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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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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읽었던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는 사막에 대한 동경을 품게 만들었다. 거친 사막에 불어오는 모래 폭풍, 그 폭풍을 뚫고 교역을 하기 위해 떠나는 대상들, 그리고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오아시스... 사막은 모든 생명이 소멸하는 곳으로 생각되어졌다. 하지만 죽음에서 다시 생명이 탄생하며, 그러한 순환 속에서 이야기는 탄생했다. 바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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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읽었던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는 사막에 대한 동경을 품게 만들었다. 거친 사막에 불어오는 모래 폭풍, 그 폭풍을 뚫고 교역을 하기 위해 떠나는 대상들, 그리고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오아시스... 사막은 모든 생명이 소멸하는 곳으로 생각되어졌다. 하지만 죽음에서 다시 생명이 탄생하며, 그러한 순환 속에서 이야기는 탄생했다. 바로 바히이 나크자바니의 새들백이다. 새들백은 새들백을 훔치게 된 도둑으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도둑을 시작해, 신부, 두목, 환전상, 노예, 순례자, 사제, 탁발승을 거쳐 다시 시체 바로 도둑으로 돌아가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이야기 진행 방식은 익숙하지 않아서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이들의 맞물리는 이야기들이 빚어 내는 합주가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되어 감동을 주었다.
s****0 2006.1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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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을 만나는 순간 당신의 영혼도 자유로움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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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술술 읽히는 책도 있으며, 술술 읽혔지만 읽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책도 있었다. 또한 읽는 내내 한 문장, 한 단어, 한 글자를 꼼꼼히 읽게 만드는 책을 만나 긴 시간을 읽어야 했던 책도 있다. 이 책 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집중하고 나면 다음 페이지를 읽기까지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해야 했고 노트를 옆에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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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술술 읽히는 책도 있으며, 술술 읽혔지만 읽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책도 있었다. 또한 읽는 내내 한 문장, 한 단어, 한 글자를 꼼꼼히 읽게 만드는 책을 만나 긴 시간을 읽어야 했던 책도 있다. 이 책 <새들백>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집중하고 나면 다음 페이지를 읽기까지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해야 했고 노트를 옆에 두고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끄적이기도 했으며 놓친 것이 없나를 확인하기 위해 앞부분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고 우물 속 물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가슴 가득 차올라온다. 그 느낌은 내 몸을 떠나 하늘로 자유로이 올라갔다. 새들백이 무엇인지 나는 책을 통해 알았다. 새들백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다. 주로 사막에서 여행을 할 때 어깨나 낙타의 등에 올려 짐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쓰는 가방이다. 그럼 이 가방이 왜 제목으로 정해졌을까란 내 의문은 책을 읽어가며 풀려나갔다. 새들백을 통해 이어지는 9명의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시작점도 마침점도 새들백이다.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 책이 우리에게 종교적 근원을 통해각각의 인물들이 인생의 전화점이 될 새들백을 던져놓으면서 도를 구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담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읽는 내내 그 물음을 머리 속에 넣었음에도 도를 찾지는 못했다. 아! 찾기는 찾았는데 제대로 찾았는지와 그 깊은 속뜻을 모른다고 해야하겠다. 처음에는 찾지 못했으니 두고 읽으며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두번째 이 책을 읽을 때는 얼마만큼 베일을 벗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겹씩 베일을 벗기는 묘미가 있는 책이 바로 <새들백>이다. #24시간 동안 일어난 9개의 사건들, 단서는 새들백. -하나의 존재를 만났다는 이유로 인해 9명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막에서 새들백이 도난 당하고 24시간동안 누군가는 죽었으며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이 정도만 한다면 이것은 추리소설이 될 것이다. 실은 나도 추리소설이란 느낌으로 책을 쫓아가며 흥미를 느꼈고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책이 추리소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죽었다는 것과 나머지 살아난 사람들도 전과는 다르게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으며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하나 더해지며 책은 9명의 이야기를 통해 이것의 비밀을 조금씩 알려주고 있다. 하나의 소재로 9가지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헛점없이 서로 잘 이어져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한 그것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고 같은 결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가 기울였을 노력과 놀라운 상상력과 구성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예전에 봤던 영화 에서 그 시간에 딱 맞추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구성에 소름이 돋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 더 잘 맞추어져 있다. 조각으로 봤을 때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이 신기하게도 작가 바히이 나크자바니의 손에서 마술처럼 맞아떨어졌다. #9명의 사람들, 그 속에서 나를 보다. -책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메카와 메디나사이의 사막길이다. 그곳을 지나치는, 혹은 그곳에서 머문 9명의 이야기이다. 도둑도 있었고 그 도둑의 두목, 사기꾼, 갑부의 딸로 환상을 보는 신부, 그 신부의 노예, 그 노예를 사랑한 성직자, 순례자, 거짓 탁발승까지 이 9명은 직업도 다르고 태어난 나라도 다르고 종교도 달랐다. 그런 그들에게 새들백은 같은 영향을 주었다. 그 강도가 크거나, 혹은 작거나 했을 뿐이지. 그 아홉명을 보며 내 모습을 보는 건 인간의 근본은 모두 같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의 삶과 닮은 점을 보기도 한다. 특히나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 회의를 느끼는 순례자의 이야기와 부를 쫓는 두목의 이야기, 생을 살면서 여러 삶을 살다가 결국은 인간으로 죽을 수 있어 행복했던 환전상이야기는 내가 갖고 있던 삶의 불안을 어느 정도 공감하게 해주었다. "그대는 살아있는 증거요."라는 울림의 소리는 내가 살아있는 증거로 남아야 함을 강렬하게 내 가슴에 새겨졌다. 우리는 자신을 알고자 하고 생의 의미를 알기를 갈구하고 그 몸짓은 어떤 형태로든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9명의 사람들 역시 그러했다. 삶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므로 책 속의 사람이건 책 밖의 사람이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새들백이 그 가르침을 알려주는 진귀한 보따리였다면 우리에게는 이 책이 진귀한 보따리가 되어줄 것이다. <새들백>은 책 속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에 들려있는 <새들백>처럼 책 밖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감동시킨 작가의 문체와 사막의 광활함. -이 책은 작가의 데뷔작이란 말에 놀랄만큼 독특한 문체와 묘사가 돋보인다. 사막을 배경으로 하기에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눈 앞에 모래폭풍이 부는 것 같았다. 뜨거운 모래사막과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밤이면 수없이 빛나는 별들,사막의 오아시스이자 인간의 영혼을 정화해주는 우물등 사막의 곳곳을 작가는 아름답게 묘사해놓고 있다. 사막의 황폐함은 인간을 혹사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욕망을 버릴 수록 자신의 영혼이 채워짐을 느낄 것이다. 또한 사막 속에 숨겨진 오아시스는 인간에게 신이 주는 선물이다. #마치면서 -구도(求道)를 위한 책이라고 했지만 한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구도의 첫번째 길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첫번째 책 읽기로 내가 얻은 것은 책이 내게 주려고 했던 것에 비해 미미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책은 내게 수고했다고 우물의 맑은 물 한잔을 건네주었다. 그 정도면 수고했다고 말이다. 그 따스한 손길에, 맑고 시원한 물 한잔에 내 머리와 가슴은 책을 기억할 것이고 그 기억이 날 때면 책이 내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일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7 2006.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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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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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징은 각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사건에 있다. 한 사건을 9명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즉, 소유할 수 없는 자유에 관한 아홉 가지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사람은 이 사건을 어떻게 봐라봤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야기 내용은 아홉 가지지만 결국, 사건은 하나라는 것이 이 작가가 말하는 것일 것이다.  처음 읽을 당시엔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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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특징은 각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사건에 있다. 한 사건을 9명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즉, 소유할 수 없는 자유에 관한 아홉 가지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사람은 이 사건을 어떻게 봐라봤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야기 내용은 아홉 가지지만 결국, 사건은 하나라는 것이 이 작가가 말하는 것일 것이다.

