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고전읽기]를 읽기 전, 나는 적어도 나만의 고전이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의 고전 없이 타인의 고전을 눈으로 뒤쫓고 있다는 뒤쳐짐이었다. 그건 그리 썩 좋은 느낌이 아니다. 내 것 없이 남의 것을 무작정 쫓는 건 그 대상이 고전이든 어떤 무엇이든간에 올바른 일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오래되고, 유명한 작품만을 고전이라 믿던 내게 [나의 고전읽기]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어떤 작품이 되었든 나 자신이 크게 감명받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면 그건 나만의 고전이 되는 것이다. 그저 [한국문학] 또는 [세계문학]이라 이름 붙여진 전집을 고전 1순위로 꼽고는 마냥 우러러보던 내가 범한 어리석은 실수를 [나의 고전읽기]의 저자는 따끔히 야단치고 있다. 공지영 외 9인의 이름난 이들이 들려주는 고전은 사소하지만 마음에 크게 닿아오는 진정성을 간직한 이야기들이다. 톨스토이에서부터 맹자 그리고 장자까지. 더욱 부끄러운 건 그 중 내 것으로 곱씹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데 있었다. 접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멀리한 것들. 난 고전을 지루하고 멀게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고전은 이름 자체처럼 옛 이야기 뿐만은 아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아우라를 동시에 뿜어내는 동시대성을 지닌 텍스트인 것이다.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나의 고전읽기]를 중단했다. 그들의 고전을 나의 고전으로 치부해버린 채 마냥 쫓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나의 고전, 나만의 고전이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의 고전 원본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마냥 따라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래서 책을 덮었고 문학전집을 뒤적이며 평소 읽고자 했던 고전들을 폭식하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폭식 후 나는 자신있게 [나의 고전]을 이들처럼 추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유명한 10인의 고전들이 내게 적지 않은 감명과 자극이 되어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로 인해 고전의 의미를 정확히 새겼고, 고전을 읽으리라 다짐했고, 나만의 고전 찾기에 골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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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되도록 고전에 눈을 두고 읽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왜 고전을 읽으려고 했는지, 내 마음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좋다니까, 좋을 것 같으니까 읽기로 한 것이다. 너무나 단순하게.
이 책 <나의 고전 읽기>를 선택한 것은 공지영, 김두식, 노회찬, 배병삼, 변영주, 신경림, 이주향, 표정훈, 현기영, 홍세화의 고전읽기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들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나 자신의 고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고,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이었다. 부담없이 읽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바라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먼저 김두식의 "원래 고전이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뜨사는 말 아닙니까."에서 살짝 웃으면서 공감했다. 유명세에 비해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 깜짝 놀랄만큼 당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전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별 탈 없는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인생을 항해하며 봉착하는 삶의 위기를 버텨 이겨낼 힘의 근원인 것이다. (나의 고전읽기 89쪽 배병삼)
고전은 옛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가장 첨예했던 문제들을 예술가들이 자신의 세계관 속에 풀어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읽지 않으니 뱉어 놓을 것이 없다. 고전이란 사랑하거나 좋아해야 하는 것이지, 존경하거나 흠모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나의 고전읽기 129쪽 변영주)
고전의 매력 혹은 위력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바로 그것을 읽는 시기나 읽는 사람의 현재 처지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한 권의 고전을 평생에 걸쳐 여러 번 읽다 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고전읽기 194쪽 표정훈)
그동안 고전에 대해 너무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에 접근 자체를 힘겨워했던 것을 생각해본다. 이제야 큰맘 먹고 읽어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연하고 막막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일단 고전은 옛날에 쓰여진 글이고 지금껏 살아남은 글이니, 그렇게 두려울 것도 없다. 지루해서 못읽겠으면 내가 선택한 책이 잘못되었거나, 그 시기의 내가 읽을만한 상태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다음 책으로 넘기면 그뿐이다.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책을 찾아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공지영이 말한 '톨스토이의 <부활>'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회찬이 말한 <조선왕조실록>도 검색해서 궁금한 주제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특히 오랫동안 '언제 한 번 읽어야지'라고 생각하기만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번 기회에 꼭 읽어야겠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궁금한 마음을 살짝 건드려서 고전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해주는 책이다. |
