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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끝부분에 쓴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
"생의 끝부분에 쓴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 내용보기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2월 에도(현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나쓰메 긴노스케이다. 그는 후처로 들어온 친모의 늦둥이로 태어나자마자 가난한 고철(야채?)장수에게 양자로 보내지고, 고철과 함께 자고있는 어린 동생을 불쌍하게 여긴 누나에 의해 다시 본가로 돌아오지만 다시 시오바라가에 수양아들로 보내진다. 양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9세에 생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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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2월 에도(현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나쓰메 긴노스케이다. 그는 후처로 들어온 친모의 늦둥이로 태어나자마자 가난한 고철(야채?)장수에게 양자로 보내지고, 고철과 함께 자고있는 어린 동생을 불쌍하게 여긴 누나에 의해 다시 본가로 돌아오지만 다시 시오바라가에 수양아들로 보내진다. 양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9세에 생가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친부와 양부의 대립으로 21세가 되어서야 나쓰메 가로 복적된다. 그의 어릴 적 양부모와의 관계가 이 '길 위의 생(초도)'에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p122 부부는 전력을 다해 겐조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중략-
그는 이미 육체가 속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속박이었다.
부부는 말끝마다 겐조에게 자신들의 은혜를 각인시키려고 했다.
아버지와 엄마를 떠나 과자를 먹는다거나 무심히 옷을 입는 일 따위는 당연히 겐조에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는 오히려 그것들을 사준 사람들을 고마워하지 않게 되어갔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떠나 순수한 즐거움에 빠지고 싶었다. 그들의 애정 속에는 이상한 보상심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 부분에는 겐조와 양부모의 관계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일생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의무감이나 구속감 없이 그 순간에 몰입되어야 할 시기의 어린아이가 과자를 먹거나 조금의 호의까지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엄청난 구속감과 압박감을 느꼈을까. 그 기억으로 인해 겐조는 자연스런 사랑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거나 소통하기 어려운 그의 기질로 인해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아내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끝끝내 다가서기 어려운 벽을 만들고 고통받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대목은 신경증적인 성격을 지녀서 영국 유학시절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나쓰메 소세키와 히스테리로 인한 발작을 종종 일으키곤 했던 그의 아내 교코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p134 인간은 평소 자신의 미래만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그 미래가 어느 순간에 일어난 어떤 위험 때문에 순식간에 막혀, 아, 나는 이제 끝장이로구나 싶으면 불현듯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니까 그 순간 모든 과거의 경험이 한꺼번에 의식된다는 거야.
 
높은 빌딩의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떨어지는 찰나의 시간 동안 자신의 전 생애를 회고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가끔 나는 나의 장례식에 올 친구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 장면은 내겐 과거의 사람들, 과거의 인연들, 내 삶의 과거를 반추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여 앉아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각자 자신의 경험치 안에서 나를 규정하겠지? 그것들이 다 모여 나란 사람의 인격과 삶을 규정할테고... 썩 자신이 없는걸 보면 내가 지금껏 썩 잘 살진 못했던 것 같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 빗댄다면 골드문트에 가까운 인간형, 어떠한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면서도 내 안의 도덕율에 괴로워하는...아, 이쯤에서 내 얘긴 그만두자.
이 글을 쓸 무렵의 나쓰메 소세키는 삶을 1년 정도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기였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끝을 어느정도 내다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자신의 유년기와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와 갈등을 그리도 적나라하게 되돌아보고 자신을 괴롭혀 왔던 것들에 대해 털어놓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해를 청하지 않았을까, 이 글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앙이 없는 그는 도저히 '신만은 잘 알고 있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중략-
그의 도덕은 언제나 자기로부터 자기로 끝날 뿐이었다.
 
