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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무던히도 어른이 되고 싶던 나는, 이제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고, ‘세상’을 모르던 그 때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모든 것을 엄마에 의지해서 살아가면서도, 엄마 화장대에 있던 화장품을 몰래몰래 발라보며 어른이 되면 어떨까, 쉼 없이 상상하며 무작정 어른이 되고 싶어 했었다. 동심과 순수 사이에 공존했던 어린이라는 정직한 이름을 언제부터 거부하게 되었는데, 훌쩍 커 버린 몸만큼이나 정신조차 동심을 잃어버리고 삶을 단편만을 쫓아 쉼 없이 살아가는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내 모습만이 남아있다. ‘동심’이라고 해서 마냥 철부지들의 짧은 생각과 연약한 고집만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 묻지 않은 태초의 순수함.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득한 그 기억들. 작은 내 모습에서 가득 찬 미래를 발견할 수 있었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던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 한다. 물론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무작정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 아이들이 바라는 어른들의 강인한 세계 역시 스무 살이 되기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리라 본다. 그러한 경계의 중심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들 중, 단연「피터 팬」은 돋보일 수밖에 없다. 100년이 넘도록 사랑 받아온 영원한 클래식 동화의 표본이자, 영화나 연극, 만화 등에서 수 없이 패러디 된 작품 「피터와 웬디」. 성장을 멈춘 나라 네버랜드에서 펼쳐지는 모험이 아이들의 시선과 어른들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면서 전혀 어색하지 않은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보기 드문 판타지 소설이라 생각 된다. 「해리포터」의 효시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피터팬의 위치는 각별한데, 앞으로의 수명으로 비교해 본다면 과연 피터팬과 해리포터 중 어느 작품의 우위에 설 수 있을지를 비교해 본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자라고 판단하리라 생각 된다. 원작「피터 팬」의 계보를 잇는「돌아온 피터팬」은 원작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는 작가 ‘제랄딘 매커린’ 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원작의 중후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감각에 맞게 재해석 한 다양한 캐릭터들의 생동감 넘치는 역할 분배가 매우 또렷하게 나타나고, 스토리의 전개 또한 원작보다 화려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약간은 심심하다고 할 수 있을 후크와의 한판승은 뜻밖의 결말로 전개시켰는데, 어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부합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김성곤 교수님의 작품해설에서 나온 것처럼 「돌아온 피터팬」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후크」가 곧바로 떠올랐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배불뚝이 아저씨 피터가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스토리의 영화 「후크」는, 어릴 적 보았던 모습 그대로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초호화 캐스팅과 더불어 기발한 아이디어로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는데,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주인공 어른들의 우스꽝스럽지만 정겨운 모습을 「돌아온 피터팬」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성숙한 여인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새초롬한 웬디, 그녀의 모성애가 어머니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피터를 다시 한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깨워주게 된다. 또한 투틀즈와 컬리, 슬라이틀리와 새로운 요정 파이어플라이어까지 기존의 캐릭터와 새로 탄생된 캐릭터와의 긴밀한 관계가 재기발랄하게 표현되면서 활기찬 웃음을 선사한다. 자신의 아이들 옷을 입은 나이든 소년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행복한 마음을 가지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대사에 웃음 짓는 어른들이, 새롭게 엮어가는 과거로의 여행이 기대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 되었다. 원작과 굳이 비교해 본다면 ‘후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과, 꽉 찬 스토리가 더욱 실속이 있다는 점이다. 어른과 아이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작품이니 만큼, 어른이 되기를 갈망하는 아이들과 다시 한번 과거로 날아가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꼭 읽어봐야 할 정직한 소설이라고 생각 된다. 판타지란 자체가 없다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삭막한 지금의 현실만이 존재할 테니까, 불투명한 미래까지 존재하고 있을, 잃어버린 자아 찾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꿈의 문제점은 꿈꾸는 사람이 자기가 꾸고 싶은 꿈을 고를 수 없다는 점이다. 꿈은 날씨 같다.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불어온다. 과거에서도 미래에서도, 어두운 곳에서도 밝은 곳에서도 불어온다. 꿈은 물 속 8분의 7지점에 떠있다. |
