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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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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들은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자극했다 황진이 라는 이름에 늘 수식어처러 붙어다니는 기생 황진이 라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중심이 황진이 인만큼 그런 비하적인 수식어가 없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긴 하지만 그 주제가 무겁지 않고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진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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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들은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자극했다 황진이 라는 이름에 늘 수식어처러 붙어다니는 기생 황진이 라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중심이 황진이 인만큼 그런 비하적인 수식어가 없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긴 하지만 그 주제가 무겁지 않고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진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의 연인과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는 .. (나이를 먹다보니 조금더 애정표현이 있어줬음 하는데 ㅎㅎ) 그러나 그것이 정신적인 사랑에 대한 표현만 하는것이 못내 서운했지만.. 이면에는 사람의 사랑에 어찌 정신적인 사랑에만 국한될 것이냐 싶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할 수 있어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할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모두 읽은 후 황진이 그녀의 삶과 그녀의 생의 끝은 어떠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여기 저기 뒤져봤지만 찾을수가 없어서 정말 아쉽다.
YES마니아 : 로얄 t******e 2006.10.1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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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황진이’에게 띄우는 연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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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황진이’에게 띄우는 연애편지   홍석중의 [황진이]와 김탁환의 [나, 황진이] 비교 서평   1. ‘황진이’를 택하게 됨 지난 북한문학예술 수업시간의 기말 과제물로 남북한 문예물을 하나씩 고르긴 골라야 하는 딱한 처지(?)에서 고른 것은 ‘황진이’였다. 대책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고나 할까? 딱딱한 기말페이퍼의 소재로선 기중 무른듯한 것일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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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황진이’에게 띄우는 연애편지

 

홍석중의 [황진이]와 김탁환의 [나, 황진이] 비교 서평

 

1. ‘황진이’를 택하게 됨

지난 북한문학예술 수업시간의 기말 과제물로 남북한 문예물을 하나씩 고르긴 골라야 하는 딱한 처지(?)에서 고른 것은 ‘황진이’였다. 대책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고나 할까? 딱딱한 기말페이퍼의 소재로선 기중 무른듯한 것일거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사실 모 교수님의 연구실에 여러 권 비치된 것을 물심이 발동하여 한권 구비해 둔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고로 다른 여러 수강생들에게 윽박지르듯 나는 ‘황진이’를 나의 기말 페이퍼 소재로 삼았으니 알아서 하라고 떠들고 다녀, 결국 다른 수강생들을 제치고 황진이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먼저 2002년 11월 15일 출판된 북한의 ‘떠들썩한’ 「황진이」는 홍석중이 썼다. 벽초 홍명희의 손자인 홍석중이 쓴 「황진이」는 이전의 북한영화나 소설에서 전혀 등장한 적이 없는 질편한 성적인 묘사가 삽입되어 있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반면, 김탁환의 ‘조용한’ 「황진이」는 2002년 8월 12일 초판본이 발행되어 조금 일찍 선을 보인 작품이다. 거의 동시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동시성과 소재의 동일성으로 적절한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학 비전공자로서 어차피 인상비평의 선을 넘을 수 없는 일인지라. 어줍잖은 갖은 문학 상식을 동원할지라도 모자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두려운 일이다.


2. 남북한 황진이의 총평

우선, 황진이를 읽길 잘했다는 마음이다. 그건 홍석중이라는 뛰어난 이야기꾼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황진이를 살아움직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글을 황진이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쓰듯 쓰고 싶다. 다시말해 스스로 시서예를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한량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진짜 황진이 말이다. 그건 아마도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둘도 없는 연인의 다른 이름이다. 홍석중의 황진이가 김탁환의 황진이보다도 연애편지를 쓰고 싶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이 평가되어야 한다. 불행히도 김탁환의 황진이는 자의식으로 꽉 들어차 있고, 그걸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밖으로 표출하고 있다. 다시말해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으며 무언가 침잠하고 있고, 손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재미없는 지식인의 모습을 띄우고 있다. 아무리 그 지적 수준이 높고 뜻이 크다 할지라도 매력이 없다.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말하건데, 김탁환의 황진이는 21세기 한국 소설문학의 침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신경숙까지만 하더라도 수필체의 문체가 신선하였지만, 은희경에 들어서선 바햐흐로 한국소설의 황혼기를 보는 것만 같았는데, 김탁환에 이르러서는 눈도 침침하고 귀도 먼 것만 같다.

