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몰락한 사회주의 정권의 창시자이가 아버지로 본의 아니게 추앙받게 된 마르크스. 그러나 그 실패의 여파는 너무나 컸고,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 및 사조의 왕좌를 차지하고 난 뒤 마르크스에 대한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러시아의 붕괴, 사회주의를 선택한 국가들이 겪어야 했던 심각한 경제난, 비이성적인 살육잔상들……. 이 모든 것은 마르크스를 악의 축 그 자체로 만들기에 충분한, 처참한 실패의 결과물들이었다. 지금까지 마르크스를 논하는 책들은 마르크스의 실패를 혹독하게 비판하거나 그를 위대한 철학자이자 성인으로 추앙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이 책이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저자가 마르크스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의 방향은 그렇게 표명했을지언정 자크 아탈리는 분명히 마르크스에 대해 적지 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탈리는 지금까지 악평과 비난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마르크스의 누명을 벗겨주겠다며 ''마르크스를 위한 변명 -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도 서슴치 않는다. 아무리 저자가 마르크스를 위해 변명해준다 해도, 독자 입장에서는 마르크스의 삶에서 독특하다 못해 기이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결벽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책에 대해 집착하면서 정작 출간할 즈음이 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상습적으로 출간을 미루는 행위. 사상을 나누는 친우이자 구원자(?)인 엥겔스에게 생활비를 빌면서도 일체의 노동행위를 거부한 채 오로지 글쓰기로 생활을 연명하려 하는 모습. 이런 마르크스를 옹호하고 전적으로 지원하는 아내 예니와 가난한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마음껏 탐닉할 수 있었던 그의 딸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소소한 일상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독특한 생활양식들이었다.어쩌면 이런 생활이 계속됨으로써 마르크스는 당연하게도 사회주의 사상을 조금씩 조금씩 완성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마르크스에 대한 흉흉한 소문만 들었을 뿐 그의 사상의 발전 배경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사회 교과서를 보라.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 아닌 비판과 함께 사회주의는 함께 비난받아야 할 망나니 사조로 점찍힌 채 학생들과 첫대면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접하는 마르크스는 늘 소련이나 북한과 같은 극단적인 길을 선택한 국가들의 모습, 혹은 흉폭한 전쟁을 일삼는 나라들의 참혹한 현실을 통해 한 차례 걸러진 면들 뿐이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 소비에트이념, 주체사상 등 - 와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같지 않다는 데 있다. 결국 실패와 극단으로 점철된 포장을 한 꺼풀 벗겨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마르크스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에 의한, 마르크스를 위한 사회주의. 그것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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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름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미테랑 프랑스 사회당 당수의 경제 브레인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는, 정통 학자 출신과는 약간 상이한 길을 걸었던 사람. 유목주의 운운하는 형태로 들려오는 그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들, <인간적인 길>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들은 어느 정도 접하고 있었기에 그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도 없으면서 내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나에게 마르크스 평전이란 게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20년도 더 지난 시절에 이미 마르크스 원전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그의 평전 한 두개쯤은 이미 오래 전에 섭렵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은 나에게 그리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건 아니다. 그러기에 한 달에 한번 꼴로 방문하는 대형서점 안에서 잠시 짬을 내어 머리말과 제일 마지막 7장을 읽고 접었었다. 그리곤 별다른 생각없이 지났는데, 며칠 전 <한겨레신문>에서 손석춘 칼럼을 읽고 기절할 뻔 했다.
손석춘씨는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아탈리와 KBS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그의 유토피아 저서 <인간적인 길>을 두고 대담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손석춘씨와 자크 아탈리 간에 논쟁이 오간 모양인데, 그 전말을 보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잠시 그 문제의 문구를 인용해보자.
하지만 저는 대담의 끝자락에서 결국 아탈리와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그가 <인간적인 길>에서 “핵무기를 통한 (전쟁)억제력”을 강조하고 있기에 북핵문제를 물었습니다. 아탈리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프랑스처럼 핵무기를 정당하게 갖게 되면 문제가 없지만 북핵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통제하면 어렵지 않게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물었습니다.