| 책이 오자마지 읽던 책 접어두고 피터팬부터 읽기 시작했다. 피터팬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너무나 궁금했다. 웬걸,, 피터팬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렸을적 책으로 읽었던 기억과 디즈니에서 만든 만화영화로 봤던 두 피터팬의 모습이 중첩되어 한층 더 밝아지고 짖궂어지고 재미난 모험과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다른 잃어버린 아이들을 다 몰아내고 오직 하나뿐인 아이로 남은 피터팬은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 과정에서 자기를 숨긴 후크의 공작이 있었지만 너무도 쉽게 순수성을 잃어 버리고 욕심부리고 독단을 부리는 어른의 모습에 물들어가는게 아닌가.. 어른이었다가 네버랜드로 가기위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피터팬에서 나왔 던주인공들..웬디와 존, 컬리등에 의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기긴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어렸을때 피터팬을 읽었을때의 나의 모습과 지금 성인이 되어 읽고 있는 내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욕심꾸러기 어른이 되지 말자하는 다짐 도 갖게 만들어주었다. 피터팬을 치료하게 위해 어린이의 모습을 버리고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 컬리의 모습에선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꼭 순수성을 잃는다는 것만이 아님을 나타내는 듯도 했다. 밝고 활기찬 모험의 세계~ 이런 내용을 기대했었던 나로서는 돌아온 피터팬 의 얘기가 살짝 어두운듯도 느껴져 어른을 위해 피터팬이 돌아온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뒷부분에서 김성곤교수님의 작품해설을 쭈욱 읽어보니 원작 피터팬도 아이들을 위한 부분만이 아니라 어른이 이해할수 있는 부분 도 숨겨있다고 한다. 어렸을때 동화책으로 나온 피터팬만 읽어본 나로서는 그 부분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원작작가의 어렸을적 삶이 후크선장에게 투영된듯한 모습과 그 부분을 돌아온 피터팬에서 조금은 풀어준게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돌아온 피터팬에선 후크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줘서 좋았다. 또 하나.. 이 소설의 매력은 무한한 상상들의 표현이다. 요정이 음이나 말을 먹는다던지 수평선의 좌우가 바뀐다던지.. 상상만으로 배고픔을 이겨낸다던 지 하는 꿈속이나 어린아이들의 그림들에 나타날듯한 표현들이 넘쳐나서 너무나 좋았다. 원작의 피터팬을 이제는 다시 만나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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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요즘에 자기계발서 등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분야의 책들을 접하다가 너무 읽고 싶었던 이 책을 접하니, 왠지 모르게 설레였다.
설레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훑어보니 평도 좋고 피터팬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너무 행복했다 ㅎ
어렸을 때, 피터팬을 읽었을 땐 그냥 엄마가 읽어보라고 해서 읽은 책이다. 그 때, 피터팬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나도 피터팬이 되어 하늘을 날고싶었다.
좋은 인상을 남기며 내 기억속에 남은 피터팬이 돌아왔다. 하지만 순수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 같았던 피터팬은 어른을 싫어했었지만, 어른같은 후크같은 피터팬이 되어 돌아왔다. 후크 선장의 주홍 코트로 갈아입고 ... 피터팬에서의 피터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네버랜드도 위기에 처해있다. 어른이 없는 나라. 네버랜드의 아이들이 모두 어른으로 자라고... 네버랜드도 변해가고 있다.
또 하나 올 풀린 털실 사나이 라벨로가 나타났다. 그가 누구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그가 누군지 알리도 없었다. 그는 그냥 올 풀린 털실 사나이 라벨로였으니까... 라벨로 때문에 네버랜드가 변했지만, 네버랜드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라벨로도 죽고 후크도 죽고 ...
어렸을 땐,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어가다보니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돌아온 피터팬에선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읽어본 판타지소설중에 가장 재미있게 봤던 피터팬. 그리고 후속작 돌아온 피터팬. 작가는 다르지만, 동일 작가의 책을 읽은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누구나 다 부자가 되는 건 아냐. 누구나 다 강하거나 영리한 것도 아니지. 누구나 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아냐. 그렇지만 누구나 용감해질 수는 있어!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우리마음에 대고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면, 스스로 영웅답게 행동하면…… 우리는 누구나 용감해질 수 있어! 위험을 똑바로 마주한 채 칼을 휘두르며 말하는 거야! ''반갑다, 위험아! 난 네가 두렵지 않아!'' 용기는 그냥 갖기만 하면 되. 돈을 주고 살 필요도 없어. 학교에 가서 배우지 않아도 돼! 용기만 있으면 된다구!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틀렸어? 용기만 있으면 돼! 용기만 있으면 모두 이겨낼 수 있어!" (p188~189) "나는 전에 행복이라는 음식을 맛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초콜릿 케이크 같은 맛이 내 안에서 느껴져. 불꽃놀이가 보이고, 엘가의 행진곡이 들리는 것 같아." (p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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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피터 팬의 완역판을 한 번도 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영화나 애니로 나온 “후크”, “피터 팬”같은 영상매체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피터 팬을 접했다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터 팬 책을 읽지 않았었는데 마치 피터 팬을 엄청 잘~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지니...
