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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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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사실 이건 보지 않는 이상 편견을 갖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노벨 문학상 그러면 왠지 상대성 원리가 나온다든가, 양자역학이 등장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엄청나게 난해한 무언가가 나 자신의 멍청함을 마구 짓밟아 버릴 것 같은 거부감을 들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내 친구도 그랬다. 내가 그에게 책을 권해주었을 때, 제법 재미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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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문학상. 사실 이건 보지 않는 이상 편견을 갖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노벨 문학상 그러면 왠지 상대성 원리가 나온다든가, 양자역학이 등장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엄청나게 난해한 무언가가 나 자신의 멍청함을 마구 짓밟아 버릴 것 같은 거부감을 들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내 친구도 그랬다. 내가 그에게 책을 권해주었을 때, 제법 재미있는 작품이었음에도 친구가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쓴 작품이라구? 너, 지금. 날 모욕하려는 거냐? 뭐 그런 거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작품에 아인슈타인이 등장하는 건 아니라구.

      그러나 결론은 그래도 싫다였다.

      단연코, 이제까지 내가 읽은 노벨 문학상은 모두 재미있었다. 수상작가의 작품들이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문학성이 높은 것인가는 모르겠으나 일단, 재미있었다. 친구 말을 빌리자면 그럼 되는 거 아냐? 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은 작품이 재미 있을 리 없다며 한사코 안 본다는 걸 팰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작품이 체인지 링이었다면 나 역시, 영원히 노벨 문학상을 안 보게 될지도 몰랐다. 딱,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게 뭔가 싶었다. 정말이지 책을 읽으면서 돌 것 같은 심정이 든 건 오랜만이었다.

      체인지 링의 유래는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어서 정말 그런 내용일까? 생각하며 상당한 기대를 했었는데 결국, 나를 돌게 만든 것이다.

      분류를 해보자.

      일단 읽을 때 도저히 뭔 말인지 모르겠는 소설.

      둘째,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 데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소설

      셋째, 무슨말인지도 알겠고 공감도 되는 데 이걸 이렇게 어렵게 말해야 했나? 싶은 소설. 

      넷째, 다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구 싶은 소설.  

      다섯째, 내가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은 소설.

      이 작품은 둘째, 넷째, 다섯째에 해당되는 소설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인 소설인가 보다. 감동의 휴먼 스토리 라는데 대체 어디가 감동이며, 어디가 휴먼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휴먼이 아니라 휴면 하겠더라.

      자, 그러면 여기서 작가가 빠져나갈수 있는 구멍, 번역에 대한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짜증나게 읽은 것의 문제는 80% 번역이었던 것 같다. 이러면 근거없는 비방이라 할 수 있으니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해 볼까 한다.

 

      다시 서재의 간이침대에서 자게 되었을 때, 자신은 100일 동안 그것으로부터 자유스러웠던 물장군은 어떻게 할까.---뭥미?

      물장군이 세워져 있는 서재 옆에서 지속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실제로 거기서 밤을 지내게 될 경우 명백히 다른 문제였다.---잉?

      고로가 이쪽에 있는 동안 서로의 관계는 서로 비평하는 것이었다.--아 놔.

 

      정말 한국 사람이 번역을 했을 까 싶을 만큼 조사의 사용도 엉망이었고, 한 문장안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 수두룩했다. 이렇게 단문에서도 앞 뒤가 안맞는 데 장문은 어떻겠는가. 장문은 또, 어찌나 많든지, 심지어 5줄을 내내 이어지는 것도 있었다. 이런 게 책의 절반이 넘는다면 믿어지겠는가? 나는 오히려 짜증이 안나는 사람이 이상한 거라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욕이, 욕이, 으이그.

      등장 인물중에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보다. 원문에 말이다. 그걸 어떤 때는 충정도 사투리로 번역하고 어떤 때는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했는데, 그게 한 명의 인물이 그랬다는 것이며 심지어 한 문장안에서도 전라도로 시작해 충청도로 끝내는 것이다. 아니, 프로라는 양반이 그 정도 성의도 없이 번역을 했다? ... 믿어지지 않는다.   진짜 돈 받고 하는 직업이라면 반성 좀 해야 될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내용이고 나발이고. 솔직히 이 책은 다른 번역 작가를 찾아서 읽을 마음도 들지 않는다. 싫어! 싫어! 

b******k 2008.12.06.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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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와 모리스 센닥의
"오에 겐자부로와 모리스 센닥의 <outside over there>" 내용보기
Outside over there Maurice Sendak & Jeanyee Wong(letter art)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체인지링>에서 체인지링은 아름다운 갓난아기가 생기면 요정이 보기 흉한 아기와 맞바꾸어 놓는다는 민간설화에서 비롯된 말로 요정이 바꾸어 놓고 간 흉한 아기를 가리킨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오에 겐자부로가 의미하는 또하나의 체인지링은 모리스 센닥의 <outside over there>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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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side over there
Maurice Sendak &
Jeanyee Wong(letter art)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체인지링>에서 체인지링은 아름다운 갓난아기가 생기면 요정이 보기 흉한 아기와 맞바꾸어 놓는다는 민간설화에서 비롯된 말로 요정이 바꾸어 놓고 간 흉한 아기를 가리킨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오에 겐자부로가 의미하는 또하나의 체인지링은 모리스 센닥의 <outside over there>에 나오는 고블린이 아이다의 동생과 얼음 아기와의 바꿔치기(changeling)을 의미하기도 한다
 



When Papa was away at sea,

아빠는 바다 저 멀리 계시고

 

and Mama in the arbor,
엄마는 등나무 아래 앉아 있어

 


     Ida played her wonder horn to rock the baby still - but never watched.
     아이다는 아기를 달래기 위하여 나팔을 연주하고 있었지만

     -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어.

 


So the goblins came. They pushed their way in and pulled baby out, leaving another all made of ice.

그래서 고블린이 왔어. 고블린은 안으로 들어와 아기를 밖으로 끌고 나갔지, 얼음 아기를 남겨두고 말이야.