“아탈리 박사의 저서들을 읽으며 프랑스에서만 살아온 지식인 일반이 지니는 한계를 느꼈는데 오늘 대담을 통해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핵을 가질 정당성이 있는 나라 가 따로 있고 없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나, 북쪽 정권을 붕괴시키는 게 당위라는 생각이 그것인데요. 그런 논리와 제국주의자들의 논리는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유엔 안전보상이사회 국가들이 지닌 핵무기는 정당하다면서 사뭇 결연히 말했습니다.
“한 나라의 정권을 붕괴시킬 권리는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있다는 손 박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어 저에게 반문하더군요.
“히틀러를 보세요. 그렇다면 우리가 히틀러를 패배시키지 말아야 했나요?” 황당했지만 되물었지요.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히틀러는 다른 나라들을 침략한 전범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미국은 침략 당하지 않았지만 참전했습니다.”
방송 녹화 중이었고 사회자의 만류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습니다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아탈리는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국제 문제에 미국과 프랑스는 대체로 견해를 같이 한다”고 말을 흐렸을 뿐입니다. (<인터넷 한겨레 www.hani.co.kr> 2006년 11월 6일자 "필진 네트워크"에서 인용)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 그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책일 것이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변화된 현실에서 조금은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려 했다는 의도를 제7장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긋남이 아닌가?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석학? 그놈의 '석학'이란 게 뭔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이 손석춘 칼럼을 읽은 뒤에는 나에게 대체로 우호적인 감정으로 남아 있던 아탈리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야만 했다. 이럴 땐 내가 경제학 전공자라는 게 후회스럽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탈리라는 이름에 연연해 책을 집어들고 읽지도 않았을 것이고, 세계적 석학 운운하며 그가 한국에 왔다고 호들갑 떠는 언론을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
| 18세기 이전에 인간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산업화의 물결이 격동치는 19세기의 유럽. 장원 경제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던 농민이나 농노들은 이제 노동자가 되어 산업화의 짙은 그늘 아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중심에 한 천재가 있었다. 그들은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투쟁을 원했으며, 그 시대 유럽의 정치 또한 왕정과 공화정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등 18세기 후반에 불어 닥친 시민의 권리 향상은 보수 회귀와 맞부딪치어 유럽 전역을 강타하고 있었다. 이 책(마르크스 평전, 예담, 2006년)에는 이런 19세기 유럽의 혼란스런 사회 모습이 투영되어 있고, 또한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이 녹아있으며 이 책에는 19세기 유럽 유명 인사까지도 다 나온다고 볼 수도 있다. 내가 런던 도서관에 갔을 때 마르크스가 앉아서 공부하고 집필하던 자리를 자금도 보존하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고, 또 그의 묘지가 런던 공동묘지에 있는 것도 보았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산업 자본주의가 시작된 국가인 영국에 마르크스의 흔적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물론 마르크스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천재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마르크스의 책은 금서였다. 그를 연구하는 것 조차 금지되었었다. 마르크스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법에 저촉되는 범죄 행위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식인 사회에서나 학생들은 읽어보고 싶어서 안달을 했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금기를 깨는 그 희열을 느끼기 위해 마르크스의 책을 읽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마르크스는 더 이상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그런 이유들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고 본다. 인류의 삶을 바꾼 역사적 인물을 꼽자면 여러 사람이 생각이 난다. 종교 창시자가 제일 먼저 꼽힐 것이다. 예수, 부처, 무하마드와 또 동양의 유교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기준을 마련해준 공자,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칼 마르크스, 찰스 다윈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 인물들은 아직도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나 동시대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칼 마르크스와 찰스 다윈은 학문적인 후손들이 마르크시스트나 다윈니스트라는 명칭으로 각 학문 분야에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나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그 학문적인 후예들의 약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오히려 두드러지는 것을 보았을 때에 그의 이론적인 준거의 틀은 아직도 충분한 생명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마르크스는 아주 좋은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러시아어를 6개월에 배울 만큼 언어적인 총명함과 아울러 다방면에 걸쳐 천재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공산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 모든 분야에서 그의 이론은 그대로 교과서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를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 모든 분야에서 출중한 인물이 따로 존재한다. 