김탁환의 황진이가 큰 뜻을 품었다고 토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소부루주아지(이젠 중산층은 없지 않습니까!)의 공허한 자기과신 이상으로 읽히지 않았다. 황진이 어머니의 비극적 종말와 황진이의 방랑, ‘살인의 추억’ 및 기타 등등의 계기들은 그저 기계적으로 얽혀진 계기일 뿐 황진이의 황진이답게 만드는 그 무엇이 되기엔 부족해 보인다. 다시 말해 김탁환의 황진이는 그동안의 한학실력을 다듬은 김탁환 자신의 모습 이상으로 읽히지 않았다. 김탁환의 황진이를 보자.

큰뜻을 품고 꽃못에 이르러 서경덕을 모셨다는데, 범인(凡人)으로서 그 무한하고 추상적인 큰 ‘뜻’이 무엇인지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다. 겨우 읽어낸 것은 나라를 경영할 능력을 지닌 학인을 키워내는 학파를 후원하는 황진이 정도... 아, 그리고 자연을 벗삼아 소요하는 시적 기질을 지닌 지식인의 멋드러진 세상 달관? 이건 다시말해 학자로서의 자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소설가의 한계를 반영한다. 스스로의 자의식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깊이있는 한시의 식견은 빛을 잃고 있다. 사실, 이 책은 보기에 따라 요즘 잘 나가는 변호사나 검사, 또는 유명 지식인의 그러루한 인생역정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왜일까?

반면 홍석중의 황진이는 너스레를 떨고 있다. 그야 물론 천의무봉 달인의 태도이다. 홍석중은 당대의 역사는 당대의 역사적 한계를 고려하여 평가하고 기술해야한다는 '역사주의 원칙'을 자연스럽게 배어들게 할 만큼 황진이를 둘러싼 역사에 달통해 있다. 또한 한시와 시조를 소설 곳곳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풀만큼 김탁환 못지 않게 당대의 한시와 시조의 멋스러움을 꿰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대중적인 접근을 한다는 점에서, 대중적 교양소설의 하나의 전범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홍석중의 황진이의 주제로 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은 요령부득’이라는 메세지이다. 이는 인생은 요령부득이라는 말로 등치될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인생은 불가해하다는 것의 은유로 읽힐수 있다.

재미나지 않은가! 주체사상에서 추구하는 완성된 인간형인 공산주의적 인간이 내뱉기에는 좀...평소 몇권의 북한 소설을 읽으면서, 매우 고전주의적인 교양소설과 맥이 닿아있는 점은 왜일까 의문을 품었는데, 몇권의 북한 문예물을 읽는 동안 약간의 이해가 자라났다. 그건, 공산주의적 인간전형을 그리기 때문이고, 마치도 이것은 예의 고전주의 문학에서 말하는 3위일체법과 유사한 기법을 추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홍석중의 장점은 북한 소설의 클래식한 면모를 다소 탈피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자유스러움의 원인은 소설의 소재 자체에서도 기인하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물은 당대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보다는 북한적 심의체계 속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뿐은 아니다. 홍석중은 앞서 지적했듯이 대담하게 너스레를 떨 줄 안다. 그는 당대의 현실을 조선시대로 환치시키고 있다. 다음을 보자:


《…부중의 백성들이 근 5년째 가물루 하루 한끼 먹기 어려워합니다. …백성들이 무지렁이라 아무것도 모르는것 같지만 사또께서 자기 치적을 요란하게 떠들어 댈 때는 입을 막구 낄낄거리며 웃습니다.…》


