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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책.
""회의"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책." 내용보기
"우찌무라 간조"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홍성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우연-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던데-하게 주일설교에 목사님께서 "우찌무라 간조"를 언급하셔서 상당히 유명하신 분이란 걸 알게 됐죠. 왠지 흥미가 생겨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점차 제 안에서 여러가지 의구심과 회의가 자라나고 있었기
""회의"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책." 내용보기
"우찌무라 간조"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홍성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우연-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던데-하게 주일설교에 목사님께서 "우찌무라 간조"를 언급하셔서 상당히 유명하신 분이란 걸 알게 됐죠. 왠지 흥미가 생겨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점차 제 안에서 여러가지 의구심과 회의가 자라나고 있었기때문에 여러가지 책들-필립 얀시, 달라스 윌라드, C. S. 루이스님의 글들-을 읽고 있던 터이므로 유명한 신앙인의 회심기는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저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분 역시 치열한 회의의 시기를 겪었어야 했고, 저는 그것을 보면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찌무라 간조님의 깨달음이 저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렴풋이 깨달아가던 기독교의 진리,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맘속으로부터 간조님께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회심에 대한 어떤 "직접적인 계기"는 없습니다.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회의, 의심,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고 아무런 미화없이 담담하게 적어내려갔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한때는 회심기를 찾아 읽으면서 무언가 직접적인, "벼락이 내려 꽂히는 듯한"체험을 기대했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는 "기적",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그래서 필립 얀시님의 "하나님,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를 읽으면서 거기에 나오는 형제의 말에 정말 절절히 공감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어째서 숨어계시는 겁니까?"하고 따지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책들을 읽고 루이스님의 회심기 "예기치못한 기쁨"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진리"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얻었죠. 그러던 차에 간조님의 글을 읽고 다들 이런 치열한 고뇌의 과정이 거쳐야만 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미미해서 변하는 것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고 개미구멍으로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어느날 전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또 미사여구없는 너무나 솔직하고 담백한 글을 보면서-이것은 루이스님의 글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인데-정말 깊은 영성의 소유자의 글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겸손하면서도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리뷰를 읽는 당신이 저와 같은 동기에서-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줄 "기적을 찾아"-이 "회심기"를 찾고 있다면, 여기에는 당신이 찾는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진리가 숨어있듯,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듯 평범해보이는 이 글에 진리의 향기가 배어있다는 것을,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읽어나갈 때에 당신은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a******n 2004.12.29.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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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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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신앙 공동체에서 했던 고백을 일상생활에서 꽃 피우지 못한 채 말씀과 삶이 분리되는 것이었다. 하루의 삶을 말씀에 복종하며 살고자 QT를 해보아도 뜨거운 물을 붓고 3분 후 나무 젓가락을 들이대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깊은 묵상은 없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말씀 해석과 적용을 들이댈 뿐이었다. 이러한 내게 큰 유익을 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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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신앙 공동체에서 했던 고백을 일상생활에서 꽃 피우지 못한 채 말씀과 삶이 분리되는 것이었다. 하루의 삶을 말씀에 복종하며 살고자 QT를 해보아도 뜨거운 물을 붓고 3분 후 나무 젓가락을 들이대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깊은 묵상은 없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말씀 해석과 적용을 들이댈 뿐이었다. 이러한 내게 큰 유익을 준 저자 중 한 사람이 우찌무라 간조였다. 어느새 신앙생활에까지 스며든 서구적 천민자본주의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그의 글 속에서 나는 깊이 있는 묵상이란 무엇인지, 말씀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영향력 아래서 자라난 사람 중에 김교신, 함석헌 선생 같은 인물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여전히 이교도인 민족을 위해 통곡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를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져 선뜻 소개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요즘 들어 그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근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우리나라에는 ‘무교회’라는 말만으로도 안색이 변할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교회’ 대신 다른 표현을 사용해 볼까 한다. 그의 사상은 ‘참교회주의’다! 조직화, 제도화되며 복음 그 자체의 역동성을 잃어버린 교회를 향해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이 우찌무라 간조의 사상이다. 대다수의 선교단체와 상당수의 교회가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우찌무라 간조의 주장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건물과 조직 자체가 교회가 아니며, 철저하게 성경을 연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두고 틀렸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우찌무라 간조의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넘치도록 충분하다. 컵라면 같은 QT 대신 깊이 있는 묵상이 필요한 이 시대, 정치․경제는 물론 종교 면에서까지 미국의 속국이 된 것 같은 이 시대에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 그의 생각은 우리에게도 매우 유익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찌무라 간조의 회심기를 담고 있다. 