'만약 저 가련한 할머니가 착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의지할 곳 없는 부인, 옛날의 양어머니를 거두어 임종까지도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을 형식적이라고 하는 건 말야, 인간의 내면이야 어찌됐든 바깥에 드러난 것만 붙잡으면 그걸로 그 인간을 전부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 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여러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꾸는 거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고등학교 때 선생님 한 분이 생각난다. 자기는 하느님을 믿으니까 일주일 동안 죄를 실컷 짓고도 주일에 교회에 가서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빌면 된다고 말했던... 나도 종교가 없기 때문에 이 글에서 이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양모였던 오쓰네가 늙고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신세가 되어 겐조를 찾아온다. 양부였던 시마다가 며칠마다 찾아와 용돈을 뜯어가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겐조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 수단껏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포장하던 교활한 양모를 떠올리며 어떠한 동정심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두 사람의 요구를 다 거절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몇 푼의 돈을 집어 줄 뿐이다. 속으론 불쾌한 감정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 대목에서 인간관계에서 생각대로만 움직일 수 없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필연이란 것, 그것에 얽매여 버린 융통성 없는 지식인 겐조의 고통이 느껴진다.
 
 
한편으론 이렇게 자신 안의 상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겐조와 대조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끼고 본능에 더욱 충실한 아내의 모습을 통해 낙천적인 인간의 내면의 행복감 또한 이 글은 드러내 보인다. 때론 그도 이러한 모습 속에서 위안을 받았으리라.
 
특별한 사건의 전개도 없고, 그저 지식인 겐조와 그를 둘러싼 양부모, 가족, 친지,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밋밋하게 흘러가는 이 소설은 작가의 생의 후반기에 쓴 작품이라서인지 생을 되돌아보고 통찰하는 이야기들이 중간중간 많이 등장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사람의 성격과 내면을 형성하는 생의 경험과 그것이 그의 생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흥미롭게 읽었다.
YES마니아 : 골드 p******e 2010.12.15. 신고 공감 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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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없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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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접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작가의 사진을 보며 '잘 생겼다'다. 읽다 지루하면 사진 쳐다보고 '멋진 남자'다. 어이상실이겠지만 아무튼 난 그랬다.원 제목은 <미치쿠사>로 길가다가 딴 짓을 하다라는 뜻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면이 많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사건 사고가 없이 상대방에 대한 느낌들이 많다. 양부 시마다와 겐조 사이가 그렇고 겐조와 아내 사이가 그렇다.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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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접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작가의 사진을 보며 '잘 생겼다'다.
읽다 지루하면 사진 쳐다보고 '멋진 남자'다. 어이상실이겠지만 아무튼 난 그랬다.

원 제목은 <미치쿠사>로 길가다가 딴 짓을 하다라는 뜻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면이 많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사건 사고가 없이 상대방에 대한 느낌들이 많다. 양부 시마다와 겐조 사이가 그렇고 겐조와 아내 사이가 그렇다. 며칠전 독도는 일본땅이라며 입국을 거절당하고도 비빔밥을 시켜먹은 일본 의원들의 태도와 말도 안되는 고집불통의 양부 시마다와 폭염은 닮았다. 

양부 시마다는 겐조가 쓴 복적에 따른 증서를 증거로 집요하게 거머리처럼 붙어 돈을 요구한다. 아내와는 끊임없이 티격태격 타협이 이루어 지지않고 몰락한 장인과 가난한 형제들은 주인공인 겐조가 왜 태어났는지 어디서 왔는지 늘 삶의 길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며 혼자 있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답답한 이유들과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딱히 그렇다할 사건은 없다. 자신의 환경과 주위 사람들에게 분노의 가치도 느끼지 않는 겐조처럼 일본 의원들에게 내 마음 또한 그렇다. 왜 책을 덮는데 일본 의원들 같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국민작가라는 칭호를 달고 다닌단다.