위의 부중이라는 단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그리고 백성들을 인민으로, 또 사또라는 단어를 수령이나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이것은 분명 북한의 현실을 은유한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무의식적인 반영으로 해석된다. 문학 작품은 어쩔수 없이 당대의 현실이 삼투될 수 밖에 없다고 하지 않은가? 소설 곳곳에 사또에 대한 비평을 빌어 북한적 현상에 가차없는 관중(貫中)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소설 속에 나타나듯이 암행어사까지 속이는 현실은 식량난 직전의 과장보고를 일삼던 북한 농업일군들의 도덕적 해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글을 읽었던 북한의 평범한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굼금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북한 독자들의 구체적이며 비공식적인 반향은 어떠했는지 알고 싶다.


3. 문제적 인간 황진이의 사랑

대개 이러저러한 야사와 소설속 황진이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거나, 호사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승벽내기의 엉뚱한 것이거나, 또는 기생신분과 어울리지 않게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그려진다.

먼저 홍석중의 황진이에서 그려지는 놈이의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요령부득이어서 신분의 벽이 허물어졌음에도 뜻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말보로(Marlboro) 증후군(사랑을 차지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때는 이미 사랑했던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 비극적 로맨스)'에 속하는 운명의 장난이 주체사관과 교직되고 있다. 놈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사랑을 잃고 강건한 붓놀림도 할 줄 아는 화적패의 두목이 되고있다.

반면, 황진이의 인연을 집어나가는데 있어서 김탁환의 황진이에서 보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히 그리고 있다. 이사종과의 6년에 걸친 동거생활은 춘향이와 이몽룡과의 이별 전의 황홀한 시간을 연상케 한다. 무엇이 파국의 고통이며 그 기간이 길어지면 어째서 파국에 당도하는 지 설명은 사상되어 있지만, 아무튼 김탁환은 황진이로 하여금 “파국의 고통보다는 때이른 결별의 아쉬움을 택하”도록 만들었다.

황진이의 자유혼(魂)의 발동이라고 해도 좋고 도화살 내지는 역마살의 발동이라고 해도 좋을 성격적 비극미를 그나마 잘 그려내고 있다. 물론 김탁환은 황진이를 야담식으로 엮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아서 교묘하게 사회적 담론을 교직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1970-80년대의 진보적 문예조류의 격류를 거치고 난 다음일까? 진보적 사고와 민족주의적 정서를 굳이 표출해야만 떳떳할 수 있다는 지나친 두려움이 “물론 송나라 학자들의 주장을 곧이곧대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비판하며 자기 것으로 녹여내셨답니다”라고 황진이가 ‘스승’ 서경덕을 찬탄하고 있다. 독자들이 스스로 사고하여 이미 알 수 있는 것을 부언시키는 태도는 소설의 긴장미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세부묘사에 바쳐지지 않은 것임에랴! 이런 식의 교과서적인 중언부언으로 인해 김탁환이 그려낸 황진이의 사랑은 그닥 가슴 콩닥거리거나 애절하거나 하지 않다. 김탁환의 황진이는 시종일관 독백체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는 소설의 극적 효과를 더욱 감퇴시킨다. 역으로 수필체의 문체는 김탁환이 설정한 어떤 정체성을 궁구하는데에는 일정한 효과를 나타낸다.