 

 

Poor Ida, never knowing, hugged the changeling and she murmured : "How I love you."
불쌍한 아이다는 눈치채지 못하고 바꿔치기한 아기를 안아주며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데"하고 중얼거렸지.

The ice thing only dripped and stared, and Ida mad knew goblins had been there.

얼음 아기는아기는 물이 똑똑 녹으며 바라보고 있었지. 아이다는 고블린이 그 곳에 다녀갔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났어.

 

 

"They stole my sister away!" she cried, "To be a nasty goblin's bride!"

 Now Ida in a hurry snatched her Mama's yellow rain cloak,tucked her horn     safe in a pocket, and made a serious mistake.
"고블린이 내 여동생을 데려 갔어"하고 외쳤어. "더러운 고블린의 신부로 만들기 위하여!" 아이다는 서둘렀지.
엄마의 노란 비옷을 낚아채 입고, 주머니 속에 나팔을 안전하게 집어 넣으며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어.

 

 

    She climbed backwards out her window into outside over there.

    그녀는 뒤로 창문을 올라가 저너머 세계로 갔지.

 


Foolish Ida never looking, whirling by the robber caves, heard at last from off the sea her Sailor Papa's song:

바보같은 아이다는 도둑들의 굴 근처를 빙빙 돌뿐, 찾을 수가 없었어. 때 마침 저 멀리 바다에서 선원인 아버지의 노래소리을 들었어.

 

 

"If Ida backwards in the rain would only turn around again and catch those goblins with a tune she'd spoil their kidna honeymoon!"

"만약 비속에서 뒤돌아 있는 아이다가 다시한번 돌아 나팔로 곡을 연주해 고블린을 잡으면, 고블린의 허니문을 망칠 수 있지.
So Ida tumbled right side round and found herself smack in the middle of a wedding. Oh, how those goblins hollered and kicked, just babies like her sister!
그래서 아이다는 몸을 바로 한바퀴 돌리자 결혼식이 진행되는 한 가운데 떨어진 자신을 발견했지. 아, 얼마나 고블린들이 소리지르고 차던지, 마치 그녀의 여동생같은 아기들 같았지!
 
 
"What a hubbub," said Ida sly,
 and she charmed them with a captivating tune.
"어휴, 시끄러워라,"하고 아이다는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메혹적인 곡을 연주해 그들을 사로잡았지.
The goblins, all against their will, danced slowly first, then faster until they couldn't breathe.
고블린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처음에는 천천히 춤을 추다가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빠르게 춤을 추었어.
 

"Terrible Ida," the goblins said, "we're dancing sick and must to bed."
"끔찍한 아이다같으리라구, "우리는 아플 정도로 춤추어서  침대로 가 누워야해," 하고 고블린들은 말했지.

ButIda played a frenzied jig, a hornpipe that makes saiㅣors wild beneath the ocean moon.

대양의 달빛아래에서 선원들을 거칠게 만드는 광란의 지그곡을 나팔로 연주했어.

 

 
Those goblins pranced so fierce, so fast, they quick churned into a dancing stream.
고블린들은 너무너무 무시무시하게, 너무나도 빠르게 날뛰었으며, 춤의 흐름속으로

 빨려들었갔어.

 

 
Excerpt for one who lay cozy in an eggshell, crooning and clapping as a baby should. And that was Ida's sister.


껍질속에서 편안하게 있는 한 아기만 제외하고, 아기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 애도 중얼거리며 손뼉치고 있었지. 그 아기가 바로 아이다의 동생이었어.

 
Now Ida glad hugged baby tight and she followed the stream that curled like a path along the broad  meadow.

 아이다는 기뻐 동생을 꼭 껴안고 넓은 들판을 따라 길처럼 구불구불한 개울을 따라갔지.

 

And up the ringed -round hill to her Mama in the arbor with a letter from Papa, saying


반지모양의 둥그란 언덕을 올라 아빠에게 온 편지를 들고 있는 엄마에게 갔지.

.
 

I'll be home one day,

and my brave, bright little Ida must watch the baby and her Mama for her Papa, who loves her always."
내가 어느 날(one day) 집으로 돌아갈테니, 나의 용감하고 똑똑한 아이다가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아빠를 대신하여 아기와 엄마을 잘 지켜야한다.


 

s********8 2007.03.19. 신고 공감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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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 그러나 부서진 것은 고친다
"‘인간,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 그러나 부서진 것은 고친다" 내용보기
지난 한 주는 예기치 않게 생긴 일들로 바쁜 나날이었다. 하루 3~4시간 자는 걸로 만족해야 했으며 주말은 온전히 반납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내 시야에서 떨어지지 않고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체인지링>이다. 비록 정신을 집중하여 오랜 시간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출퇴근을 하면서 지하철을 오가는 동안만큼은 그 속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쩔 땐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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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는 예기치 않게 생긴 일들로 바쁜 나날이었다. 하루 3~4시간 자는 걸로 만족해야 했으며 주말은 온전히 반납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내 시야에서 떨어지지 않고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체인지링>이다. 비록 정신을 집중하여 오랜 시간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출퇴근을 하면서 지하철을 오가는 동안만큼은 그 속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쩔 땐 주인공인 고기토가 친구이자 처남인 고로로부터 받은 물장군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내가 <체인지링>과 물장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쉽게 넘겨지지 않는 책장들, 책을 읽는 사이사이 떠오르는 물음들, 한 번 읽어서 절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문장들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세상에 내어 놓는 마지막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이라는 소개답게, 그의 50년에 가까운 창작생활과 70을 넘긴 인생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1 작가로서의 ‘체인지링’ -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소설가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한 오에 겐자부로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에게도 끊임없는 고민과 부담의 대상이었으리라. 우리는 흔히 문학작품을 대하며 ‘잘 쓴다, 멋있다, 별로다, 재미없다’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고뇌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헤아리지 못한다. 그의 작가로서의 고뇌는 고기토와 고로의 대화를 통해 그대로 되살아난다. 고기토는 고로의 비판을 통해 작가로서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문학적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한다.