이 한가지 만으로도 그의 멀티 사이언티스트로서의 천재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실천하려고 한 공산주의 사회는 지금 지구상에서 거의 소멸했지만 아직도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거의 모든 사회과학에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그의 이름을 되뇌는 것조차 불경시 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렇게 마르크스의 평전이 나온 것을 보았을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또한 세상에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책이며, 마르크스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가까이에서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그의 학문적이 업적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삶의 모습까지도 상세히 소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의 생존 시의 모습은 가난과 또 그 가난 때문에 그의 자식 중 여러 명을 잃어버릴 정도였다는 것이 보는 이에게 측은하게 느껴진다. 이 천재이자 영웅도 여러 가지 고통 속에서 삶을 영위했다는 데에는 평범한 우리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혁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과 가족의 삶을 위해서 먼저 매진을 했어야 한다는 것은 나 같은 범부의 생각이고 전 인류를 걱정하는 것이 천재나 영웅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천재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이름을 남겼다. |
| "유럽에 유령이 하나 떠돌고 있다. 바로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공산당 선언에 있다는 이 말은 이 마르크스 평전에서 여러번 인용된다. 이 구절의 뜻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사상이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세상에 유령이 하나 떠돌고 있다. 바로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나는 이 말을 사회주의로 대변되는 진보에 대한 관념이 몸이라는 실체를 잃은 유령이 되어 원혼처럼 떠돌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싶다. 그렇다. 세상은 세계화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마르크스는 세계화가 사회주의 실현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겪는 세계화는 모든 사회적 변혁의 희망을 앗아가는 아픔의 세계화이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고용의 조건은 나빠져가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져간다. 마치 마르크스가 활동하던 그 시대의 유럽이라는 작은 대륙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오늘날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복합적인 책이다. 두터운 페이지의 책에 매우 세세하게 관련 자료들을 빽빽하게 담아놓은 이 책에 마르크스를 평하는 저자의 나래이션이 군데군데 들어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는 이가 어떤 시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마르크스를 보는 눈이 서로 달라질 수 있는 책이다. 책 내용중에 드러나는 저자의 의견과 책의 마지막에 그의 사후에 마르크스 주의가 어떻게 바뀌어 갔는가를 나타내는 긴 장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눈에는 마르크스는 한 사람의 허약한 지식인으로 보였다. 왜 그동안 우리나라에 이 허약한 지식인의 유약한 글이 허용이 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의 이론은 취약한 기반들 위에서 끊임없이 수정되면서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이론도 그다지 과격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 자신이 "나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듯이, 위험한 것은 그의 추종자들이었지 결코 마르크스 자신은 아니었다. 비록 마르크스가 인터내셔널을 지휘하는 실재적인 권력자였더라도, 그가 실제로 파업과 과격행동을 선동한 적은 없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 자신은 어디까지나 귀족적인 취향을 버리지 못한 지식인이었을 뿐이다. 그는 가난을 묵묵히 참아내기보다는 가난을 싫어했고, 약간의 사치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끊임없이 돈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었고, 그의 지적 작업을 빨리 세상에 내놓기 보다는 이론적 완벽을 추구했었다. 그는 실천가이기보다는 강박증과 자기모멸에 시달리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소외에 관해 말했지만 그의 의식과 그의 생활은 서로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었다는 그의 정교한 이론이라는 것은 풍부한 철학적인 면모가 강한 소외론과, 독창적인 이론인 노동가치설과 잉여노동설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낡은 이론으로 비쳐진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적 산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여러가지 사상들중 일부에 기여를 했을 뿐이고, 그의 학문적 기여가 빛을 발한 것은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의 일시적인 시기뿐이었다. 그의 이론들의 상당부분도 그의 앞의 사람들의 토대위에 세워진 것이고, 그의 이론들도 그 이후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정된 것이다. 역사는 그 역사를 만드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그 역사를 빛낸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뿐이다. 그의 사상들이 그의 삶의 궤적과 역사적인 변동에 의해 끊임없이 바뀌어 왔듯이, 그의 사후에 다른 세계적 상황의 변동에 따라 그의 사상들도 변형되고 수정되어왔다. 