이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한 번도 읽지 않았지만 당연하듯 알고 있는 우리의 피터 팬이 100년 만에 돌아왔다. 엄청난 기대감을 갖고, 돌아온 피터 팬이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책을 잡기도 전에 인터넷에 올려진 서평을 먼저 보고 말았다. (얼마나 궁금했으면...) 그러나 내가 읽게 된 <돌아온 피터="" 팬="">의 서평은 그다지 좋은 평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왜 돌아왔는지 의구심마저 생기려는 서평을 보고 내 기대치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원작의 피터 팬을 생각하면 네버랜드의 꿈과 피터 팬이라는 소년의 자유스러움에 대해 부러움보다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물론 어린 시절 피터 팬의 이야기를 듣고 당시에 어울리는 생각을 했겠으나 너무 어른이 된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사랑을 한창 받을 나이에 외로움을 먼저 알게 된 소년.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니 피터 팬을 동경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돌아온 피터="" 팬="">은 그런 개인적 느낌들을 어느 정도 표출하지 않았나 싶다.
글은 작가의 외적, 내적 세계의 투영 결과물이다. 피터 팬 역시 원작가인 제임스 매튜 배리의 가정환경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편애하시던 배리의 형이 죽고, 그 자리를 배리가 대신했다고 한다.(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신은 없지만) 배리는 형의 역할을 하면서 본인의 자아에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거기다 실제 배리의 키는 150정도의 작은 키였다. 이러한 작은 키가 자리지 않는 피터 팬을 탄생시키지 않았겠는가. <돌아온 피터="" 팬="">의 탄생비화(?)를 보니, 원작인 피터 팬의 모든 저작권을 갖고 있는 영국의 오몬드 아동병원의 기획(?)이었는데, 왜 피터 팬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 시야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돌아온 피터="" 팬=""> 책 속에서도 마찬가지리라.
먼저 내는 것이 장땡이라 누구 그랬는가!? <돌아온 피터="" 팬="">을 보며 기존의 일본소년만화들을 연상시켰다. 무엇보다 오다 에이치로의 <원피스 one="" piece="">라는 제목의 만화와 은근히 흡사한 느낌이었다. 피터 팬 탐험대의 깃발을 웬디의 원피스로 만드는 장면에서부터 뜻은 다르지만 같은 음성인 ‘원피스’르 읽으며 내심 그런 생각들이 더 많이 났다.
<돌아온 피터="" 팬="">원작의 제목이 “Peter Pan In Scarlet”로 Scarlet의 뜻이 빨강색, 진홍색, 나아가 질이 나쁜 등으로 해석 가능하다. 피터 팬이라는 순수의 상징이 되던 소년도 차츰 ‘악’에 길들여지면 겉모습 뿐 아니라 내면도 후크 선장의 그것과 같이 악랄해 질 수 있음을 그리고 있다.
솔직 명료하게 말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살짝 지루했다. 그저 그런 장르소설의 한 책을 읽은 느낌이다. 주인공이 피터 팬만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장면이라도 더 충격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영상매체에 익숙해져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범죄수사물의 모자이크 처리되는 시신장면들이 이제는 그대로 전송을 타고 가정으로 흐른다. 그런 장면을 처음에 봤을 때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거나 채널을 아예 돌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태연하게, 더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을 보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우리의 <돌아온 피터="" 팬="">도 그러한 인지능력에 익숙해져 버린다.
“왜 돌아왔니?” 라는 질문에 ㅡ
“어, 순수성을 기억하려고."(잃지 혹은 잊지 않으려고가 아니다.)