 

“자네는 지금 자기 소설이 누구에게 읽힌다고 생각하는 걸까? (…) 그런데 고기토는 말야. 생각해보면 놀랄 일이지만 최근 30년 정도 독자를 생각해서 주제나 글쓰기 방식을 택한 흔적이 없어!” (p216)

 

“어째서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거지? 기껏해야 일개 소설가 아냐?” (p217)

 

그리고 고기토는 작가로서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누구나 그렇듯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갖게 되는 마음가짐과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느끼는 마음가짐의 차이거나 혹은 자신의 작가 인생에 있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시점을 구분하기 위함일 것이다. 둘 다 맞든 둘 중의 하나이든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좀더 그에 대해 알고 난 뒤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일단 이 소설만 가지고 말하자면 그 전환점 자체가 자신의 작가 인생에 있어서는 일종의 ‘체인지링’이 되는 시기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 고기토는 소설을 쓴 지 25년째 되던 해 커다란 전환점이 도래했음을 자각했다. (…) 25년 전 소설가로서의 고기토는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것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을 서로 얽힌 두 줄기의 넝쿨처럼 간주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쓰는 일이라는 듯이 소설을 써왔다. 그러다 보니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의식이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새로 뭔가를 쓰는 데 방해가 되었다. 곤경에 빠진 고기토는 어떻게든 써나가고자 궁여지책을 마련했다. (…) 따라서 막연하더라도 방향이 정해진 단계에서 바로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p208)

 

“당신이 아직 젊어서 주로 번역을 읽고 있던 무렵, 말이 빨라 발음이 불명료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정말 재미있었거든. 반짝이는 듯한, 놀랄 만큼 색다른 표현이 있어서 (…) 그런데 번역이 아닌 외국어로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 당신이 사용하는 단어의 느낌이 달라진 것 같아요. 새로운 깊이가 언어에 반영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뭔가 묘한 엉뚱함, 재미있는 표현은 못 만나게 되었죠.” (p72)


#2 인생의 ‘체인지링’ - ‘인간,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 그러나 부서진 것은 고친다
<체인지링>은 고로의 체인지링을 주요 의제로 삼지만,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체인지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고로는 열일곱 살에 경험한 ‘그것’으로 인해 이전의 고로와는 다른 고로가 되어 버렸고, 치카시는 그런 오빠를 이전의 고로로 되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기토와 결혼한다. 그래서 유년기의 고로와 같은 아름다운 아이를 낳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체인지링의 계기는 ‘상처, 아픔’, 그리고 ‘죽음’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체인지링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죽음을 넘어서 새로이 탄생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오에 겐자부로가 ‘체인지링’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슬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희망은 아니었을까?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 말이다.

 

“『인간,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 그것은 요컨대 부서지고, 기진맥진하는 것에 대항하여 부서지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 일단 부서진 것은 고친다, 라고 하는 고기토의 삶의 방식이 지닌 지향성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p106)

 

일단 부서진 것은 고치는 고기토의 힘은 그의 아들 아카리를 통해 나타난다. 고기토의 아내인 치카시의 바람과는 달리 아카리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고기토는 아카리를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한 인간으로 만들어낸다. 현실세계에서의 오에 겐자부로 역시 그러한 힘을 지닌 인간이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인간은 ‘부서질 수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부서진 존재는 온전하게 만들어야 하며, 어떤 종류의 폭력도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세상에 맞서왔다고 역자는 평가한다. 그래서 반전운동, 천황제 폐지운동에서 김지하 석방운동 등 ‘행동하는 양심’으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과도 같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어렵게만 느껴지고 가닥이 잡히지 않았던 많은 부분들이 사실 책의 말미에 가서야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는데, ‘체인지링’이 정말 부서질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을 다시 불러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좀더 강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꽁꽁 숨겨진 미로를 찾듯 체인지링에 대한 언급이 나오길 빌었지만, 사실 책의 전반을 주도하는 건 물장군과의 대화(고로와의 대화)와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이 책을 읽는 건 마치 문제를 풀기 위해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가는 ‘스무고개’와도 같았다. 하지만 책을 다시 훑어보며 희미하게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읽어 ‘체인지링’이 과연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고 싶다.

 

“어쨌든, 거짓을 양식 삼아 내 몸을 먹여온 것에 관해서는 용서를 비마. 그리고 출발이다.”
 (p279 랭보의 시)

 

#3 삶과 죽음의 ‘체인지링’ -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
<체인지링>은 또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넘나든다. 이쪽 세상에 있는 고기토와 건너편에 있는 고로와의 대화로 이야기는 시작되며, 소설의 창작 계기 또한 고로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고기토는 점점 고로와의 이야기에 빠져들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되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한다.

 

“고로가 있는 건너편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이쪽 세상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니 그쪽에서 보면 이쪽에서의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진 않을까?” (p27)

 

“‘죽은 고로’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무의식 중에 그것을 초월해버리는 교감의 힘이 있어서 고기토는 자신이 가진 죽음에 대한 감각이 씻겨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그것은 모순되는 일 없이 사후에 관한 새롭고도 절실한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p37)

 

그렇다고 고기토가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고로의 죽음에 의문을 품지만, 적어도 고로가 못다한 ‘그것’에 대한 과제만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 해결은 다름아닌 ‘그것’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문제를 ‘체인지링’으로 승화시켜 나가고자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설적 결론은 베를린에서 쓴 한편의 글에 집약되어 있다. ‘어째서 어린이들은 학교에 가야만 하는가?(p351)’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 교실과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은 다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보고 듣고 한 것, 읽은 것, 한 일들, 그것을 이야기로 전해 듣고 그 아이들 대신에 살아 있는 것 아닐까? 그 증거로 우리는 모두 같은 말을 이어받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무두다 그 말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 아닐까?’(p354)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기토의 아내인 치카시가 고로가 체인지링되었다고 믿고 유소년 시절의 고로를 닮은 아이를 낳고자 하는 것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으로 체인지링되는 과정을 통해 바뀐 고로를 원래대로 돌려놓고자 한 것이다.
체인지링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윤회사상처럼 흘려 놓는 것은 아마도 오에 겐자부로가 자신의 마지막 역작 속에서 자신이 곧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새로운 영혼을 얻어 다시 태어난다는, 그래서 오에 겐자부로 또한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체인지링되어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무한한 반복을 말이다.

