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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 내용보기
지금은 발간되지 않아 아쉬운 문학세계사의 세계현대작가선, 좋은 작품이 많은데 왜 재발간이 되지 않는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다른 책이 없나 검색을 하다 보니, 작가의 이름과 책이 체스 노테붐 기행소설집에서 께이스 노오떠봄 소설집으로 지금은 작가의 이름이 세스 노터봄로 표기되더군요. 소설집보다는 기행소설집이 더 나은 것 같은데, 한마디로 수필 같은 여행소설이다.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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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발간되지 않아 아쉬운 문학세계사의 세계현대작가선, 좋은 작품이 많은데 왜 재발간이 되지 않는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다른 책이 없나 검색을 하다 보니, 작가의 이름과 책이 체스 노테붐 기행소설집에서 께이스 노오떠봄 소설집으로 지금은 작가의 이름이 세스 노터봄로 표기되더군요. 소설집보다는 기행소설집이 더 나은 것 같은데, 한마디로 수필 같은 여행소설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다른 작품들 민음사의 산티아고 가는 길, 필립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게 많이 소개되지 않은 네델란드의 작가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계속 거론되는 작가이다.

 

과연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는 묻는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할 때 머릿속에 늘 여행목적지에 대한 선입견과 사전정보를 가득 채운 상태로 여행을 하는 것일까 , 불편을 피하기 위한 정보들 편안 하려고 가는 여행인가! 여행은 어쩌면 사건이다. 수많은 사건들 그 속에서 나와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나를 찾는 길, 가끔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작을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여행. 일본에서 외국인 관광객인 그것도 서양인 나는 그들에게 나는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관찰자로서 있는 자신의 모습, 하지만, 의미 없는 인종차별주의의 씨앗이 2차 세계대전에 뿌려졌다. 모든 여행에는 야수적 호기심과 무례한 요소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일본의 모습은 상점가의 통로는 조심스럽게 발꿈치를 들고 걸어가야 될 것만 같이 사치스러운 복도였다. 너무 격식적이라고 해야 하나. 모든 것이 질서적이다. 무겁다. 변화와 어긋남 그리고 애피소드를 허용하지 않을 규격화된 삶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지식과 실체는 반비례하는 것인가? 관광지의 사찰과 지식, 이런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면 채울수록 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자꾸 멀어져 감에 따라 그러한 지식도 함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무의 광장에서 무의 순간이었다. 숭배의 대상보다 그 숭배의 대상 안에서 빌고 있는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었다.

 

독일. 독일이란 나라는 늘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나라이다. 또한 독일은 나를 원초적인 혼란에 빠지게 하는 나라이다. 독일은 일, 근면, 경제적 적극성으로 자신들의 슬퍼해야 할 무능력을 위장시켰다. 그리고 정치가들의 이름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도로의 명칭이 되어 있었다. 독일 편에서 작가의 여행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곳에는 노오떠봄을 독일문학으로 분류한 곳도 있었다. 그는 이 장을 원초적인 혼돈으로의 회귀라는 제목을 붙였다. 읽는 나도 혼돈에 빠진 것 인가.

 

감비아. 간 것이 아니라 어쩌다 그냥 한번 들르게 되었다. 아프리카로 가고 싶은 욕망이 만든 여행이었다. 아프리카의 관료주의는 자기들의 그런 관료주의적인 것 모두가 우리들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사실일 것이다. 아주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약간 우쭐해지는 기분을 들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어떤 때보다도 아주 낯선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감각적인 경험들을 모으는 일 역시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지역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뒤로 밀려 변해있었다. 시간만 오래 끄는 플롯 없는 영화의 시작 같았다. 나는 결코 아프리카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며 저녁마다 앉아 애기하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현저하게 아쉬움이 뒤섞이는 기분에 도달했다. 우리는 권력이 마련해 주는 시원한 바다에 앉아 있었다.