감히 단언하건데 C. S. Lewis의 『예기치 못한 기쁨』과 견줄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의 우상 문화 속에서 살아오던 그가 어떻게 복음을 소개받았는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꾸려가며 성숙해 나갔는지, 또한 그가 꿈꾸는 공동체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유학 시절을 통해 기독교 국가에 대한 맹목적 동경에서 벗어나 그 나라의 종교적 수준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하고 자기 민족을 더욱 사랑하게 되어 민족적 소명을 깨닫게 되는 부분은 내게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언젠가 김교신 선생의 전기를 읽으면서도 다짐한 것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세계 어디에 있건 ‘한민족’임을 잊지 않기를 다짐했다.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한민족으로 태어나게 하신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땅을, 이 민족을 품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우찌무라 간조가 일본 땅에서 성경의 진리로 위대한 평민(平民)을 길러내는 일에 헌신했듯이, 성서조선의 김교신 선생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자’고 주장했듯이, 철저하고 깊이 있게 성경을 연구하며 그 유익을 이 땅위에 두루 심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멀리 유배지에서 바라본 나의 조국은 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라가 아니었다. 내 나라가 정말로 아름다워보이기 시작했다. 이교도 시절에 보았던 괴상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역사적 개성을 가지고 우주 속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로 보였다. (중략) 민족으로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요, 세계와 인류에 대한 나름의 사명은 분명히 선포됐으며, 지금도 선포되고 있다. 우리 나라가 높은 이상과 고귀한 야망을 가지고 세계와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신성한 실체로 보였다. 나는 조국에 대해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을 크게 감사한다. 데이비드 브레너드의 생애를 읽었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마치 내 일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모든 어려움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얼굴을 나에게 숨기신다는 사실이다”라고 기록한 부분에서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독교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중재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 주기를 바라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영원하신 성령과의 교제를 통해서, 이미 하나님의 마음 속에 가지고 계신 그 뜻을 우리리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로 드리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기도는 예언이다.
YES마니아 : 로얄 s******h 2005.07.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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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운 교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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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3일, 저자가 지나온 영적 성장의 다양한 단계를 정직하게 고백한 글이다. 솔직히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혹독한 더위와 졸음을 쫓느라 집중해서 읽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 내용의 자연스런 흐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다만, 저자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그가 겪었을 인생의 작은 부분이나마 감지할 따름이다. 그러나, 교회다운 교회를 향한 그의 소망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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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3일, 저자가 지나온 영적 성장의 다양한 단계를 정직하게 고백한 글이다. 솔직히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혹독한 더위와 졸음을 쫓느라 집중해서 읽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 내용의 자연스런 흐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다만, 저자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그가 겪었을 인생의 작은 부분이나마 감지할 따름이다. 그러나, 교회다운 교회를 향한 그의 소망에는 명백히 동참하는 바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십자가가 밤거리를 물들이고 있음에도, 아직도 교회 밖 세상의 어두움은 여전히 걷힐 줄 모르며, 오히려 그 기세를 더욱 떨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한 후로도 온전히 벗어버리지 못하는 나의 옛 모습에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그와 더불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을 믿는다. 그리고, 한가지 저자가 직접 영어로 쓴 책도 읽어보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기독교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생명의 연합으로 결합되어야 하는 살아 있는 신적인 인격이다. 기독교는 죄로 인해 하나남과 분리된 자연이 하나남과 재결합하는 것이며, 그 과정은 교훈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은사와 능력을 부여받은 새로운 생명을 나눠줌으로 이루어진다.
s*****9 2002.08.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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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진정한 신앙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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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갖게 되면서 내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교회에 출석하는 일, 성경을 읽는 일, 그리고 신앙서적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찾게 되는 일, 그리고 식사 때 기도를 하는 일, 힘들 때 주문처럼 하나님을 찾는 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  기독교 신앙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이 정도로 열거할 수 있으리라.  이 가운데 가장 낯간지러운 일은 물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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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갖게 되면서 내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교회에 출석하는 일, 성경을 읽는 일, 그리고 신앙서적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찾게 되는 일, 그리고 식사 때 기도를 하는 일, 힘들 때 주문처럼 하나님을 찾는 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  기독교 신앙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이 정도로 열거할 수 있으리라.  이 가운데 가장 낯간지러운 일은 물론, 하나님을 나의 주문을 받아주는 마법사처럼 시시때때로 부르는 일같다.  그를 불러서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해결해주실것을 부탁한다.  일단 마음은 편안해지고, 현실적인 불안은 잠시 내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하나님은 정말로 유용하신 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때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른 삶은 적절한 타협으로 넘기기 일수이면서도 나는 내가 필요할 땐 하나님을 찾아 구걸한다.   이렇게 믿어도 되는 건가 ? 이것이 신앙인가 ?

