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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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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전읽기]를 읽기 전, 나는 적어도 나만의 고전이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의 고전 없이 타인의 고전을 눈으로 뒤쫓고 있다는 뒤쳐짐이었다. 그건 그리 썩 좋은 느낌이 아니다. 내 것 없이 남의 것을 무작정 쫓는 건 그 대상이 고전이든 어떤 무엇이든간에 올바른 일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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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전읽기]를 읽기 전, 나는 적어도 나만의 고전이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의 고전 없이 타인의 고전을 눈으로 뒤쫓고 있다는 뒤쳐짐이었다. 그건 그리 썩 좋은 느낌이 아니다. 내 것 없이 남의 것을 무작정 쫓는 건 그 대상이 고전이든 어떤 무엇이든간에 올바른 일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오래되고, 유명한 작품만을 고전이라 믿던 내게 [나의 고전읽기]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어떤 작품이 되었든 나 자신이 크게 감명받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면 그건 나만의 고전이 되는 것이다. 그저 [한국문학] 또는 [세계문학]이라 이름 붙여진 전집을 고전 1순위로 꼽고는 마냥 우러러보던 내가 범한 어리석은 실수를 [나의 고전읽기]의 저자는 따끔히 야단치고 있다.   공지영 외 9인의 이름난 이들이 들려주는 고전은 사소하지만 마음에 크게 닿아오는 진정성을 간직한 이야기들이다. 톨스토이에서부터 맹자 그리고 장자까지. 더욱 부끄러운 건 그 중 내 것으로 곱씹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데 있었다. 접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멀리한 것들. 난 고전을 지루하고 멀게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고전은 이름 자체처럼 옛 이야기 뿐만은 아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아우라를 동시에 뿜어내는 동시대성을 지닌 텍스트인 것이다.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나의 고전읽기]를 중단했다. 그들의 고전을 나의 고전으로 치부해버린 채 마냥 쫓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나의 고전, 나만의 고전이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의 고전 원본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마냥 따라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래서 책을 덮었고 문학전집을 뒤적이며 평소 읽고자 했던 고전들을 폭식하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폭식 후 나는 자신있게 [나의 고전]을 이들처럼 추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유명한 10인의 고전들이 내게 적지 않은 감명과 자극이 되어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로 인해 고전의 의미를 정확히 새겼고, 고전을 읽으리라 다짐했고, 나만의 고전 찾기에 골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s*****d 2006.10.3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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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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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되도록 고전에 눈을 두고 읽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왜 고전을 읽으려고 했는지, 내 마음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좋다니까, 좋을 것 같으니까 읽기로 한 것이다. 너무나 단순하게.    이 책 <나의 고전 읽기>를 선택한 것은 공지영, 김두식, 노회찬, 배병삼, 변영주, 신경림, 이주향, 표정훈, 현기영, 홍세화의 고전읽기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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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 해, 되도록 고전에 눈을 두고 읽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왜 고전을 읽으려고 했는지, 내 마음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좋다니까, 좋을 것 같으니까 읽기로 한 것이다. 너무나 단순하게.

 

 이 책 <나의 고전 읽기>를 선택한 것은 공지영, 김두식, 노회찬, 배병삼, 변영주, 신경림, 이주향, 표정훈, 현기영, 홍세화의 고전읽기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들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나 자신의 고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고,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이었다. 부담없이 읽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바라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먼저 김두식의 "원래 고전이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뜨사는 말 아닙니까."에서 살짝 웃으면서 공감했다. 유명세에 비해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 깜짝 놀랄만큼 당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전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별 탈 없는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인생을 항해하며 봉착하는 삶의 위기를 버텨 이겨낼 힘의 근원인 것이다.

(나의 고전읽기 89쪽 배병삼)

 

 

 

고전은 옛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가장 첨예했던 문제들을 예술가들이 자신의 세계관 속에 풀어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읽지 않으니 뱉어 놓을 것이 없다. 고전이란 사랑하거나 좋아해야 하는 것이지, 존경하거나 흠모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나의 고전읽기 129쪽 변영주)

 

 

 

고전의 매력 혹은 위력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바로 그것을 읽는 시기나 읽는 사람의 현재 처지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한 권의 고전을 평생에 걸쳐 여러 번 읽다 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고전읽기 194쪽 표정훈)

 

 그동안 고전에 대해 너무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에 접근 자체를 힘겨워했던 것을 생각해본다. 이제야 큰맘 먹고 읽어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연하고 막막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일단 고전은 옛날에 쓰여진 글이고 지금껏 살아남은 글이니, 그렇게 두려울 것도 없다. 지루해서 못읽겠으면 내가 선택한 책이 잘못되었거나, 그 시기의 내가 읽을만한 상태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다음 책으로 넘기면 그뿐이다.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책을 찾아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공지영이 말한 '톨스토이의 <부활>'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회찬이 말한 <조선왕조실록>도 검색해서 궁금한 주제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특히 오랫동안 '언제 한 번 읽어야지'라고 생각하기만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번 기회에 꼭 읽어야겠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궁금한 마음을 살짝 건드려서 고전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해주는 책이다.