혹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150년 전에 말했던 것들을 고색창연한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그 책에 적힌 것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나에게 최선의 이론이었을 뿐이라네..." 라고. 그는 확실히 뛰어난 두뇌를 가진 독창적인 사람이었다. 그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아픔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적인 모색을 끝까지 밀고나간 용기와 고집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립없다. 그는 훌륭한 연설가이자 조직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그의 시대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했던 사람이고, 그랬기에 그의 위대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는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가 인간 사회의 진보의 대열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람중 하나이지만, 그의 사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란 애매모호할 뿐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결여되어 있는 막연한 이상향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모색에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는 단지 그의 사회에서 두드러진 인물이었고 후대 사람들의 지적 모색에 많은 영감을 준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마르크스를 처음만났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격동하던 시기의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얻었다. 약간 투박하고 잘 읽히지 않는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두툼한 분량을 끝까지 읽어낼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이제야 접한 나의 지적인 게으름을 책망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지적한 인간의 소외와, 세계화와 인간가치의 충돌이 내는 파열음에 대해 오늘날의 입장에서 어떻게 모색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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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평전 같은거 즐겨 읽는가? 나는 아주 간혹 가다가 관심 있을 때 읽어보곤 한다. 이번에는 마르크스 평전에 대하여 글을 써 볼까 한다. 음... 사실,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교과서적으로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 생각된다. 얼마나 교과서가 편향된 이상한 내용만을 담고 있는지에 대하여 이 책은 그러한 생각을 전환 시켜 주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의 생애를 다룬 책 중에서는 가장 잘 써 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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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마르크스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고, 마르크스 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본론>이나 <독일이데올로기> <경제학노트> <경제학-철학 수고> 등의 80년대 케케묵은 완전 헌책방 구석에나 처박혀있을 법한 오래된 책들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에 대한 전기와 평전은 많이도 읽었다. 정말이지 책욕심, 지식욕심은 많아가지고 대학 학부 시절 대학원 박사과정생이었던 몇마디 주고받아봤던 한 선배가 책을 누군가에게 주려고 한다길래 무조건 한 상자 받아가지고 와서 집에 모셔놨던 것이 죄다 마르크스 철학책이다. 아마도 지금 구하려면 제법 구하기 힘들 법한 그런 책들을 난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정작 나는 마르크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 책들은 나의 책장 맨 꼭대기에 올려져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지금까지 읽은 마르크스 철학서는 없지만서도 마르크스에 관한 전기와 평전은 꽤나 읽어, 97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름 세계적인 석학 이사야 벌린이 쓴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라 해서 관심을 받았던 <칼 마르크스>, 런던대 철학과 교수로 있는 조너선 울프의 <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 마르크스의 생애나 사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앞의 두 책에 비해서는 좀 가볍고 오히려 일부러 진지함을 떨어뜨려 쉽게 접근하려 애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등이 내가 접한 마르크스 책이다. 엄밀히.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다. 이 밖에 그에 '관한' 책으로는 살림에서 나온 문고판 책자 <칼 마르크스> 와 프란시스 윈이 지은 <마르크스 평전>도 있다. 그에 관한 책은 이 정도. 하지만 그의 이론에 관한 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떠받들어 실전에 적용하려 했던 구 소련은 이미 망했고, 중국도 자본주의의 맛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분명히 지금 현재 세계지도의 사상구도를 살펴봤을 때 마르크스가 애초 외쳤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완패당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 깊어졌고, 그와 관련된 책들 또한 무수히 번역되어 서점에 진열되었다. <독일 이데올리기> <자본론> <공산당 선언> 이렇게 세 가지 주요 저서만 해도 각종 다양한 해석서와 번역서들이 늘어져있다. 무게 좀 잡는다 싶은 사람이라면 마르크스를 논하고,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척하며, 마르크스를 재 해석한다. 80년대의 암울한 대한민국이야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왜 2006년의 지금인가.