 

“죽어버린 자들은 그만 잊도록 하자. 살아 있는 자들조차도. 그대들의 마음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만 향해주기를.” (p368)

 

<체인지링>을 읽으며 최근 들어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읽은 책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인지링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것도 어려웠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 구석구석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했기에 어지러움도 있었다. 자신의 칠십 평생을 3부작의 소설 안에 넣는다는 것이 어디 쉬우랴? 하지만 그래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에 겐자부로님, 다음 번 책은 좀더 간략히 정리해주시면 안될까요? 이미 많은 걸 보여주시지 않았나요?


* 인상 깊은 구절

“침대 속에서든 길바닥에서든 ‘인간다움’의 표현에 저항하는 정직한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거야. 그럼 신기하게도 기분이 한결 나아지거든.” (p16)

l*******g 2006.11.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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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에게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용보기
오에 겐자부로가 가장 존경했던 스승 불문학자 와타나베 가즈오 선생은 일찍이 오에의 소설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한다. "오에 군은 숲 속에서 태어난 것 같아. 숲의 샘물이 솟아나듯 소설을 쓰는 것이. 이제 아무것도 없으려니 하면 다시 새로운 물을 긷듯이 하던데." 오에는 스스로를 '숲 속의 아이'로 간주한다.   오에는 언제나 자신의 삶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을 문학작
"인간에게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용보기

오에 겐자부로가 가장 존경했던 스승 불문학자 와타나베 가즈오 선생은 일찍이 오에의 소설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한다. "오에 군은 숲 속에서 태어난 것 같아. 숲의 샘물이 솟아나듯 소설을 쓰는 것이. 이제 아무것도 없으려니 하면 다시 새로운 물을 긷듯이 하던데." 오에는 스스로를 '숲 속의 아이'로 간주한다.

 

오에는 언제나 자신의 삶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을 문학작품에 녹여왔다. 1997년 12월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가 건물 옥상에서 추락사한다. 이타미 주조는 오에 겐자부로의 오랜 친구이자 아내 유카리의 오빠, 즉 매부이기도 하다. 절친의 급작스런 자살은 이들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소설가 오에와 영화감독 주조 모두 사회정의에 힘써 온 일본의 저항적 지식인이다. 오에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불의한 세상에 맞서온 지식인인데, 오에가 말한 폭력에는 자신에 대한 폭력 행위에 해당하는 자살도 해당한다. 절친의 죽음에 대한 성찰과 상실에 대한 나름의 치유를 위한 과정이 바로  '수상한 2인조' 삼부작의 제1부 『체인지링』(청어람미디어, 2006)이다. 참고로 제2부는 『우울한 얼굴의 아이』(청어람미디어, 2007), 마지막 제3부는『책이여, 안녕!』(청어람미디어, 2008)이다.

 

일본에서 2000년에 출간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상한 2인조'는 바로 오에 겐자부로와 이타미 주조를 모델로 한다. 소설에서 오에는 조코 고기토로, 주조는 하나와 고로로 등장한다. 그리고 아내 유카리는 치카시로 나온다. 소설 제목 '체인지링'은 유럽의 민간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아름다운 아기가 태어나면 작은 도깨비 같은 요정이 나타나 자기들의 보기 흉한 아이와 바꾸어 놓는데, 뒤바뀌어 남겨진 흉한 아기를 '체인지링(changeling)'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친구 고로가 바로 뒤바뀐 아름다운 아기에 해당한다.

"내가 자란 산동네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어. 인간이 죽으면, 말하자면 육체로서의 인간이 죽을 때 혼은 육체를 떠나 골짜기의, 항아리 안쪽 형태와 닮은 어떤 공간을 올라가지.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며 올라간대. 그 위에서 자기에게 정해진 수목의 뿌리 근처에 착지하게 돼.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올라왔던 나선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하강하기 시작해. 그건 새로 태어날 아기의 육체로 들어가기 위해서야."(28쪽)​


참고로 이타미 주조(伊丹十三, 1933-1997)에 대한 이력을 보다 자세히 소개해본다. 이타미 주조는 영화감독, 배우, 에세이스트, 상업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CF감독, 다큐멘터리 작가 등 다재다능한 이력의 예술인이었다. 교토 출신으로 교토 제1중학교를  다니다 에히메 현 마쓰야마로 전학을 가면서 오에 겐자부로와 만나게 되었다.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져 도쿄로 상경, 신토호 편집부를 거쳐 상업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배우 등의 일을 겸하다가 1984년 <장례식>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면서 일본아카데미상을 수상, 일본 내에서 높은 평을 받았다. 일본 사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오락성이 강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해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부상하면서 '이타미 스타일의 영화'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쌓게 되었다. 1997년 불륜 의혹이 제기되자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자살했다. 작품으로 <단포포>(1985), <민보의 여인>(1992, <중환자>(1993), <마루타이의 여인>(1997) 등을 남겼다. 