 

마데이라. 여행가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관광객들) 수백만 명씩 하늘을 오르내리며 자신들을 위한 호텔을 짓고 주변의 환경을 해치고 오염시키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그곳 주민들의 정신까지도 오염시킨다. 마데이(아주 높은 곳), 이 섬은 거의 6세기 동안 반은 유럽적으로 반은 아프리카적인 섬으로 변했다.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맛이었다. 여기서는 전혀 1976년의 시대 상황이 되질 못했다. 1946년제 택시를 타고 1946년식 요금을 지불하고 호텔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이 도시는 이미 500년 전부터 존재해왔고 사람들이 살기 위한 도시였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그런 도시는 아니었다. 몬테에서 일단의 영접위원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영접위원단의 복지는 매일  오는 관광버스에 달려 있었다. 황소썰매와 레이스 호텔 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신이 포르투갈인들에게 요람으로 조그마한 땅을 주고 묘지로 전 세계를 주었노라.

 

이스파한 Isfahan 비밀스러운 빛. 내가 열두살이 되면 아스파한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수 년 동안 이스파한에 가고 싶어했다. 항상 나는 그곳에 가면 결코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린 도시는 어딘지 나에게도 이런 도시가 있었다. 스위스, 상상 속의 이미지가 만든 곳이겠지만. 

도시의 돌아가는 체계를 알기 위해 걷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거리를 구경하고 버스와 전차를 타보면서 시내에 대한 사정을 터득해야 했다. 빨간 신호등, 보행자, 인간의 생명, 이런 것 모두가 도로의 쥐들로서 자동차의 식량이다. 여기에서는 영어가 갖고 있는 세계언어로서의 위상이 향수냄새처럼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예술품에는 인간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야즈드의 조로아스터교도, 매장 금지와 침묵의 탑, 키루스의 무덤. 페르세폴리스 등, 보잘것없는 후세의 관객으로서 돌 사이 어디에선가 다윈의 원숭이처럼 증명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전제정치체제 확고한 하부구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외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

 

대영제국의 황혼기. 안개 속에서 나는 트렁크를 든 채 마치 맹인나라의 맹인처럼 서 있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기 때문에 경제가 나빠져 가고 있다고 말을 했다. 영국의 연출가는 엄청난 연극배우들의 보고에서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었다. 뉴스는 매일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신문에서만 그렇게 떠들고 있지 현실생활에서는 그런 면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옛날 영국의 선조들이 세계 도처에서 긁어 모아다 놓았던 것들이 이제는 부유한 유럽행 비행기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었다. 영국인들의 모든 대화는 여전히 대화 쌍방간에 존재하고 있는 철저한 계급적 차이로 되돌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겐 정치가들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인 것인지 구경하는 것만큼 매혹적인 일은 없기 때문이다. 상류층과의 매일매일의 교류는 물론 권위적인 사회를 추구하고자 하는 희망을 부추긴다.

과거는 아직도 활동 중에 있었고 예의범절에 과거는 되풀이되며 사라질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모든 사회생활에 옛날의 관습이 거의 그대로 공격적일 만큼 남아 있었다. 여기 영국에 있는 기념비들은 비록 역사의 배설물이지만 이것들 위에 다시 새로운 시대를 세워야 한다는 것.

 

말레이시아. 신문만큼 주어진 한 사회의 변화들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다.신문이란 일상생활의 하잖은 것들을 끌어 모은 박물관이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그리고 당신의 생명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역사가는 자신의 입장을 현재에 두어야 한다. 역사가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포괄적인 국제정치체제에 시각을 두고 있어야 하며 역사가의 관심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느냐에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포괄적인 국제정치의 체제 안에 살고 있다. 나는 단지 여행을 위한 여행에 나선 여행자이다. 여행자는 여행에서 평범하게 있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보는 작가의 눈, 기름은 세계를 만든다. 기름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군인들이 게릴라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일상적인 것을 바라보는 눈, 무덤을 구경하는 일은 모르는 사람의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재미없는 면이 있다. 죽음 기억에 대한 기억까지 날아가 버렸다. 이제 누가 누워있는지에 대한 질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우체국에서 지금은 옛날과 다른 우표를 팔고 있을 것이다.