또 한명의 세계적인 석학이라 불리우는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 평전>을 썼다. 기존에 나와있는 것만 해도 꽤나 많은데 또 동일제목의 <마르크스 평전>을 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지만서도, 그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각자 나름대로 살펴보고 해석해왔던 흔적들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 보여주고 싶어한다.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었을 때 기존에 읽었던 다른 전기와 평전과 구별되는 점은 마르크스가 밟아왔던 그 과정들을 차근차근 되짚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내와 딸과 아들과 그 밖의 주변인에 대해서도 물론 이야기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서만 다루고, 저자는 마르크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걸음을 걷는다. 특별히 그의 철학사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도 않고 마르크스의 삶의 궤적을 천천히 밟는다. '독일의 철학자'로서, '유럽의 혁명가'로서, '영국의 경제학자'로서, '인터내셔널의 스승'으로서, '자본의 사상가'로서, '세계의 정신'으로서, 그를 불러본다. 저자는 각각으 장에서 제목에 어울리는 호칭에 맞는 마르크스으 모습을 조명한다. 그러나 관점에서 따른 마르크스를 다루었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생애를 시간순서를 무시하고 뒤죽박죽 섞진 않는다. 시간순으로 올라오되 그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메인테마를 설정한 것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므로 마르크스의 사상의 한 부분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가 남긴 말들 중에 유명한 한 문구가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를 아주 싫어한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자유에 대한 부정이며, 나는 자유가 없이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국가 안에 사회의 모든 힘들을 집중시켜 탕진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손 안에서 소유권의 중앙집권화로 귀결되고야 말기 때문이다. ...... 나는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권위적인 수단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합의 길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공동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사회를 조직하기 원한다. 자, 내가 어떤 의미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집산주의자인지 보라!"
앞의 발언에서의 공산주의와 뒤의 발언에서의 공산주의는 같다고 볼 순 없다. 마르크스는 아마도 다른 이들의 자신이 이야기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이들에게 짜증을 내면서, 이와 같은 발언을 한게 아닌가 싶다. 공산주의와 집산주의를 구별하며, 또 국가의 중앙권력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며,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란 것이 무엇인가를 또렷히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저자 자크 아탈리의 말에 따라 그 누구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한 철학자이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철학자이기도 하며, 또 그의 이론에 관한 많은 해설서를 배출해낸 철학자이기도 하다. 마치 각 문명의 종교 창시자들의 저서가 이들을 믿는 이들에게 희망이고 구원이듯이 마르크스도 한 때 그와 같은 때가 있었다. 그는 비록 신은 아니지만, 또 신을 자처하지도 않지만, 가난한 삶을 살았던, 그러면서도 자신이 꿈꾸는 세계에 대한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스스로에게도 희망을 걸었던 그런 철학자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가 돈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돈이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고, 그러다보니 돈의 노예가 될 수가 밖에 없다. 수많은 돈벌이 책들이 난무하고, 실제로 어떤 이는 대박을 맞아 인생역전을 하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다 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신 한 쪽 측면에서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놓여있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었고, 또 자본주의는 그런대로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 성장의 물결은 이미 마르크스가 예언한 바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책에서 "기술이 에너지와 물품의 생산, 통신, 예술, 이데올로기 등의 혁명을 가져왔고, 노동의 고단함을 현격히 줄여주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했다." 또한 "시장이 전례 없는 성장의 물결을 타게 되거나 시장의 모순들이 절정에 달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불평등의 문제 등. 마르크스의 이론은 마치 이런 모든 자본주의의 병폐들을 예상하기라도 한듯 이에 대한 해결책들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행복하고 평등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마르크스만이 제기했던 문제는 아니지만 마르크스 만큼의 해답을 내놓은 철학자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마르크스 철학이 어렵다하지만 지금은 그의 저서에 관한 많은 해설서들이 나와있고, 관심만 있다면 마음먹고 마르크스를 공부해볼 수 있다. 청년시절에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었고, 경제, 정치, 역사, 법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리우는 동안 마르크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단숨에 마르크스 평전을 쓸 만큼의 마르크스 주의자가 되었다는 것, 그만큼 마르크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력있는 철학자이다.
