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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꽤 옛날에 봤는데 다시 봤다. 공선옥 소설에서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 게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이었다. 책을 거의 다 보고 제목이 왜 《수수밭으로 오세요》일까 했다. 역시 잘 모르겠다. 수수밭이 어떤지 잘 모르기도 하고. 책 안에도 수수밭은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해 보고 싶다던 필순은 아들하고 살다가 우연히 친구 가게에서 만난 이섭과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서 필순은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살았던 친구 은자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이섭은 좀 겉멋을 부리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고른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섭은 의사로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병원을 열었다. 필순은 이섭과 결혼하고는 돈 때문에 걱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돈이 있으면 행복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
| 며칠 전 은이후니님의 블로그에서 본 '낙타의 눈물' 영화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 읽고 있던 공선옥의 '수수밭으로 오세요'의 책이 떠올랐지만 그 때는 어미의 마음보다는 여자의 마음으로 더 읽히던 이 책이 오늘 책을 다 덮고 난 후에야 세상의 어둠속에서도 빛을 찾아내는 그 어미의 마음을 보게 한 것이다. 이 소설이 내게 그렇게 다가온 것이 비단 카네이션 가슴에 달아주던 그 어버이의 날 때문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페트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통하여 모성애 그 아가페적인 사랑에 관하여 깊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 어머니의 사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더 깊이 와 닿을 수밖에 없었고, 그 이전의 단계에 내가 어머니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의 삶은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의 보호막아래서 살아오면서 내가 부어주신 그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되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공선옥의 '수수밭으로 오세요'에는 배운 것이 많이 없고, 이른 나이에 공장으로 뛰어들어 일을 하고 거기서 불한당 같은 남편을 만나지만 헤어지고 자식하나 달랑 데리고 살아가는 서울로 상경한 시골 여인이 나온다. 그녀의 삶은 언제나 발 뻗을 틈이 없다. 오늘 발을 뻗고 누우면 내일 두 배로 일을 해야만 하는 그런 나날들이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것임에도 바쁘기만 하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날 선물처럼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그녀 필순이 이섭과 결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작가는 한편으로는 '가난'이라는 것이 삶의 가장 밑둥치를 흔들며 그로부터 벗어나게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요 라는 것을 들려준다. 적어도 필순의 보여지는 삶은 그러한 듯하다. 그녀가 이전에 겪어왔던 고생과 가난의 생활은 지금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필순의 삶을 대변해준다. 그러나 그게 전부이랴... 또 다른 이편으로는 그녀가 그것만으로 이섭과 살아가는 삶에서 만족하였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녀 역시 그녀에게 다가온 그 사람을 사랑하였고, 그리 편하지 못한 삶을 살았지만 분명 그녀는 심이섭을 만나 행복했지만 좁혀지지 못하는 서로 같을 수 없는 살아가는 방식은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그런 그녀에겐 오은자 라는 친구가 있다. 왠지 그녀가 있어서 강필순의 생이 그렇게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친구를 갖지 못하였다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 의미없는 생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필순이 은자를, 은자의 아이들을, 박판수의 아이 '봄'이를 거둬들이는 장면에서 그녀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녀는 그저 아이들을 눈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물은 곧 아이들의 눈물이 될 것임을 알기에 그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키우려고 한다는 것을, 어머니의 눈물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나 하나 살자고 아이들을 버리고 가는 세상의 어머니가 아무리 많다할지라도 어머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고.. 비록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거둬들이는 그러한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할지라도 어미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이것은 이러하고 저것은 저라하다는 것을 따지기 이전에 무조건적인 그 원형의 사랑.. 존재방식이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기 이전에 사회적, 문화적으로 만들 여성성의 일부라고 하기 이전에 원형적인 형태로서의 '여성의 마음'이었던 것이었다. 