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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이, 호랑이, 황새 등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나누는 교감을 다룬 옛이야기들이다. 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세 편이 구렁이 이야기라 구렁이라는 동물이 옛 사람들의 의식세계에서 갖던 존재감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전에 "느낌표"라는 오락프로에서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햇볕을 쬐는 구렁이 사진을 보여준 것이 구렁이를 사진으로라도 본 유일한 기억인데 그때도 그 커다란 몸통에서 섬뜩하면서도 뭔가 범상치 않고 또 호기심이 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옛사람들의 신비한 이야기에 왜 구렁이가 자주 등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선비 뱃속으로 들어간 구렁이"에서는 황새 새끼를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인 무과 선비가 모르고 그 구렁이 고기를 먹고 탈이 난 것을 황새가 살려주었다는 이야기다. 읽으며 웃음이 나온 것은 가끔 가다 뉴스에 나오는, 뱀을 잡아 날 것으로 먹고 죽었다는 사람들 얘기가 생각나서였다. 분명 옛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구렁이 새끼가 배에서 자랐다니 날 것으로 먹은 게 틀림없으렸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정황상 활로 쏘아 죽인 구렁이를 그 자리에서 먹었을 법한 것을 굳이 선비는 구렁이 고기를 냇물에 버렸는데 장어고기로 둔갑해 나타나는 바람에 장어고기인 줄 알고 먹었다고 (그것도 분명 하인들이 구워서 올렸다고 강조한다) 이야기하는 옛사람들의 체면의식이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구렁이의 집요한 복수극이 더 재미있어지고, '음식은 설 익혀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옛 선비들이 다 글만 읽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되새기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즉 분명 양반에는 문과뿐 아니라 무과도 있었으니 앉아서 글 읽는 선비뿐만 아니라 활쏘기, 칼싸움 공부를 하는 양반 자제들도 분명 많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통 선조들을 떠올릴 땐 방안에 앉아 글읽는 모습만 연상하게 되는 것은 일제시대의 정책적인 세뇌교육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가난한 선비와 구렁이 여인"과 "주섬이와 주막집 아가씨"는 둘 다 구렁이를 여성의 인격으로 묘사한 것이 흥미로웠다. 아니, 거꾸로 말하면 산골 고래 묵은 옛집에 홀로 사는 정체 모를 여인네의 존재를 오래 묵은 구렁이로 본 것이라고 할까. 권정생 <밥데기 죽데기="">의 늑대할멈처럼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없이 홀로 사는 (또는 따돌려지고 천대받으며 한을 품고 사는) 여인들의 존재가 옛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또 선비와 살림을 차리는 부자 과부 구렁이의 이야기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나오는 작은 아버지와 살림 차린 개성 과부 이야기가 떠올라 두 배로 재미있기도 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오리지널은 선비가 이미 결혼해 자식들을 둔 몸인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집에 다닐러 간답시고 갔다가 구렁이 여인에 대해선 잊어가는 기색을 보인 게 아니었을까. 한편 산골 외딴집 안방 문을 열어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더라는 얘기는 실제로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마워요, 나무도령"은 어릴 때 읽은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이야기였다. 남자판 콩쥐 팥쥐라고 할 수 있을 이야기로 콩쥐처럼 어려운 지경에 처한 주인공을 멧돼지, 학, 개미 등 동물들이 도와준다는 얘기로, 평소 말 못하는 짐승들을 함부로 하지 않고 존중해가며 산다면 복을 받으리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책의 기획자는 "옛날 사람들이 요즘보다 동물들을 못살게 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겐 옛사람들도 동물을 함부로 대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해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그림이 글과 매우 잘 어우러져 있다. 시리즈의 책들이 비슷비슷한 풍의 그림들을 담고 있는 것 같아도 특히 이 책의 그림들은 옛사람들의 민화를 연상시키면서도 생동감 넘치고 창의적인 그림들이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금은 모두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콘크리트 바닥이 되어버린 국토지만 옛사람들의 의식속에서는 호랑이 나오는 울창한 산림으로 자리잡고 있던 세계를 그림들로 잘 표현한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아, 저 구렁이가 정말 그때 그 아가씨가 맞나 보구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었으면 저렇게 구렁이가 되었을까?"그>밥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