s*****a 2013.01.21.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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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재미있게 놀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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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읽기? 저 옛날 베스트셀러에 대한 관심은 울타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출판전부터 관심있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마치 내가 무슨 일조라도 한 듯 뿌듯한 맘이 들긴 하지만 순위 자체엔 연연하지 않는다. 왜냐구? 난 책을 처음 접하는 초보 독자도 아닐뿐더러 책 선택을 하는데 있어 이젠 어느 정도 원칙이라는게 생겼으니깐 말이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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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읽기? 저 옛날 베스트셀러에 대한 관심은 울타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출판전부터 관심있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마치 내가 무슨 일조라도 한 듯 뿌듯한 맘이 들긴 하지만 순위 자체엔 연연하지 않는다. 왜냐구? 난 책을 처음 접하는 초보 독자도 아닐뿐더러 책 선택을 하는데 있어 이젠 어느 정도 원칙이라는게 생겼으니깐 말이다. 작가주의 책읽기? 이 역시 좋아하는 작가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다보니 연달아 책이 출판될땐 자금의 압박이 상당하지만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나 관심분야 등 작가의 미묘한 변화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와 작품을 다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코드를 발견하는 재미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수 있는 기쁨이니 아마 좋아하는 작가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은 계속 될 것 같다. 인문사회분야 책읽기? 흠.. 나의 취약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내겐 힘들고 어려운 분야지만 생각의 확장에 많은 도움이 됨으로 문학책 5-6권당 인문사회분야 책 한 권꼴은 읽으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아직 초보라 책 선택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간혹 맘에 드는 책을 만났을 때 기쁨은 곱하기, 곱하기로 좋으니 이 역시 부지런히 도전해 보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고전읽기.. 영어책을 보면 울렁증이 생기는 것만큼이나 고전읽기는 나의 취약분야이다. 이 고정관념은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사라지질 않으니 정말 속이 상한다. 아무책이나 읽다 아니다싶으면 포기하면 그만인 것을 이건 포기도 안되면서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누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받고, 이런 감동도 받았다는 글을 보면 내용파악조차 못한 나는 또 땅굴파면서 한없이 무너진다. 그 무언가를 찾아야한다는 강박관념. 이게 참 무섭다. 내가 책을 읽는건지, 책이 나를 봐주는건지 주객전도된 상태로 눈으로만 읽으니 뭐가 나오겠는가?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 고전 앞에서 절대 주눅 들지 말 것!!!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고전은 받들어질 대상도 아니고, 숭배할 필요도 없다. 진정 내가 필요로 했던 말이다. 그저 일대일로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라. 이 역시 내가 듣고싶었던 말이다. 여기 10인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유명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사람들이다. 유명한 그들이 소개한 고전 10권. 물론 난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다. 아니 크게 관심도 없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준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고전을 소개한 그들의 글에 대해선 거부감도 선입견도 없었으니깐 말이다. 그래 답은 바로 그거였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 그렇다면 고전읽기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그렇다. 꼭 남들이 고전이라고 생각하는 책, 세계문학전집 혹은 한국문학전집에 속하는 책들만이 고전은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부모님께 야단맞으며 읽던 만화책이던, 광고가 2/3를 차지하는 잡지책이던 그 속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는다면 자신만의 고전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자신만의 고전목록이 쌓여 질수록 그의 인생도 뚜렷해질 것이라 생각되어 진다. 하지만 그러기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은 다방면의 많은 책을 읽는 것이겠지.. 몇 달 전부터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읽고 있다. 누구나가 말하는 세계적인 대작가이고, 말이 필요없는 고전이다. 하지만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내 관심의 대상은 아니였다. 왜냐구? 이 역시 고전이니깐.. 하지만 어느날 이 전집이 절판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터넷 서점을 뒤져봐도 절판되는 숫자가 늘어나고, 불현듯 초조함이 엄습했다. 부랴부랴 어렵게 전집을 구하고, 지금 내 책상위엔 빨간 전집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느꼈던 부담감보단 행복하다. 곧 이 전집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소식에 살짝 배신감이 들긴 했지만 오래되어 빛바랜 녀석들이 더 좋다. 머리가 팽~ 돌아갈 주인공들의 이름을 메모하면서 어느덧 도스또예프스끼와 노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니깐 말이다. 책을 섬기기보단 책과 함께 노는 것. 그것이 고전읽기의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난 아직 읽을 책이 많기에 가장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혹 기회가 된다면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그 질문을 다시 해주십시오.’라고.. 물론 한 권을 딱 고르긴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목록을 보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그런 책들로 채워지길 바래본다. 그러기에 난 오늘도 열심히 책과 놀이 중이다. 다음으로 나랑 놀아줄 녀석 얼른 따라와~~ 빨리와~~