4.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문장

물론 황진이라는 모티브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고사이다. 김탁환의 변주가 다소 딱딱한 ‘평균율’이라면, 홍석중의 황진이는 완숙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나와 비견된다. 일부러 홍석중의 장점을 논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김탁환의 새끼손가락은 이쁘기 짝이 없다. 문장의 고답적인 연마는 최근 소설이 지니지 못한 미덕이다. 이문구의 더 바랄 것 없는 육담과 한문투의 현란한 장광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만하면 준작이라고 칭할 만하다. 즉, 김탁환의 건조한 황진이는 이른 새벽 모시적삼을 입고 도인(導引)을 행하여 기맥을 시원케하고 있을 때의 그 느낌을 전달해준다. 다분히 비과학적인 황진이 해석(사회적 담론으로 데코레이션을 거치긴 했지만)은 황진이의 고상한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지식인 황진이를 그리고 싶었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데 작가의 자료섭렵, 인내심, 상상력, 필력에 경의를 표한다. 문제는 너무 고상하여 전혀 황진이스럽지 못했다는 데 있다. 황진이는 본래 너무나 놀기를 좋아하는 색계(色界)상의 천재적 인물인지라 죽어서도 길가에 묻히길 원했다는데, 김탁환의 황진이는 사실, 소설 곳곳에서 유가를 자처하고 있긴 하지만 깊은 산중의 비구니와 오락가락한다. 황진이의 실존에 천착하려 했다는 책속 작가수첩의 말과 배치되지 아니한가. 그런 점에서 앞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김탁환의 자아상이 너무나 많이 투영되어 있어 황진이의 실존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비판한 것이다. 기생 신분에 얽매인 유학자의 영혼을 지닌 황진이가 이 소설이 밝힌 황진이의 정체성이다. 정말, 황진이가 스스로의 실존을 그렇게 느꼈는지 의문이다. 굳이 극과 극은 통한다고 주장하면 더 이상 할 말은 없겠지만...

황진이라면 어땠을까? 홍석중의 무뚝뚝하지만 시원시원한 러브레터에 끌렸을까, 아니면 김탁환의 무언가 숨기는 듯한 소심하고 예쁘장한 러브레터가 마음에 들었을까?

역사적 현상과 사실의 해석이 이 만큼 달라질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필자가 누린 이런 호사를 보다 많은 남북한 독서광들과도 함께 나누길 꿈꾸며 글을 맺는다. 굳이 두 권중 한권만 읽어야 하는 바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겐 홍석중의 황진이를 권하겠지만, 나라면 결국 김탁환의 황진이를 선택할 듯 싶다...

w*******e 2007.05.2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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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나 황진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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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나 황진이』를 읽고 우선 이 책은 황진이가 화자가 되어서 글을 전개하는 폼이 색달라서 읽고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의 탁월한 어휘력 선택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수많은 주석을 달아 줌으로써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이것만으로도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을 얻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물론 용어 자체가 익숙하지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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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탁환의 『나 황진이』를 읽고 우선 이 책은 황진이가 화자가 되어서 글을 전개하는 폼이 색달라서 읽고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의 탁월한 어휘력 선택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수많은 주석을 달아 줌으로써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이것만으로도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을 얻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물론 용어 자체가 익숙하지가 않고, 중국 내용도 넘나들기 때문에 수시로 꺼내어 보면서 공부하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아는 황진이는 송도삼절의 한 사람으로서의 개성의 유명한 기생의 삶 속에서 다른 기생과는 다른 인생을 개척해낸 사람으로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황진이의 이력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는 주변의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기도 하였다. 신분사회가 엄격히 적용되었던 그 시대에 눈 먼 기생의 딸로 태어나서 온갖 어려움과 고초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삶을 예견하고, 개척해가는 모습 속에서도 스승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세상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좋은 스승을 만나서 그 뜻을 이루어 냈다는 예들 들지 않더라도 바로 조선 중기에 황진이도 분명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던 것이다. 황진이가 겪는 개인의 전설적인 여러 삶에 대한 단편뿐만 아니라 스승이었던 화담 서경덕 그리고 송도를 중심으로 한 조선 중기의 문화 지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예술을 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남다른 정열과 혼을 태우지 않는다면 좋은 작품은 절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황진이도 시, 문장, 춤, 그림, 가락을 사랑하는 남다름 그 마음에서 그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멋들어짐과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서 얻어낸 승리감인 것이다. 이런 황진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예술을 하는 많은 분들께 존경과 함께 더 많은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켜 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책을 읽는 내 내 마치 내 자신이 황진이가 된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하였으면 책 곳곳에 내용에 맞는 생생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황진이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최 현대를 살아가면서 예전 세계로 돌아가서 이렇게 생생하게 호흡을 같이 하면서 읽을 수 있는 독서 시간도 꽤 색다른 체험이었다. 좋은 독서와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작가의 투철한 정신과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더 나은 필력과 노력을 통하여 한국의 문단을 빛내주는 탁월한 작가로서의 활동도 기대를 해본다. 좋은 책을 쓰고 만드는 바람직한 출판문화의 활발한 활성화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m***3 2006.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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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나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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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이책은 드라마를 보면서 황진이에대해 관심이 가게 되어 읽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앗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 읽기시작하였다. 한자도 많고 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잇긴 햇지만 저시대에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든다. 드라마와 책의 내용은 역시 조금 달랏다.   황진이 ,그녀의 목소리로 자신을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내용으로 드라마로 보는 것과는 사믓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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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이책은