 

신앙을 갖게 된 이후로 마음은 편안해졌을지 모르지만, 내 양심은 끝없이 요동쳤었다. 언제나 삶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반향으로 튀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거기서부터 삶은 신앙적인 모순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가르침은 알지만, 일단 행동은 뒤로 미룬다. 올바른 길은 알지만, 그건 지름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자기기만. 이 모순에서 나는 신앙을 가진 이후로 지금껏, 또 앞으로 언제까지 기독교 신앙을 회의하게 될지 알 길 없다. C.S 루이스나 필립 얀시, 그리고 오늘 우찌무라 간조까지 이들 신앙인들의 서적을 관심갖고 읽는 이유는 이 모순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였다.  아니 그 모순이 나만의 문제인지 정말로 간절히 알고 싶어서다.  나보다 더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었던 그들은 신앙안으로 어떻게 들어섰으며, 또 어떻게 신앙을 키워갔는지 알고 싶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19세기 이웃나라 일본에서 기독교의 태동기에 나같은 고민을 깊이 있게 끌고간 한 사람, 우찌무라 간조의 신앙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우찌무라 간조는 1861년 일본 에도에서 무사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74년 동경 외국어 학교을 거쳐, 1877년 샷포르 농업대학교에 입학, 거기서 기독교 신앙과 만난다. 그 시절 일본은 신문명을 받아들이며 수많은 서양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던 때다. 그는 대학에서 기도모임을 갖고 또래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예배를 보며 기독교인으로 자라난다.  일본에서 교회중심의 기독교가 전파되는 시대에 그는 일본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며, 기독 신앙을 키워갔던 것이다.  그는 신앙을 갖기 전까지, 일본의 수많은 잡신들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들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 태양앞에 절하고, 길을 가다가 큰 바윗돌에 절하는 평범한 일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 모든 미신에서 벗어나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일본에 전파되는 기독교는 오늘날로 치자면 장로교나 감리교처럼 교파들이 분리되어, 서로간 경쟁속에서 진행된다.   