  처음 읽을 당시엔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읽을 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느낌 이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새들백에 의해 벌어지게 된다. 새들백이란, 말 안장에 다는 주머니를 말한다.

1. 도둑
- 책의 시작은 도욱으로 부터 시작 된다. 이 도둑은 새들백을 훔치려는 모종의 음모를 꾸미게 된다. 이유는 이 새들백에 귀한 보석과 돈이 들어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신부
- 신부는 천사를 보게 되고, 자신이 본 것을 굳게 믿게 된다. 그리고 그 천사가 보내준 메세지를 가져와야 된다고 주장하게 되고, 그 메세지란 역시 새들백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3. 두목
- 도둑들 무리의 두목은 처음에 등장한 도둑에게 새들백을 훔치라고 지시 하지만, 이 도둑을 믿지 못하여 자신 또한 계획을 세우고 도둑을 감시하게 된다.

4. 환전상
- 환전상도 여행에 합류하게 되는데, 같이 여행하는 자들이 환전상을 의심하는 눈초리로 보게 된다.

5. 노예여인
- 여행 주인 여자의 노예로, 이 여행에는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을 감지 한다. 그리고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6. 순례자
- 여행의 시작부터 순례자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꼈고, 자신의 여행 내내 그는 자신이 순례하는 사막보다 더 나쁜 사막을 건넌 적이 없었던 순례자는 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7. 성직자
- 자신의 종교적 의무를 철저히 지키며, 신을 두려워하는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고 가족들 모두가 종교적 의무를 지키는 데 철저하다.

8. 탁발승
- 여행 지역에 정치적 임무를 띠고 파견된, 변장한 젊은 영국인이다.

9. 시체
- 이미 죽은 몸이지만, 여행을 같이 하면서 시체가 바로보는 관점에서 사건을 얘기한다.

  이들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아홉 명의 사람들이 같이 여행하며 일어나는 사건의 결과는 책을 끝까지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책을 거의 다 읽어 갈 쯤엔 아쉬움도 같이 커진다. 그만큼 다른 책과는 다른 방식의 이야기 형식이라는 것 자체가 읽는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 한다.
t**********3 2008.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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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 나의 새들백엔 무엇이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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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 나의 새들백엔 무엇이 들었을까? 바히이 나크자바니 처음 접해보는 이란 작가의 소설. 게다가 여류 작가. 책의 제목보다 부제가 더욱 인상 깊었던 책. (소유할 수 없는 자유에 관한 아홉 가지 이야기) ‘새들백’은 이런 인상을 남기며 제게로 왔습니다. 그 느낌에 취해 책을 펴들고 제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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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 나의 새들백엔 무엇이 들었을까?


바히이 나크자바니



처음 접해보는 이란 작가의 소설. 게다가 여류 작가.

책의 제목보다 부제가 더욱 인상 깊었던 책. (소유할 수 없는 자유에 관한 아홉 가지 이야기)

‘새들백’은 이런 인상을 남기며 제게로 왔습니다.


그 느낌에 취해 책을 펴들고 제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창에 새들백이 무엇인지 검색어를 입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들백 [saddle bag]

[명사]안장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가방. 주로, 어깨에 메고 다닌다.


국내 굴지의 포털 사이트들에 검색을 하고나서야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서 안소니 퀸이 네퓨다 사막을 건널 때 낙타의 안장에 걸려있던 가방이 바로 새들백이란 걸 알았습니다.


소설 ‘새들백’은 이 ‘새들백’을 중심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베두인족 도둑, 신기한 초능력을 가진 조로아스터교 여인, 베두인족 도둑을 휘하에 두고 있던 두목, 신부(新婦)가 될 여인의 재산을 노리는 인도인 환전상, 웃음을 잃고 신부가 될 여인의 시중을 드는 유대교도인 아비시니아 노예 여인, 모든 공포를 이겼지만 사막의 공포만은 이기지 못한 늙은 위구르 순례자, 여자를 두려워하는 고지식한 성직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탁발승으로 변장한 영국인 스파이. 그리고 한 구의 시체가 등장해 잘 짜여 진 옷감의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얽히고설키며 전체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누군가는 자유를 찾아서, 삶과 절대자에 대한 깨달음을 위해, 또 몇몇은 명예와 권력을 위해 길을 떠나고 새들백을 만나게 됩니다.