d*******7 2006.10.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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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뒤에 고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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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는다 누군가가 말했듯, 어떤 사람은 책에서 공부하는 법을 찾고 어떤 사람은 책에서 돈 버는 법을 찾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사랑에 성공하는 법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책 속에 인생이 있기 때문에 책이 재미있다 누군가의 삶이 있고, 그 삶이 내 삶과 다르지 않으면 다르지 않아서, 또 다르면 달라서 그냥 그대로 재미가 있고, 내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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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는다 누군가가 말했듯, 어떤 사람은 책에서 공부하는 법을 찾고 어떤 사람은 책에서 돈 버는 법을 찾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사랑에 성공하는 법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책 속에 인생이 있기 때문에 책이 재미있다 누군가의 삶이 있고, 그 삶이 내 삶과 다르지 않으면 다르지 않아서, 또 다르면 달라서 그냥 그대로 재미가 있고, 내겐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책을 편집 혹은 홍보한 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그들이 단순히 고전을 소개하는 정도라면 내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책에 관심을 가진 건 책을 통해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어떤 책을 통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 왔는지 순전히 그런 것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인간냄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공지영의 뒷편에는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부활''이 있었고 보이는/보이지 않는 폭력에 항거하는 자세가 돋보이던 김두식 교수의 뒷편에는 사랑과 평화의 실천을 이야기하는 톨스토이의 민화집이 있었으며 독특한 색깔의 영화로 주목받는 변영주 감독의 뒤에는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 그리고 발레교습소에서 그린 청소년기의 모습의 뒤에는 가네시로가즈키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홍세화 선생님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뒤에는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된 고전들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는 공지영 작가와 김두식 교수님이 차례로 소개하는데 이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공지영은 톨스토이의 성장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에 주목한다. 작가로서, 가장 마지막 작품인 부활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칭송받는, 글쓰기를 통한 그의 성장이 그녀에게 도전이 됐으며, 인간의 추악한 면을 집요하게 파고 든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달리 인간에 대한 믿음, 구원, 희망을 얘기한 톨스토이가 그녀에게는 작가로서 더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는 것 하지만 김두식 교수는 톨스토이의 삶에 있어서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이상을 노래하고, 희망을 얘기했지만 그의 이상이 아닌 일상은 그와 같지 못했다는 것 그 역시 이상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어쩌면 톨스토이와 같이 괴리감이 있는 질척질척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이 부분에 굉장히 공감했다 이상이라는 것, 사실 이상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루지 못하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버리면 그만인 걸 버리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이루지도 못하는 정말 질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또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결심하고, 날마다 패배하면서도 또 다시 결심을 일삼는 내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맹자를 이야기한 배병삼과 장자를 이야기한 표정훈의 저술 부분이었다 사실 맹자, 장자는 윤리시간 이후 딱히 접한 적이 없다 맹자 호연지기 장자 자연주의 노장사상 뭐 이런 것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맹자와 장자의 공통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다 알다시피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인간의 본성에서 희망을 본 사상가였다 사실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던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맹자 사람들 안의 선한 씨앗을 찾아주고, 그로 인해 다시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맹자 도덕 책에서 봤던 그의 인상은 흉악 울그락 불그락이었는데 그 안에 이렇게 착한 생각이 품어져 있었다는 것 사실 도덕시간에 배울 땐 와닿지 않았었다 ㅎㅎ 그리고 장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데 공자가 말하는 인의(仁義)에 대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려는 비현실적인 사상이라 일침을 놓으며 각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 사실 나도 조금은 이상주의자적인 측면이 있어서 이러한 장자의 사상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 역시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장자의 사상을 운동권에 합류하지 못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써먹었다고 하고, 세상의 다양한 일에 대해 충고를 해주다 보니 다소 일관성이 없는 측면도 있었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고 그 부분에 나 역시 공감한다 사실 나 역시 이상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내 삶의 종종 옭아매더라도 또 이렇게 인간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라는 장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고 공감이 되는 것 역시 하나의 모순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고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실 어느 정도 국한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고전의 정의는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서양의 고전, 동양의 고전, 소설, 시, 사상, 영화까지 정말 고전이라는 말이 참 많은 것을 아우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정말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책의 편집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폰트와 색깔을 달리하고 거기에 친절하게 밑줄까지 그어주었다는 것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고 해석이 다른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고,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라고 손수 밑줄까지 그어주셨던 편집자의 과도한 친절은 그야말로 ''사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부분을 읽을 때 편견을 갖게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얕으나마 여러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나로서는 꽤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특히나... 천성이 비굴한 나에게 고전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고전을 읽는 것은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이지 작가의 시각을 숭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숭배하려는 자에게 고전은 속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라는 배병삼 교수의 말이 나에게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마터면 비굴하게 숭배하면서 고전 읽을 뻔했다, 하하