감싸고 생채기가 난 상처를 치유케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 그것은 비단 어미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누구가 갖고 살아야하는 그러한 마음을 '강필순'이라는 여성을 통하여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이섭이 떠나고 나서 그녀는 안다. 인간에게는 원초적으로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생의 고통과 슬픔이 도사리고 있는 것임을..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그게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하여준다. 소설의 말미를 그녀는 그럼에도 희망으로 채운다. 살아갈 수 있는 그 힘, 바로 어미 자신이 장작이 되고, 동력을 만들어 기계를 움직이는 듯, 혹은 스스로 물주는 나무가 되어 살아가는 그 희망적 메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책 마지막의 작가의 말은 우리의 사회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어미의 마음'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예전에 전래동화는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지금 우리에게도 들려진다. 그렇지만 어미의 사랑은 그 자녀를 통해서 전해지고 전해지는 것이 이젠 전과 같지가 않은 듯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지금은 그러하다. 그녀는 한 개인이 취한 그러한 행동이 사회적 아픔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해마다 시설에 버려지는 아이들, 해마다 이혼이 급증하면서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헤어져 살아가면서 받게 된 상처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삶에는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비우고 내 자식과 친구의 자식, 그리고 생면부지의 사람의 자녀가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존재한다. 그녀의 존재방식은 그러함에도 그녀는 비우고 또 다른 것으로 채워서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의 언니는 작가 '공선옥'씨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작년 '마흔에 길을 나서다'라는 그 책 제목에 이끌려 처음 공선옥씨를 만났으나, 처음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요즈음 그 분의 책 '산다는 게 거짓말 같을 때'라는 책 제목만 들어도 가끔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잘 살아가고 있고, 내가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듦에도, 소설속 강필순씨처럼 살아간다는 그 이유 단 하나만으로 힘겨운 나날이 아님에도 위로함이 필요한 듯한 내 삶을 보면서 조금 더 힘차게 살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 나는 여성작가들의 글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작가 공선옥을 좋아한다. 그녀의 글에는 세련됨과 모던함은 없지만 대신 흙항아리같은 질박함과 빗물 같은 맑음이 있다. 게다가 이번 소설엔 더운 열대야를 녹이는 소나기 같은 까닭모를 시원함도 있었다. 커다란 돌덩이를 얹어놓았던 가슴이, 동아줄로 꽁꽁 묶어놓았던 오금이 다 펴진 듯 했다. 자식을 다섯이나 달고, 그토록 씩씩하게 이 세상에 남아준 '필순씨'에게서, 별 것 안되는 체면지키느라 오그라진 가슴을 다려줄 힘을 얻었다. 생각해보면, 지키려고 바둥대던 그것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 채 살았던 것 같다. 이섭이 가난한 사람들의 모임을 만든 것처럼, 겉껍질에 치중해 살았던 건 아닐까. 시뻘건 속내를 드러내고 사는 것을 수치로 아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필순의 삶은 이제 그만 얼마안되는 껍질 벗고 그저 편안히, 여자에게 주어진 숙명대로 살라고 가르친다. 아니, 거기서 힘을 얻으며 살라고 가르친다. 진짜 삶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뜨겁게 껴안고 사는 것이라고. 이섭처럼,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안타까운 것들을 끌어안기 위해 멀리 도망치지 말라고. - 곁가지 말: 필순의 이야기들을 진짜 한번 큰 소리로 따라 읽어보면 좋다. 시원하고 게다가 상쾌해지기까지 한다. 하고싶었지만 체면 때문에 못해본 말들, 그러나 가슴속에선 수백번도 더 해보았을 말들을 실제로 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시도록.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본 것보다 훨씬 더 후련함.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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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으로 오세요' 공선옥씨의 정중한 부름에 이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의 공선옥씨하면 도시적 이미지보다는 한 폭의 시골의 풍경이 생각나는 듯한 그런 애틋함이 있긴 하였지만 웬지 공선옥씨하면 옅은 수수함이 가득하였기에 그 근원이 단지 공선옥씨의 외향에서 풍겨나오는 것이니 하였는데 이 책을 읽고서 작가에게서 풍겨나오는 그런 느낌이 그녀(작가)의 억척스러움이 아닌 가 싶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고 험한 말을 곧잘 꺼내버리고 쉽게 흥분하는 필순. 오직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없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상처 투성이의 지난 삶들. 안착의 꿈을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네명의 아이들이라는 짐을 안은 체 소설은 끝을 맺고 만다. 