국적, 종교, 계급이 각기 다른 아홉 명의 인물들은 어떻게 한날한시에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함께 모이게 되었으며, 왜 그들은 새들백에 집착을 했을까요?


‘새들백’은 단순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구도(求道)소설에 가까웠습니다.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고뇌 속에서 제 자신의 나약함을 엿보기도 하고, 그들의 진정성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올라타서 목적지만 이야기하면 그곳까지 바래다주는 택시가 아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엉뚱한 곳을 헤매기도 하지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결국은 목적지에 다다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저 자신을 반추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새들백’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책을 다 읽은 저도 이 질문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만난 것처럼 알듯 모를 듯 묘한 여운이 남아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을듯합니다.

책을 한 번 더 읽어보면 그 답을 저도 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좀 더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보면 제게도 새들백의 의미가 자연스레 알아질 날이 올까요?


오래 곱씹어볼 책인 듯합니다.




자유, 그 베두인에게 자유는 그가 숨 쉬는 사막의 공기 같았다. 자유란 아는 자는 가질 수 있지만 알지 못하는 자는 가질 수 없는 열린 공간이었다. (P. 9)


<변화의 책>(주역 周易 - 옮긴이)은 세상에는 서로 다른 길이 많이 있으나 목적지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논의가 있어도 결과는 하나다. 이름들은 다르지만 근원은 최초의 점이다. (P. 261)


성직자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것이 자신에게 온 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의문을 품지 않고 그 짧은 아름다움이 흘러가게 내버려두었다. 그게 무엇인지 더 이상의 증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P. 303)


e******l 2007.0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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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혹은 가치관이 아홉 명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믿음 혹은 가치관이 아홉 명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내용보기
-키워드: 장편소설, 종교(바히이) 소설 -예상독자: 구도자적 성향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각종 신화와 종교 관련 서적 -읽은 기간: 2006/10/29-11/12 0. 들어가며 새들백? 제목을 보고 갸우뚱 했다. 새들백이 무언지 알지 못해서 였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고갯짓을 대부분 하게 되리라. 새들백이 무언지 궁금한 이들은 한번쯤 책을 펴들고
"믿음 혹은 가치관이 아홉 명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내용보기
-키워드: 장편소설, 종교(바히이) 소설 -예상독자: 구도자적 성향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각종 신화와 종교 관련 서적 -읽은 기간: 2006/10/29-11/12 0. 들어가며 새들백? 제목을 보고 갸우뚱 했다. 새들백이 무언지 알지 못해서 였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고갯짓을 대부분 하게 되리라. 새들백이 무언지 궁금한 이들은 한번쯤 책을 펴들고 그 안의 이야기에 귀 귀울여 보기 바란다. 그러면 읽는 사람마다 다른 자신만의 새들백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새들백이 무언가 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새들백은 꽃과 같은 존재이다. 문자적 의미만으로는 물건을 담는 가죽주머니일뿐이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9명이 어떻게 그 이름을, 존재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9가지 다른 빛깔을 갖는다. 1. 바하이 신앙을 근거로 씌여진 이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책 저자 소개를 보면 작가의 종교가 바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바하이 교’가 무언지 궁금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종교는 인류의 정신적 발전을 인도하기 위한 신성한 가르침들의 점진적 계시이며 종교의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며 오직 한분의 하느님 밖에 없다. 인류는 하나이며, 세계는 한 나라요, 인류는 그 국민이라고 선포하였다.… 바하이 예배원은 창조주에 대한 기억의 여명지이며 중심원으로 하느님과 인간과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물위에 떠 있는 녹색연꽃잎을 상징하는 아홉개의 연못이 건물 중앙을 에워싸고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의 종교이다. 저작 의도는 분명하다. 작가의 종교적 기반하에서 여러 종교를, 혹은 여러 가치관을 하나로 융합해 바라보고자 하는 뜻을 품은 소설이다. 더불어 왜 9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하는지도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고대 수피교에서 시작했다는 에니어그램의 9가지 인간유형을 그리려는게 아닐까하고 짐작했었지만 9은 세계의 종교와 가치관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바히이의 수인 듯 하다. 따라서 이 소설에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과 평소에는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종교용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겁먹지 말라.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니. ‘하지’라는 이름의 순례길을 가는 도중에 새들백을 갖게 된 9명의 삶이 서로 교묘하게 얽히고 설켜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게 줄거리의 모두이다. 짜임새가 훌륭해 한 가지 사건에 대한 9명의 시선이 엇갈리면서 전체 사건의 윤곽이 그려지는 모습은 영화 [러브 액추얼리]나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일주일]을 생각나게도 한다. 그래서 ‘그게 뭐, 바하이든 새들백이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며 우리네 삶과 거리감 있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이란 무언가. 아무리 종교적 의도에서 씌어졌더라도 작가의 품을 떠나면 독자에게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것 아니었던가? 아홉의 다른 믿음과 가치관은 그대로 우리네 인간들이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달려가는 그것들과 왜 그리 닮아있는지. 새들백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2. 사람사는 곳의 모습은 왜 그리 똑같은지.- 새들백, The One 소설 속에서는 모래바람이 심하게 분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새들백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내는 욕망의 소용돌이가 일기 때문이다. 사실 새들백은 아홉명에게 그리 중요하게 여겨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글이 씌여진 종이가 들어 있는 가죽 주머니일뿐이다. 하지만 다르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엄청나게 귀중한 것으로 존재가치가 상승된다. p. 103 왜 배두인은 그깟 말가죽 조각에 생명을 걸어 그들 모두를 미궁으로 내던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터무니없었다. 위 문장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이 소설이 말하는 바를 찾지못해 방황하며 독서를 했지만 읽는 순간 머리를 치는 생각은 한 사람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기도 하는가였다. 새들백은 도둑에게는 자유를 가져다 주는 미신적인 어떤 것이었고, 조로아스터교 신부에게는 천사의 선물이었고, 두목에겐 권력과 힘의 덧없음을 깨닫게 하는 무엇이었으며, 탁발승에게는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힌두교인 환전상과 유대교인 노예여인, 불교인 순례자, 이슬람교인 성직자에게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깨달음과 평온을 가져다준 복음의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시체에게는 모두와 하나로 연결되어 소설 속의 일자 (The One-바하이 신앙)로의 통합을 이끌어 주는 하나의 기억이자 이름으로 작용하였다. 지금 나는 어떤 새들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가? 내가 잡고 있는 새들백의 가치는 사라지고 말 것인가, 영원히 지속될 것인가? 믿음은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으므로(p. 177) 나만의 새들백을 찾자. 그리고 그 새들백에게 영원히 지속될 이름을 지어주자. 3. 나가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상한 점이란 이 책엔 등장인물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9명의 신분이 있을 따름이다. 이름이 없는 이유는 그 아홉 명중 누구에라도 독자를 대치할 수 있도록 함이 아닐까? 당신은 두목인가? 환전상인가? 탁발승인가? 당신의 새들백은 어떤 이름을 갖고 있나? 권력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당신의 삶을 이끄는 목적은 무엇인가? written at 2006/11/12 보태기. 기독교인은 이 책의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에 유의하며 독서할 것!