z***a 2014.03.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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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가의 아름다운 극복
"노작가의 아름다운 극복" 내용보기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봄과 여름의 사이였다. 물론, 여기서 만났다고 하는 것은 책으로가 아닌 실물로,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작년에 내한한 그가 우리 학교에 와서 한 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애초에 오에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으므로 그의 문학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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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봄과 여름의 사이였다. 물론, 여기서 만났다고 하는 것은 책으로가 아닌 실물로,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작년에 내한한 그가 우리 학교에 와서 한 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애초에 오에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으므로 그의 문학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소설가라기보다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그것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갔다는 쪽이 옳으리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오에의 강연회에 대한 감상을 밝히자면, 나는 소설가들이란 다들 소설만 잘 쓰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두서가 없는가 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짧은 강연에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준비가 애초에 마땅치 않았던지, 하여간 그의 강연은 별로 정리가 되지 않은, 소설을 쓰기 전에 한 뭉텅이로 쌓아놓는 내 메모지를 두서없이 읽어가는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문장들로 이뤄져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인가, 일본의 우익화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었지만 더불어 그의 소설을 읽을 생각을 싹 없어지게 한 것 역시 부정하긴 힘들다. 그 강연이 끝난 후 일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나는 오에의 책을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편견의 작용인지는 몰라도-말하는 것과 똑같이 정리가 덜 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서히 글에 익숙해져감에 따라 이 소설이 무작정 두서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촘촘히 짜여 있는 글이며, 아마도 주인공 고기토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식의 구성을 돋보이게 하고자 이런 식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 책, <체인지링>을 처음 읽는 분들이라면 나의 이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만 그저 작가가 글을 쓰는 데에 몸을 맞기면 이내 편안하게 그를 따라갈 수 있게 되니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나는 그게 안돼서 문제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잠시간의 혼란을 견뎌내면 이내 담담하면서도 영민한 소설가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신기해하며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는 특히나 고기토(그러니까 오에 본인)의 소년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의 일화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고기토도 고로도 대단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산골에서 만났다는 것도 신기했고 말이다. 랭보의 시를 읽고 감동받으며, 시집을 선물로 주고받고, <숨겨진 거장>을 창조하자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는, 사실 주제와는 조금 다른 관심을 내게 불러일으켰다. 우리 세대에 랭보는커녕, 교과서 외의 시인은 이름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현실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사실 나도 그런 부류의 학생이긴 했다.) 그것은 시몬느 보봐르의 <처녀시절>에서 그녀의 영민한 친구들과의 대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간단히 말해, 질투했다, 심하게. 그러나 그런 작은 질투심은 고기토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서서히 잊혀지고(혹은 익숙해지고) 마침내 커다란, 그러나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숨겨져있던 주제가 드러난다. 작가는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고기토도 노골적으로 ‘내가 고로를 구하지 못했어.’라며 자책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로에 대해 생각하는 고기토의 시선에서 우리는 그의 사랑과 상실감을 느끼고, 고로를 회상하는 일들이 거듭되고 결국 자신의 마음을 진정한 용서의 마음, 혹은 용기의 마음으로 끌어안으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 역시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격한 과정도, 눈에 보이는 화려한 리턴지점도 아니며 그저 조용히 늙어가는 것처럼, 조용히 우리 자신이 되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그 과정은 화려한 성장보다는 조용한 성숙에 가까워, 과연 노작가가 쓸만한 이야기라는 것에 깊이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나는 이런 상실을 아직은 겪지 못했지만 언젠가 그러한 날이 올 때 나 역시 이 노작가처럼 겸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저 쪽’이 그리 멀지 않음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비로소 우리 자신이 될 때, 그러나 반드시 우리 자신은 아니고 이미 저 편으로 건너간 사람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함께하는 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겸손하고 착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그의 가을하늘빛 소설, <체인지링>. 언젠가 상실감에 주저앉아있을 미래의 나에게 이 진솔한 위로편지를 미리 보낸다.
n***n 2006.12.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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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 다시 일어나 소망하리라
"[체인지링] 다시 일어나 소망하리라" 내용보기
'체인지링'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아기가 태어나면 작은 도깨비 같은 요정이 나타나 이 아기를 자기들의 보기 흉한 아이와 바꾸어 놓는데, 뒤바뀌어 남겨진 흉한 아기를 '체인지링'이라 부르는 것이다.  <체인지링>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본질을 탐색한다. 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이야기 속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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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아기가 태어나면 작은 도깨비 같은 요정이 나타나 이 아기를 자기들의 보기 흉한 아이와 바꾸어 놓는데, 뒤바뀌어 남겨진 흉한 아기를 '체인지링'이라 부르는 것이다.
 
<체인지링>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본질을 탐색한다. 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이야기 속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고로의 죽음과 남은 이들의 이야기. 주인공인 고기토는 얼핏 고로와의 소통을 통해 과거에 침착하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은 꼭 필요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그것은 고통스럽고 힘들 수도 있지만, 눈물나게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하다.

작가의 경험과 오랜 통찰을 통해 일구어낸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작가가 역사와 문학에 얼마나 깊은 조예가 있는지 보여준다. 단테, 랭보, 고바야시 히데오, 카프카, 막스 브로토, 미하일 불가코프, 스트린드 베리, 르네 샤르, 소잉카, 모리스 센닥. 개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알지 못하던 작가를 알게 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죽어버린 자들은 그만 잊도록 하자. 살아 있는 자들조차도.
그대들의 마음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로만 향해주기를.

 
우리는 다시 일어나 태어날 아이들을 소망할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과 다시 걸어갈 것이다. <체인지링>의 그들처럼.

