 감시받았던 체코는 일본 점령하의 조선을 떠올리게 한다. 동병상련이라고, 빼앗기고 매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수 없는 그 무엇을 우리는 경험했기에 저 멀리 떨어진 나라인 체코인의 소설 안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심 책 속에 들어있을 어두운 역사의 뒷통수를 볼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상을 깨고 유쾌하고 박장대소 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마치 우리의 전통 문학에서 보여지는 한限과 대비되는 풍자와 위트처럼, 체코인들의 피에도 똑같은 울분이 있고, 그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기차역의 직원들이었다. 우리 역사의 테러리스트들이 그러했듯 그저 평범한 아들이자 아버지,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개인을 넘어서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소속감일 수도 있고, 언젠가 내팽개쳐질 민족주의이거나 개인적인 애국심이었을 수도 있다. 전쟁과 관련되어 있는 소설은 유쾌하지 않다. 가스실, 살육, 폭발, 기아, 이별, 보복 등으로 대변되는 이야기들과 함께 당시의 역사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그 안에서 웃을줄도 알게 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참 후의 현재를 살고 있는 나 또한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게 된다. 그러나 어두운 역사를 경험하지 않은 민족이 느끼는 책의 감동은 아마도 다르리라. 점령당한 조국에서 살고있음에도 그 현실이 익숙해져서 독일군도, 일본군도 그저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을 때, 전쟁이 나는 와중에도 연애도 하고 농담도 하게 되어버릴 때에도 주인공들의 마음 속엔 잊혀지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래서 보잘것 없이 평범했던 체코인 ''밀로시''는 폭탄을 끌어안고 숨어서 열차를 기다렸나보다. 자신의 폐가 총알에 찢기고 터져서 제 피로 흰 눈이 모두 붉게 적셔질 것을 알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젊은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질감으로 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우리를 괴롭힌 괴물들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어차피 모두 다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값지지 않은가 싶다. ''저 독일군도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받는 평범한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겠지. 그리고 그 가족은 그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고 있을 것이야. 하지만 그는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라고 함께 죽어가는 적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밀로시는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수많은 어리석은 희생을 부르는 것인지 말해주고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크지도 않은 욕심 때문에 곱절로 되갚아질 못난 짓을 꾸미는 것일까. 역사는 잊혀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것을.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엄중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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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들었을ㄸㅐ 책의 내용이 무지 암울하고 무겁고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제 2차 세계대전인 전쟁당시 독일인들에게 점령당한 체코의 작은 마을에 있는 기차역을 다니는 역무원들을 배경으로 이루어 진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약간은 엉뚱한 면이 있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습생 밀로시 흐르마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남자로서 성적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자살까지 시도하고 그 후로도 계속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만으로 소심하게 살아간다.
또한 저질적으로 묘사되는 후비치카지만, 그로 인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폭발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오로지 비둘기 키우는 것과 진급만을 생각하며 생활하는 역장...
이들 세명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독일인을 태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이들 세명이 지키는 이 기차역을 지나간다. 후비치카는 이 열차를 폭파하기 위해 밀로시 흐르마에게 폭탄을 기차역에 떨어뜨리며 이 기차는 폭파하게 된다. 여기서 흐르마는 독일인이 쏜 총에 폐를 맞게 되고 독일인은 흐르마가 쏜 총에 배를 맞게 된다. 똑같은 인간인데도 서로를 쏘고,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흐르마는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이곳 전쟁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마지막 흐르마가 죽어가면서 말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않아들 있을 일이지!"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이세상에 이런 끔찍한 전쟁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서로 상대를 겨냥해 총을 겨누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로 인해 서로가 죽음으로 내모는 일도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좋은 친구로 만났 수도 있었을텐데.... 20061030 [인상깊은구절] 만약 우리가 이곳 전쟁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고. |
