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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 굉장히 많은 것을 얻었던 책.
김동호 목사님은 '성향'에 따라서 선호도들이 갈리는 편이지만, 대체적으로 온건보수 정도에 서 있다고 본다면, 그래도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들이 엿보이는 분이라 생각하여 추천에 힘을 실어 주고 싶다.
청년 사역에도 큰 역할들을 감당하고 계시고, 대표적으로 '청부론' 등의 주장이 자주 회자되는 것 같다.
하나의 큰 단일 교회를 여러 교회로 나누는 시도라든지, 교회의 1년 예산안 등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교회의 style이나 사역 방식은 귀감이 될 만한 부분도 많아 보인다.(요즘도 지속되고 있는 거겠죠?)
무엇보다도 목사님의 '삶 그 자체' 에서 많은 것을 배웠음에 참 기쁘다.
훌륭한 본보기가 되는 목회자는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하다. 많은 성도들은 그런 역할 모델을 찾아 헤매고 있다. 물론 그와 같이 부담스러운 역할을 목회자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사람을 보고 시험에 드는 건 결국 자신의 연약함 때문임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닌 존재들이며 더욱이 교회 내에서 그와 같은 본보기는 너무 중요하다.
몇 군데 , 좋아하는 부분들을 몇 자 적어 보자면..
[게으름에 대하여] 하나님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3:10) 고 하셨다. 하나님은 게으른 것을 악한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은 게으른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고 말씀하셨다. 게으름과 악함은 동일한 것이다. -> 해석을 잘못 하면 오해가 생길 수는 있지만, 열심을 얻고 싶을 때 특히 와닿는 고백
[사랑 그리고 죄]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무조건 죄를 모른 척하고 덮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죄와 싸우라고 말하고 있다. 피 흘리기까지 죽도록 싸우라고 말한다.(히 12:4). 마귀 , 즉 죄를 피하지 말고 대적하라고 말한다. (약 4:7)
우리는 죄와 싸운다고 하면서 죄를 파헤친다. 죄를 파헤친 후 죄와 함께 죄인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죄는 죽이지 못하고 죄인만 죽인다. 어떤 때는 죄인을 죽이기 위해 그에게서 죄를 열심히 찾아내기도 한다. 죄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파헤치는 것이다. 죄를 죽이려 함이 아니라 죄인을 죽이려 함이 목적인 경우가 참 많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행동을 절대로 옳다고 하지 않으신다.
[원수 그리고 복수]
다윗이 사울에게도 복수하지 않고 , 시므이에게도 복수하지 않은 데는 공통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다. 다윗이 사울이나 시므이에게 손대려고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처럼 믿음은 참으로 대단하다.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믿음에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수를 금하셨다. 사람들은 출애굽기 21장에 나오는 '눈은 눈으로 , 이는 이로' 라는 말씀을 복수의 법으로 이해하지만 그 말씀은 복수의 법이 아니라 책임의 법이다. 그 말씀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가해자가 남에게 피해를 입힌 만큼 핑계 대지 말고 정직하게 갚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선한 해석이다. 다른 많은 목회자, 신학자들의 견해와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한데... 난 , 이 지헤도 꽤나 유용하다고 믿는다.... 이게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돈.....구제활동] 지난 한 해 동안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쓴 돈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가? 적든 많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는 물질의 원칙과 목표 , 기준이 있는가? 세상을 떠날 때 재산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 있는가? 세상에 돈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 구체적인 목표 없이 살다 보면 , 훈련 없이 살다 보면 돈을 다스리지 못하고 평생 돈에 끌려 다니다가 망신 당하기 십상이다. 돈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목표를 가지고 엄격하게 자신을 훈련하여 돈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닌 돈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념] 나는 좌와 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사랑하는 진심이라 생각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진심이 없다면 좌든 우든 아무 소용이 없다.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를 주장하고 ,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좌를 주장한다면 , 그 좌와 우는 진리를 사랑하는 진심이라는 면에서 서로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우이기 때문에 우를 고집하고 , 좌이기 때문에 좌를 고집한다면 통할 리가 없다.
행동하는 목회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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