왜 그 짐을 다 지려하는 것일까? 굳이 소설 속에서만 아닌 실제로 작가 공선옥씨는 아이 셋을 키우고 글 쓰는 일을 생계로 한다고 하니 아마 이런 상황이 현실이 된다면 공선옥씨는 그 현실을 마다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상처 받은 여자들의 삶의 모습과 이 나라 현실에서의 남자와 여자의 위치.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모성애를 버릴수 없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삶을 이야기 한다. 억척스럽다. 소설에서의 필순의 삶이 억척스럽고 이런 글을 적을 수 있게 만드는 작가 공선옥씨의 필치도 억척스럽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정감이 가는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친구도 가고 남편도 가고 남은 건 아이들 뿐이다. 아이들이 있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리고 떠나지 못해서 안 떠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제 곁에 있는 건 아이들뿐이라는 사실, 그것 하나뿐이다. 저희들 목숨 의탁할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강필순이라는 사람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그 아이들 보호해줄 어른이 이 세상에서 자기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이 필순을 서럽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
| 오랜만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먹먹해지는 가슴을 조심스레 쓸어 안아본다. 상처투성이의 작가 '공선옥'이 그리는 가난과 성적억압의 굴레에서 선택할 자유조차 없이 모질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허위에 허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생채기를 맞딱드리기보다는 빗겨 설 수 있는 요행을 바라고 작은 상처 앞에 좌절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의 강필순도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공선옥의 전형적인 인물이기도 한 '강필순'.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여성이 늘 그렇듯 낭만, 꿈, 아름다움은 저 강 건너편의 그들만의 이야기이고, 오직 '생존'을 위해, '살아 남기 위해' 유일한 자산인 자신의 몸뚱아리로 버텨내는, 하지만 그 '버티기'의 깊은 내면에 똬리를 튼 강한 모성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이 시대의 '어미'.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하고, 아이와 함께 사는 필순 앞에 어느 날 의사 '심이섭'이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복잡한 실타래를 만들어간다. 이혼녀로, 그것도 자식 딸린 어미가 배운 것이라고는 재봉일이라 미싱 발을 밟는 필순에게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생계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이제까지 꿈만 꾸어왔던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줄 한 남성과의 만남을 어찌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필순에게 심이섭의 등장은 자신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가난과 이성으로부터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레이는 사랑과 따뜻한 보살핌이 부재(不在)했던 그녀에게는 바로 생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조화하기 어려운 두 세계 어쩔 수 없이 가난하고 무지한 여자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지식인 남자 는 결코 평탄하지 않은 결혼생활로 이어진다. 생태를 걱정하는 생태주의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박애주의자인 남편 심이섭의 선택은 필순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에 적합한(?) 동정할 만한 조건의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결혼 후 심이섭은 지식인의 철저한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밖으로는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며 대안적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이지만, 안으로는 아내의 등 한번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하는 허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 대한 항변과 이 시대 지식인의 참을 수 없는 허약함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과연, 나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머리로는 가장 낮은 곳을 향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언정, 가슴으로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는 한계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는 그 가벼움에서 말이다. 결국 심이섭은 떠나고, 필순에게 남겨진 것은 온통 아이들 뿐이다. 전 남편 소생의 자식, 이섭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두 아이, 여동생과 동거했던 남자가 맡기고 간 아이........... 무엇이 그녀를 '생의 선물'과도 같은 이섭을 놓치면서 한둘도 아니고 다섯명의 아이를 끌어안을 수 있었던 그 가치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가치'의 실체를 바로 작가인 '공선옥'의 삶에서 찾아보려 한다. 