[인상깊은구절]
p. 103 왜 배두인은 그깟 말가죽 조각에 생명을 걸어 그들 모두를 미궁으로 내던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터무니없었다. p. 177 믿음은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으므로 p. 368 그는 ''나''에서 ''우리''로 가는 변이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r****n 2006.11.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새들백을 찾아 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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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주 이십하고도 일곱번째의 밤을 맞이한다. 늦가을의 밤바람은 제법 차가워져서 문을 꼭꼭 닫아도 틈새로 칼날처럼 파고든다. 방바닥이 금방 식을까봐 일찌감치 이부자리를 깔고 그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양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책을 고정시킨 후 책의 나머지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책을 오래 읽기에 불편한 자세이지만 내가 태어난 후 처음 책이란 걸 손에 쥔 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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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주 이십하고도 일곱번째의 밤을 맞이한다. 늦가을의 밤바람은 제법 차가워져서 문을 꼭꼭 닫아도 틈새로 칼날처럼 파고든다. 방바닥이 금방 식을까봐 일찌감치 이부자리를 깔고 그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양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책을 고정시킨 후 책의 나머지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책을 오래 읽기에 불편한 자세이지만 내가 태어난 후 처음 책이란 걸 손에 쥔 후부터 생긴 나만의 독서 자세이다. 방바닥이 따뜻하고 늦가을 특유의 고요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지금 막 중간을 넘어선 이 새들백이라는 책도 고요한 가을 공기와 닮아있다.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는 허브티를 옆에 두고 홀짝거리며 책에 빠져든다. 꿈을 꾸는 것 같다. 정적이 흐르는 가을의 밤, 새들백은 아홉의 꿈을 꾸게 했다. 아홉명의 살아있는 자에게 다가온 새들백과의 운명적 만남처럼 마치 내가 걷고 있는 사막의 길에서 예고없이 알 수 없는 물건을 만난 듯 이 책을 처음 만나고 나서는 몹시 어리둥절했다. ''새들백이 뭐지? 이 묘한 표지그림은?'' 새들백은 ''안장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가방''으로 말, 낙타 따위의 안장쪽에 달고 다니는 주머니이다. 길 떠나는 이에게 말이나 낙타가 살아있는 동무라면 새들백은 생명은 없으나 그 자체로 나그네를 표현하는 물건이다. 하나의 죽은 사물에 불과한 새들백은 아홉명의 나그네에게 각자 보물이 든 주머니, 천사의 메시지, 회개함 등으로 여겨지니 신비롭기만 하다. 어쩌면 이는 단순한 주머니가 아니라 우리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 아닐까. 유럽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중 저주받은 보석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그 보석을 갖는 사람은 결국 그 저주 때문에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새들백은 그 보석처럼 저주받은 주머니는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보석 이야기 속의 저주도 ''각자가 마음먹은 것이 무엇인가''에 달린 것이듯 새들백과의 만남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홀로 남겨지는 새들백과 아홉의 새로운 주인에 관한 에피소드는 참으로 신비하다. 전혀 관련없던 사람들이 새들백을 가지게 되면서 서로 관계되어지고, 새들백으로 인해 인생이 바뀐다. 바뀌는 인생의 모습은 행복이나 파멸 등의 단편적인 결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결말을 초월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아홉의 주인공들은 새들백과의 인연의 끝이 불행이든 행복이든 관계 없이 모두 세속을 초월하는 자유로움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은 새들백을 만나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다. 이를테면 ''새들백의 팔자''랄까. 사람에게만 정의되는 팔자라는 것이 사물에게도 있다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부터는 그 팔자가 저주가 될 수도 있고 행운의 물건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사주 팔자 인연'' 운운 하는 것 처럼 우리들의 인생이 얼마나 기묘하게 고리지어 있는지, 그 고리가 여기에서는 ''새들백''이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며 인연이라는 하늘의 뜻으로 서로 만나고, 죽어있는 것은 늘 그 자리에서 새로운 만남(주인)을 기다린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이 만나니 죽어있는 새들백은 것은 더 이상 죽은 것이 아니다. 호의와 악의 또한 그 자리에 있음이 아니라 뜻하는 사람의 마음 씀에 달려있었다. 악한자가 보는 세상은 악한 것이고, 선한 자의 눈에는 선하게 보이는 법. 마치 내가 아홉명의 주인공이 되어 아홉의 꿈을 꾸는 듯한 이 몽환적인 소설은 작가 바히이 나크자바니의 출신과 이력을 반영하듯 이국적이고, 교훈적이며,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과 사랑, 탐욕 등을 이야기 하는 이 책은 한편으로 ''파울로 코엘료''를 떠올리게 했다. 초기에 번역 된 ''연금술사''와 최근에 번역된 그의 처녀작 ''순례자''가 그러하다. 이들의 소설은 읽는이로 하여금 주인공의 여정과 함께하며 구도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절제되고 말쑥한 교훈을 주었다면, 바히이 나크자바니는 인간 내면의 안개 낀 미로 속을 통과하는듯한 먹먹함을 느끼게 하고, 숨김 없는 욕망을 드러내어 읽는 이의 부끄러움 까지 끄집어내도록 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거짓되고 추한 모습까지 정화시킨다. ''이렇게 살아라'' 하고 훈계하는 파울로 코엘료에게 바히이 나크자바니는 말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인간이야'' 라고. 새들백 안의 물욕이나 이상향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 파멸의 순간 그제야 비로소 물질, 이상이 아닌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새들백은 그야말로 거울이다. 추악한 것 까지 비춰주는 거울. 그러나 그 거울은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세기와 종교를 뛰어넘는 내용의 이 소설 덕분에 깊은 밤 꿈 속에서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나의 새들백을 찾을 수 있었다.
y*******0 2006.10.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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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함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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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언어는 몽롱하고 사막의 모레가 씹히는 듯한 낯섬은 늘 빠른 속도로 책 읽기를 갈망하던 내게 치명적이였다. 첫장 ''도둑''에서 책을 얼마나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고 포기해버리긴 싫었다. 그럴수록 꼭 읽어봐야 겠다는 갈망이 피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갈망이 없었다면 이 책을 이렇게 이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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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언어는 몽롱하고 사막의 모레가 씹히는 듯한 낯섬은 늘 빠른 속도로 책 읽기를 갈망하던 내게 치명적이였다. 첫장 ''도둑''에서 책을 얼마나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고 포기해버리긴 싫었다. 