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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과제는 하나의 이성 개념을 다른 이성 개념과 완고하게 반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비판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그리하여 가능하다면 현실 가운데 있는 두 개념의 화해를 정신적 영역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합리적 독단론의 객관적 이성과 영국 경험론의 주관적 사고 간의 분쟁과 연관해서 칸트가 내세운 준칙, 즉 '비판적 도정만이 여전히 유일하게 열려 있다'라는 준칙은 현재의 상황에도 잘 들어맞는다. 우리 시대에는 고립된 주관적 이성이 도처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동반한 승리를 거두고 있기 때문에, 비판은 주관주의적 철학의 잔재를 강조하기보다는 필연적으로 객관적 이성을 강조하면서 수행되어야만 한다.(p.216)
이 책의 저자인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푸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유럽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이 책은 비판이론의 발전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책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중심개념은 자연과 인간을 도구화하고 파멸로 이끄는 도구적이성이라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란 호르크하이머가 지도하기 시작한 후의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 참가한 여러 학자들과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재건된 동 연구소에서 배출된 제2세대의 연구자를 포함한 것을 총칭한 것이다. 그리고 비판이론에 있어서 비판이라고 하는 개념은 독일철학, 특히 칸트와 헤겔 및 마르크스의 인식론에 흐르는 비판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결국 비판이론의 철학적 근원은 마르크스사상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변증법적 정신을 회복하려는 것이며, 이는 곧 변증법적 이론의 칸트적 및 헤겔적 근원에 복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비판이론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에 유럽의 상황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정치와 학문이 휴머니즘적 이상의 도덕적 척도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르주아의 관념은 정치적 현실과는 거의 부합되지 않았고, 그러한 정치는 오히려 제국주의적 성향을 띄어 결국 제 2차 세계 대전까지 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대립과 관련하여 합리성이란 용어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인간은 행복해야 하고 또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기능을 잘 발휘해야 한다고 하고있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주요한 기능이란 이성으로 보고 있고 이러한 이성에 따른 습관화된 생활 중용을 중요한 삶의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이성이 가장 궁극적인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학설들은 이성을 가장 중요한 목적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실용주의 학자나 경험론자들을 보면 이성을 인간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보고 있기 때문에 이성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지 않고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즉, 지식 자체가 계속 세속화·도구화되어 전통적인 비판적 이성보다는 도구적 이성을 더 중요시하게된다. 이성이 ‘도구화’하면 맹목적이 되어 오류를 막는 비판적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으로 비판적 이성이 목적 설정 자체에 대한 성찰인 반면, 도구적 이성이란, 목적은 누군가 정해놨고 그걸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낼 수 있느냐 하는 노하우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도구적 이성 비판'은 현대사회와 문명, 그리고 그것을 이념적으로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기 위한 규범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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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염세주의자, 실천적 낙관주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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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도구적 이성의 발현이 금권정치, 승자독식의 사회분위기, 소시민적 아큐정신, 집단적 야만주의를 초래했다. 홍세화씨 말대로 '잘 산다'는 것과 '옳게 산다'는 것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 이유도 도구적 이성의 만연화 때문이다.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기본적으로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현대의 문화적 위기, 정체성의 위기, 생태계의 위기, 홀로코스트의 위기를 이데올로기 비판의 시각으로 해명하려는 기획이다.
계몽의 정신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귀결된다. 신화와 주술의 세계에서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로 옮겨오면서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 모두를 양산해내었다. 호르크하이머는 현대 산업 사회 문화의 저변에 놓여 있는 합리성을 도구적 이성으로 정의한다. 도구적 이성이란 이성의 타락이자 변질인 셈이다. 이를 비인간화된 현대 사회의 위기의 원인으로 돌린다. 폭력, 침략, 전쟁, 홀로코스트 등이 도구적 이성의 역사적 결과물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제1대 교주인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비판은 「이질성과 타자성을 배제하는 동일성의 철학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을 긍정하고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여기엔 실증주의와 신토마스주의와 더불어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포함됨에 유의해야 한다. 휴머니즘 또한 그의 비판을 피할 길이 없는데 관용의 양가성이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야기한다는 지적이 매우 흥미롭다. 도구적 이성 비판의 사회적 맥락으로 스탈린주의의 야만성과 파시즘의 홀로코스트,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대중선동에 기반한 소비문화 발달과 같은 역사적 경험을 들 수 있다.