[인상깊은구절]
사람도 그러하다. 위대한 말씀이나 책을 접하고 난 사람은 이전의 그 사람일 수가 없다. 겉으로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이겠으나 속은 완전히 새 사람으로 변모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인격을 도야하고 난 후의 사람 모습이다. 흙으로 빚은 그릇이 불가마에서 뜨거운 불기운을 이겨내고 나면 이미 ''흙그릇''이 아니라 ''자기그릇''이듯, 위대한 책을 접하고 난 사람이 그러하다. 우리는 위대한 책을 달리 ''고전''이라 이른다. 고전은 사람을 극적으로 변모시키는 가장 강한 불이요 또 오래 타는 뗄감이다. 그렇다고 주눅이 들어 섬기듯 고전을 읽어서는 안 된다. 고전을 읽는 까닭은 공자나 소크라테스를 숭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숭배는 고전 읽기에 치명적인 독이다) 그들이 나를 설득해야지 내가 그들을 섬길 수는 없는 일이다. 고전을 읽는 까닭은 나를 세우기 위함이다. 남들 입에 회자되는 책이라고 해서 곧 그것이 나에게도 고전일 수는 없다. 고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책 앞에 무릎 꿇을 요량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는 절대로 참다운 감동은 없다. 나를 알기 위해, 내 눈으로 세계를 보기 위해, 나를 단련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 잊지 말아야 한다. 나를 위해 고전을 읽는 것이지, ''공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님을. 그 순간과 만나면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자신을 발견하고 높다란 곳에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흐름을 조망하는 장쾌한 감회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먼저 주눅이 들어 숭배하려는 이들에게는 고전은 결코 제 속살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마지막 작품이 대표작이라는 것,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끊임없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상태에서 성장을 계속한다는 것은 칭찬해주고 고무해줘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톨스토이를 닮고 싶다. 그 당시 우리를 사로잡았던 로봇 태권브이, 슈퍼맨, 배트맨, 보안관 와이어트, 김소위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구원하는 폭력''의 신화를 기본 뼈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폭력으로 악을 구현하는 구제 불능의 절대적 악당들은 언제나 절대적 선을 대변하는 영원한 영웅들의 또 다른 폭력에 의해서만 퇴치될 수 있었습니다. 선택은 늘 ''무기력한 패배''와 ''폭력에 의한 승리'' 둘 중 하나만 가능했습니다. 대화나 협상에 의한 평화로운 문제 해결은 선택지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원하는 폭력''의 신화에 따르면 악은 우리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내면에 자리 잡은 악을 발견하고 다스리기보다는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다니는 것이 개인과 집단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구원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내어주기''나 ''원수를 사랑하기'' 같은 평화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고 가르쳐준 ''톨스토이 민화집''은 나로 하여금 ''구원하는 폭력''이라는 신화에 의문을 갖게 만든 첫 번째 계기였습니다. 톨스토이는 간디를 낳았고 간디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낳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원의 폭력''을 거부한 용기 있는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한 연대를 형성해 왔습니다. 바로 그 연대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톨스토이 민화집''은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흔치 않게 사람들이 실제로 읽는 고전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바로 그 비합리적 선택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징표가 안리까요. 적어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톨스토이의 가르침이 유효할 수 있고, 유효해야만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일상의 끈을 놓지 못했던 톨스토이의 삶을 알아갈수록, 나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게 곧 나의 인생이고 우리들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톨스토이 민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이상적인 삶을 살기 원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 결국 일찌감치 이상을 포기하고 그저 몸이 원하는대로 끝없는 이윤 추구의 삶을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우리는 현실주의자라고 부릅니다. 현실주의자들의 깔끔한 삶에 비해 이상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처럼 평범한 ''이중인격자들''의 삶은 너무나 질척질척합니다.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열망하지만 몸은 언제나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더 큰 텔레비전, 더 시원한 에어컨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굴복합니다. 적당히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소수자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곤 하지만, 정작 용감하게 소수자가 되어야 할 때는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 이중성 때문에 늘 스스로 피곤할 뿐 아니라 이웃까지도 피곤하게 만듭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여러 번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되면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도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가능한 영역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에서 시작하여 톨스토이의 격려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조금씩 톨스토이를 벗어나게 된 셈이지요. 논어나 맹자는 마땅히 정치학자의 눈으로 읽고 또 그 손으로 다시 쓰여야만 했다. 몇 년 전 논어를 주석한 나를 두고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동양 고전을 출간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실은 해방 이후 60년이 넘도록 이 땅의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지않은 것이 도리어 이상한 사태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순자를 제치고 맹자가 유교 경전의 반열에 든 까닭은 무엇일까? 