그럴수록 꼭 읽어봐야 겠다는 갈망이 피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갈망이 없었다면 이 책을 이렇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이 서서히 스며 들어가며 몽롱함의 한가운데를 파고든 느낌. 그렇게 책이, 그리고 나의 느낌이 변해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총 9편으로 나뉘어진 차례를 본 터라 1장 ''도둑''을 읽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끝나면 안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각각 9편의 이야기가 나뉘어 진다면 읽어야 겠다라는 갈망이 또다시 무너지는게 아닌가 하는 섣부름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2장 ''신부''를 읽고 3장 ''두목''을 읽을즈음에 나의 판단이 얼마나 어릭석었는지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각장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가면서 맞게 되는 이야기는 점점 흡인력을 갖춰가고 있었다. 9장으로 나뉜 이 책은 각각의 이야기가 아니라 옮긴이의 말처럼 씨실과 날실이 만나듯 잘 짜야진 하나의 거대함이였다. 사막의 한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아홉 사람의 사연의 중점에는 새들백이 있었다. 순례자의 새들백을 베두인이 훔치고 그 새들백으로 인해 차례 차례 신비함을 맛보아 간다. 함께 여행했다는 이유외에는 특별히 공통점이 없는 그들이였다. 그러나 새들백을 통해 그들은 자기 자신의 욕망에 따라 변해간다. 그런 욕망은 그 전의 모습들이 아닌 무엇에 홀린듯한 몽롱함과 열정이 있었다. 과거의 자신은 잊은채 새들백을 통해 느끼게 된 자신의 의지 하나만 밀고 나간다. 신비하달 수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도대체 그 새들백에는 무엇이 있기에.... 고결한 서체로 씌여진 글이 있었지만 그 글의 의미는 읽을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새들백이 그들에게 미치는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공통된 것이 없는 그들이기에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몽롱하고 신비한 그 무엇의 분위기의 존재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사막을 건너고 새들백을 마주하게 된 과정보다 마주하게 된 후가 그런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 신비함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큰 역할은 아무래도 글의 양상이겠다. 1장 ''도둑''에서 새들백을 안고 절벽에서 뛰어 내린 베두인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리고 시각이 다르듯 느끼는 바와 미치는 영향 또한 각양각색이다. 베두인의 행동을 보며 천사라고 생각하는 신부, 암시라고 생각하는 탁발승, 어리석다 생각하는 두목등 그들의 이야기에 펼쳐지는 조연같은 사건과 인물들은 그렇게 교묘하게 짜여있다. 어떤 이의 행동이 이상하다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그 행동은 파헤쳐지고, 또 본인에 의해서 한번 더 밝혀진 후 또 다른 가능성의 여부를 낳는 글의 양상, 독특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알아가는 과정이 쉬웠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공간과 문체의 낯섬은 나와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와 일체가 되지 못했고 계속 겉도는 느낌이였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저자의 농락 속으로 빠졌다고 인정하리라. 서서히 옥죄어 오는 저자의 세계는 더디게 내딛었지만 구석 구석을 훑고 맛보는 걸음의 시작이였던 것이다. 그러한 녹록치 않음에도 나를 이끌어 주었던건 저자의 세심함 때문이였다. 처음 책을 잡았을 때부터 내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끝까지 맛볼 수 있을지 저자는 알고 있었고 그렇게 길을 만들어 주며 친절히 정리까지 해주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도 몽롱함은 가시지 않는다. 사막을 둘러싼 낯선 나라들의 문화와 생활방식만 해도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인데 사막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그런 몽롱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한바탕 꿈을 꾼 듯, 그 꿈이 나빴다, 좋았다의 단순한 표현이 아닌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는 사막이라는 배경도 새들백을 통한 신비함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 완벽함에 헤메느라 온전히 부응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 분위기에 취한것만은 확실하다. 내 기억의 언저리에나 존재할법한 스쳐가는 생각을 저자는 이렇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 역량에 놀랄 뿐 나는 여전히 사막을 헤매고 있다.
s****m 2006.10.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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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그곳에서의 신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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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이라는 생소한 제목, ''바히이 나크자바니''라는 생소한 발음, 또한 ''자유''라는 꽤나 생소한 주제. 처음부터 끝까지 생소하기만 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은 생소했던만큼이나 더 큰, 낯선 감동으로 다가온 것 같다. 소유할 수 없는 ''자유'' 에 대한 이야기라니. 인간 내면의 자유, 해방에 대한 이야기가 눈을 뒤집으며 ''이런 주제로도 글을 쓸 수 있구나''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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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이라는 생소한 제목, ''바히이 나크자바니''라는 생소한 발음, 또한 ''자유''라는 꽤나 생소한 주제. 처음부터 끝까지 생소하기만 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은 생소했던만큼이나 더 큰, 낯선 감동으로 다가온 것 같다. 소유할 수 없는 ''자유'' 에 대한 이야기라니. 인간 내면의 자유, 해방에 대한 이야기가 눈을 뒤집으며 ''이런 주제로도 글을 쓸 수 있구나'' 할 정도로 낯선 주제는 아니었지만, 사랑 이야기, 또는 꿈과 우정을 다룬 이야기가 내 독서 범위의 대부분이었던만큼 이 주제는 내게 꽤나 새로운 것이었다. 마지막, 옮긴이의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있어 정신없이 읽었다'' 는 말에 진심으로 그 분께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혹시나해서 하는 말이지만, 결코 비꼬는 어투가 아니다.) 솔직히말해 나는 읽기가 정말 힘들었다. 3주가 넘는 시간동안 책을 들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읽었지만 정말 진도가 안나가서, 주위 친구들이 ''그책 그만 (빨리) 좀 읽어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책 내용 자체에서 느꼈던 묘한 감동에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신비함을 풀어냈다는 기쁨이 더해져 더 증폭되었기에 이리 힘들게 책을 읽어낸 경험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었다. 처음, 도둑의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사막과 해와 별과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 자유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사막에 대한 묘사와 너무도 용감하게 자유를 선택한 그에게 취해 소설에 상당히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다 도둑의 이야기가 끝나자, 머리속엔 ''에?'' 하는 생각밖엔 남지 않아버렸다. 목숨 대신 지킨 새들백이긴한데, 그 새들백에 무엇이 담겨있었는지 도저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홉 개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았기에 도둑의 이야기가 주는 바를 반도 깨닫지 못한데 대해 자신에게 한심한 마음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신부의 이야기에서 도둑의 이야기를 발견했고 그제서야 비로소 한 권을 다 읽어야하구나. 