드라마를 보면서 황진이에대해 관심이 가게 되어 읽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앗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 읽기시작하였다.

한자도 많고 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잇긴 햇지만 저시대에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든다.

드라마와 책의 내용은 역시 조금 달랏다.

 

황진이 ,그녀의 목소리로 자신을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내용으로

드라마로 보는 것과는 사믓 다른 느낌이

조선에서 황진이만큼 사랑의 받은 여자는 없을 거라 생각이든다

그만큼 매력도 넘치고 그랫으니까

혼자만의 재주와 여러사람들에게 까지 칭송을 받앗으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잇겟는가

기생으로서도 너무 당차고 기방을 찾는 손님을 모시다가 갑자기 상을 뒤엎고 나가버리는듯

그리고 황진이에게 마음이 든 남자와 거지꼴 될떄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질 않나

매력 적인 그녀

그만큼 황진이 그녀는 조선에 잇어서 최고의 예인인 거 같다

신분만 기생이엇지 그당시에 천대받앗던 기생이엇지만 그녀의 시를 그녀를 아름답게 햇으며

대단 인물로 기록된다.

시도 유명한 시도 많으니까

 

요즘들어 드라마로 나온 책들이 눈길이 간다

황진이가 그중 최고인듯 싶다

이떄 당시에 최고의 여성인듯 싶다

 

b*****1 2012.10.25.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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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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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의 제자로서 허태휘(허협1517~1580)와 함께 송도에서 수학하였다. 황진이는 기생의 삶을 살아온 듯 하지만 작가를 따라 조선 중기로 들어가보면 황진이는 더이상 기녀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신분의 폐쇄성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애민의 마음을 깊이 간직한 한 학자요, 한 여인이다.   사상적 다양성이 넘치고 불교와 도교를 포용하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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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의 제자로서 허태휘(허협1517~1580)와 함께 송도에서 수학하였다.

황진이는 기생의 삶을 살아온 듯 하지만 작가를 따라 조선 중기로 들어가보면 황진이는 더이상 기녀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신분의 폐쇄성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애민의 마음을 깊이 간직한 한 학자요, 한 여인이다.

 

사상적 다양성이 넘치고 불교와 도교를 포용하는 조선 중기의 사상계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시대를 살던 황진이에게 역시 이런 사상은 많은 영향을 끼친듯이 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 만약 황진이가 조선 중기에 태어난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한 여성으로 태어 났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모든 우주만물의 이치를 말해주는것 같은 조선 중기의 사상계 속에서도 그녀는 결코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지 못한거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신분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사정이나 이생과의 사랑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보아도 그녀는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지 못한듯이 보인다.

"밤을 꼬박 새워 서책을 일고나면 밥으로도 메울 수 없던 허탈한 기운이 어느새 사라지곤 했어요. 서책을 통하면 세상 만물 모두가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답니다. 비로소 우리의 삶이 학생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희미하게나마 깨달은 겁니다. 배움이 조금씩 깊어질수록 이 배움을 함께 나눌 지음이 그리웠지요. 내곁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라고 말하던 그녀의 모습에서 얼마나 그녀가 배움에 목 말라 했는지, 그리고 그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고자 했는지 고뇌가 느껴지는듯하다.

