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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위한 철학 통조림>(고소한맛)은 동일제목의 책 '담백한맛'에 이어 인식론과 과학철학을 이야기한다. 지난번 책에서는 앎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된 물음에서부터 데카르트의 인식론까지 이어졌고, 이번엔 데카르트를 넘어선 칸트와 자신으로서 철학을 끝내려했던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더 유명한 포퍼, 수능시험 언어영역 지문에 자주 출제되었던 패러다임 이론의 주인공 쿤,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처음 들어본 마투라나를 다룬다. 흔히 '서양철학사'라고 했을 때 마지막에 다루어지는 철학자는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 정도다. 그러니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나로서도 학부시절 따로 관심갖고 찾아보지 않는한, 어느 정도 들어본 철학자는 거기에서 그칠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서양철학사'의 범주는 매우 작은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여기서 쿤이나 포퍼 같은 이들은 철학사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철학사에 들어갈 철학자와 그렇지 않은 철학자를 분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모든 학문에 있어서 논의의 끝에선 00철학을 다루기 때문에, 영역의 구분짓기가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래 생물학자였다가 사색의 끝에서 철학과 조우하고 여기서 새로운 논의를 창출해낸 이를 두고 철학자로 분류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고민은 '철학사'를 집필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고민이다.
하지만 '철학사'를 집필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해당 분야, 인식론, 형이상학, 과학철학, 분석철학 등등에서 논의를 시작하면, 그가 무엇을 전공했고, 무엇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든 간에 관계없이, 의미있는 논의를 이끌어낸 이들은 모두 포함될 것이다. 인식론을 다루는 이 책에서 끝에 마투라나 라는 생소한 이름을 접하게 된 건 그런 맥락이다. 마투라나는 인지생물학자로 분류되어있고, 그의 주전공 또한 생물학이다. 그러나 그는 인지론에 있어 상대주의적 인식론인 급진적 구성주의의 정초자로 알려져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 철학의 영역과는 만날 일이 없지만, 인식론에 있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는 철학자이다. 마투라나는 생물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인지생물학, 인식론, 인지론으로 나아가 윤리학과 조우한다.
"우리의 세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내놓은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이들과 다투더라도 '그들과 계속 함께 살야 하는 한' 자신만의 확실한 어떤 것을 진리라고 고집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싶으면 그것이 아무리 마땅치 않게 보인다고 해도, 그들에게 확실한 것 또한 '우리의 것만큼이나 정당하고 타당함'을 인정해야 한다. ...... 이런 행위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좀 약하게 표현하면 일상생활에서 내 곁에 남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 p258 : 마투라나, <인식의 나무> 中)
지난주 신문에서 마투라나의 새 책을 접했다. 매주 신문 책 소개란을 보면서 보관함에 넣는 책이 많아지는건 그만큼 관심갖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뜻일게다. 이 책을 통해 마투라나를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앎의 나무>를 보관함에 넣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쓴 이전의 다른 책들 또한 무심코 지나가버렸을 것이다. 좋은 책 한 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심의 영역을 넓혀주며 동시의 인식의 영역에 있어서도 넓이와 깊이를 더해준다. 매달 지출하는 도서비용은 점점 더 늘어날테지만 앎의 영역을 확장하는건 나에겐 즐거움이다. 이 책이 내게 준 부차적인 도움들을 제외하고라도 순수하게 이 책의 기획의도와 목적만을 놓고 평가해봤을 때도 매우 잘 쓰여진, 누구에게나 유용한 철학서다.
* 이번에 출간된 마투라나의 <앎의 나무>는 그의 저서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인식의 나무>의 새 번역본이다. '인식의 나무'가 '앎의 나무'로 제목만 바뀌어 새 옷을 입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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