이렇게 대답할 것 같은 <돌아온 피터="" 팬="">, 하지만 굳이 돌아오지 않았어도 크게 실망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지나마 존재한다.
저자인 제랄린 매커린은 원작에서 죽어버린 후크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고, 떠나버린 아이들을 다시 네버랜드로 부를 연계성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 구성면에서는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단한 명성을 갖고 있는 원작 피터 팬을 잇는다는 그 자체만으로 영광이요, 한편으로는 괴로운 일일 것 같기에ㅡ.
그저 100년 만에 돌아온 피터 팬이 영국 오몬드 아동병원에도 원작과 같은 많은 수익을 올려주길 바랄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어? 라는 질문에 아이가 대답하는 순간, 이미 어른의 길에 반은 들어건 서지. 어린 시절에 등을 돌리고 앞날을 생각한 거야."돌아온>돌아온>돌아온>원피스>돌아온>돌아온>돌아온>돌아온>돌아온> |
| 만화와 영화, 동화책, 그림책...등등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보아왔던 피터팬이 100년만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다소 신기하고도 하고 놀라웠다. 솔직히 아주 흥미진진한 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 모험담으로 깊숙히 빠지기에는 나이도 먹어버리고 요즘의 판타니 모험극에 비하면 피터팬 이야기는 다소 소박한 느낌마드 들었다. 그래도 반가운 피터팬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후크선장이 다시 등장하는지, 전편에서의 줄거리와 이어지는지는 이 리뷰에서 언급하면 재미가 반감이 되니 그 부분은 생략하고 재미있게 읽었느냐 아니냐만 말하고 싶다. 걀론은 물론 재미있다. 어릴때 읽었던 흥미진진함을 머릿속에 새기면서 읽는다면 다소 심심할수도 있고 유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피터팬에 대한 반가움과 재미, 피터팬 외에 개성강한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모습들도 여전히 매력을 발산한다. 요즘의 판타지 모험극과 같은 스펙터클하고 화려하며 세련된 속편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며 전편의 수준을 이어나가는 피터팬을 100년만에 만나는 것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크게 성공해서 영화로 다시 재포장되어 만날 수 있다면...하는 기대감을 살짝 가져본다. |
| 돌아온 피터팬, 영원한 아이로 머물겠다며 네버랜드에 남은 피터팬이 돌아왔다. 지금의 나조차도 가끔은 우스운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떠올리곤 한다. 피터팬은 영원히 아이로 남아 살고 있을 것이라는, 또는 달속에 토끼가 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것이 꿈속에서 새어나온 이야기인지 아니면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비쳐진 어른들의 냉소적인 모습들에 대한 반감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다 자란 어른, 소년기를 잃은 어른들이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간'' 것이므로 돌아간 아이들, 혹은 아이로 돌아간 어른들이 내용상 맞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펴보기전 돌아온 피터팬이란 제목에서 어필되는 느낌에서부터 마냥 신나하던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보다는 무슨일이 생기거나 변했을 것이란 생각이 강했는데, 사라져 버렸던 피터팬의 그림자 옷처럼 바늘로 제 아무리 내 몸에 맞춰 꼬매보려해도 떨어져나가던 내 동심과 마주하며 내심 설레였으며 ''돌아온'' 피터팬이 풀어갈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시 피터팬처럼 그림자 옷을 입듯 내 동심과 어렸던 내 유년시절을 덧씌울 수 있다면 좋겠다란 바람이 그러한 설레임을 만들었는지도. 어찌되었든 궁금하다는 호기심, 그것이 동화의 원동력이 아닐까. 아니면 동심 그 자체인것인가. 다 읽고 난 후에 느낀 것은 매우 특별한 책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제랄딘 매커린의 언어유희가 피터팬을 잘 표현했다 생각한다. 200명이나 되는 후보를 제치고 속편으로 선정되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유수처럼 쏟아지는 동화와 현실을 주물럭거리는 활자들 속으로 빠져들며 나 자신이 ''동화''되어 갔지만 이 책은 원작과 매우 비슷하면서 또 시간의 텀이 존재하는 듯 했다. 그리 느낀 것은 영원히 ''어린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동화적 환상에서 벗어나 조금더 심오한 주제를 풀어놓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보면 굳이 어린 아이들이 보는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이 다시 옛 기억을 떠올리며 찬찬히 읽어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어릴적에 보았던 피터팬은 놀이터였다. 사계절 중 여름밖에 머물지 않는, 생기가 넘치고 활력, 젊음, 즐겁고 신나는 일만 가득한 놀이터. 춥지도 않으며 햇빛이 너무 눈부시지도 않으며 어둡고 음울한 새벽이 없는, 고색창연한 창공의 성처럼 그 거만함은 어린 아이가 가지는 특별함 아닌가. 다시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내 유년시절의 기억들, 그러한 이유가 아니라하더라도 그 누가 네버랜드와 팅커벨, 장난꾸러기 피터팬의 손을 마다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도 아무생각 없이 나이를 먹지 않고 늙지 않는 네버랜드로 가고 싶은 것을. 돌아온 피터팬은 마치 돌아온 싱글처럼 자유로우나 또 자유롭지 만은 않다. 책임과 현실, 어른행세를 하던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행세를 하는 변태된 네버랜드는 아이들의 환상만이 숨쉬고 있지 않았다.