하고 내심 안도했다. 마지막에 와서 드디어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완성되는 퍼즐-그것도 어려운- 하나를 완성한 느낌이었다. 작가의 문체 자체가 치밀한데다가 이렇게 마지막 장면까지 읽고보니 그저 감탄이 나올뿐이었다. 이 ''새들백''은 분명 다른 시점에서 전개되는 각각 다른 9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하나의 새들백에 묶여 있는 같은 이야기이다. 이들은 같은 공간, 또 같은 시간에 있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그러고자 한 의도도 없었지만 -오히려 함께 하기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게 된 사람도 있으니.- 그들은 한 시간에 한 자리에 모였다. 이것이 운명이란 것일까 ? 이 운명에 묶여 그들은 같은 새들백을 만났으며 그 새들백에서 모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개인적으론 9명의 사람들 중 환전상이란 인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기는 좀 뭐하지만- 환전상의 이야기는 ''환전상은 여러 삶을 살았지만 아직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인도인 (환전상)은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모진 고생을 해왔기에 더욱 돈을 밝히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는 말재주에 능하고 이리저리 삶을 바꾸는 -자의든 타의든- 그런 사람이었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던 그가 베두인의 시체를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이 세상에 더이상은 참된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유일한 참된 친구였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가 죽은 후에. 그 후,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는 조용히 모래폭풍을 맞았다. 그제야 그는 자기 안에서 나오는 성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환생하지 않고, 인간으로 죽었다. 세상에는 출세를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을 버리게 될 때가 있다. 허겁지겁, 세상에 맞춰 살다가 뒤돌아 봤을 때 ''내가 누구지?''라는 생각을 끝도 없이하게 된다. 환전상도 그런 존재였고. 나 역시 그런 존재이다. 똑똑한 척, 약삭빠른 척 생활하지만 실제로는 참된 친구가 있다는 것을 그 친구를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우스운 사람일테다. 새들백은 순수해지라. 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기만한다면 그 때서라도 자신을 정화시켜줄 모래폭풍같은 존재는 얼마든지 있으니 깨닫고 정화를 맞으라고 하고있다. 나도 항상 자신을 뒤돌아보고, 내가 과연 내가 바라는 나에서 멀어지고 있는지. 멀어지고 있다면 다시 돌아가기를 노력하고 있는지, 되돌아갈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겠다. 역시나 이질적인 장소인 사막. 적어도 사막 안에서는 오직 그들만이 존재하는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며 귀를 기울이면 별과 해와 바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결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곳이다. 신비한 그 곳에서 일어났기에 더욱 신비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도둑 "훌륭하신 겁쟁이로군, 그 어떤 순례자보다 멋진 위선자야. 헛된 소리만 지껄이는 망상보다 더 나쁜 거짓말쟁이야." "그렇지만 전과는 달라졌어. 그 때 이 베두인은 어린애였고 이제는 어른이야." "만일 베두인이 느끼는 것과 하는 일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가 그렇게 경멸하는 사람들과는 뭐가 다르지? 베두인이 그들보다 더 나쁘니까 순례자들을 강탈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유가 더 소중하게 된거야." -p.21 / 베두인이 도둑을 배신하고 자유를 찾아나서려고 할 때 달과 바람이 싸우던 말. 두목 주머니 안에서 접힌 채 읽혀지지 않고 있는 단어들이 그에게 말을 했다. 글씨가 속삭이며 그의 가슴의 덩굴손을 건드리고 그를 꽉 쥐었으며 깊은 애정이 깃든 말을 건넸다. 글씨들은 나선형의 향기로 퍼지며 무한한 사랑을 속삭였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가는 창조물은 수백만에 달하며, 그것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잠시 동안 힘을 갖고 행진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고 했다.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이 그처럼, 예외 없이, 그들이 지녔던 작은 정욕과 힘에 더불어 완전히 잊혀지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러고는 더없이 아름다운 열정을 품은 목소리로 또 절대 잊지 말라고 속삭였다. 그와 같은 모든 이들, 수백 만의 사람들, 그리고 이 생물 모두가 절대로 이름 지을 수 없는 완전함, 그가 절대로 알지 못할 완전함과 비교하면 죽은 개미의 눈 안에 누워있는 것보다 한층, 한층 더 못하다고. 환전상 인도인은 울기 시작했다. 심장이 부서진 듯한 깊고 맹렬한 울음이었다. 친구가 죽었다! 그는 다시는 살아있는 영혼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모래폭풍이 그에게 진통제처럼 다가왔다. 모래폭풍은 그를 받아들여 씻어내리고 모든 것을 깨끗이 정화하는 파도처럼 다가왔다. 모래 폭풍은 비슈누신이 보낸 확정된 해방처럼 다가왔다. 그의 지난 삶들이 정화되고 있었다.. "그대는 살아있는 존재요!" 인도인은 수정처럼 순수한 증거가 되는 방식으로 살아야 했다. 그의 삶은 이것이 순수한 이유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이 생은 임시로 온 이 세상에서 그의 마지막 생이었다. 그는 인간으로 죽었다. 신부 한 완벽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불신보다 더 큰 죄악이었나? 만일 그렇다면 누가 이 엄청난 죄에 대해서 그녀를 용사할 만큼 무한하단 말이가? 어떤 동정심이 인간을 이해할 만큼 위대하며 이런 인간의 나약함을 가련히 여긴단 말인가? 신이 부재하고 무자비한 달빛이 내리쬐는, 주검들과 완벽한 존재의 죽음이 뒤엉킨 곳에서, 또한 옜 예언이 실현되기 수백년 전이며 아름다움이 사멸해 더이상 사유될 수 없는 시간에, 어디에서 그리고 무엇 또는 누구에게서 그런 무한한 용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순례자 <변화의 책="">은 세상에는 서로 다른 길이 많이 있으나 목적지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노의가 있어도 결과는 하나다. 이름들은 다르지만 근원은 최초의 점이다! 명쾌하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진단하고 불멸의 해독제를 처방했다. 시체 우리가 영원히 죽는 것처럼 살 수만 있다면, 냄새는 그렇게 방해가 되지 않을 텐데. 그러면 우리는 자유롭게 춤에 복종할텐데.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죽는다면 이야기는 끝이 없겠지. 그는 깨달았다. 신부와 함께 여행하며 그는 알게 되었다. 상인의 기도는 바로 자신의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r***m 2006.1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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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사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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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바히이 나크자바니 | 이명 옮김 출판사 황매(푸른바람) 별점 이 책은 이란 작가의 책이고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옛날 이야기이다.그런데 동화는 아니다.여러 종교와 경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신학 소설은 아니다.이 소설은 미스테리이며한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을 맞았던 여러 인물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따로 에피소드들로 편집한짜맞추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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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바히이 나크자바니 | 이명 옮김
출판사 황매(푸른바람)
별점