올해 처음 산 책, 올해 처음 읽은 책, 몇 년 만에 쓰는 리뷰의 -길 위의 생-
옮긴이의 글에 "나이 들면 <길 위의 생>을 읽으십시오. 인생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면 지금 읽으십시오." ...그래도 허접한 잘 생긴 작가의 책!흐 

q******0 2011.08.03.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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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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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소설은 100년 전 소설이고 시대적 배경도 100년 전입니다. 하지만 21세기, 2013년 현재, 현대인이 봐도 거부감이 없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근대 문명의 유입으로 인간 소외가 발생하기 시작한 그 시절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소세키는 주로 다루었고 길 위의 생 또한 역시 그렇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세계의 중요 문제 중 하나는 인간 소외이고 대부분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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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의 소설은 100년 전 소설이고 시대적 배경도 100년 전입니다. 하지만 21세기, 2013년 현재, 현대인이 봐도 거부감이 없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근대 문명의 유입으로 인간 소외가 발생하기 시작한 그 시절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소세키는 주로 다루었고 길 위의 생 또한 역시 그렇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세계의 중요 문제 중 하나는 인간 소외이고 대부분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인간 소외 문제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소설은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집니다. 소세키 또한 이를 예상하고 주인공 겐조는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일단 한 번 일어난 것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뀌는 것으로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소설은 소세키의 자전소설로 유명한데요. 주인공이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내졌다가 다시 생가로 돌아왔다는 점, 100년 외국 유학이 매우 드문 시절에서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라는 것, 천연두에 걸렸다는 점, 부인과의 사이가 안 좋다는 모습이 소설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 현대인 그리고 돈

 

 주인공 겐조는 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납니다. 친아버지는 원해서 낳은 자식이 아니어서 자식이 없는 시마다에게 겐조를 양아들로 보냅니다. 시마다가 여자문제로 양모와 이혼하자 겐조는 생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시마다와 친아버지는 겐조 문제를 가지고 소동을 겪습니다.

 

 이 소설의 큰 표면적 줄기는 겐조와 양부 시마다의 관계입니다. 겐조는 시마다에게 애정과 증오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데요. 시마다는 물건을 살 때 마다 안 깎는 것이 없을 정도로 짠돌이지만 겐조에게는 장난감이고 먹을 것을 사주며 돈에 대한 관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겐조는 어린 시절 양부 시마다가 자신에게 보인 순수하지 않은 그의 애정을 알면서도 시마다가 겐조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구하기 위한 방문을 할 때 마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립니다. 성인이 된 겐조의 모습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이 과거 자신의 경험이나 자랐던 집 등을 자주 술회하는데요.

 

 시마다 부부는 시종 “너는 누구의 자식이지? 너의 부모는 누구지?”라고 묻고 겐조에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아버지가, 어미나가’라는 단어를 말하는 도중에 강조하면서 말합니다. 자식이 없어 겐조를 입양한 시마다는 겐조를 통해 친자식이 채우지 못한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겐조가 성장 했을 때 겐조에게 또는 겐조 집안에 금전적 보상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주인공이지만 생가로 돌아온 후에도 친아버지에게 아무런 사랑을 받지 못하였고 겐조에게 어린시절 사랑을 보여준 사람은 시마다 부부였기에 순수하지 못한 그들의 애정에게도 어느 정도 만족을 느낍니다.

 

 오직 돈만을 최고라고 믿는 사람을 경멸하는 주인공은 시마다를 하찮게 여기지만 그래도 애정을 갖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시마다의 전 부인, 양모입니다. 그녀는 시마다보다 더욱 인식하였습니다. 밥통과 반찬이 들어 있는 찬장에 자물쇠를 채우며 생활하였고 식사 시간 전후로 친정아버지가 찾아와도 식사 대접은 안할 정도 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시마다가 바람을 피우자 양모가 표출한 과한 질투는 어린 시절 주인공을 질려 버리게 하여 주인공은 시마다보다 양모를 더 싫어합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준 시마다가 그나마 나아 보였던 것이지요.