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피터팬이 더 이상 자유로운 복장이 아닌 관습과 세습에 얽매이는 듯한 후크선장의 제복을 걸치면서 부터였는지 모른다. 벗어내고 싶어도 벗어낼 수 없는 ''어른''을 입어버린 피터팬이 점차적으로 어른의 단면적인 면을 닮아가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피터팬이기에 중차대하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잃어버리는 것이 동심 뿐만은 아니라서 무언갈 잃으려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닐텐데도 어릴 적 마음을 다시 가져볼 수 없다는 것은 피터팬에게도 또 나에게도 또 다른 변화이며 성장의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피터팬만은 그러한 성장통 없이 유유히 하늘을 날며 웬디의 손을 잡고 밤하늘을 가로질러 네버랜드로 향해갔으면 하는 마음에 어른화 되어가는 피터팬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했다. 그것이 작가 제랄딘 매커린이 노린 효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 피터팬의 속편, 돌아온 피터팬에서 보고 싶었던 환타지는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전편의 결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후크 선장을 악어에게 잡아먹힌다는 설정이 다소 잔인할 수 있지만 희극적인 요소도 포함되었다 느껴졌다. 어느 정도 감안하고 봐야할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랄딘 매커린의 그려간 ''피터팬''의 모습은 원작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채 옷만 갈아입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위험에 빠진 네버랜드를 구출하는 과정과 ''옷''을 매개체로 어른과 아이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놀라웁기도 했고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워낙 원작이 그러한 재미와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뛰어넘어다녔으므로 그리 놀랄만한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느껴지기도 했다. 요정을 무시하고, 없다 느끼는 순간 요정은 죽어버린다. 나이를 먹어 무시하고 없다 느끼며 현실에 물들어 동심이 바래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잃어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할 시간이나 떠올릴만한 매개체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역시 언젠가는 ''옷''과 ''꿈''을 매개로 잃어버렸던 동화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있다면 피터팬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란 느낌으로 책장을 덮었다. 비록 제랄딘 매커린이 원작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였으며 다소 산만한 풍경을 그려냈다 할지라도 그녀가 가진 무한한 상상력이 그녀가 써내려간 글귀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다음에는 원작에 빌어 원작안에 갇힌 글이 아니라 그녀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글이 보고 싶다. |
| 이제껏 알고 있었던 피터팬의 이야기는 아주 짧은 어린이 동화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읽어보니깐 만만치가 않더군요 신문을 보다가 "돌아온피터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어서 예약을 했었는데 너무 신나게 읽었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더 잘 읽을수 있도록 해주네요. 한번 더 생각을 고치고 왜 저리생각할까 책 속의 이야기처럼 아이들은 어른이 상상할수 없는 기발한 생각들을 하니까요 애들과 같은 생각을 하기는 어렵지만 어른이 되어서 모두 잊고 있던 마음의 보물을 다시 찾아주는것 같아요. 애들은 가끔 아주 순순한 생각으로 깜짝 선물을 하잖아요. 보물을 찾아 떠나면서 그리고 보물을 찾았을때 각자가 생각했던 바라던 보물들이 상자에 있었던것처럼 ..지금 마음의 보물을 조금더 소중히 생각하게 합니다. 아빠랑 애들이랑 읽으면 너무 좋을꺼 같아요 |
| 돌아온 피터팬을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마치 내가 내딸 현지의 나이 6살이 된듯!! 어린시절 내가 즐겨 읽었던 책을 이렇게 다시 만난것은 제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임에 분명했거든요. 전에는 피터펜을 그저 재미있는 책 한권, 혹은 내 아이이게 읽어주는 수 많은 명작동화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일단 이 책에 놀란점이 있다면,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가 피터팬에 관한 판권과 지적 재산권등을 모두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아동병원에 넘겼다는 사실에 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런분이 계시다니!! 진짜 대단하신 분이시구나.. 존경스럽더라고요. 그리고 작가의 자라온 과정을 읽어보면서 피터팬은 곧 제임스 매튜 배리가 아니였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배리가 조지 버나드쇼, H.G. 웰즈, 아서 코난 도일, G.K 체스터튼과도 친했다고 합니다. 유명한 분들이라 한번쯤은 들어보았던 분들과 친했다니..^^ 작가로써도 대단한 분이시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어요. 돌아온 피터팬은 이제는 어른이 된 아이들이 매일 꿈을 꾸면서 그 꿈이 네버랜드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것임을 알게됩니다. 