공선옥이 그간 작품에서 보여주는 우리시대의 가난한 여성들의 굴절된 삶의 팍팍함과 처절한 공포와 힘에 부친 싸움은 바로 그녀의 삶 속에 오롯이 살아있다. 우리 현대사의 빗겨설 수 없는 5.18의 잔흔은 당시 전남대 구내에 있던 사대부고 1학년이었던 작가에게도 자신의 세계를 흔들어 놓았던 상처가 되어 대학 진학 후 2년만에 학교를 자퇴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사업도 무너지면서 생계에 대한 살인적인 공포를 겪고, 전부터 알고 지내던 광주 시민군 출신과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다. 하지만 그 결혼 생활은 3년만에 둘째를 임신한 채 이혼으로 끝났다. 이혼 후 달동네를 전전하며 재봉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먹고사느라 따로 글을 쓸 시간을 내지 못했던 작가는 재봉틀 위에 원고지를 올려놓고 틈틈이 소설을 쓰다가 91년 '씨앗불'로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로 지금까지, 원고료로 삶을 끌어가고 있다. 가난과 성적억압의 굴레를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왔던 작가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분신들인 '강필순'류의 주인공을 통해 이 사회를 향해 거칠게 항변할 수 있었다. 또한, 좌절과 고통의 삶만이 아니라 끝내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일어서는 질긴 생명력 역시 그녀가 극복해왔던 삶의 정수이기도하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의 분신들을 희망과 행복 만들기로 장식해주지 않는 냉정함과 냉철함을 잊지 않는 것이 그녀만이 갖고 있는 작품세계이다. 강필순이 심이섭과 이혼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쌀'을 재여 놓고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 대신 슬픔이 자신의 생으로 걸어오고 있다면, 차라리 그 슬픔을 친구 삼아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뇌까림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아이만 주렁주렁 달리고 두 번이나 이혼한 이 사회의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게, 결국 먹고 살아야 하는 생계문제와 가부장제와 허위의식에 가득 찬 이 사회의 시선을 과감하게 부딪히며 모질게 살아가야 하는 문제임을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처절하게 겪어야 했었기에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강필순 아니 공선옥의 이 아름다운 승리 앞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서늘함과 나 역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부조리한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라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는,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생명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면, 너무 거창한 생각일까?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자기 자식도 모자라 다섯 명의 자식을 끌어안고 권위와 가식의 형상인 '아비 마음'에 맞서 의연하게 걸어나가는 필순의 '어미 마음'이야 말로 이 시대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화두'임을 거칠게 내보인 작가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 안아본다. |
| 공선옥의 소설.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소위 진보적인 양 자처하는 지식인들의 허위를 과장되지 않게 잘 드러내는 작품.. 흔히 '어머니' 하면 남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원한 대지나 자궁, 또는 희생을 감내하는 연약한 피해자로 형상화되기 일쑤인데, 이 작품 속의 여주인공의 모성은 넘치지도 그러하도 빈약하지도 않게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하게 그려진다. '고귀한 모성'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작품을 읽어보면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데리고 사는 30대 중반 여공과 대단한 가문에 부족할 것 없는 출신이지만, '가난하게 참되게 살자.'라는 신조로 도시 변두리 동네에서 의사로 개업하고 있는 30대 중반 이혼남(독신이던가? 어쨌든..)이 어찌 어찌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가난하게 살자'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환경 운동이며, 각종 있어보이는 운동은 다 하는 이남자, 자연 속에서 환경 친화적으로 살겠다며 여자와 시골로 이주해 병원을 차리는데 사사건건 자신이 이루고 있는 삶과 여자와의 셜혼에 대해 '시혜적'인 태도를 보인다. '난 잘나갈 수 있고, 잘 살 수 있는 데, 일부러 가난하게 살아주고, 너와 결혼도 해주는 것이다'라는 식의... 마치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여자 하나 구원해 주었다는 식의... 자신 같은 사람이 시골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는 식의... 그렇다고 이 의사가 '강진구'같은 완전 가짜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악인도 아니고, 턱없는 속물도 아니다. 단지 인생을 잘 '모를' 뿐이다. 이런 진보적 허위의식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이 작품은 각종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