w****a 2010.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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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함께 시작되는 희망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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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체인지링''을 읽고 싶다 생각했던 건 광고문구 때문입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 소설. 세계적인 소설가 고기토, 그의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인 고로, 어머니 같은 아내 치카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 아카리, 비밀의 열쇠를 쥔 여인 우라. 고로의 자살과 그로 인해 한 가족이 겪어야 했던 커다란 상실의 고통. 죽은 자가 남긴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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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체인지링''을 읽고 싶다 생각했던 건 광고문구 때문입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 소설. 세계적인 소설가 고기토, 그의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인 고로, 어머니 같은 아내 치카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 아카리, 비밀의 열쇠를 쥔 여인 우라. 고로의 자살과 그로 인해 한 가족이 겪어야 했던 커다란 상실의 고통. 죽은 자가 남긴 한 편의 시나리오는 고기토에게 50년 전 일어났던 ''그것''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는데... 50년 전, 두 소년의 아름다운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과 그 날 이후 체인지링, 뒤바뀐 아이가 되어버렸던 고로. 예전의 그 아름다운 아이는 그들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오래된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인 지인의 죽음에서 ''N.P''를, 50년 전, 두 소년의 아름다운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에서는 ''백귀야행''을 떠올렸거든요. 게다가 ''체인지링''을 시작으로 한 이 3부작 장편소설이 오에 겐자부로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하구요. 겐자부로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데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굉장하다, 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어요. 어줍잖은 호기심으로 "이 유명한 작가는 흔하다면 흔한 소재를 어떻게 풀어갔을까,"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요. 한문장, 한문장이 절절하고 슬픔에 눅눅할만큼 젖어있어서 쉽게 풀어진 문장이고 잘 연결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에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번역본이 이런데 원서는 얼마나 애틋할지. 고기토와 고로는 어릴때부터의 친구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조언자이자 의지가 되는 사람이였는데 고기토는 심지가 굳지만 위태롭고, 사람과의 교제도 서툴러서 고로에게 더 의지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물장군''시스템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고기토와 소통하고 싶어했던 걸 보면 고로 역시 마음 속엔 고기토의 자리가 컸던거겠지요. 가족이 아닌, 피가 이어지지 않은 타인과 그렇게 깊은 정을 주고받고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상대방을 잃게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거고, 흥미로 삼을 만한 일이 아니였는데 나는 왜 그렇게 가볍게 생각한걸까, 마치 "노벨문학상 작가니까 다르게 쓰지 않았을까?"하고 팔짱 끼고 지켜보듯이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고 후회했습니다. 확실히 문장과 구성에 연륜이 묻어있어서인지 훨씬 깊이있고, 절절한 슬픔을 느껴야했습니다. 그렇지만 띠지에 적혀있던 것 처럼 ''어느 날 절망이 찾아왔지만, 희망도 시작된다''는 것 또한 마음이 아플 정도로 잘 느껴졌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하는거니까요. 절망에 빠지는 그 순간 남은 것은 희망을 되찾는 것이 아닐지. 빈 자리를 인식하고, 괴로워하고, 믿지 못하고, 계속 더듬어보면서도 결국엔 상처에 새살이 돋듯, 그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남아있는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남은 자는 극복하고, 또 살아가는 거겠죠. 죽음은 시간일 뿐이라고. 고기토는 내일이면 바뀔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뒷장을 읽는 내내 그 문장이 마음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소설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메세지가, 그리고 인생이 녹아있어야한다고 배웠었는데 오랜만에 마음이 꽉차는 소설을 읽게 되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고기토와 치카시가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작가와 작가의 가족들도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고로와 기이 형, 그리고 이타미씨가 바라고 있지 않을까요.