| 이 소설의 저자는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에 대한 소개글에 ''가장 중요한 체코의 현대작가''라는 평을 받는다는 말에 어떤 작품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속에서 체코의 간이역을 배경으로 독일에 점령당한 체코인들의 슬픈 삶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곳곳에 주인공의 우스꽝스런 행동을 통해서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전후 소설의 특징과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후 소설의 읽으면 보통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손창섭의 <비오는 날="">이나 이범선의 <오발탄>등을 읽으면 희망을 잃고 방향성을 상실한 인물 등이 등장하여 전쟁으로 인한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거의 웃을 만한 내용은 전혀 제시되어있지 않다. 그런데 이 소설의 경우는 냉혹한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파시즘(전체주의)에 저항하는 인물을 다루면서도 인간애를 내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습 역무원인 20대 청년 흐르마의 엽기적이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행동들로 인해 전쟁의 암울한 상황을 그리고 소설이면서 어둡지 않은 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주인공이 자신이 좋아하는 마샤와 연애 모습을 통해서도 약간은 소심하면서 순진한 20대 청년의 귀여운 모습에 정감이 갔다. 전반적으로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을 좀 독특한 면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업무보다 비둘기 키우기에만 열중하는 역장이나 여자 전신기사의 엉덩이에 업무용 도장을 찍는 등 평범하지 않는 행동들을 하는 인물들의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주인공 밀로시 흐르마의 1인칭 화자의 이야기체로 전개된다. 이런점에 오상원의 <유예>가 떠올랐다. 두 소설의 공통점은 주인고의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소설을 이끌어간다는 것이이다. 그래서 어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소설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기억이나 느낌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화자의 의식에 따라 주관적으로 재구성되어 제시된다. 앞 이야기와 어떤 인과관계가 없이 갑자기 과거의 이야기가 삽입된다거나 하는 점이 비슷하다. 둘 다 전쟁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고 사용된 기법도 비슷하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 밀로시가 자살을 시도하는 부분에서 1인칭 화자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그 장면을 좀 더 사실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런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포와 허무함 그리고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것을 그리고자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공증사무소 서기. 선로감시원, 철도 배차원 등등 작가의 다양한 이력이 작품 속의 인물들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체코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는데 앞으로도 그의 또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랫동안 소련당국에 의해 체코에서 금지되었다는 사실도 읽는 이의 관심이 충분히 끌 만한 작품이다.유예>오발탄>비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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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작가인 보흐밀 흐라발의 작품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체코의 한 간이역을 배경으로 비참한 현실과 서글픈 삶을 기본 모태로 하되 인간의 존엄성과 전쟁의 패악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을 유쾌하게 표현하려는 보흐밀 흐라말의 작전은 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진행된다.
수습 역무원인 젊은 청년 밀로시 흐르마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다.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여자 친구와의 첫 성경험에 실패하고 어처구니 없게도 자살을 시도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다시 근무에 복귀하는 평범하다 못해 바보 같은 흐르마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전쟁의 막바지에 다다른 독일군들의 행패가 극심했고(우리나라도 그러지 않았던가. 일본이 가장 극악하게 조선인들을 괴롭힌 것이 패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 엄중히 감시받는 독일군 열차에 신호를 잘못 보냈다는 이유로 독일군 기차에 끌려들어가 총살을 당할 뻔 하기도 한다.
역장 란스키는 괴팍한 성격에 화도 잘 내고(그래서 때때로 부인한테 따귀를 맞기도 하고) 기차역의 업무보다는 승진과 비둘기 키우는 것에만(옷에 비둘기 똥을 잔뜩 묻힌 채 상사를 접대하기도 하는)열중하는 사내다.
배차계장 후비츠카는 젊은 여자 전신기사의 엉덩이에 업무용 도장을 찍고(책을 읽기 전에는 ‘여자 전신기사’를 女子 全身記事 그러니까 여자의 온 몸이 나와 있는 신문기사의 사진에 도장을 찍는 것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라 女子 傳信技士(技師) 즉 편지를 전하는 여자 사무원을 뜻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같은 기차역에서 일하는 여자 사무원의 엉덩이에 업무용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다...이런)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암울하기 그지없는 현실과는 달리 이 현실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은 낙천적이고 웃기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나라 체코를 아끼고 사랑하며 체코가 독일의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주인공 말로시 흐르마는 결국 후비츠카 씨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군과 탄약이 실린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흐르마는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총상을 당해 숨져 가고 그때 옆에 있었던 것은 흐르마의 총에 맞은 독일군 병사였다. 죽음으로 향해가는 독일군 병사를 보며 흐르마는 연민과 함께 자신도 그 독일군 병사도 모두 다 똑같은 ‘인간’인데 도대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를 반문한다. 흐르마는 엄마를 부르며 죽어가는 독일군 병사의 손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하며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끝이 난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
끔찍하고 비참한 현실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무겁지 않게 그려나가는 보흐밀 흐라발의 이 작품의 이면에는 사실 극렬하게 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며 평범한 인간들을 통해서 전쟁이라는 모순덩어리를 날카로운 매스로 도려내고 있다.