그래서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아닌 이미 어른이 되어서 이제 날 수 가 없었어요. 날려면 어린아이의 옷과 요저으이 더스트가 필요했죠. 그래서 자신의 아이들의 옷을 몰래 훔쳐입고, 공원에서 요정의 더스트를 얻어 네버랜드로 날아갑니다. 네버랜드의 피터팬은 우리가 생각했던 영원한 피터팬이였을까요? 변해버린 피터팬과 더 이상 낙원이 아닌 네버랜드, "잃어버린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버렷습니다. 원작에선 후크 선장이 죽었지만 돌아온 피터팬에선 후크 선장이 다시 살아났어요. 그 후크 선장이 이번엔 변장을 해서 아이들을 해치려고 합니다. 후크 선장과의 싸움에서 피터팬과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이 책에서는 어린시절의 순수함은 피터팬으로, 점점 어른이 되어 변해 버리는 모습은 후크 선장으로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돌아온 피터팬은 영원히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책 같아요. 아이가 빨리 커서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네요. 100년만에 부활한, 돌아온 영원한 어린이의 친구 <피터팬>이라 상상만 하여도 가슴 두근 거리는 만남이였습니다.피터팬> |
| <피터팬>이 발표된 지 벌써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휘트브래드 아동 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던 경력의 제랄딘 매커린이 공식 속편 작가로 선정되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속편은 원작만 못하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어본다면 그런 염려는 안해도 될 듯하다. 그만큼 새로 태어난 피터팬은 예전 향수를 자극하면서 내게 모험과 미지의 세계를 다시금 펼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매커린은 원작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원작의 주인공들을 다시 ''환상적으로'' 불러들이고, 그들에게 자신만의 상상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잘 알다시피 원작 <피터팬> 마지막 부분에서 웬디를 비롯한 ''집 잃은 소년들''은 어른이 되고, 지금의 우리처럼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그저 그런 어른이 되고 만다. <돌아온 피터팬="">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제 어른이 된 예전의 아이들은 잠을 잘 때마다 네버랜드에 대한 악몽을 꾸고, 결국엔 네버랜드에 가지 않으면 도저히 생활을 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요정가루를 뿌리고 네버랜드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만난 피터는 여전히 잘난 척을 하고, 여전히 자신밖에 알지 못한다. 다시 아이가 된 어른들은 그런 피터와 함께 다시한번 재미있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책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모험이 주된 기둥을 이룬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피터가 성장통을 겪는다는 것. 피터팬은 보물을 찾으러 가면서 자꾸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으로 변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며, 가장 악독한 모습으로 행동을 한다. 네버랜드의 모습도 바뀌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재미있는 모험거리가 널려 있던 그곳이 시간이 흐르고, 위험천만한 장소가 된다. 아이들은 그 위기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후크 선장의 캐릭터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도 신선했다. 후크는 여전히 악당이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지만, 원작보다는 더 동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설명이 되어 있고, 또 그 때문에 아이들과 그의 관계가 좀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이야기를 읽는내내 흥미로움과 반가움에, 잃고 지냈지만 소중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마냥 너무 좋고, 애틋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피터팬의 원작가인 베리는 10여년전에 자신의 소설에 대한 모든 권리를 오몬드 아동병원에 기증했다고 한다. 정말 피터팬을 창시한 작가답다는 생각에 숙연해 지기까지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피터팬을 읽고 자란 어른들이나, 자라고 있는 그들의 어린 자녀들 모두 함께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속편을 읽기 전에 본서를 먼저 읽는 것도 책에 대한 재미를 더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돌아온>피터팬>피터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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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 매일 밤 달빛이 비추던 창문 너머 나뭇가지의 그림자. 반지하의 집안 방 창문으로는 나무들이 괴물의 모습의 찢어진 입을 벌리고 낄낄대며 웃곤했어. 티없는 어린아이였던 나에게는 유일한 공포였지. 난 매일밤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겨우 잠이 들어서도 매마른 모래밭을 기어다니는 무시무시한 호랑이 꿈에 시달리곤 했어. 울면서 깨는 나를 업고 달래던 아빠의 따뜻하고 커다란 등이 생각나네.