 

 이야기의 큰 흐름은 시마다가 돈을 요구하는 방문이지만 겐조는 많이 이들에게 금전적 요구를 당합니다. 이복누나에게 매달 얼마의 돈을 보냈고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궁색하게 사는 형에게도 간접적으로 금전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공부했다가 돌아왔다는 겐조의 소식을 들은 양모도 꾸준히 찾아옵니다. 또한, 학문만을 하는 사위를 싫어하고 겐조가 싫어하는 오직 실무만을 예찬하는 장인이 머리를 숙여 겐조에게 보증을 부탁합니다. 겐조는 이런 이들에게 꾸준히 압박을 받으며 신경쇠약으로 힘들어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어서 소세키의 삶을 어느정도 투영한 글이기도 하지만 소시키의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오직 돈만을 생각하는 이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욕는 겐조도 비판합니다. 돈이 전부인 세상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특히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돈은 살아가는 데 필수입니다. 풍부한 편인 시마다 내외가 오직 돈만을 생각하는 점을 비판할 수 있지만 궁색한 이복형제와 힘들게 살림을 운영하는 부인에게 조차도 경멸을 눈초리를 지닌 겐조 어찌 보면 소세키 자신을 반성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 갈등 그리고 소통의 부재

 

 이야기의 큰 흐름은 시마다가 돈을 요구하는 방문이지만 겐조는 많이 이들에게 금전적 요구를 당합니다. 이복누나에게 매달 얼마의 돈을 보냈고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궁색하게 사는 형에게도 간접적으로 금전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공부했다가 돌아왔다는 겐조의 소식을 들은 양모도 꾸준히 찾아옵니다. 또한, 학문만을 하는 사위를 싫어하고 겐조가 싫어하는 오직 실무만을 예찬하는 장인이 머리를 숙여 겐조에게 보증을 부탁합니다. 겐조는 이런 이들에게 꾸준히 압박을 받으며 신경쇠약으로 힘들어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어서 소세키의 삶을 어느정도 투영한 글이기도 하지만 소시키의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오직 돈만을 생각하는 이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욕는 겐조도 비판합니다. 돈이 전부인 세상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특히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돈은 살아가는 데 필수입니다. 풍부한 편인 시마다 내외가 오직 돈만을 생각하는 점을 비판할 수 있지만 궁색한 이복형제와 힘들게 살림을 운영하는 부인에게 조차도 경멸을 눈초리를 지닌 겐조 어찌 보면 소세키 자신을 반성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부인과이 사이가 동그라미 안에서 빙빙 돌면서 술래잡기 하듯이 그들은 끊임없이 삐그덕 거립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족을 소홀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모습이 자신의 가정불화를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부인도 주인공인 남편과의 불화에 한몫을 하여 그들은 힘든 삶을 이어갑니다. 이러한 사람 간에 하물며 가족 간에 부족한 배려는 100년 전에도, 100년 후에도 여전히 나타납니다.

 

 부인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진솔한 대화가 없어 주인공 내외는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부인은 히스테리를 부리고 남편은 신경쇠약을 겪고 있는데요. 대화가 없는 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남이 그런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현재 자신의 심정을 필요한 만큼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 될지라도 조금은 감정이 누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부인은 앙상한 노인이 되어 찾아온 시마다가 겐조에게 귀찮기만 하는 존재이기만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마다의 방문 허락을 자신에게 항상 군림하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이지만 귀찮은 일도 거절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겐조에게는 시마다가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유년시절 유일하게 순수하지 못한 애정이라도 보여준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남편은 마지막까지 부인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 마무리

 

 소세키 특유의 탐미적인 문체와 인물 묘사가 여전히 멋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리고 우리는 평생 갈등과 싸워야함을 현실적으로 나타냈다고 보여집니다. 소세키의 작품의 가치는 여러 가지 있지만 인간 소외 문제가 시작되는 무렵부터 그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숙제입니다. 고전의 아름다운과 위대함은 그 시대는 반영함은 물론이고 당대를 뛰어넘어 다른 시대까지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는 이 책도 소중한 걸작입니다

b******5 2013.1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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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道草) -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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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문학적 성공을 얻기 전의 궁핍했던 시기. 그의 실제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길 위의 생>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 부분. 양아버지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100엔을 지급하고 증서를 받고 난 후, 아내와 이야기하는 부분에 압축되어 있었다. “끝난 건 거죽뿐이라구. 그러니까 당신을 형식만 아는 여자라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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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문학적 성공을 얻기 전의 궁핍했던 시기. 그의 실제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길 위의 생>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 부분. 양아버지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100엔을 지급하고 증서를 받고 난 후, 아내와 이야기하는 부분에 압축되어 있었다.