 

진리가 하나일진데, 왜 이들 선교사들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경쟁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일본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파송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교파을 선전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온 것인지, 간조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간조는 훗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거기서 대학을 다니며 신학을 접하게 되면서, 이러한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바른 신앙을 위한 진정한 회의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간조의 민족에 기반을 둔 기독교 신앙의 정립과 ``무교회주의'라는 그의 독특한 기독사상이다.  무교회주의는 신앙 연구를 주축으로 올바른 교회를 만들어가자는 사상인데,  이같은 그의 사상이 발현한 기점이 바로 청년시절, 조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의 횡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간조는 서양에서 전파된 기독교를 보편적인 진리 자체로 받아들였고 단순히 서양적인 것, 그들의 민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볼때, 그가 얼마나 민족적인 자부심으로 깨어있었는지, 신앙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수한 회의가운데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참된 관용은, 자기 자신의 신앙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정직한 신앙을 허용하고 참아 주는 것이다. 진리의 일부는 알 수 있다고 믿으나, 모든 진리를 다 알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적 관용의 기초이며, 모든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고 평화롭게 대할 수 있는 원천이다."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p.186

  

과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우찌무라 간조에게 배울게 없을까?  그의 `무교회주의'가 한때 우리나라 종교지도자들에게 외면받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무교회주의란 교회에서 예배를 보지 말라는 얘기로 단순히 해석하면, 대단히 위험하게 보인다.  그러나 선교초기 교파들 간의 경쟁으로 자신들만의 교회를 만들고자 했던 선교사들을 보면서, 그것이 바른 신앙인의 모습인가 회의하던 간조의 고민이 담겨 있는 사상이라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수많은 문제들로 얼룩져 있다.  대형교회들은 목회직을 부자간 세습하고, 교회 재정과 운영은 투명하지 못하다.  교회의 담임목사들은 신도들 위에 굴림하며, 교회를 자기것인냥 소유하려 든다.  그러나 사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자, 신도들의 것이다.  오늘날 과잉배출된 목회자들이 갈데가 없어서, 거대한 실업시장을 만들고 있다.  목회의 실업시대,  이만큼 서글픈 현장도 없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격없고 소양없는 목회자들이 대량으로 양성된다는 데 있다. 간조는 성직을 직업으로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때 품었다고 이 책에 적어두었는데, 그것이 19세기 기독교인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직을 하나의 밥벌이로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있다는 현실을 우리가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직을 직업으로 인정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갖기 어려운 직업을 성직으로 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보다도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길이 더 어렵고 험하다면 어떨까? 어렵다는 것은 성직자가 하나의 자격증처럼 시험만 보고 통과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정말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봤을때, 올바른 소양을 가진 성직자가 도대체 몇이나 될지 알 수 없다.

 

"아직도 내가 신학을 공부하는 것을 타인 앞에서 부끄러워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사실, 세속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학문이건 그것의 영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단지 먹기 위해서 설교한다는 발상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는, 신학을 공부한다는 게 분명 매우 비열하게 보일 것이다." p.259 

 

우찌무라 간조를 통해서, 회의가 진정한 신앙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이 읽어주는 성경과 설교만을 믿고, 오직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인냥 느끼는 것도 물론 신앙인의 틀린 자세는 아니나,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출발은 언제나 성경과 기도를 거친 깊은 묵상을 통해 바로 하나님과 교류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내 내면에 직접 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신자는 아마추어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학은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영접하기 위해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건강한 신앙은 건전한 회의속에서 키워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그것이 세상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신앙인이 되는 길이다.

 

 

 

 

 

12.21

s*****7 2007.1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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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일본에도 이런 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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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는 1861년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무사계급의 가족이었다. 쉽게 말해 사무라이 집안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도 무사가 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다신 사상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그는 학교 가는 길에도 몇 번씩 각종 신전에 들러 기도를 올리고 나오곤 했다. 일본놈, 쪽바리, 이것이 우리 의식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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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는 1861년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무사계급의 가족이었다. 쉽게 말해 사무라이 집안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도 무사가 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다신 사상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그는 학교 가는 길에도 몇 번씩 각종 신전에 들러 기도를 올리고 나오곤 했다.

일본놈, 쪽바리, 이것이 우리 의식 속에서 작용하는 일본인을 향한 편견들이다. 물론 그들의 장점들은 이런 우리의 분노에 갇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도 그들에 대한 이런 편견을 놓아 보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언론에서 나오는 일본에 대한 안 좋은 소식들을 접할 때 내 마음이 즐거운 것은 이미 이런 의식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게 한다.