2006년 이 시점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내전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에 이 현실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과 휴머니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그 역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p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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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작가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전쟁이라는 테마를 써 나간다. 영웅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시선에 전쟁이라는 파토스가 담긴다. 작가의 의도는 전쟁이라는 비극에 서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데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벌어진 시대적 상황과 그 운명에 직면하게 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소설은 암담하고 비극적인 현실에 우스꽝스러운 등장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작가 흐라발이 독일군 점령과 저항이라는 어두운 테마를 힘이나 무력이 아니라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모습을 한 등장인물 안에서 풀어 나가는 이러한 방법은, 체코 문학의 전통 (야로슬라프 하셰크.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모험="">)을 잇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역자의 말만큼 와닿는게 없더라..;
등장인물들은 뭐랄까, 조금 독특하다. 주인공은 우울하고 주인공을 가르치는 또 다른 남자는 가벼운데다 역장은 출세지향에 역장부인은 과묵하고 우아하다. 그렇지만 한군데씩 풀린 곳이 있어서 허를 찌른달까, 묘하게 현실성을 주면서 이때까지 내가 가졌던 비장한 감정이 사그라드는 느낌. 이런 걸 부조리, 라고 하는 것이 아닐지.
완벽한게 있을리 없다. 그것은 타인을 지배하는 것도 포함된다. 영원한 지배같은게 가능할리 없어.
그렇지만 타인을 짓밟고, 그것에 순응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런 일상 속에서 핏줄의 반응이랄까,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에 충실해지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모든 것이 그르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착한 것도 아니다.
"드레스덴 전체가 불바다야. 이 사람들은 무단으로 내 열차에 기어올랐어."
병든 말이 몸을 일으키듯, 열차장이 힘겹게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잠시 전신기 책상에 두 주먹을 대고 기대 있더니, 팔짱을 끼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잠을 자는 사람처럼 보였다. 다른 독일 사람들도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서 있었다. 땅에다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마지막 순간을 그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신없이 창문에서 뛰어내려야만 했던 그 순간을, 나무가 쓰러지고 담과 대들보가 내려앉는 집에서 무작정 달아나야만 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독일인들은 모두 팔이 길었는데, 그 긴 팔을 무릎까지 길게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엄청난 공포 때문에 눈꺼풀이 잘려 나간 사람들처럼, 아무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못했다. 목이 잘린 새끼 염소를 볼 때나, 다른 누가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파 어쩔 줄 몰라 했던 나였다. 하지만 여기 이렇게 망연자실하고 서 있는 독일인들은 전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쩐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비슷한 과거를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주입식 교육탓일지도 모르지만 피와 유전자 속에 저장된 뭔가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 미묘한 감정들.
나는 죽은 병사가 쥐고 있던 목걸이를 낚아챘다. 달빛에 비춰보니, 작은 메달이었다. 한쪽 면에는 녹색 네잎 클로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행운을 가져다줍니다!''라는 독일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 네잎 클로버는 아무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가해자도 분명히 있고, 나는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했는데 그 쪽도 결국은 같은 인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누구를 원망해야하는걸까? 책을 읽고나니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가볍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책 자체는 무겁지 않다.
시들어버린 백합에 집착해서 손목을 그었다던 주인공을 알게됐을때의 충격과
우아하고 과묵한 - 그렇지만 거위의 목을 비틀어 피를 짜내기도 하는 - 역장부인이
밀로시의 백합을 다시 확인해주며 하는 말에선 웃음을 터트렸다.
의외성! 그게 이 책의 매력이 아닐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끝나면 간이주점이라는 단편이 나온다.
정신없지만 독특한 간이주점의 밤. 부조리, 부조리, 부조리.