| 베스트셀러 읽기? 저 옛날 베스트셀러에 대한 관심은 울타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출판전부터 관심있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마치 내가 무슨 일조라도 한 듯 뿌듯한 맘이 들긴 하지만 순위 자체엔 연연하지 않는다. 왜냐구? 난 책을 처음 접하는 초보 독자도 아닐뿐더러 책 선택을 하는데 있어 이젠 어느 정도 원칙이라는게 생겼으니깐 말이다. 작가주의 책읽기? 이 역시 좋아하는 작가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다보니 연달아 책이 출판될땐 자금의 압박이 상당하지만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나 관심분야 등 작가의 미묘한 변화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와 작품을 다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코드를 발견하는 재미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수 있는 기쁨이니 아마 좋아하는 작가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은 계속 될 것 같다. 인문사회분야 책읽기? 흠.. 나의 취약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내겐 힘들고 어려운 분야지만 생각의 확장에 많은 도움이 됨으로 문학책 5-6권당 인문사회분야 책 한 권꼴은 읽으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아직 초보라 책 선택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간혹 맘에 드는 책을 만났을 때 기쁨은 곱하기, 곱하기로 좋으니 이 역시 부지런히 도전해 보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고전읽기.. 영어책을 보면 울렁증이 생기는 것만큼이나 고전읽기는 나의 취약분야이다. 이 고정관념은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사라지질 않으니 정말 속이 상한다. 아무책이나 읽다 아니다싶으면 포기하면 그만인 것을 이건 포기도 안되면서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누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받고, 이런 감동도 받았다는 글을 보면 내용파악조차 못한 나는 또 땅굴파면서 한없이 무너진다. 그 무언가를 찾아야한다는 강박관념. 이게 참 무섭다. 내가 책을 읽는건지, 책이 나를 봐주는건지 주객전도된 상태로 눈으로만 읽으니 뭐가 나오겠는가?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 고전 앞에서 절대 주눅 들지 말 것!!!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고전은 받들어질 대상도 아니고, 숭배할 필요도 없다. 진정 내가 필요로 했던 말이다. 그저 일대일로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라. 이 역시 내가 듣고싶었던 말이다. 여기 10인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유명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사람들이다. 유명한 그들이 소개한 고전 10권. 물론 난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다. 아니 크게 관심도 없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준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고전을 소개한 그들의 글에 대해선 거부감도 선입견도 없었으니깐 말이다. 그래 답은 바로 그거였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 그렇다면 고전읽기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그렇다. 꼭 남들이 고전이라고 생각하는 책, 세계문학전집 혹은 한국문학전집에 속하는 책들만이 고전은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부모님께 야단맞으며 읽던 만화책이던, 광고가 2/3를 차지하는 잡지책이던 그 속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는다면 자신만의 고전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자신만의 고전목록이 쌓여 질수록 그의 인생도 뚜렷해질 것이라 생각되어 진다. 하지만 그러기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은 다방면의 많은 책을 읽는 것이겠지.. 몇 달 전부터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읽고 있다. 누구나가 말하는 세계적인 대작가이고, 말이 필요없는 고전이다. 하지만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내 관심의 대상은 아니였다. 왜냐구? 이 역시 고전이니깐.. 하지만 어느날 이 전집이 절판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터넷 서점을 뒤져봐도 절판되는 숫자가 늘어나고, 불현듯 초조함이 엄습했다. 부랴부랴 어렵게 전집을 구하고, 지금 내 책상위엔 빨간 전집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느꼈던 부담감보단 행복하다. 곧 이 전집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소식에 살짝 배신감이 들긴 했지만 오래되어 빛바랜 녀석들이 더 좋다. 머리가 팽~ 돌아갈 주인공들의 이름을 메모하면서 어느덧 도스또예프스끼와 노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니깐 말이다. 책을 섬기기보단 책과 함께 노는 것. 그것이 고전읽기의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난 아직 읽을 책이 많기에 가장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혹 기회가 된다면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그 질문을 다시 해주십시오.’라고.. 물론 한 권을 딱 고르긴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목록을 보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그런 책들로 채워지길 바래본다. 그러기에 난 오늘도 열심히 책과 놀이 중이다. 다음으로 나랑 놀아줄 녀석 얼른 따라와~~ 빨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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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는다
누군가가 말했듯, 어떤 사람은 책에서 공부하는 법을 찾고
어떤 사람은 책에서 돈 버는 법을 찾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사랑에 성공하는 법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책 속에 인생이 있기 때문에 책이 재미있다
누군가의 삶이 있고,
그 삶이 내 삶과 다르지 않으면 다르지 않아서, 또 다르면 달라서
그냥 그대로 재미가 있고, 내겐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책을 편집 혹은 홍보한 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그들이 단순히 고전을 소개하는 정도라면
내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책에 관심을 가진 건
책을 통해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어떤 책을 통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 왔는지
순전히 그런 것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인간냄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공지영의 뒷편에는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부활''이 있었고
보이는/보이지 않는 폭력에 항거하는 자세가 돋보이던
김두식 교수의 뒷편에는 사랑과 평화의 실천을 이야기하는
톨스토이의 민화집이 있었으며
독특한 색깔의 영화로 주목받는 변영주 감독의 뒤에는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
그리고 발레교습소에서 그린 청소년기의 모습의 뒤에는
가네시로가즈키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홍세화 선생님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뒤에는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된 고전들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는 공지영 작가와 김두식 교수님이 차례로 소개하는데
이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공지영은
톨스토이의 성장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에 주목한다.
