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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리뷰의 홍수속에서 구태여 사상적 감흥에 의한 사자후를 토해놓을 필요는 없을터....
사회학,의학,언어학,기호학,헤겔적분석철학,실존적이건 실천적이건 간에 아무튼 참여철학이자 정치학교수 성향의 새파란 좌파(?--;)론에다가 영화,음악,미술을 아우르는 세셰적미학에 한술더떠 포스트구조주의적 논법과 기술까지, 권위를 넘어 권위주의의 망상을 발현시키는 득의양양한 두 거물의 노작에 일단 경의를 표하며....
진지하고도 이른바 왕따수준에 어울리는 반골적 철학체계의 성립이 전제되지않고는 접근조차, 제목의 인용조차 허락치 않는 일등급의 자기PR....
현대사회의 절망을 회피하기위해 부린 기교 후의 절망을 다시금 느껴본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도의 무의식화된 주체적 의식시뮬레이션을 맛보고 싶은 분은 주저하지 말고 한장 넘겨보시길....
시간과 공간의 의식을 위한 무의식이여....무의식을 사모하는 의식이여....
지금 이 쓰레기같은 리뷰를 의식적으로 읽고 계신가?....!....그럼 다른 책을.... [인상깊은구절] 기관없는 몸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우울증의 몸체....편집증의 몸체....분열자의 몸체....마조히스트의 몸체....효과들의 동일성, 종류들의 연속성, 모든 CsO 들의 집합은 오직 고른판을 뒤덮고 심지어 그려낼 수 있는 추상적인 '기계'를 통해서만, 욕망과 합체되어 실제로 욕망을 싣고 이러한 욕망들의 연속적인 연결접속들과 횡단적인 연계들을 분명하게 해줄 수 있는 다양한 배치물들을 통해서만 비로소 이 '판' 위에서 획들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판의 CsO 들은 종류별로 분리된 채 주변으로 밀려나 가용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반면, "다른판" 위에서는 암적인 분신들이나 텅 빈 분신들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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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내 살고픈 세상 (강윤호, 2018)”이라는 책을 보며 들뢰즈를 접하였다. 그 책에 나온 들뢰즈는 기존의 지식이나 이데올로기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펼쳐보며, 다양한 현상의 근저를 흐르는 물길을 살피며 혁신을 꿈꾸었다. 최근에 들뢰즈에 대해 언급하는 이들을 여럿 만났는데, 간접적인 지식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 한 켠에 걸려 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었으나, “내 살고픈 세상”을 통해 알게 되었던 들뢰즈의 생각을 보았을 뿐 다른 소득은 거의 없었다.
우선, 깊이 있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생물학, 정신분석, 지질학, 언어학, 기호학, 연극, 종교, 소설, 정치, 음악, 회화, 의미학, 유목, 국가, 경제, 기술, 음악, 해양, 수학, 물리학, 미학 등 다방면에서 심도 깊은 논증을 펼쳐, 독자에게 박학다식함을 요구했다. 많은 부분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또, 잘 알려지지 않은 특정한 글을 전제로 논의하기도 해, 별도의 독서를 요구했다. 예를 들어, 8장은 세 개의 소설을 읽어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단편적인 설명이나 선언적인 주장이 많았다. 예를 들어, 13장에서 화폐에 대해 설명하는데 일반적인 화폐의 역사에 부합하지 않았다. ‘국가는 폭력’이라는 선언이 갑자기 등장하는데, 이 책을 읽을 정도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논조였다. 허나, 그렇게 자명한 명제인가? 내가 잘못 온 독자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을 미화하지만, 구체적 대안은 찾기 어려웠다. 나무를 나쁜 것으로 보고, 탈주를 찬양하고, 도주의 결과를 조화로운 상태인 코스모스로 보았다. 현실의 체제나 이데올로기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부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과하다. 한편, 새로운 인식을 위해 연결 접속을 주장하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저자는 이 복잡한 글로 무엇인가를 그려보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각 장을 정독하고 연관 지식을 찾아보고 책의 내용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고는 전공자에게 어울리는 일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