 

k***1 2008.06.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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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팜므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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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그녀는 내게 누구였을까?  이름난 기생?  그래, 그랬지.  술 마시고 춤추고 시 읊는 기생.       기생.  그런데 솔직히 어감은 좋지 못하다.  단지 단어가 주는 느낌만으로만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단어 실용면에서도 긍정적인 표현에 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에 사용되고 있다.  "그 남자 정말 기생오라비같아"  또 속담으로도 '기생 죽은 넋',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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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  그녀는 내게 누구였을까?  이름난 기생?  그래, 그랬지.  술 마시고 춤추고 시 읊는 기생.  

 

  기생.  그런데 솔직히 어감은 좋지 못하다.  단지 단어가 주는 느낌만으로만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단어 실용면에서도 긍정적인 표현에 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에 사용되고 있다.  "그 남자 정말 기생오라비같아"  또 속담으로도 '기생 죽은 넋', '봄바람은 기생철이다' '기생 환갑은 서른', '기생의 자릿저고리'  이라는 말들 모두 기생의 단정치 못한 품행과 단명, 더러움등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읽고나면 기생은 으례 천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자다 라고 단정짓거나 그릇된 편견은 갖지 않게 될테지만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작가의 말에서 참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 는 말....  나 또한 '청산리 벽계수야' 로 시작되는 시조와 그녀가 절세 미인이었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런데 책 속에서 만난 그녀는 기녀로 대물림 받은 삶을 억척스럽게도 잘 살아내는 여자였고 아비없는 불쌍한 딸이었고 눈 먼 어미를 둔 안타까운 딸이었다.  시에 능하고 가창력도 좋으며 악기에 능하고 함부로 몸을 휘두르지 않는 지조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나는 황진이가 서경덕의 문하생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 황진이도 황진이지만 이 책에서 또 다른 인물이 매직아이처럼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서경덕이라는 자다.  이름은 익히 들어왔으나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도 역시 잘 알지 못한다만은) 소설 속에 묘사된 바로는 참 올곧은 성품의 스승이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 있어 그는 참으로 호감이 가는 인간이었다.

 