맹자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짐승보다 못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신성의 씨앗이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 ''신성의 씨앗''을 기르기만 하면 평화의 시래가 도래하리라는 희망의 가설을 제시한 데 있다. 나는 영화는 언제나 문학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라는 장르는 언제나 그 시대의 시대성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전위예술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가네시로가즈키 소설의 놀라운 점은 마이너리티들에게 성공하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리티답게 패배하고 마이너리티답게 승리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고전은 옛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가장 첨예했던 문제들을 예술가들이 자신의 세계관 속에 풀어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읽지 않으니 뱉어놓을 것이 없다. 고전이란 사랑하거나 좋아해야 하는 것이지, 존경하거나 흠모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워즈워드를 연구한 로버트 브라운이란 사람은 이런 말까지 한다. "워즈워드는 서른아홉 살에 죽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즈워드가 초창기에 쓴 시는 영문학사에 중요한 자산으로 간직되어 있다. 서정주도 마찬가지다. 친일한 행적은 용납할 수 없으나 그의 시들이 우리 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우리의 정서를 한 단계 높인 측면이 있기에 모두 버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엄마 이제 내가 벌써 엄마 세상 떠난 나이가 되었네! 나도 이제 갈 때가 되니까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나요. 이제 10년은 못 살겠고 한 4-5년,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보고 엄마가 간 세상으로 갈 테니까 기다리세요" (중략) "죽을 때가 됐는데 왜 죽음을 생각 안해? 나이가 들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풀어져 있는 것이 보여. 그러면 죽음이 무섭지 않고 세상이 진짜 아름답단다. 이렇게 꽃 피는 것만 봐도 좋아" 이모들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는데 세월이 덧없지 않느냐고 하니까 덧없긴, 고맙지 하신다. 생이 고맙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분명히 덧없는 세월, 덧없는 세상까지 받아들이고 있는 늙음의 품위를 보았다. 어떤 젊음이 그 넉넉한 품을 흉내조차 낼 수 있겠는가. 우리 사는 세상을 아수라장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이 아수라장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13세기의 신비주의 신학자 에카르트는 이렇게 선포한 모양이다. 어떤 이가 왕국 뿐 아니라 온 세계를 놓아버렸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놓아버린 게 아니라고. 새에게는 새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인간에게는 인간 나름의 삶의 방식과 즐거움이 있다. 물론 같은 인간이라 해도 내가 다르고 네가 다르며 그가 다르게 마련이다. 그렇게 제각각인 삶의 방식과 즐거움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세상 사람들러 하여금 소박한 본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해와 달은 계속 빛을 잃지 않고 별들은 일정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쉼 없이 운행하며 들짐승들은 제 나름대로 살아가는 영역과 방법이 있고, 풀과 나무도 그 타고난 성장의 길이 있습니다. 요컨대 하늘과 땅에는 늘 그러한 질서, 스스로 그러한 길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 길을 따라 행동하면 됩니다. 당신은 인의를 내세워 인간의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장자를 내 편의에 따라, 내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써먹었다. 요컨대 장자를 내 편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장자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세상살이가 사람마다 다르고 무척이나 복잡할진대 장자는 그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살이의 경우마다 그에 맞는 충고를 해 준다. 그러다 보니 일관성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무언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삶의 복잡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닌가. 우리들의 학교가 제대로 된 민주시민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 자발적 복종을 강요하고 있는지를 엄정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전혀 그렇지 않다. 경쟁과 효율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들은 갈수록 몰개성적으로 변하고 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식 세계를 형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형성하는 주체가 통일되어 있기에 모두가 비슷비슷한 무리들이 되고 만다. 자신이 민중이면서 정작 반민중적 사고를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자발적 복종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이다. 이러한 구조를 정확히 살필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가는 자본가의 이해에 맞게 일방적이고 철저한 무장을 하고 있는 반면 노동자들은 노동자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중략) 모두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식세계를 고집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자신이 고집하는 의식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스스로에게 한번쯤 질문해보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라운 일인가?
w*****u 2006.10.29.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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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각각의 내용이 좋다고 모두가 좋지만은 않더군.
"글쎄...각각의 내용이 좋다고 모두가 좋지만은 않더군." 내용보기
내가 이 책을 읽겠다고 들었을 때와 이 책을 기획한 이와의 생각 달랐나 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고전의 내용 조금이라도 접해보고 어떤 고전부터 읽을까를 생각해보려 했거만, 그저그런 내용들이고 신변잡기적인 내용들로 인해 오히려 나의 선택에는 방해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각 잡문들이 글을 못 썼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검증된 아주 글을 잘 쓰시는, 우리 사회의