그래서 우찌무라 간조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 나는 놀랐다. 일본에 이런 인물이 있었을 줄이야! 100년 전에 일본에 이런 기독교적 부흥의 흔적들이 있었을 줄이야! 그의 신앙의 시작과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한 이교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 삶 속에서 몸부림 치는 과정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내가 보기에 진정한 크리스천이었다.

우찌무라 간조는 1861년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무사계급의 가족이었다. 쉽게 말해 사무라이 집안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도 무사가 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다신 사상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그는 학교 가는 길에도 몇 번씩 각종 신전에 들러 기도를 올리고 나오곤 했다. 그런 그가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 스쿨에 들어가 결국 예수님을 만나고 말았다. 그의 삶에도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고, 모든 미신을 버리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클럽을 조직해 매주 마다 모여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쉬지 않았다. 클럽에서 보여준 그들의 신앙의 모습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고 하는 고민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도를 길게 해서 지루했다든지, 예배드리다가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든지 하는 것은 지금도 신앙인들 삶에서 웃음거리로 회자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다가 우찌무라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에게 미국은 기독교의 성지로 여겨질 정도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나라에 와서 기독교를 전해준 곳이 미국이요, 미국은 청교도의 정신으로 세운 나라라고 알고 있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그가 만난 것은 지독한 인종차별과 강도, 사기꾼들이었다. 어느 면을 보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신의 나라 일본보다 나을게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진정한 신앙인들과 만나게 해주었고, 그들을 통해 그의 신앙은 제2기를 맞게 된다.

우찌무라 간조는 우리나라에는 무교회주의자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무교회주의자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는 진정한 교회주의자다.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자신의 종파의 규율을 따르게 하려는 선교사들에게 대항한 모습들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있을법한 것들이다. 그럼 무엇이 옳은가? 답은 그것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이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것은 제해버리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에 따른 인간적 고뇌들은 그가 얼마나 성경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 일본사회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던 무사계급의 가족들을 전부 전도한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조롱을 받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그는 그의 조국 일본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도 대단했다. 미국에 가서 미국인들을 만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것이 기독교 국가의 정신이라면 차라리 우리 일본의 사상이나 정신을 받아들이겠다고... 어쩌면 일본이 오늘날 그처럼 기독교의 인구가 낮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들의 삶의 태도나 정신이 오늘날 경제대국 일본을 만든 것은 확실하니 말이다.

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해지거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을 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것을 끝까지 탐구해 가며 산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는데 일본의 기독교가 부흥하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t*****i 2009.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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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신앙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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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간조란 이름을 들은적이 있다. 무교회주의를 창시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   책을 구입해 읽었다.   우찌무라간조는 동양인으로 서양인보다 더욱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했던 진지한 신앙인이었다.   세상과 타협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오직 성경의 뜻대로 살며 성경의 명령대로 살고자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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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간조란 이름을 들은적이 있다.

무교회주의를 창시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

 

책을 구입해 읽었다.

 

우찌무라간조는 동양인으로 서양인보다 더욱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했던 진지한 신앙인이었다.

 

세상과 타협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오직 성경의 뜻대로 살며

성경의 명령대로 살고자 노력한 신앙인이다.

 

이 책은 나에게 꿀보다 더 달았다.

d*****3 2008.0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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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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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도 그들처럼 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신앙의 선배들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민족주의적 기독교, 무교회주의 등등... 우찌무라 간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이제야 그분의 회심기를 읽게 되었다.   생각이 정결해지고, 신앙의 중심을 바로잡게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옆으로 가지쳐나간 삶의 잔가지들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올곧게 성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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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도 그들처럼 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신앙의 선배들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민족주의적 기독교, 무교회주의 등등... 우찌무라 간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이제야 그분의 회심기를 읽게 되었다.