| 필순이라는 여자 이야기입니다. 읽으면서 내내 주위의 다른 여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만약에 자신이 필순이라면 어찌했을 거냐고, 작가가 말하는 '어미 마음'을 필순처럼 그렇게 순진하게 받아들여도 되는 거냐고, 순진한 어미 마음에서 비롯된 필순의 결정들이 정말 최선인지 다른 길이 있을런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있는 스타이넘의 <일상의 반란="">이 필순의 인생에 대해선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지.... 책 뒤에 남편이 남긴 메모를 보니 남편은 이 소설에서 사람 사이 소통의 문제를 느꼈나봅니다. 난 그보다 '여성과 모성'이라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같은 책을 읽고도 이토록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도 남편과 내가 남성과 여성인 차이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일상의> |
| 가난하고 못 배우고 신산스러운 삶의 희생양. 공선옥이라는 사람은 남편없이 혼자서 애를 키운다고 한다.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건 윤대녕이나 박상우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이 남자들은 우선 배가 부른 사람들이다.(혹 본인들이 이 글을 보더라도 오해는 말기 바란다. 난 공선옥에 비교하여 하는 말이니.) 이들은 대학로 오랜 전통이 있는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인생을 논하고, 글이 잘 안 써진다 하여 자신의 노트북 한 권 챙겨 산 속 외딴 곳에서 마음대로 글을 쓸 자유가 있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없으니 인생에 대해, 진리에 대해 마음껏 사색하고 자유롭게 글을 쓴다. 그래서 그들의 글을 읽을 땐 눈물 흘릴 필요가 없다. 다만 나도 그들의 입장에 동하여 나의 첫사랑을 추억하며 그 때 그랬는데, 맞아, 나도 이랬었지...하면 끝이다. 반면 공선옥은 사색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글쓰기란 밥벌이와 같은 의미이니 그녀에겐 사색할 시간이 없나보다. 그녀는 글을 써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글을 써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나온다. 그녀는 돌아볼 과거가 있을지라도 추억에 빠질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서는 기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대신 그녀의 글에서는 눈물나는 일상의 처절함이, 그럼에도 힘을 가지고 삶에 대응하는 주인공들이 보인다. 보통 이런 도식적인 구조는 그 뻔함에 질리게 되고 상투성에 머리 내돌리게 되나 공선옥의 소설은 외면할 수가 없다. 왜냐고? 진실. 외면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 작가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진실때문이 아닐까. 남들 다 가는 학교 졸업하고, 남들이 다 인정해 주는 평범하지만 안온한 직장도 가지고 있고, 비교적 건실한 남편이 있고 나와 남편의 새끼임이 분명한 딸네미가 있는, 소설속 주인공과는 모든 점에서 판이하게 다른 나이지만 그녀를 보며, 자기 자식 뿐만 아니라 남의 자식들까지 껴안고서는 세상을 향해 가슴을 활짝 펴고 "한 번 해 볼테면 해 보라지."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외쳐대는 그녀를 보며 나 또한 눈물이 아니 나올 수 없다. 여성 독자라면 공감하며, 남성 독자라면 반성하며 한 번 읽음직 한 책이 아닐까 한다. |
| 공선옥 씨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이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왠지 다가가기 힘든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수수밭으로 오세요' 라는 작품이 동안상 후보에 올랐다는 기사를 읽고서는 덕컥 책을 사버렸다. 무슨 내용이길래..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이 여자의 작품을 꼭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도 들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사놓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책장 속에 묵혀두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그 책을 집어 들었고, 그 책을 하룻밤 새에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내용이 어렵다거나 하는 것이 없었고, 내용 또한 그 다음이 궁금하여 계속 읽히게 만들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필순이라는 여자, 한 사내아이의 엄마. 이혼녀. 의사의 재혼녀... 그리고, 또, 의사와 이혼한 여자. 결국에는 다섯 아이의 엄마. 솔직히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필순이라는 여자가 정말 답답하여 미칠 것 같았다. 고등학교도 못 나온 애딸린 이혼녀가 어찌 하다가 의사와 결혼을 했으면 말이지. 어떤 노력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책을 좀 더 읽는다던지.. 말투를 좀 고쳐본다던지, 하는 등의 노력.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곧 바뀌고 만다. 남자는 어땠는데? 그런 여자랑 결혼 했으면 자신도 바뀌어야 하는것 아냐? 제까짓게 뭔데 여자를 무시해? 하는 생각. 결국에 그 나쁜 남자는 떠나버리고, 그 답답한 여자는 그곳에 남아 남은 아이들을 거두는데 그 여자는 오히려 슬프지 않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모성애인가. 나같이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 여자애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아도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할 때, 사는게 왜 사는건가. 할 때, 그럴때, 이 책을 가끔 꺼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휴....그런데, 아직도 이 책의 여운이 남아 있는지 가슴 가득 먹먹한 기운만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