"글쎄...각각의 내용이 좋다고 모두가 좋지만은 않더군." 내용보기
내가 이 책을 읽겠다고 들었을 때와 이 책을 기획한 이와의 생각 달랐나 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고전의 내용 조금이라도 접해보고 어떤 고전부터 읽을까를 생각해보려 했거만, 그저그런 내용들이고 신변잡기적인 내용들로 인해 오히려 나의 선택에는 방해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각 잡문들이 글을 못 썼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검증된 아주 글을 잘 쓰시는, 우리 사회의 지성들이시니 감히 내가 그렇게 말할 여지는 없겠지만, 어쨌든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고전에 대한 소개도 너무도 일반적이었고, 또는 신변잡기적이었고, 칼럼 같기만 했다면... 그래도 이 책에 나오는 책 한 권은 오늘 사야겠다. 라비에타 "자발적 복종" 읽고 싶은 책 한 권 건졌으니 결코 나쁘지 않은 독서였다 싶기는 하다.
n***g 2007.01.05.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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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 내용보기
고전. 말 그대로 풀어 쓰자면 "과거"에 쓰인 책 중 명작이라 일컫는 것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정의요,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막연히 고전에 대해 가진 정의였다. 그러나 이 고전읽기를 쓴 저자 중의 한 명인 현기영은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를 "기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기억 뿐만 아니라 고전 역시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에도 읽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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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말 그대로 풀어 쓰자면 "과거"에 쓰인 책 중 명작이라 일컫는 것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정의요,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막연히 고전에 대해 가진 정의였다. 그러나 이 고전읽기를 쓴 저자 중의 한 명인 현기영은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를 "기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기억 뿐만 아니라 고전 역시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에도 읽히고, 읽혀야 되는 책이라는 생각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갖게 되었다. 그렇다. 이 책을 저술한 저자들은 각자 자기들이 읽었던 고전을 통해 과거 자신의 길을 찾고, 현재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며, 앞으로 가야할 자신의 길에 대한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일반인도 다 아는 톨스토이, 정지용, 프루스트 등의 저술을 비롯하여 장자, 맹자, 조선왕조 실록 등과 같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책과 영화 등 여러 부문의 고전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각 부문을 쓴 저자들의 이력과 일맥상통하는 연관성이 있으며 독자는 여기서 고전이 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 왔고, 저자들은 고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투영하였는지 나타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맹자와 장자 같은 중국 고전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으며 듣도 보도 못한 트뤼포 감독과 라보에티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나 정지용의 작품은 고등학교 때 접해 보았지만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과연 나에게도 프루스트가 말한 ''초시간적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게 다시 한번 그 작품들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고전의 매력 혹은 위력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바로 그것을 읽는 시기나 읽는 사람의 현재 처지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한 권의 고전을 평생에 걸쳐 여러 번 읽다 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194 中 과연 지금에 와서 읽는다면 과거와는 다른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시간이 되다면 다시 읽어보리라.또한 읽어보지 않은 저자들이 읽은 고전을 읽어보며 그들이 느꼈던 바를 되짚으며 나만의 "고전 읽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가져본다.
YES마니아 : 로얄 a***9 2006.1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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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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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직장동료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이제서야 제대로 읽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문 득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 유명한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소위 고전이라고 알고 있는 책들 중에 실제 읽어본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고전이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씁쓸한 정의도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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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직장동료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이제서야 제대로 읽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문 득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 유명한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소위 고전이라고 알고 있는 책들 중에 실제 읽어본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고전이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씁쓸한 정의도 있듯이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어서 줄거리만 알고 있으면서 읽었다고 착각하기 쉬운것이 바로 고 전인 것 같다. 