이 책은 프랑스 출간 당시 한동안 인문서적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저자인 자크 아탈리 덕이기도 할테지만 마르크스의 이름은 자크 아탈리 못지 않은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다. 많은 자료를 잘 엮어내어 한 사람의 생애를 진중하게 살펴본 잘 쓰여진 평전이라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생애와 주변인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이 한데 잘 버무려져 매우 읽기 쉽게 쓰여졌다. 죽은 마르크스가 지금까지 이렇게 주목받는다는 사실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의 가족의 죽음,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정치적 망명을 해야했던 시절 등등의 온갖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자본주의가 내리는 쾌락과 자본주의로부터 오는 불만족스러움을 느낀 바가 있을 터이고,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고로 우리 모두는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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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이는 경제․경영서와 처세에 관한 훈시를 담은 자기 계발서들이 빼곡하게 서점가의 책장을 메우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우리 현실과 견주어 볼 때 매우 난망한 일이기도 하다. 인문 정신의 토양이 좀 더 너른 곳이라서 그런 현상이 가능했던 것이리라고 막연히 치부해 버리기엔 어쩐지 부족함이 있는 듯하고 그 비옥한 토양에 내심 샘이 나기도 한다. 동구 사회주의와 소비에트의 몰락과 더불어 패배한 사상이라며, 실패한 예언이라며 그를 조롱하고 힐난하는 조류도 없지 않다. 어쩌면 우리 역시 경망스럽게도 그의 의도와 사상을 거칠게 씹어 넘긴 다음 소화가 잘 안된다고 그냥 배설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건대, 어쩌면 프랑스인들은 ‘반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인간’이라는 점멸등의 깜빡거리는 속도가 길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다움’을 규명하고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의 방도를 제시했던 그의 전언을 너무 성급하게 쥐어버렸던 자신들을 반성하면서 말이다. 맑스가 유대인 제사장 집안의 아들이라는, 적잖이 흥미로운 사실로부터 그의 다양한 면모와, 그가 살아낸 세계, 그가 가늠한 미래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속에서 그 거인에 대해 평하는 어떤 언사도 쉬운 것이 아님을 재삼 느꼈다. 세상의 수많은 철학자와 현인들을 대하자면 그들은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려 애쓴 사람들일 뿐,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변혁’을 만들어 내고 자신들의 미래를 그 안에 설계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는 제대로 이야기 해준 바가 없다는 생각을 나는, 갖고 있었다. (대하고 나면 풀어야 할 숙제를 받은 기분이 들어 늘 무거웠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근대화의 세기 이래, 어지러운 소용돌이의 역사를 살던 수많은 인류를 자신의 어깨에 태우고 들어 올린 사람이다. 맑스가 아탈리에게 이야기하게 하여, 그 어깨 위에 앉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인간다움을 향한 노정’이라고 믿고 싶다. 적어도 분명히 초기의 맑스가 지적한 ‘소외’의 세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족보도 없는 신자유주의의 조류 속에서 더 거칠고,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소외’의 구체적 표현인 ‘물신 숭배’ 역시 이미 다시금 되뇌어 볼 겨를도 없이, 이미 지상 최고의 가치로 격상된 지 오래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자면, 내가 한참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혹은 뒤떨어진 인간같은 기분이 들어 좋지 않은데, 이렇게 느끼는 자신에게까지 화가 나 버리고 만다.) “환경과 역사는 지금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환경과 역사를 만들어 낸다.”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 담긴 말이다. 전혀 맑스스럽지(?) 않은 아탈리는 아마도 이 경구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임이 분명하다. 현재를 꿰어 미래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주저치 않고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족 같은 이야기를 굳이 하나 덧대 보자면, 굳이 ‘맑스’로 적는 고집을 부려봤다. 한글 맞춤법에서는 ‘마르크스’라고 표기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괜스레 일본식 번역투의 냄새가 물씬 나서 별로다. 그냥 ''맑스''라고 부르는 편이 훨씬 그의 꿰뚫는 눈빛과 예지에 훨씬 잘 어울리는 듯하다. 그뿐이다. (사실, ‘ㄺ’도 [ㄱ]으로 발음나지만, 뭐, 내가 보기에 그는 충분히 맑으니까 ‘맑스’라고 해 두자.) |