처음으로 ''고도를 위하여'' 연극을 봤을때의 기분이 떠올랐다. [인상깊은구절] 역장이 역무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역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왜들 그래? 무슨 일이야?" "우리 역 울타리 옆에 군인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 후비치카 씨가 대답을 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역장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엄중히 감시받는 수송열차인가?" 내가 대답했다. "느낌표가 세개나 붙어 있습니다."착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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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시대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시대 지식인의 숙명도 있는 것 같다.
책을 읽고나서 군인인 내가 받은 첫 느낌은 애국심 고취가 스며들어 있는 것과
함께 전쟁의 무의미함(집에서 궁둥이나 붙이고 있을 것이지...)이다.
수습생인 밀로시 흐르마는 자살 미수를 제외하고는 어찌보면 대단히 평범하다.
여자친구와 관계를 가지다가 실패하고, 빅토리아와의 첫 관계...그리고 진짜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용기백배(?!)하여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테러할 용기를
가지게 된다. 후비치카씨의 당부(지시)였기에 더욱 당연했을지 모른다.
평상시 후비치카씨를 동경하고 즈덴카에게 한 행위 역시 부러워하고 있었으니까
빅토리아와의 관계로 인해 동경하던 후비치카씨와 동격이 되고 또 그 용기를
낼 수 있었다가 생각한다면 독자인 내가 너무 멀리 뛴건지...
작가의 시제가 너무 들쑥 날쑥해서 중간에 착각하고 다시 전페이지를 간 경우도
있지만 너무도 세밀한 묘사와 독창적인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눈이 햇빛을 받아 녹으며 째깍대는.. 초침소리... )
밀로시 흐르마가 마지막에 테러를 성공하고, 열차의 마지막에 칸에 초소에 타고
있던 독일군과 총격전. 그리고 죽음까지의 과정. 행운을 가져오지 않는 네잎
클로버. 그리고 계속되는 독일병사의 ''엄마, 엄마.....''소리.
시제가 엇갈리고, 또 조용하게 어찌보면 희극적인 일상이 계속되다가 작품의
종반부에서는 눈을 떼지 못할정도로 급한 흐름과 이제까지 작가가 할려고
아끼던 말을 다하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흐르마가 의식을
잃어가며 한 말....
''집에서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있을 것이지...'' 여운이 그리 길게 남았나 보다.
세밀한 묘사와 내재되어 있는듯한 주제. 오랜만에 본 참신한 작품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집에서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있을 것이지 |
| 체코라면 우리나라와는 먼곳이 아니던가.....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비록 인물의 이름이나 배경은 달랐지만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이 갔다고 하는데 맞겠다. 손목을 그어 자살시도까지 했던 밀로시 흐르마는 사실 참 재미있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친구와의 경험에 실패하는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다른여자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한다. 곧 죽을 동물들을 보며 참을수없이 힘들어하기도 하고 업무중 졸고 있을때의 주의사항을 잘 꿰뚫고 있다. 날개떨어진 비행기 동체가 추락한다거나 다른곳에서 일어난 폭격따위의 일, 심각할수 있는 가족내력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문체가 눈에 뜨인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것같다. 너무 깊이 파고들어 진중하게 흐르지도 않고, 너무 멀어 별나라 이야기같이 동떨어지지도 않는다. 편치않은 나날을 적당한 거리에서 있는 그대로 쓴 것이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도 편안하고 나도 한사람의 체코인이 되어 같은마음을 느낀다고 생각하게 된다. 후비치카와 함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폭발시키는데 성공하지만 밀로시는 독일군의 총을 맞는다. 그리고 독일군 역시 밀로시의 총을 맞는다. 눈내리는 밤중에 두사람은 서로의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간다. 나는 죽은 병사가 쥐고있던 목걸이를 낚아챘다. 달빛에 비춰보니, 작은 메달이었다. 한쪽 면에는 녹색 네잎 클로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행운을 가져다 줍니다!''라는 독일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 네잎 클로버는 아무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씨처럼 말이다. 특별하게 잘난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의식을 잃어버리기 직전, 그 마지막까지 나는 죽은 병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들을 수도 없는 그의 귀에 대고, 특급 우편열차의 열차장이 드레스덴에서 싣고 온 그 불쌍한 독일인들한테 했던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 짧은 소설이었지만 소설이 주는 여운은 훨씬 컸다. 주변에 슬쩍 건네주어도 참 좋겠다. |