그때부터 제목과 줄거리만 알고 실제로는 읽지 않은 고전들을 한권씩 한권씩 읽어가던 중 에 ''나의 고전읽기''라는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쌓여있는 책을 제쳐두고 덥썩 읽 기 시작하였다. ''나의 고전읽기''는 얼핏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소설보다 더 술술 익히는 책인데다 가 공지영, 신경림, 홍세화, 변영주 등 평소 좋아하는 분들이 저자라서 더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각자가 애착을 갖고 있는 고전 한편씩을 소 개하고 있다. 톨스토이라는 대문호에 대한 공지영과 김두식의 서로 다른 시각과 판단을 엿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왔고, 평소 거의 읽지 않는 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준 신경림의 [정지용의 시세계] 소개도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관심이 갔던 건 노회찬의 [조선왕조실록] 편이었다. 조선 역대왕들의 언행을 모두 수록한 조선왕조실록은 무려 400여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 고, 한글로 번역했을 때 책 권수는 413권에 달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하는 것은 왠만한 노력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다행히 데이타베이스 되어 있어 인터넷에서 주제별로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반가 운 일이다. 부끄럽게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고전 중 읽어본 것이라고는 톨스토이 민화집 하나밖 에 없어서, 저자들의 고전을 보는 시각과 내가 고전을 보는 시각이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해 볼 수는 없었지만,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좋은 기회였다.
c******r 2006.1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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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영양죽, 삼키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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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책이다. 밥을 차려 줄 수는 있어도, 밥을 씹어 삼키는 것은 제 맘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 책을 그 옛 말에 비유하자면, 기름진 고전이란 쌀을 한 상 차린 다음, 사회 10명의 명사들이 그 밥마저 소화하기 쉽게 씹어 영양죽을 만들어 수저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 할 만 하다. 이 책은 누가 읽느냐에 따라, 보통의 고전을 말하는 책의 두배의 가치가 있다. 고전을 진
"고전 영양죽, 삼키기만 하면 된다!" 내용보기
참 재미있는 책이다. 밥을 차려 줄 수는 있어도, 밥을 씹어 삼키는 것은 제 맘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 책을 그 옛 말에 비유하자면, 기름진 고전이란 쌀을 한 상 차린 다음, 사회 10명의 명사들이 그 밥마저 소화하기 쉽게 씹어 영양죽을 만들어 수저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 할 만 하다. 이 책은 누가 읽느냐에 따라, 보통의 고전을 말하는 책의 두배의 가치가 있다. 고전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는 책이 아니다. 고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고전은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고전을 알려주는 책이다. 공지영, 김두식, 노회찬, 배병삼, 변영주, 신경림, 이주향, 표정훈, 현기영, 홍세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현 시대에 우리와 함께 숨쉬는 그들이 각기 말하는 10권의 고전들은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숨쉬고 있다. 톨스토이의 부활, 조선왕조 실록, 맹자, 400번의 구타, 반야심경, 자발적 복종 등 동서양 시대를 넘어선 고전들을 소개하는 책 속에는 고전의 숨결과 더불어 이 고전을 읽어내린 그들의 숨결또한 더불어 있기에 오히려 고전을 말하는 책이라기 보다, 우리 학교 친한 선생님, 옆 집의 박식한 아저씨가 말해주는 인생을 듣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학문의 원류가 되고, 밑거름이 되는 옛 사람이 쓴 고전을 말하는 책이지만, 결코 고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찾은 고전의 진리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대의 우리 곁에 있노라고 각 명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형화된 고전의 한 학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직업과 사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삶을 사는 동안 고전의 가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또 고전을 어떻게 자신의 속으로 흡수했는지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내가 ''솔직하게''라고 말하는 이유는, 각 장이 다른 직업, 다른 사상, 다른 삶을 살아온 10인의 명사 각각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인으로써, 영화를 만들며 느껴온 고전, 소설을 만들며 작가로써 고민해온 고전, 법의 관점에서, 시인으로써, 언론인으로써- 고전을 읽는 이유가 그 고전들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도 수많은 진리와 응용을 재생산 해낼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톨스토이의 부활을 소개한 공지영씨와 정치의 관점에서 조선 왕조 실록을 소개한 노희찬 씨가 서로 책을 바꾸어 소개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상상, 혹은 각각의 고전을 흡수하고 설명하는 각 명사가 심혈을 기울여 고전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느껴지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생각, 열정, 더불어 각 명사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해 고전을 인용해 설명해 주는 동안 우리는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명사가 읽은 고전은 어떻게 흡수되었는지 명사가 만든 고전을 우리나라의 또다른 명사가 다시 읽어낸 고전을 읽게 되는 것이다. 다만, 명사가 읽은 고전을 다시 읽는 와중에 그 속에 섞여 들어간 그 명사만의 ''침''- 명사의 사상, 명사의 생각또한 구분할 줄 알고 그 고전을 읽을 때 자신만이 생각해야 할 또 다른 고전의 세계가 있음을 구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응용한다는 것, 고전을 현실에서 적용 할수 없다고 어려워 하던 사람들에게 이책을 추천한다.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전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알려주고 증명해 주는 책. 명사가 씹어 수저 위에 올려놓은 고전이란 영양죽을 먹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좀 더러운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고전을 말하며 섞인 명사의 침(주관)또한 약으로 삼킬지, 일일히 눈을 밝혀 골라 낼지 또한