  이 책은 서찰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는 이야기라 한결 편한하면서 진심으로 와닿는다.  그리고 화자 '황진이'의 성품이 더 잘 드러난 것 같았다.  문체도 참 탐스러웠다.  문장 문장이 시고 고즈넉한 한 편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주석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고어들로 문장이 만들어졌지만 읽기는 쉬웠다.  옛말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미가 있다.  그 뜻을 굳이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 그러한 흐름이나 느낌들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또 흥미로웠던 점은 고서적에서 황진이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들을 발췌수록한 부분인데 황진이야말로 조선시대의 팜므 파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이 책을 닫고 김탁환의 다른 책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m*********m 2007.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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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을 그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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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면 여성은 살기 조금은 힘든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칭송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명성을 날리던 학자들이 사모했던 학식이 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났던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김탁환이라는 작가 이름만으로 그 역사소설에 신뢰가 갔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마침 드라마에서도 이 책을 바탕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30대에 요절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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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면 여성은 살기 조금은 힘든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칭송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명성을 날리던 학자들이 사모했던 학식이 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났던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김탁환이라는 작가 이름만으로 그 역사소설에 신뢰가 갔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마침 드라마에서도 이 책을 바탕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30대에 요절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정확하게 그녀의 행적을 좇을 수 없는 것이 더 소설을 쓰는 데 매력적인 요소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로맨스 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더 담겨 있어서 더욱 만족했다. 재미를 위한 소재거리 없이 담담하게 역사적 인물을 그려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인데...
j***2 2006.10.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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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정말 사랑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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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난 얼마나 모르는게 많은 걸까. 난 처음 들어본 "김탁환"이라는 작가. 이 작가가 이토록 많은 책을 냈단 사실을 여태 몰랐다. 정말 창피한 일이다. 책을 받고, 확인하는데 수묵화가 여러 편 그려 넣어진 책 속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편지글로 씌여있는 내용이 너무 멋져서 또 놀랬다. 사실, 처음엔 이런 내용이 당황스러웠다. 흔히 알고 있는 황진이의 여러 이야기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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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난 얼마나 모르는게 많은 걸까. 난 처음 들어본 "김탁환"이라는 작가. 이 작가가 이토록 많은 책을 냈단 사실을 여태 몰랐다. 정말 창피한 일이다. 책을 받고, 확인하는데 수묵화가 여러 편 그려 넣어진 책 속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편지글로 씌여있는 내용이 너무 멋져서 또 놀랬다. 사실, 처음엔 이런 내용이 당황스러웠다. 흔히 알고 있는 황진이의 여러 이야기를 토대로 흥미진진한 소설을 기대했으니까 - 드라마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며, 모르는 단어 적기를 시작하다가, 나중엔 포기하고 말았다. 너무 많았다... ㅜ.ㅜ 다른 때 같았으면, "머야, 이 작가... 잘난체나 하고... " 그랬을 테지만, 이 책은 문체 및 분위기, 그리고 그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고어 및 한자성어, 또는 순우리말에 너무 얕은 지식을 갖고 있는 날 타박만 했으니까. 책은 오십줄에 든 황진이가 허엽의 요청으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용이다. 그래, 이 책은 그 줄거리가 전부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유교국가 조선에서 천하디 천한, 기녀로 태어났으나, 진정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한 여성에 녹아들 수 있었다. 또한, 시심도 음률도 남다르고, 춤도 잘 추고, 그림도 잘 그리고, 거기다가... 예쁘기까지.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부럽던지... 나또한 여성이고, 조선시대보다 훨씬 발전된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으나.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인데. 자신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기에, 후대까지 이름이 전해져 오는 것이겠지만, 이 소설 안의 황진이는, 그런 재주보다도, 현재의 자신에게 순응하며, 자신을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중종 때의 사람이라, 역사서로 야사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와 글이 다지만, 진짜 황진이도... 이렇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 마지막에, 작가가 황진이의 자료를 포함시켜 부록으로 수록했는데, 그 내용도 너무 푸짐하고 알찼다.
b******h 2006.1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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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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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말을 이용해 황진이를 모두 다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한 기생의 일생을 기대했었다면 이책은 그저 조용하고도 잔잔하게 황진이 자신이 회고하는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단한번의 대화체도 없이 황진이의 마음을 읽어가는 듯한 느낌의 글인데요 쉽게~ 다가갈수 있는 형식의 소설은 아닌듯 했습니다. 기존의 소설 형식과는 차이가 있었으니까요 열여섯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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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말을 이용해 황진이를 모두 다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한 기생의 일생을 기대했었다면 이책은 그저 조용하고도 잔잔하게 황진이 자신이 회고하는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단한번의 대화체도 없이 황진이의 마음을 읽어가는 듯한 느낌의 글인데요 쉽게~ 다가갈수 있는 형식의 소설은 아닌듯 했습니다. 기존의 소설 형식과는 차이가 있었으니까요 열여섯 황진이를 사모하던 도령이 목숨을 끊었던일.. 스물여섯에 찾아온 이사종과의 이야기.. 그리고 방황했던 세월들... 모든 이야기가 조용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듯한 느낌이었어요 이사종과의 만남을 표현 했던 부분이..인상적이었네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반쪽을 만난 느낌이 이런 걸까요 꽃 그림자가 언제 서에서 동으로 옮겨가는지도 모른 채 며칠이 지났지요 나는 그였고 그는 나였습니다....." 또한 드라마를 먼저 접하고 책을 읽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비교가 되더군요~ 드라마와는 다른 내용과 흐름이었지만,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도 이었던거 같아요... 책 중간중간 나오는 그림들도 멋졌던거 같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
n****0 2006.1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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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진이 - 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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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일> "역사이자 시이고 소설인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로 시작되는 '작가의 말'에서 김탁환 님은 황진이에 대해 쓰고자 했던 바를 이렇게 남겼다."우리 역사에서 황진이만큼 널리 알려진 여성도 없지만 황진이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도 없습니다.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고나 할까요" 영화로 드라마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녀, 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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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일>

 

"역사이자 시이고 소설인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로 시작되는 '작가의 말'에서 김탁환 님은 황진이에 대해 쓰고자 했던 바를 이렇게 남겼다.