 

동양, 일본과 말레이시아, 아프리카의 감비아와 마데이라, 그리고 유럽 터기와 독일과 영국을 구경시켜준다. 여행을 하면서, 그리는 그의 글은 한 편의 풍경화 같다. 그가 그리는 장면은 멋진 수사와 표현으로 날개를 달고 있다. 이런 작가를 이제서야 만나다니. 아쉽게 이 책은 절판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몇 권 소개되었으니.

 



p*******t 2011.04.28. 신고 공감 8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기행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의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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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감독 덕분에 많이 가까워진 네덜란드입니다만, 문학동네에서는 그전에 이미 네덜란드 작가 께이스 노오떠봄을 소개하였던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생소한 느낌의 기행소설이라는 장르의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으로 말입니다. 기행소설이라 함은 기행문의 일종이면서도 일관된 주제가 설정되어 있으며,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세련되게 조형화하여 주제
"기행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의 기행문" 내용보기

히딩크감독 덕분에 많이 가까워진 네덜란드입니다만, 문학동네에서는 그전에 이미 네덜란드 작가 께이스 노오떠봄을 소개하였던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생소한 느낌의 기행소설이라는 장르의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으로 말입니다. 기행소설이라 함은 기행문의 일종이면서도 일관된 주제가 설정되어 있으며,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세련되게 조형화하여 주제를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형식입니다. 따라서 작가 자시의 주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노오떠봄은 사물에 대한 객관적이며 주관적인 인상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는데, 그의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주제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라고 합니다. 그는 여행 중에 자주 묘지를 찾아가는데, 그곳을 거짓된 감상을 배제하고 인간들의 도난당한 삶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계, 한 명의 여행자(1989)>에서 밝힌 그의 여행관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왜 여행을 하느냐고 자주 묻는다. 그럴 때면 아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지금, 왜 내가 여행을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은, 내가 자의적인 한 사람으로, 비옷을 입고 고물자동차에 탄 채 이제는 더 이상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들이 서 있는 폐허가 된 공장지대를 지나고 있는 것과 같다. 내 입장과는 무관한 것, 순간의 우연성, 장소의 임의성 바로 이런 것들이 여행의 이유다.”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은 일본, 페르시아, 감비아, 독일, 영국, 마데이라, 말레이시아 등의 여행기록을 담았습니다. 그는 현지의 신문 속에 나타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사건들을 인용하며, 예술과 건축에 대한 미학적 분석을 담기도 합니다. 때로는 정치적 현안을 역사적, 문화사적 시각에서 풍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향은 첫 번째 여행기록인 ‘천황의 생일, 문물의 파토스와 다른 일본 체험’이라는 제목의 동경여행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모습이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그의 기행문은 이내 한 장의 사진을 끌어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열두어 살 때 보았던 사진인데, 손을 묶인 채 눈을 가린 호주 전쟁포로가 앉아있고, 그 뒤로 커다란 칼을 양손으로 쳐들고 있는 일본군의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일본의 정원, 사찰, 꽃다발 등을 보면서 많이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체류에 대하여 그는 “나는 일주일 내내 물 위를 걸어다녔다는 놀라운 기분이 들었다(30쪽)”고 적었습니다. 특히 전에 보았던 공원에 있는 연못의 검푸르고 비단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물 위를 계속 글어다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물의 밑바닥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을 정도로 투병하지 못했지만 내 몸을 지탱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물 위를 나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 문화가 외형적으로는 서구화된 듯하지만 이질적인 면이 있고, 특히 나라는 낯선 사람은 그들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1944년 사이판섬의 일본군 집단자살사건, 가미가제 조종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옥쇄함으로서 본토를 사수하자는 등의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원자폭탄의 사용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개진하기도 합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은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페르시아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비밀스러운 빛’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스파한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중심이자 압바스왕조의 거점이라서 일까요?

y*****2 2017.03.07. 신고 공감 4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