[인상깊은구절]
"어디다 쓸 거냐!"
r*****6 2006.1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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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는 마음과 태도를 새롭게 하는 책과의 만남입니다
"고전 읽는 마음과 태도를 새롭게 하는 책과의 만남입니다" 내용보기
고전은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기에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며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사랑한다,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던져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네요. 값진 책, 인생에서 늘 옆에 두고 싶은 소중한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책을 덮고 나서도 그저 흐뭇해지는 책이었어요. 같은 고전이라도 사람에 따라 읽어내는 거리들, 느끼는 거리들이 다르지
"고전 읽는 마음과 태도를 새롭게 하는 책과의 만남입니다" 내용보기
고전은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기에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며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사랑한다,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던져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네요. 값진 책, 인생에서 늘 옆에 두고 싶은 소중한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책을 덮고 나서도 그저 흐뭇해지는 책이었어요. 같은 고전이라도 사람에 따라 읽어내는 거리들, 느끼는 거리들이 다르지요. 이 시대에 의미있는 열 분이 들려주는 고전읽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가치로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나도 그 책 읽었는데, 이런 생각은 못했네, 맞아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며 그분들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엿보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어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 열 분! 한 분 한 분 소개하는 고전과 고전을 읽고 느낀 그 분들의 속내를 들려주는 이야기들, 한 마디들에 감동을 느끼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도 무엇과 바꾸기 힘든 것이기에... 특히, 제가 좋아하는 홍세화님, 공지영 작가 그 분들의 책에서 느낀 감동과는 또 사뭇다른 깊이있는 이야기들에 정말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책이 되었답니다. ^^ 이 책에 푹빠져 이 분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은 과연 그 고전에서 어떤 생각을 했던가'' 다시 반추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도 허락합니다. 이 가을을 더 소중하게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지성을 선물하는 책! 지인들에게 꼭 선사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네요. 고전의 은근함과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인 만큼 오래 오래 손때가 묻도록 간직하고 펼쳐보고 감동받고 싶은 책입니다. 강추!
y****7 2006.1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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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마다 고전의 가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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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내게 고전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전 작품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제목이 없었다. 그렇게 책을 안 읽었던가 하는 의아심도 잠시 느꼈다가 하나만 딱 꼬집을 만큼 감동을 받은 작품이 없었나 되묻기도 했다가 혹시 내가 읽은 책 중에 고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었던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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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내게 고전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전 작품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제목이 없었다. 그렇게 책을 안 읽었던가 하는 의아심도 잠시 느꼈다가 하나만 딱 꼬집을 만큼 감동을 받은 작품이 없었나 되묻기도 했다가 혹시 내가 읽은 책 중에 고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었던 것인가 하고 내 독서의 질에 대해 의심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나더러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보아 주는 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내 스스로에게 느끼는 독서의 양과 질에 대해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늘 읽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그리고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고전의 영향에 대해 되새겼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일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 말로만 들어왔던 고전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통해 느끼게 되는 새로움이라니. 책이 책 자체만으로 가치를 가지는 게 아니라 그 책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가치를 높일 수도 가치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끔 다른 사람들의 영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숙되어 가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 사람이 일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더군다나 위대한 사람은 늘 책을 가까이 한다는 둥,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다는 둥의 말을 종종 듣게 되니 굳이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삶, 어제보다 나은 가치 있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책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10명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고전과 그들의 고전을 비교해 보았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은 하면서도 그들이 젊었던 시절에 느꼈던 삶에 대한 깨달음을 나는 왜 얻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거둔 만큼의 성공을 거둘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그들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므로, 나는 지금의 내 삶에 지극히 만족하고 있으므로 내 아쉬움은 처지보다는 생각의 깊이에 따른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만큼 알고 싶고 느끼고 싶고 깨닫고 싶고 그리하여 다른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으로.

작가 10명에 영향을 주었다는 작품 가운데 가장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책은 홍세화씨가 소개해 준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다. 내 안의 약점을 이 책의 소개 내용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읽고 느끼고 깨닫는다면, 그리고 나를 바꾸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하게 된다면, 나도 지금보다 조금 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 변화를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권의 책이 더 많은 책을 읽게 해 주고, 한 번의 사랑이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하게 하고, 한 번의 변화로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힘. 그래, 고전이 그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일 테다.

[인상깊은구절]
고전이란 흘러간 삶의 흔적이 아니라, 도리어 ‘오래된 미래’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 ‘미래’란 오늘의 내일이며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다. 또한 미래는 과거 위대한 인간들의 사유와 통찰의 정화로부터 빚어지는 점선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미래가 부산하게 주장하듯 ‘실용적이고, 실무적이며, 정보적인 지식의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을 만들고 또 운영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억겁의 역사에 쌓인 ‘과거적 현실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그 ‘새로운 지식의 미래’ 역시 과거로부터 빚어진 ‘지혜의 매트릭스’ 위에 구축된 형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미래란 과거로부터 온축된 지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어느 날 난데없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6.10.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