"우리 역사에서 황진이만큼 널리 알려진 여성도 없지만 황진이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도 없습니다.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고나 할까요"

 

영화로 드라마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녀, 황진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황진은 어떤 여인일까. 기녀였다는 것? 춤과 시와 거문고에 능했다는 것? 벽계수와의 유명한 일화? 서경덕과의 인연? 송도의 삼절 중 하나라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일수도 있고 반대로 그녀 발톱의 때만도 못한 정보일 수도 있다.

 

김탁환 님의 결심도 여기에서 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그녀를 알고 싶었던 마음, 그녀를 알리고 싶었던 마음으로 시를 쓰듯, 소설을 쓰듯, 역사서를 쓰듯 썼을 것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인칭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씌여진 많은 황진이에 대한 책들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황진의 나이 쉰에 스승 서경덕의 집인 꽃못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같은 제자였던 허태휘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이 책은 전개되고 있다.

 

우선, 책의 흐름을 따라 줄거리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황진은 현수(가야금이나 거금고를 연주하는 악사)인 눈먼 어머니 현금에게서 태어났다. 현금은 황진이 태어나기 한달 전까지 가야금을 뜯었다. 그후 관음굴로 숨어들어가 송도 제일의 무기(춤에 재능이 있는 기생)인 새끼할머니(황진 외할머니의 친여동생) 진백무의 도움으로 탄생한다. 황진은 별자리에도 능한 새끼할머니에게서 천궁을 배우고 어머니에게서 거문고를 배우고 관아의 아전인 외숙부에게서 글과 시를 배우며 자랐다. 처음 머리를 올리던 날, 사와 대부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으며 그후 송도 제일의 기생이 된다.

 

스물여섯 되던 해 새끼할머니의 자살로 마음을 잡지 못하던 나날 중 이사종을 만나고 송도를 떠나서 3년을 함께 살다 어머니 현금의 죽음을 계기로 헤어진다. 한달 뒤 조광조를 배신한 아버지를 버린 이생이란 자를 만나 전국 유랑을 떠나 밥 한끼에 몸을 파는 바닥인생까지 내려간다.  금강을 올랐다가 계곡에서 노니는 기생과 선비들을 만나고 그들중 아버지를 만나 서럽게 울던 다음날 이사종과 헤어지고 홀몸으로 송도로 돌아온다.

 

도를 배우고자 다시 재물을 모아 화담 서경덕의 제자로 들어가서 그의 애제자가 되고 서경덕의 죽음까지 지켜본 뒤 홀로 그의 집에 남아 여생을 보낸다.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든 드라마든) 수많은 황진이들은 화려했으며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었다. 양반들을 가지고 놀던 당찬 모습, 화려한 의상과 화장술, 멋드러진 춤과 거문고 솜씨, 유창한 말솜씨 등 한시대를 풍미할만 하구나 싶은 멋진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나' 황진이가 죽기 전 담담하게 늘어놓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화려함이 없다. 그녀의 삶은 늘 불안했으며 불만이었으며 고단했고 슬펐다. 새끼할머니, 어머니, 이사종, 이생, 서경덕을 자신의 곁에서 떠나보내는 이별의 삶만을 살았다. 결국 그가 깔아뭉개고자 했던 것은 사와 대부가 아닌 자신의 아픔과 슬픔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는 쉰살의 나이에 비로소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비로소 홀로 서는 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남자 작가로서 이렇듯 섬세하고 감성적인 글을 썼다는게,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믿기지 않았다. 풀이글을 봐야 이해가 가능했던 많은 한자어와 옛말투의 불편함을 얼마간 참아낸다면 시처럼 고혹적인 글과 수묵화에 자신도 모르게 푹 젖어있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저 소설이다. 그러니 그녀를 온전히 짚어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이라면 그 시대 그녀가 겪었을 많은 애환들은 함께 동감하는 시간이 될거라 확신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4 2017.09.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