작가로서, 가장 마지막 작품인 부활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칭송받는,
글쓰기를 통한 그의 성장이 그녀에게 도전이 됐으며,
인간의 추악한 면을 집요하게 파고 든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달리
인간에 대한 믿음, 구원, 희망을 얘기한 톨스토이가
그녀에게는 작가로서 더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는 것
하지만 김두식 교수는
톨스토이의 삶에 있어서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이상을 노래하고, 희망을 얘기했지만
그의 이상이 아닌 일상은 그와 같지 못했다는 것
그 역시 이상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어쩌면 톨스토이와 같이 괴리감이 있는 질척질척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이 부분에 굉장히 공감했다
이상이라는 것, 사실 이상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루지 못하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버리면 그만인 걸
버리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이루지도 못하는
정말 질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또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결심하고, 날마다 패배하면서도
또 다시 결심을 일삼는 내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맹자를 이야기한 배병삼과
장자를 이야기한 표정훈의 저술 부분이었다
사실 맹자, 장자는 윤리시간 이후 딱히 접한 적이 없다
맹자 호연지기 장자 자연주의 노장사상
뭐 이런 것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맹자와 장자의 공통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다
알다시피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인간의 본성에서 희망을 본 사상가였다
사실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던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맹자
사람들 안의 선한 씨앗을 찾아주고, 그로 인해 다시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맹자
도덕 책에서 봤던 그의 인상은 흉악 울그락 불그락이었는데
그 안에 이렇게 착한 생각이 품어져 있었다는 것
사실 도덕시간에 배울 땐 와닿지 않았었다 ㅎㅎ
그리고 장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데
공자가 말하는 인의(仁義)에 대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려는
비현실적인 사상이라 일침을 놓으며
각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
사실 나도 조금은 이상주의자적인 측면이 있어서
이러한 장자의 사상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 역시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장자의 사상을 운동권에 합류하지 못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써먹었다고 하고,
세상의 다양한 일에 대해 충고를 해주다 보니
다소 일관성이 없는 측면도 있었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고
그 부분에 나 역시 공감한다
사실 나 역시 이상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내 삶의 종종 옭아매더라도
또 이렇게 인간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라는 장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고 공감이 되는 것 역시
하나의 모순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고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실 어느 정도 국한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고전의 정의는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서양의 고전, 동양의 고전, 소설, 시, 사상, 영화까지
정말 고전이라는 말이 참 많은 것을 아우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정말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책의 편집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폰트와 색깔을 달리하고
거기에 친절하게 밑줄까지 그어주었다는 것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고 해석이 다른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고,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라고
손수 밑줄까지 그어주셨던 편집자의 과도한 친절은 그야말로
''사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부분을 읽을 때 편견을 갖게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얕으나마 여러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나로서는 꽤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특히나... 천성이 비굴한 나에게
고전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고전을 읽는 것은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이지
작가의 시각을 숭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숭배하려는 자에게 고전은 속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라는
배병삼 교수의 말이 나에게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마터면 비굴하게 숭배하면서 고전 읽을 뻔했다, 하하 [인상깊은구절] 사람도 그러하다. 위대한 말씀이나 책을 접하고 난 사람은 이전의 그 사람일 수가 없다. 겉으로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이겠으나 속은 완전히 새 사람으로 변모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인격을 도야하고 난 후의 사람 모습이다. 흙으로 빚은 그릇이 불가마에서 뜨거운 불기운을 이겨내고 나면 이미 ''흙그릇''이 아니라 ''자기그릇''이듯, 위대한 책을 접하고 난 사람이 그러하다. 우리는 위대한 책을 달리 ''고전''이라 이른다. 고전은 사람을 극적으로 변모시키는 가장 강한 불이요 또 오래 타는 뗄감이다. |
| 내가 이 책을 읽겠다고 들었을 때와 이 책을 기획한 이와의 생각 달랐나 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고전의 내용 조금이라도 접해보고 어떤 고전부터 읽을까를 생각해보려 했거만, 그저그런 내용들이고 신변잡기적인 내용들로 인해 오히려 나의 선택에는 방해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각 잡문들이 글을 못 썼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검증된 아주 글을 잘 쓰시는, 우리 사회의 지성들이시니 감히 내가 그렇게 말할 여지는 없겠지만, 어쨌든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고전에 대한 소개도 너무도 일반적이었고, 또는 신변잡기적이었고, 칼럼 같기만 했다면... 그래도 이 책에 나오는 책 한 권은 오늘 사야겠다. 라비에타 "자발적 복종" 읽고 싶은 책 한 권 건졌으니 결코 나쁘지 않은 독서였다 싶기는 하다. |