 

“끝난 건 거죽뿐이라구. 그러니까 당신을 형식만 아는 여자라고 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정말로 끝이 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 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꾸는 거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아이고. 우리 아기 예쁘기도 하지. 아버님 말씀은 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 310~311p-

 

소세키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는 겐조와 아내의 대화는 인간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모습과 그 답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기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마치 평행선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모습 전체가 나쓰메 소세키가 생각하는 답이었던 것 같다.

 

<길 위의 생>에서의 겐조는 없는 살림집에 막내로 태어난 죄로 혹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겐조는 양육의 문제 때문에 양아버지 시마다에게 입양되는데, 입양된 곳에서도 그들이 늙었을 때 요긴하게 사용할 연금의 목적으로 양육되었다는 불만을 책 속에 드러낸다. 이로 인해서 겐조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대하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유년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간직한 겐조는 인정머리 없고 틀에 박힌 지식인의 모습으로 자란다. 솔직히 겐조 보다는 누이와 매형. 형. 장인. 양부와 양모가 훨씬 더 문제점이 많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이들과 타협하려하지 않는 겐조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나의 문제점은 없을까? 있다면 고쳐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은 전혀 없어 보인다.

 

사실 겐조가 탐욕스러운 그들과 타협 또는 융화하려는 노력과 행동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빚보증 잘못 섰다가 나까지 낭패를 보게 될 결과가 눈에 뻔히 보이듯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친척들의 끊이지 않는 금전적 요구때문에 지식인의 무기력함에 대한 회의감까지 찾아오는 등 심리적으로 큰 압박감을 받고 있었던 겐조는 그 감정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그래도 옮겨담어 사회로 표출한다.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주위의 사람에 대항하여 겐조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길 위의 생>의 결말은 통쾌하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했다시피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휩쓸리지 말고 “자기 소신껏 삶을 살아보는 것이 어떠냐?”라는 조언을 나쓰메 소세키는 건네준다.

 

이것이 서양의 문화가 스며들었던 일본 근대사회에 대항하여 부조리를 폭로했던 그가 남긴 마지막 목소리였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소설 속 시점상의 제약(3인칭 구조를 띠고 있음에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과 소설 밖 공간적 제약(다소 짧은 페이지) 때문에 사건이 중구난방으로 얽혀있어 그의 삶을 온전히 기억해낼 수 없었던 점이었다. 




k*******7 2012.02.05.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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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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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 이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인데도 나는 전혀 몰랐었지만,킥킥대며 참 재밌게 읽었다.   반면에 <길위의 생>은 웃으며 읽기에는 좀 무겁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만큼 책의 내용은 그의 삶의 일부분이다.처음부터 끝까지 고지식한 작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릴 적 부터 마지막까지 그의 모습은 길위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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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 이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인데도 나는 전혀 몰랐었지만,킥킥대며 참 재밌게 읽었다.

 

반면에 <길위의 생>은 웃으며 읽기에는 좀 무겁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만큼 책의 내용은 그의 삶의 일부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지식한 작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릴 적 부터 마지막까지 그의 모습은 길위의 생이라는 제목처럼 하루 하루가 평탄할 날이 없을 정도로 우울한 삶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대단한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본래의 그는 글쓰는 일외에 일상 속에서 빛났던 적은 없는 듯 하다.

 

사회에서 보여지는 상징적인 모습과 현실에서의 모습은 작가 스스로도 많은 차이가 있음을 확실히 느끼고, 그로 인한 고독의 시간도 맛 보았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그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혼자서 그 고독을 견뎌내야 하는 일도 평생 함께 할테고 말이다.

 

 

 

 

 

 


 

 

 

 

 

 

 

p****7 2011.1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