[인상깊은구절]
서재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운 채 헤드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고기토에게 고로는, "…그렇게 된 셈이지. 나는 건너편으로 옮겨가네."하더니 쿵ㅡ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자네와의 교신을 끊은 것은 아냐." 고로는 말을 이어갔다. "일부러 ''물장군'' 시스템을 준비했으니 말일세. 그래도 자네한테는 벌써 늦은 시간이겠지? 잘 자!"
b******u 2006.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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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꼬집어 말할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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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시작부터가 어려웠다.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니깐 그래서 어렵구나 했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체인지링`이라는 소재에 흥미롭고 `물장군 시스템`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했다. 죽은자와의 대화.... 영화 `편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죽기전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할 아내를 위해 편지를 미리 쓰고 비디오도 준비했었던... 하지만 `물장군`은 어쩌면 한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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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시작부터가 어려웠다.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니깐 그래서 어렵구나 했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체인지링`이라는 소재에 흥미롭고 `물장군 시스템`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했다. 죽은자와의 대화.... 영화 `편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죽기전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할 아내를 위해 편지를 미리 쓰고 비디오도 준비했었던... 하지만 `물장군`은 어쩌면 한단계 더 위다. 어찌 되었건 쌍방간의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참신하고 멋진 아이디어가 아닌가? 알다시피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실제 이야기라고 하는데 삶 자체가 예술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보다 더한 아이디어가 있대도 정작 실천에 옮기는거 힘들지 않나? 남들이 이런 나를 어떻게 볼까 하면서.... 물장군은 내게도 따라하고픈 충동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남은 이들을 위해 옳은 것인가? 자살부터가 그렇고 남겨진 이들에게 오히려 죽은이를 잊기 힘들게 하는 잔인한 방법이 아닐까? 다시 나의 계획에 수정들어간다. 살아있을 때 잘하자. 하고 싶은 말 숨겨두지 말고 다 하고 함께 있고 싶을 때 실컷 함께 하고 나중에 사랑하는 남은 자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짓은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나의 영혼이 다른이와 바뀌었다면.... 철없던 시절엔-지금도 철은 아직 없지만-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너무 예쁜 친구라던가 너무 행복해보이는 사람들, 혹은 내가 갖지 못한것을 다가진 사람들을 볼때 나와 그들이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 하지만 모두 나보다 항상 좋은 조건에 한해서 였다. 체인지링이 되어버린 오빠 고로를 다시 만나기 위해 꼭 닮은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하는 동생 치카시... 그아이는 고로 인가 아님 그저 닮은 아이인가? 처음에 새로운 책을 접하면 항상 주인공과 주변 상황을 파악하느라 좀 진도가 늦게 나가는 나였지만 체인지 링은 그게 더더 심한 편이었다. 보통 10페이지 안쪽에서 파악이 되곤 했지만 체인지링은 넘어가도 넘어가도 더디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내게 다 읽어주고 말리라는 도전정신(?)을 심어준것 같기도 하고.... 고기토와 고로 그리고 치카시의 마음을 읽기 위해 무던히 애쓴 한주가 지났다. 아직 뭐라고 딱 꼬집어 다 말할 순 없다. 그저 가슴 한켠에 무언가 두리뭉실하게 자리 잡는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나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을 생각하는 나 자신, 그리고 그들에게 비춰지는 나.... 상은 아무나 받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며 마음이 어지러운날 다시 체인지링을 찾기로 약속한다.
a******6 2006.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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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Goin''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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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많이 들어본 이름. 일본 문학계의 거장 정도의 이미지랄까? 하지만 일본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면서도 한번도 그의 글에 손이 가지 않은 건 이상스런 내 고집이자 습성 때문이었을거다. 남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회자되는 작가나 글은 이상하게 피하고 보는.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물론 한 번 읽고 100% 이해되는 글은 절대 아니다.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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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많이 들어본 이름. 일본 문학계의 거장 정도의 이미지랄까? 하지만 일본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면서도 한번도 그의 글에 손이 가지 않은 건 이상스런 내 고집이자 습성 때문이었을거다. 남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회자되는 작가나 글은 이상하게 피하고 보는.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물론 한 번 읽고 100% 이해되는 글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시간에 쫓겨서 읽었기에 얼마나 내게 스며들어 판독(?)되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벅차하며 이렇게 리뷰를 쓰고 싶게 만든 글을 만나게 된 건, 또 얼마만인지. 들어가기 전에 [체인지링] 후반부를 읽으며 내내 함께 한 히라이켄의 ‘What''s Goin'' On?’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됐으며, 이 책의 해석을 도왔다는 점을 밝힌다. ‘작가의 삶에, 죽은 자의 마음 속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란 궁금증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므로. 1. 가족사, 매스컴, 랭보, 그리고 진실- 자살자의 심리.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글은 작가 자신의 신변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해서 씌여진 가족사적 소설이다. 츠지 히토나리의 미호와의 결혼생활을 바탕으로 한 [안녕, 방랑이여]도 그렇고 일본소설에서는 이상하게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사건을 바탕으로 한 글이 많다고 느꼈었는데 자신의 삶을 글로서 되돌아보고 싶어하는 건 일본뿐 아니라 모든 작가의 로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 가족사란 것이 상당히 충격적이랄 수 있는 사건을 그리는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전반부에서는 책을 놓기가 힘들었다. 자살이란 소재 때문이다. 근래를 포함하여 주변에서 벌써 3명의 자살자를 접했기 때문에 그들이 왜 죽음을 택하게 되는지 그 마음을 알고 싶었던 내게는 더욱이 이 소재가 끌렸을 수밖에 없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고기토-가 해석하는 자살자-고로-의 이야기로 먼저 다가왔기 때문에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인 물장군 속에서 죽기 전에 고로가 보낸 sign들을 고기토와 함께 들으며 [고별]이란 sign을 읽어내지 못한, 그 결심을 할 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점에 마음이 아팠다. 거기다가 유명인사의 죽음을 기사거리로밖에 여기지 않는 매스컴의 모습이 그려진 부분에서는 처남인 고기토와 동생인 치카시의 마음이 어땠을지, CLAMP의 [동경바빌론]에서의 한 일화처럼 매스컴에 의해 진실과 다르게 편집되는 한 인간의 삶이 오버랩되어 사회상을 짚어가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다. 호기심으로 보도하는 매스컴과 피보도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방관자는 간접 살인자가 아닐까. 어쩌면 그렇게 본의와 다르게 이해되는 게, 아무렇지 않게 가장했지만 속은 아름답고 여린 고로에게 커다란 상처로 다가왔던게 아닐까.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는 이가 없다는 자각이, 자신이 돌볼 필요가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랭보-고로의 자기이해에서는 본인과 동일 인물로 느꼈을 듯-나 고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게 아닐까. ‘하지만, 벗의 손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어디서 구원을 찾으랴.’ 마츠야마에서의 그 일은 고로가 처음으로 자신이 돌봐야할 존재가 자신을 버린 사건으로 각인되어 인생을 우리가 아닌 혼자라고 느끼게 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고기토가 우리의 반쪽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자살의 위태로움에서 구원받은 것-과 고로가 그 반쪽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소설에서는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지만 사건 후의 둘의 관계변화와 치카시가 알아차린 고로의 변화를 볼 때- 차이 하나가 그 둘의 삶을 결정한 것이리라... 2. 변해가는 감정, 변해가는 그 무언가 속에 숨겨진 것.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변해가는 과정의 가장 격렬한 시기에 있기 때문이다. 체인지링은 그렇게 변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기가 얼음덩어리로 바뀌는 것은 천진하고 순수했던 유년의 종결과 어른이란 모습의 고착된 형태가 되는, 그래서 너무나 쉽게 파괴되어 버릴 수 있는 고정형의 인간 모습을 그리는 매개체인건 아닐까? 고로는 그렇게 얼음덩어리로 변해가는 걸 피하고 싶어서 하늘로 올라가 그 옛 시절, 고기토의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아기로 태어나 체인지링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랭보가 [고별]에서 읊었던 것처럼 ‘진흙과 페스트에 피부를 갉아먹히고 두발과 겨드랑이 아래 구더기가 들끊으며 심장에는 한층 살찐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나이도 모르지만 감정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 기다랗게 누워 있는……나는 거기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와 같은 죽어있는 상태를 견디다 못해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랭보나 고로가 간과한 것은 인간은 변하고 바뀌지만 그 중심에는 꼭 붙잡고 있어야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 그것은 현실을 딛고 있는 소녀의 맨발과 같은 강인함. 이 책의 챕터가 끝날 때마다 그려져 있는 그림 속에 표현되어 있듯이 웅크리고 있는 연약한 아기를 감싸 안는 모성과 같은 부드러운 강인함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 얼음 속에서도 심장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기토는 남은 자로서 고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니까 너는 차라리 문장으로 나를 기억해줘.’ 다카무라가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을, 고로가 영화로 그의 삶을 되돌아 보려고 생각했듯이, 히라이켄이 노래로서만 그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듯이,... What''s goin'' on?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Baby baby, I''ll sing on, it''s all that I can do till the day u hear my love 4 u. (아가야-물론 연인을 부르는 뜻으로 쓴 단어지만 소설과 연결지어 이 해석이 더 어울릴 듯-,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네가 널 향한 내 사랑을 들을 날까지 계속 노래하는 거야.) 3. 나가며 작가가 서문에 쓴 글을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읽어보았다. 소설의 끝을 읽으면 고로가 자살을 결심한 이유를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끝까지 읽었지만 남아있는 이미지는 구름 위에서 물장군으로 통화하고 있는 이미지뿐. 하지만 마지막 문장이 남아있는 우리-나를 포함하여-를 위로해 준다.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의 뒤이은 두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그 온기에 얼어있던 몸을 부르르 떨며... written at 2006/11/27