| 고전. 말 그대로 풀어 쓰자면 "과거"에 쓰인 책 중 명작이라 일컫는 것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정의요,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막연히 고전에 대해 가진 정의였다. 그러나 이 고전읽기를 쓴 저자 중의 한 명인 현기영은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를 "기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기억 뿐만 아니라 고전 역시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에도 읽히고, 읽혀야 되는 책이라는 생각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갖게 되었다. 그렇다. 이 책을 저술한 저자들은 각자 자기들이 읽었던 고전을 통해 과거 자신의 길을 찾고, 현재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며, 앞으로 가야할 자신의 길에 대한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일반인도 다 아는 톨스토이, 정지용, 프루스트 등의 저술을 비롯하여 장자, 맹자, 조선왕조 실록 등과 같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책과 영화 등 여러 부문의 고전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각 부문을 쓴 저자들의 이력과 일맥상통하는 연관성이 있으며 독자는 여기서 고전이 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 왔고, 저자들은 고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투영하였는지 나타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맹자와 장자 같은 중국 고전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으며 듣도 보도 못한 트뤼포 감독과 라보에티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나 정지용의 작품은 고등학교 때 접해 보았지만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과연 나에게도 프루스트가 말한 ''초시간적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게 다시 한번 그 작품들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고전의 매력 혹은 위력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바로 그것을 읽는 시기나 읽는 사람의 현재 처지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한 권의 고전을 평생에 걸쳐 여러 번 읽다 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194 中 과연 지금에 와서 읽는다면 과거와는 다른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시간이 되다면 다시 읽어보리라.또한 읽어보지 않은 저자들이 읽은 고전을 읽어보며 그들이 느꼈던 바를 되짚으며 나만의 "고전 읽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가져본다. |
| 얼마전 직장동료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이제서야 제대로 읽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문 득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 유명한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소위 고전이라고 알고 있는 책들 중에 실제 읽어본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고전이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씁쓸한 정의도 있듯이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어서 줄거리만 알고 있으면서 읽었다고 착각하기 쉬운것이 바로 고 전인 것 같다. 그때부터 제목과 줄거리만 알고 실제로는 읽지 않은 고전들을 한권씩 한권씩 읽어가던 중 에 ''나의 고전읽기''라는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쌓여있는 책을 제쳐두고 덥썩 읽 기 시작하였다. ''나의 고전읽기''는 얼핏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소설보다 더 술술 익히는 책인데다 가 공지영, 신경림, 홍세화, 변영주 등 평소 좋아하는 분들이 저자라서 더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각자가 애착을 갖고 있는 고전 한편씩을 소 개하고 있다. 톨스토이라는 대문호에 대한 공지영과 김두식의 서로 다른 시각과 판단을 엿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왔고, 평소 거의 읽지 않는 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준 신경림의 [정지용의 시세계] 소개도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관심이 갔던 건 노회찬의 [조선왕조실록] 편이었다. 조선 역대왕들의 언행을 모두 수록한 조선왕조실록은 무려 400여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 고, 한글로 번역했을 때 책 권수는 413권에 달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하는 것은 왠만한 노력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다행히 데이타베이스 되어 있어 인터넷에서 주제별로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반가 운 일이다. 부끄럽게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고전 중 읽어본 것이라고는 톨스토이 민화집 하나밖 에 없어서, 저자들의 고전을 보는 시각과 내가 고전을 보는 시각이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해 볼 수는 없었지만,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좋은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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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책이다.
밥을 차려 줄 수는 있어도, 밥을 씹어 삼키는 것은 제 맘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 책을 그 옛 말에 비유하자면, 기름진 고전이란 쌀을 한 상 차린 다음,
사회 10명의 명사들이 그 밥마저 소화하기 쉽게 씹어 영양죽을 만들어
수저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 할 만 하다.
이 책은 누가 읽느냐에 따라, 보통의 고전을 말하는 책의 두배의 가치가 있다.
고전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는 책이 아니다.
고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고전은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고전을 알려주는 책이다.