| 1. 사상에 대한 고찰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나 조심스럽고도 깊은 이야기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었고 주적인 북한을 찬양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바로 벌을 받았었다. 지금에서야 민주주의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마르크스, 자본론, 공산주의 등을 이야기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많은 않았고 심지어는 엄마께서도 ''락실아.. 너 그런 책 함부로 읽지마.. 너 그런 책 읽다가 주사파되는거 아니니?''라며 걱정하시기까지 하셨다. 나 역시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지만 나의 생각이, 아니 모든 이들의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마르크스와 사회주의를 재평가하라. 마르크스의 저서인 ''자본론''은 성경 다음으로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한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주의가 그른 것이라면 그 책의 독자들은 잘못된 생각을 지닌 이들인가? 물론 독일이 통일됨에따라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투는 자본주의의 완승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철학을 지니고 경제학자, 철학자, 언론인이었든 마르크스가 옳지 못하다고 결론을 짓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이 오남용하고 있는 사회주의이다. 북한은 사회주의라는 이름하에 인권을 유린하고 있고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욕되게 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3. 인간 마르크스 그가 태어난 당시의 독일은 자유롭지 못하였다. 유대인이었던 그의 가족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러던 중에 아버지의 현명한 판단으로 가문을 세울 수 있었다.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마르크스 역시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여 법대로 진학시켰지만 비범했던 그는 철학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 때부터 그는 가족과 천천히 멀어졌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버려야 했던 그도 인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희생으로 위대한 역작을 낳은 것이 아닌가. 그는 철학, 경제, 정치, 과학 등 모든 분야에 능통한 지식인이었고 언론인으로서 발을 내딛게 된다. 그도 사랑하는 연상의 여인이 있었고 딸도 낳으면서 결혼 생활도 이어간다. 4. 역사 속의 위인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그에게 소중한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엥겔스였다. 역사조차도 그들의 만남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로 마르크스의 사상에 큰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마르크스는 학자로서 사는 것도 생각을 해보지만 그 때의 상황과 마르크스의 열정, 지식은 너무나 위대했다. 그는 역사속에 남을 사상을 남겼고 다수의 국가들이 그의 사상을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5. 마르크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그가 이야기한데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모순들로 인해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견은 틀린 듯하다. 하지만 세계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이야기를 옳지 못하다고 생각을 하고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통해 위험과 경고를 받아들이고 풍요로운 자본 경제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6. 뒷이야기.. ① 굉장한 분량의 책이었다. 약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가방에 들어가지 않아 손수 들고 다녀야 했고 책을 들고 읽다가 쥐가 나기도 하였다. 또 인문학 서적으로 그리 쉽지 않은 책이어서 읽는데 시간도 많이 소요가 되었다. 읽는 동안에는 ''내가 뭐를 읽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에 포기하고픈 마음도 불쑥불쑥 일어나긴 했지만 참고 끝까지 읽어보니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었다. 다른 이의 삶을 읽을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② 이 책을 읽고 있던 기간 중에 이틀간 책이 실종된 적이 있었다. 나는 20000원 짜리 책이 없어졌다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짓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 동생방에 들어갔다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던 마선생 평전을 발견하였다. 동생 왈 "이 책 두꺼워서 베개로 짱 좋아~" - _-;;;; 수학의 정석보다도 적당한 사이즈와 두께가 내 동생의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흠.. ③ 쉽지 않은 책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지나쳤던 내용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중에 여유로울 때 다시금 읽어봐야 할 책인듯 하다. |