[인상깊은구절]
-죽어버린 자들은 그만 잊도록 하자. 살아 있는 자들조차도. 그대들의 마음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로만 향해주기를. -그러니까 너는 차라리 문장으로 나를 기억해줘.
r****n 2006.11.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 사회의 썩은 부위를 날카롭게 질타하는 노대가의 일갈
"일본 사회의 썩은 부위를 날카롭게 질타하는 노대가의 일갈" 내용보기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독자들의 일본 문학에 대한 관심은 젊은 작가들의 사소설적인 작품들 위주로 옮겨졌지만, 국내에 일본 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인 80년대 중반에 이례적으로 고려원을 통해 전집이 간행되었던 오에 겐자부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나쓰메 소세키, 미시마 유키오, 카와바타 야스나리 등의 전전세대 작가들과 그 이후에 등장한 현대 문학 세대의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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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독자들의 일본 문학에 대한 관심은 젊은 작가들의 사소설적인 작품들 위주로 옮겨졌지만, 국내에 일본 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인 80년대 중반에 이례적으로 고려원을 통해 전집이 간행되었던 오에 겐자부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나쓰메 소세키, 미시마 유키오, 카와바타 야스나리 등의 전전세대 작가들과 그 이후에 등장한 현대 문학 세대의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점이었다. 그 까닭은 오에 겐자부로가 작품 활동을 한 시기가 앞의 작가들과 약간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소재나 주제가 이전 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고향이나 장애 같은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환상과 공포, 고립 같은 감정을 넘어 핵과 반전, 우주, 인류, 미래 같은 SF적인 성향의 것들에까지 폭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에게는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의 과거 반성과 군국주의, 극우화 반대에 평생을 바쳤고, 김지하씨와 황석영씨의 석방을 위한 활동에도 앞장섰던 사실이 강하게 와닿아 양심적인 지식인의 표본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생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한때 절필을 선언했던 때문인지 정작 노벨상 수상 이후의 신작은 거의 국내에 번역되지 않고있던 탓에 아주 오랜만에 발간된 이번 신간을 접하고는 ‘오에 겐자부로가 아직 살아있었던가?’하고 놀랐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오에 겐자부로의 이번 신작에 특별히 강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처남이자 친구였던 아타미 주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서민들의 삶을 코믹하고 정감있게 그려내었던 < 담뽀뽀 >, < 장례식 >과 < 마루사의 여자 >와 <민보의 여자 >에서 시작하여 < 슈퍼마켓의 여자 >와 < 마루타이의 여자 >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를 통해 일본 사회의 부패하고 병든 구석들을 날카롭게 고발한 사회성 짙은 작품들로 일본의 국민 영화 감독으로 추앙을 받았고, 유럽의 유명 영화제들에서 연이어 수상을 했으며,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이타미 주조 감독은 1997년 12월 20일에 자신의 사무실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타미 주죠의 자살 이유는 선정적인 3류 상업 잡지가 터무니없이 지어낸 불륜 보도에 대해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유서를 통해 밝힘으로써 일본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사건은 일본의 선정주의적 보도 경쟁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지만, 일본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20세기 최고의 명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인물을 어처구니없이 잃고 난 이후로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일본 매스컴의 선정주의적 보도 태도는 의식있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개탄을 금치 못하게 끔 했을 뿐이었다. 이타미 주죠의 자살은 여러가지 점에서 의문이 많았는데, 사건이 발생한 지 꼭 10년째가 된 올해 드디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매제였던 오에 겐자부로가 이 사건을 직접 소설로 쓴 것이 바로 이 < 체인지링 >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 작품을 3권의 연작으로 완성해 놓고 올해부터 2008년까지 해마다 1권씩 차례로 발간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의 문학 인생을 총결산하는 3부작이라고 표현한 만큼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매우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와 이타미 주죠를 각각 고기토와 고로라는 이름으로 등장시키는데, 조금만 읽어도 금방 두 주인공인 바로 실제 자신들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직설적인 설정 하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두 주인공은 물론 이타미 주죠의 친아버지인 무성 영화 시대의 감독이었던 이타미 만사쿠나 장애인 음악가인 작가의 아들 등을 비롯하여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이 실제와 거의 동일하게 등장하고, 작가 자신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실이나 고로의 배우 시절 에피소드들처럼 실제 두 사람의 특별한 이력 같은 범상치 않은 사실들마저 고스란히 등장하여 누가 보더라도 자서전적인 이야기임이 명백하게 드러날 정도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로(이타미 주죠)를 자살로까지 몰고 간 일본 매스컴들의 극단적인 선정주의적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신과 이타미 주죠에게 실제로 가해졌던 수 차례의 테러들을 낱낱히 밝힘으로써 일본 극우 단체와 야쿠자들의 폭력적인 만행과 그 배후에 존재하는 일본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전체주의적인 광기들을 또렷한 목소리로 고발한다. 고로의 자살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에는 처남의 자살 직후 저자 가족들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매스컴의 비인간적인 행패와 처남의 자살을 유희처럼 즐기는 영화와 연애업계 동업자들의 패륜적인 행태들을 일일히 거론하면서 저자 스스로가 처남의 죽음을 통해 보고 겨껴었던 극도로 썩어 버린 일본 사회의 갖가지 병든 모습을 분노에 찬 표정으로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책의 대부분이 고로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에만 집중되어 있고 문학적인 상상력이나 표현들은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발휘되어, 10년 동안 가슴 속에 품어왔던 분노와 억울함의 감정이 다소 지나치게 표출된 듯한 느낌도 주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만큼 이 소설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자신의 격렬하고 드라마틱했던 삶이 숨김없이 반영되어 있는 자서전적인 성격이 강한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2008년에 3부작의 마지막 책이 출간될 때까지 잠시 미루어 두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그때까지 노대가의 건강에 이상이 없기를…
h******7 2006.11.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