이 책은 이란 작가의 책이고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옛날 이야기이다.

그런데 동화는 아니다.



여러 종교와 경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신학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미스테리이며

한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을 맞았던 여러 인물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따로 에피소드들로 편집한

짜맞추기 소설이다.



배경은 중동, 메카에서 메디나로 가는길

등장 인물은

도둑(염탐꾼), 대도적 두목, 결혼을 맞은 어린 신부(지참금이 많은), 영국의 신학자(탁발승), 환전상, 아프리카의 여자 노예(하녀), 젊은 순례자, 그리고 행렬속의 시체이다. 새들백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통의 물건이다.



"그때 그 사막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라고 말하는 것이

이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마지막 "시체"까지 총력을 기울려

등장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이들과 새들백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이다.



한마디로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다.

배경이 독특하고 문화가 독특하고 생소한 용어들이 마구 남발한다.

원본이 그런지는 몰라도 번역체 역시 난해한 구석들이 많다.

추리 소설을 즐겨 있는 사람, 호기심과 승부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이런 스타일의 소설에 익숙하기 못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 지점부터인지

등장인물속에 풍덩 빠지고 나니

동화보다 더한 환상 세계와

종교서보다 더한 마음의 정화가 몰려왔다.



등장 인물들을 둘러싼 사건은 하나이고

등장 인물들이 이때 겪은 주관적인 감상은 여러가지로 각자 남달르다.

그런데 이들은 마지막에 새들백 속의 경구들을 접하면서

다른 상황이지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영혼의 해탈을 경험한다.



자기만의 행복한 세상, 영원의 세상, 죽음의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형태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영원한 자유, 천사와의 만남, 인간으로서의 속죄, 사랑의 깨달음...



개인들은 다 죄과가 있는 사람들이고

고통이 있는 사람들이고

후회가 있는 사람들이고

슬픔이 있는 사람들이고

나름대로 제멋대로이고 교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

이들이 행복해지는건

새들백을 통해서이고

죽음과 맞닥트릴 때이다.



그런 철학적이고 감각적인 영혼의 울림을

이 책은 독특한 형식과 배경을 통해서 형상화시켜 주었다.



중세의 오랜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고

특히 평범한 시간적 나열을 지루해하며

남녀의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지친 독자,

크리스챤적인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이교적 믿음과 숭배를 궁금해하는 많은 독자들,

그리고 수수께끼, 미스테리에 관심이 많은 승부사,

또한

심히 환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끄덕이며 감각으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라면

아주 지적인, 그러면서도 감상적인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소설이 될 것이다.