| 전쟁은 세상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든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까지 그 어둠의 파장이 미치는 것이 전쟁이다. 그것은 침략을 당하는 쪽 뿐 만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당사자들마저 황폐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아주 몹쓸 역병과도 같은 것이다. 체코의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의 전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체코의 상황. 그러나 좀 더 엄중히 말하자면 이것은 전쟁 소설이 아니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어느 간이역의 식구들. 역장과 그 외의 직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신호를 잘못 보냈다는 이유 하나로 독일군에게 개죽음을 당할 뻔 하고, 도시의 여기저기는 전쟁의 어둠으로 가득하다. 전쟁이라는 비극의 운명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없는 힘없는 시민들. 특출 난 영웅적 주인공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인 것이다. 그러나 비극을 이기는 것은 바로 희극! 작가는 어두웠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결코 전쟁의 비극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첫 경험에 실패해 자살을 결심하는 신참, 비둘기들을 자식처럼 기르는 역장,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배차계장. 이들 주인공은 비극의 현실 속에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해 비극을 희극화 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멋지고 영웅적인 주인공은 이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다운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소설. 그리하여 더욱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소설. 어리숙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을 등장시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그러기에 누가 누굴 죽이고 침략하는 전쟁은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이 바로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이다. 결국, 끝에 가서는 이 어리숙하고 바보스러운 자들이 독일인들의 가장 중요한 차량, 즉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 시키며 끝이 난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힘없고 볼품없는 인간들의 용기와 의지를 보여주는 묘한 소설이다. 슬프지도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도 않은, 어딘지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체코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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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바젤리츠 '올모의 아가씨들'
"나는 죽은 병사가 쥐고 있던 목걸이를 낚아챘다.달빛에 비춰보니 작은 메달이었다.한쪽 면에는 녹색 네잎 클로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라는 독일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그러나 이 네잎 클로버는 아무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그에게도 나에게도!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특별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134
너무도 담담하게 '이것이 전쟁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숨이 막히는 느낌이랄까.이름도 조금 어려운 보흐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고는 문체와 묘사들이 매력적이다 싶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내리 찾아 읽게 되었다.게다가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앞서 읽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겠구나 싶었다.사실 '재미'라는 표현이 그닥 적절하지는 않은것 같은데.딱히 표현할 말을 찾을수가 없다.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체코의 작은 기차역이 소설의 배경이된다.세계대전과독일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보니..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쟁을 그려낸 독일표현주의작가들의 그림이 연상되었다.그림이 때론 너무 센건 아닐까 싶었는데..보흐밀 흐라발의 소설을 읽다보면 ...전쟁이란 단어에 대해 어떻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고,어렵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내내 하게 되었다.그리고 흐르마 밀로시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병력이나 탄약등을 수송하는 독일군 열차를 뜻함) 를 폭파하게 되는 순간,그리고 자신이 죽어가며 상대방 독일군병사의 죽음을 보면서 읇조리는 말을 들을때 특히 수많은 독일표현주의 그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그래서 하나의 그림을 골라 보고 싶은 생각을 하다가...조금은 다른 색깔의 그림을 찾았다.그림 제목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물론 '소녀'도 아니지만...흐르마의 바람대로 저들이 서로 거꾸로인상태가 아니었다면,같은 방향으로 갈 수만 있었다면...전쟁이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힘들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전쟁영화는 가급적 읽고 싶지 않지만,읽을때마다 느끼게 되는 결론은 늘 같다.누구를 위해 전쟁을 하는 걸까? 이 소설이 대단했던 건 거창한 전쟁영웅이 등장하지도 않고,피비린내가 진동하지도 않는 가운데서도 당당히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를 그려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오히려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다는 첫사랑 실패가 마음아파 자살을 하려고까지 하지 않았던가..그러나 결국엔 진정한 남자(?)가 된 후 엄중히 처벌받는 기차를 폭파하기까지 되다니..웃프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다는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다.현재와 과거와 이동하고.등장인물들이 의미 없이 교차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매우 짧은 소설임에도 집중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