무수한 불면의 밤을 경험하던 그 어린시절, 그림이나 사진 때위가 붙은 한글단어를 배우는 책 이외에 읽은 나의 첫 동화는 아마도 ''파랑새''였던 것 같아. 그 몽롱하고 음울한 책은 어린 나에게 깊고 푸른 밤의 색을 경험하게 해 주었지.
옆 집의 남자아이네 집에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어. 용감한 ''후레쉬맨''을 한 번 얻어 보기 위해서 온갖 사탕발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지. 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에도 비디오 플레이어를 구입했어. ''후크''라는 영화를 본 것은 행운이었어. 팅커벨과 창문너머 달과 별을 헤치고 날아오는 녹색 옷의 그 아이 말이야. 난 어리고 밤의 나무 그림자를 두려워하던 불면증에 걸린 작은 꼬마였고 그 아이는 밤도 모험도 두렵지 않은 용감한 피터팬이었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점점 자라고 있지만 그 애는 영원히 어린이로 남을 거라는 사실이었어.
''파랑새''를 읽으며 다져진 나의 어둠 사랑을 시작으로 ''후크''라는 그 비디오를 열 번도 넘게 돌려 보면서 불면의 밤과도 이별을 고할 수 있게 되었어. 피터팬을 만나고난 후 밤은 더이상 어둡고 두려운 것이 아니었고, 나무 그림자의 찢어진 입도 우스꽝스러운 인형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동화 속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현실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인지 그땐 몰랐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난 스무살이었고 더이상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난 아이가 아니니까 이제 피터팬을 만날 수 없었어. 나는 그 때 네버랜드에서 살던 영원한 어린이인 ''어른이 될 수 없는 피터팬''이 되어버린거야. 피터팬인 내가 네버랜드를 떠나자 갑자기 어른이 되길 강요받기 시작했고 ''나는 왜 아직 어른이 되지 않는걸까''하고 불행해진거야.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네버랜드에 다녀왔어.
네버랜드에 가 본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불행하지 않아. 여기 다시 모인 웬디와 아이들을 봐. 그들은 엄마, 아빠, 의사, 판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어린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 여전히 요정의 존재를 믿고 ''요정을 무시하면 그 요정은 죽어!'' 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해. 웬디는 어김없이 모든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고, 피터팬도 옛 친구들을 만나서 다시 모험을 떠나기로 했어. 아무도 이들을 어른이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벌써 어린이가 되어버렸어. 왜냐하면 그들은 ''네버랜드 출신''이거든.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다시 만난 피터팬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어. 네버랜드도 많이 변했지. 상상력도 점점 힘을 잃고 있었고, 아이들은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어. 그들은 어른을 만나게 된거야. 지난 날 후크라는 무시무시한 어른을 만난 것에 비하면 이번은 더 끔찍해. 아이들은 이미 네버랜드 밖에서 어른이 되었고, 어른의 생활, 어른의 생각을 경험했어. 그리고 피터팬도 몸은 자라지 않지만 돌아온 후크(!)의 놀라운 조종으로 마음은 점점 어른으로 변해갔어. 모두 어른을 경험한거야. 그런데 이상하지? 이제 그들은 다투지 않아.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고 그래서 어른이 된 어른들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이해하기 쉬워. 하지만 영원히 어린이인 피터팬은 달라. 그는 어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른은 이해할 수 없어. 그런 그가 이제 어른의 마음을 가져보게 되고, 어른을 이해하게 되는거야. 그리고 엄마를 이해하게 되지. 버림받았다는 아픔과 증오를 털어버리게 되는거야. 아, 그 여정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이미 네버랜드에서 함께 용감하게 모험을 펼쳤던 그들은 이번에도 용기로 무장하고 ''악한'' 어른과 싸워. 착한 어른은 어린이의 마음을 잊지 않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지. 어른은 아이를 돌보고 아이는 어른과 친구가 되는거야. 가끔 마음이 맞지 않을 때는 노웨어랜드로 보내버리면 돼. 그러면 그 아이와는 말도 하면 안되고 옆에 있지 않은 것 처럼 굴어야하지. 하지만 이 벌칙은 별로 효과가 없어. 왜냐면 아이들은 자기들이 티격태격 했다는 것을 곧 잊어버리거든. 그리고 용서도 빠르지. 가장 악한 욕은 ''꼬끼오 놈''이라는 거야. ''이 못난 꼬끼오 놈아!'' 라고 하는 거지. 아마 아이들 중 피터팬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겠지?