공지영, 김두식, 노회찬, 배병삼, 변영주, 신경림, 이주향, 표정훈, 현기영, 홍세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현 시대에 우리와 함께 숨쉬는 그들이 각기 말하는
10권의 고전들은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숨쉬고 있다.
톨스토이의 부활, 조선왕조 실록, 맹자, 400번의 구타, 반야심경, 자발적 복종
등 동서양 시대를 넘어선 고전들을 소개하는 책 속에는 고전의 숨결과 더불어
이 고전을 읽어내린 그들의 숨결또한 더불어 있기에 오히려 고전을 말하는
책이라기 보다, 우리 학교 친한 선생님, 옆 집의 박식한 아저씨가 말해주는
인생을 듣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학문의 원류가 되고, 밑거름이 되는 옛 사람이 쓴 고전을 말하는 책이지만,
결코 고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찾은
고전의 진리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대의 우리 곁에 있노라고
각 명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형화된 고전의 한 학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직업과 사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삶을 사는 동안 고전의 가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또 고전을 어떻게 자신의 속으로 흡수했는지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내가 ''솔직하게''라고 말하는 이유는, 각 장이 다른 직업, 다른 사상,
다른 삶을 살아온 10인의 명사 각각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인으로써, 영화를 만들며 느껴온 고전, 소설을 만들며
작가로써 고민해온 고전, 법의 관점에서, 시인으로써, 언론인으로써-
고전을 읽는 이유가 그 고전들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도 수많은 진리와
응용을 재생산 해낼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톨스토이의 부활을 소개한 공지영씨와 정치의 관점에서 조선 왕조 실록을
소개한 노희찬 씨가 서로 책을 바꾸어 소개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상상,
혹은 각각의 고전을 흡수하고 설명하는 각 명사가 심혈을 기울여 고전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느껴지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생각, 열정, 더불어 각 명사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해 고전을 인용해 설명해 주는 동안
우리는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명사가 읽은 고전은 어떻게 흡수되었는지
명사가 만든 고전을 우리나라의 또다른 명사가 다시 읽어낸 고전을 읽게 되는 것이다.
다만, 명사가 읽은 고전을 다시 읽는 와중에 그 속에 섞여 들어간
그 명사만의 ''침''- 명사의 사상, 명사의 생각또한 구분할 줄 알고
그 고전을 읽을 때 자신만이 생각해야 할 또 다른 고전의 세계가 있음을
구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응용한다는 것, 고전을 현실에서 적용 할수 없다고 어려워 하던
사람들에게 이책을 추천한다.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전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알려주고 증명해 주는 책.
명사가 씹어 수저 위에 올려놓은 고전이란 영양죽을 먹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좀 더러운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고전을 말하며 섞인 명사의 침(주관)또한 약으로 삼킬지, 일일히 눈을 밝혀 골라 낼지 또한 [인상깊은구절] "어디다 쓸 거냐!" |
| 고전은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기에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며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사랑한다,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던져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네요. 값진 책, 인생에서 늘 옆에 두고 싶은 소중한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책을 덮고 나서도 그저 흐뭇해지는 책이었어요. 같은 고전이라도 사람에 따라 읽어내는 거리들, 느끼는 거리들이 다르지요. 이 시대에 의미있는 열 분이 들려주는 고전읽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가치로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나도 그 책 읽었는데, 이런 생각은 못했네, 맞아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며 그분들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엿보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어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 열 분! 한 분 한 분 소개하는 고전과 고전을 읽고 느낀 그 분들의 속내를 들려주는 이야기들, 한 마디들에 감동을 느끼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도 무엇과 바꾸기 힘든 것이기에... 특히, 제가 좋아하는 홍세화님, 공지영 작가 그 분들의 책에서 느낀 감동과는 또 사뭇다른 깊이있는 이야기들에 정말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책이 되었답니다. ^^ 이 책에 푹빠져 이 분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은 과연 그 고전에서 어떤 생각을 했던가'' 다시 반추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도 허락합니다. 이 가을을 더 소중하게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지성을 선물하는 책! 지인들에게 꼭 선사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네요. 고전의 은근함과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인 만큼 오래 오래 손때가 묻도록 간직하고 펼쳐보고 감동받고 싶은 책입니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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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내게 고전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전 작품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제목이 없었다. 그렇게 책을 안 읽었던가 하는 의아심도 잠시 느꼈다가 하나만 딱 꼬집을 만큼 감동을 받은 작품이 없었나 되묻기도 했다가 혹시 내가 읽은 책 중에 고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었던 것인가 하고 내 독서의 질에 대해 의심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나더러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보아 주는 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내 스스로에게 느끼는 독서의 양과 질에 대해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늘 읽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