문체가 매혹적이고 아름다운건 다른 하나의 즐거움이다.

문화적 이질감을 세부적으로 그림을 보듯이 묘사한

박식함이 느껴지는 여러가지 소품들을 보는 즐거움도 또한.

물론 이 두가지 즐거움이 독자를 혼란에서 논리적 해결점을 주는데 방해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약의 향기를 내뿜는 원시의 숲에서

헤메다 나온 기분이다...



p.s.

이 책에는 중동의 결혼 풍습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나오는데

어린 신부가 사막에서 여행 중 목욕하는 법, 신부를 꾸밀 때 헤나를 이용해 몸에 그림을 그리는 법, 하녀들과 신부와 노예들의 상하 관계 등

문화적 차이를 바로 생생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도적들과 도적 두목 간의 상하관계와 이들이 사막에서 살아가는 방법 등도

흥미롭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쩌면 이 책의 관념적 내용을 다 이해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화적, 시대적, 상대적, 생활을 내밀하게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가치는 귀중하다고 본다.

아직도 이 책을 생각하면 그런 장면들이 생생하게 남아서

눈 앞에서 인물들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인상깊은구절]
<인상적인 구절들입니다>

:각각의 인물이 하는 말 들 속에

이 책의 주제가 담겨 있는데

특히 마지막에 시체가 하는 생각 속에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도적:

도적 두목은 신부의 얼굴과 눈에 떠오른 표정에 당황했다. 그가 평생 잊지 못하도록 운명지어진 바로 그 표정이었다....나중에 두목은 이 창피스러운 사건을 기억해 낼때마다 약간 놀라곤 했는데

사실 그는 신부를 강간할 수 없어서 죽인 것이었다...



인도인:

인도인은 대상과 여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의 위선은 없었다. 오직 한가지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한가지 좋은 행동, 사랑의 헌신을 수행하는 것.....그것은 베두인의 시체를 화장해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일이었다. ....그가 맹세를 지킨다면 죽음도 그를 해방시켜 줄 것이다...그의 이 생은 임시로 온 이 세상에서 그의 마지막 생이었다. 그는 인간으로 죽었다.



노예 여인:

그것은 감추어진 미스터리, 축복받은 아름다움, 모든 창조물이 새롭게 되기 위한 동정심과 기쁨의 기억에 대한 간구였다.(새들백의 내용에 대한 묘사 부분)



순례자:

이제 그는 공포와 눈을 찌르는 듯한 바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돌이켜 보았고 자신의 실패를 하나씩 만들어지기 이전의 그 상태로 돌려 놓기로 결정했다...



이 세계도 아니고 저 세계도 아니며..그것은 적멸이니라...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서 있는 것도 아니니라. 열반이란 안정이 없으며 변화도 없느니라. 생긴 적도 없고 지나간 적도 없는 영원이니라...



여기 그의 ''도''가, 원의 최초의 점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 닿기 위해 얼마나 드넓은 지역을 방황했는지 모른다. 그의 모든 여행이 다른 점이 아닌 바로 이 점으로 그를 데려왔다... 수많은 논의가 있어도.. 이름은 다르지만 근원은 최초의 점이다... 순례자는 .. 그 단어들을 노래했다. 최초의 점!



더 깊이 가라앉으며 그의 마음의 씨앗이 오직 기쁨으로 균열되었다. 모래가 와 닿자 그는 입을 열고 열렬히 그것을 피와 함께 마셨다. 자기 민족의 치유를 위해, 기름진 땅을 보호하기 위해. 아들과, 아들의 아들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위해. 이가 없어도 만족한 그를 모래가 완전히 삼켰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공포에서 벗어난 채.





성직자:

이 파리떼를 몰고 온건 확실히 우리야...이 신성한 공기 속에 우리 자신의 부패가 저 파리 떼를 낳은 거야... 만일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파리 떼도 없었을거야.. 자신을 뜯어 먹고 있는 파리떼에 관한 생각이 성직자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결국 그는 여인이 꽉 쥐고 있는 기도문을 그냥 남겨두었다. 여인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빼앗을 수 없었으며...성직자는 손에서, 몸에서, 마음에서, 영혼에서 더러운 것을 씻어내려 했다. 그렇지만 여인의 반지는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학문으로 돌아가 나머지 삶을 이단의 박해에 바쳐야 할 지 아니면 삶의 모경에서 나온 사랑이라는 새로운 교리에 헌신해야 할지 몰랐다.....



탁발승:

진귀하고 더없이 훌륭한 서체로 쓰인 그 필사본은 코란의 신비로운 어조와 고상한 언어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독특했다. 아무도 그런 예술과 시를 전에 본 적이 없었다.(새들백의 내용에 대한 묘사 부분)



시체:

우린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지. 그리고 죽으면 영원히 냄새를 풍길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어느쪽도 사실이 아니야. 그건 분리의 문제야.



우리가 영원히 죽는 것처럼 살 수만 있다면, 냄새는 그렇게 방해가 되지 않을텐데. 그러면 우리는 자유롭게 춤에 복종할 텐데.



내가 이름이 없고 정체성이 없다면 그건 그럴 가치가 거의 없어서야. 우리는 영원히 죽는것처럼 살아야 해. 그 이상의 것이 있어.



그래서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지. 날마다 얼레를 푸는 난해한 부패와 미묘한 쇠퇴의 이야기다. 신뢰의 이야기, 변화의 이야기, 분리와 연결의 이야기, 그들 자신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기억 속을 떠나지 않는 사막의 향기 같은 이야기다.





그는 "나"에서 "우리"로 가는 변이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알게 되었다. 상인의 기도는 바로 자신의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점이 확실할 때 원은 더 넓어지고 춤은 완성되기 마련이지. 시체는 생각했다. 냄새가 멈추었다.
s*****x 2006.10.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