그들과의 두 번 째 네버랜드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어른이 되어있어. 첫번 째 여행에서는 나도 그들도 어린이였기 때문에 어린이의 눈으로 네버랜드를 보았지만 지금은 어른의 눈으로 그 곳을 보게 되더라. 어른이 된 사람도 아이 같은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리고 내가 나중에 웬디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네버랜드의 아이들처럼 티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물론 아이가 유모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하고, 혹여나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요정과 피터팬이 지켜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동화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지. 어린이건 어른이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눈을 갖게 해 줘. 물론 아이의 눈에 그것이 좀 더 잘 보이지. 나는 이번에 돌아온 피터팬을 만나면서 다시 꼬마소녀가 된 기분이었고, 그 뿐 아니라 어른으로서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방법도 알 것 같아.
이젠 어른이 되어도 슬프거나 두렵지 않아. 언제든 네버랜드에 가서 피터팬을 만날 수 있으니까. 가끔 어릴적으로 돌아가서 꽁꽁 얼어붙은 나의 네버랜드를 녹여보는 건 어떨까.
어른이 되면 불행해진다고 누가 그래? 나는 영원히 어린 아이일 것이고 늘 행복하게 살거야. 나의 네버랜드에서.
+ 한동안 어른이 되어 불행했어요.
용기를 주어서 고마워 피터팬!
(그리고 피터팬의 아빠 제임스 매튜 베리와 엄마 제랄딘 매커린에게도 감사를^^)
너는 나에게 새우깡, 불량식품, 담장의 개나리, 초등학교의 운동장, 크레파스 냄새 같은 존재야.
이제 용기를 모아서 날아오르자. (팅커벨, 파이어플라이어 뭐하니 요정가루 안 뿌리고) [인상깊은구절] 해야할 일 -자라지 말 것. 나는 법을 기억할 것. 요정 가루를 찾을 것. 아내에게 할 변명거리를 생각할 것. (P 24) "그런 말 하면 안 돼! 절대 안 돼!" 닙스 씨가 하얗게 길려 소리쳤다. "생각 안 나? 요정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때마다 요정 하나가 어디선가 죽는단 말이야!" (p 26) "길이 잘 닦여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아니야. 그래도 우린 해냈어! 누구나 아무 때든 여기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아니면 어림도 없어! 쉬운 일을 하고 싶었어? 공원을 산책하고 싶었어? 누구나 다 부자가 되는건 아냐. 누구나 다 강하거나 영리한 것도 아니지. 누구나 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아냐. 그렇지만 누구나 용감해질 수는 있어!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우리 마음에 대고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면, 스스로 영웅답게 행동하면...... 우리는 누구나 용감해질 수 있어! 위험을 똑바로 마주한 채 칼을 휘두르며 말하는 거야! ''반갑다, 위험아! 난 네가 두렵지 않아!'' 용기는 그냥 갖기만 하면 돼. 돈을 주고 살 필요도 없어. 학교에 가서 배우지 않아도 돼! 용기만 있으면 된다구!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틀렸어? 용기만 있으면 돼! 용기만 있으면 모두 이겨낼 수 있어!" (p 1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