도구적 이성 비판이란 한마디로 물신화와 자율성 상실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가 주관적 이성과 객관적 이성을 구분하고, 이성의 자율성 상실이 가져온 일련의 사회문화적 효과들에 주목하는 이유도 물신이데올로기의 본질을 보다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다.
「사물을 지배하는 권력에 대한 개인의 관심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사물이 점점 더 개인을 지배할 것이며, 개인은 점점 더 진정으로 개인적인 특성을 잃을 것이며, 개인의 정신은 점점 더 형식화된 이성의 자동장치로 변질될 것이다.」(166쪽)
도구적 이성 비판은 하버마스의 말대로 '미완의 계몽기획'을 완성하려는 사회철학연구의 사상적 기초이다.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은 마르크스의 소외론과 루카치의 물화론, 그리고 훗날 하버마스의 생활세계의 식민화론과 연계되는 현대성 이데올로기 비판의 중추적 개념이다.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이성 이론으로 진화한다.
도구적 이성비판은 한마디로 왜 이성적 주체가 야만적인 역사적 조건을 이끌었는가에 대한 지적인 고민이다. 역자인 박구용은 다음의 다섯 명제로 도구적 이성비판의 논점을 정리한다.
1.객관적 진리를 부정하는 주관적 이성의 전면화는 이성을 목적에 합당한 수단을 계산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 2.현재의 문화적 위기는 실증주의 철학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3.인간에 의한 자연지배의 역사는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의 역사다. 4.원자적 개인주의 시대에 진정한 개인은 사라진다. 5.철학은 언어를 잃어버린 것들의 언어가 되어야 하고 억압적 현실과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비판하는 부정의 철학이어야만 한다.
역자는 호르크하이머를 이론적 염세주의자이면서 실천적 낙관주의자로 평가한다. 이점에서 나는 역자와는 생각이 다르다. 호르크하이머의 후기저작을 보면 그가 쇼펜하우어식 비관주의적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다. 그에게 순수한 실천적 낙관주의자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호르크하이머가 그람시는 아닌 것이다. 그람시는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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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느껴지는 염세적인 이성에 대한 성찰이 스스로를 너무 옭아매지는 않을까라는 염려로 책장을 넘겼다. 부재 '이성의 상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로 현대 사회에서 물질이나 출세 등등의 목표나 대중매체, 각종 타자성의 요인에 휩쓸려 제대로 된 개인의 이성의 힘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문제삼았다.
호르크하이머는 '개인'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 같다. 완전히 성장한 개인은 완전히 성장한 사회의 완성이다. 개인의 해방은 사회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단화와 대중문화의 시기에 정점에 이를 수 있는 원자화, 바로 그 원자화로부터 사회를 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page 172
나 역시 현실을 고민하고, 불만이 있지만 적절하게 해소하고 찾은 결과는 늘 언제나 현실과의 타협일 뿐임을 고백하게 된다. 즉, 호르크하이머처럼 날카롭게 비판 이론을 붙들고 씨름해야 할 현실은 나에게 저 멀리 있으며, 이 부정적인 현실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현실은 거의 없을 듯 하다. 시크릿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 외에는...^^)의 분석은 전문가에게 맡겨두는 편이 내 생활에 더 유익함을 익히 알고 있다.
그의 태생 때문인 것일까? 유태계의 독일 철학자의 사고는 그리 긍정적이 되지 못함을...하지만 그는 현실의 허무주의자도 아니고 염세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가 알고자 한 자아와 이성.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의식이 일반인에게는 어렵게 다가오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사유에서는 평생 떠나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