 

생각이 정결해지고, 신앙의 중심을 바로잡게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옆으로 가지쳐나간 삶의 잔가지들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올곧게 성장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삶과 신앙을 생각할 때 말이다.

n*****h 2007.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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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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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간조... '가난한자는 복이있나니'의 최춘선 할아버지의 비디오를 보고 처음 알게 된 사람.. 그 할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짧은 말귀가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조금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우찌무라간조라는 사람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Yes를 통해 책을 많이 구입하긴 하지만 괜스레 이상한 책도 몇권 구입해서 읽지못하기도 했지만 홍성사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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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간조... '가난한자는 복이있나니'의 최춘선 할아버지의 비디오를 보고 처음 알게 된 사람.. 그 할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짧은 말귀가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조금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우찌무라간조라는 사람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Yes를 통해 책을 많이 구입하긴 하지만 괜스레 이상한 책도 몇권 구입해서 읽지못하기도 했지만 홍성사는 역시 믿음이 간다.

생각대로 번역도 깔끔하고 잘 읽혔다.

 

우찌무라간조에 대해 알면 알수록 민족주의 속에 스며있는 기독교에 대한 성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믿음으로 인해 모든것을 껍데기로 여기고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며 현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유혹을 가볍게 뛰어넘는 그의 모습에서 시대의 앞서감을 보았다.

 

그가 영향을 미친 여러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짧지만 그 후의 삶도 책으로 나온것이 있다면 하루빨리 번역되서 나오길 기대한다.

 

그의 교장 이후의 삶.

 

연대기표를 보면 기독교 교사들과의 마찰로 인하여 사직했다고 하는데, 그후에 교사로 지내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의 후의 삶이 더 궁금해진다. 

y*******m 2007.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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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을 벗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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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고 읽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지만....쉽게 책을 펴지 못했던 것은 나의 게으름탓도 있었다. 그러나 자꾸만 다른 책들에 밀려 내 손에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방학을 통해 이 책을 읽었다. 일본에 이처럼 유명한 신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당연시 여기던 문제들을 하나 둘씩 짚어가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의 모습 속에서 어느새 기독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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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고 읽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지만....쉽게 책을 펴지 못했던 것은 나의 게으름탓도 있었다. 그러나 자꾸만 다른 책들에 밀려 내 손에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방학을 통해 이 책을 읽었다. 일본에 이처럼 유명한 신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당연시 여기던 문제들을 하나 둘씩 짚어가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의 모습 속에서 어느새 기독교에 익숙해버린 내 모습을 반성해본다. 여기서 내가 말한 익숙함이란 앎과는 다른 의미에서 적어본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시 여기는 익숙함... 지금부터 100년전의 그의 삶 속에 녹아있는 그의 신앙의 여정들이 나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인상깊은구절]
"헌신된 영혼은 자기 자신의 성공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는 것만을 기뻐합니다."
y******k 2003.08.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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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진리를 따를 때에만 진리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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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라는 이름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서재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설교 속에서 종종 만났던 사람이었다. 이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나의 책장에도 우찌무라 간조의 책을 종종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는 그의 다른 책을 보기 전에 반드시 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기독교(개신교)를 처음 접하였을 때, 우찌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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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라는 이름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서재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설교 속에서 종종 만났던 사람이었다. 이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나의 책장에도 우찌무라 간조의 책을 종종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는 그의 다른 책을 보기 전에 반드시 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기독교(개신교)를 처음 접하였을 때, 우찌무라 간조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엇이 기독교인지, 무엇이 기독교가 아닌지를 치열하게 살펴보았다. 요즘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에 비하면 그의 영혼의 여정은 천국의 문앞까지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찌무라 간조를 무교회주의라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그렇지만 그를 진리를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을 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알고 의지하고 있는 것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기독교가 아닌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의 영혼의 여정 속에서 우찌무라 간조를 동무삼아 갈 수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To be Inscribed upon my Tomb. I for Japan; Japan for the World; The World for Christ; And All for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