|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제법 잘 어울리는 사람. 살아서는 경제적인 고통에 평생을 시달렸고, 죽어서는 자신의 이름을 사칭하는 무리들에 의해 수없이 많은 욕을 먹은 사람. 다른 민주주의자들보다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옹호했고, 자본주의의 전세계화를 말했던 사람. 철도와 전기와 과학에 환장했던 사람. 내게는 모두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말들이다. 나의 조부모님께서 그렇게 싫어하시는 ‘빨갱이들의 메시아’―칼 마르크스―마선생이 바로 그다. # 1. 알고 비판하라, 모르고 눈총 쏘는 건 비난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또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약간의 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 말하는 건 오만이다. 인터넷 기사에 20초에 한 번씩―또는 보다 짧은 순간에― 달리는 댓글은 오만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 책은, 그들의 오해를 씻어주기에 충분한 해독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마선생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마선생에 대한 오해를 간직한 채로, 비난하지 말라고 부탁하고픈 마음이다. 마선생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사람이고, 처음으로 세계화를 언급했던 사람이다. # 2. 자본주의를 넘어 공산주의로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다. 굳이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만큼,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다. 이 수식어는 출판사의 전략 같다. ‘골수 자본주의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화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수식어와, WTO 총장의 찬사를 뒤에 실어 놓은 것도 탁월한 전략이었다. 마선생은 자본주의를 거부한 적이 없었다. 더욱이 자본주의가 없으면, 공산주의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마선생의 공산주의가 현실에 나타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 19~20세기를 지나오면서 시장은 상당히 자랐지만, 아직까지는 그 크기가 미치지 못했다. 아마도, 마선생이 요즘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논평했다면, 한미FTA를 적극 찬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태 달의 앞면만 생각하다가, 달의 뒤통수를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 3. 앨빈 할배에게 느껴지는 마선생의 향기 앨빈 할배―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얘기했다. “자본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인 자산(property), 자본(capital), 시장(markets), 돈(money)은 오늘날 그 실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앨빈, p.363)”고 말한다. 세계는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시장을 확보했고, 보이지 않는 자산, 세계를 돌아다니는 자본, 형태 없는 돈을 현실화했다.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슬슬 숨겨진 절반의 경제가 실체로 드러나고 있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 4. 진실을 호도하는 사기꾼들 : 엥겔스, 카우츠키, 레닌, 스탈린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뒤는 난감하다. 종교부터 돌아보면, 예수의 2000년 그림자도 피로 얼룩졌고, 석가모니의 발꿈치에도 상당히 많은 사이비가 존재한다. 공자는 현실 참여 사상을 무던히도 강조했지만, 그 사이비가 조선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과학은 진실을 호도하기 어렵다. 천동설은 결국 지동설에 졌다. 혜성은 역병을 불러 오지 않았고, 마젤란은 배를 타고 지구를 돌았다. 한 시대의 ‘과학적 상식’은 새로운 ‘진실’에 언젠가는 진다. 우리가 그렇게 외웠던 ‘수금지화목토천해명’도 바뀌게 되는 것처럼―정치적인 것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철학은 호도하기 쉽다. 복잡하고 난해할수록,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읽기 어려울수록 왜곡해서 전달하기 쉽다. 마선생의 이론은 그 조건들에 정확하게 일치했다. 거인이 죽고 나서 키 큰 인간들이 ‘간추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하나씩, 하나씩 쌓였고, 한국전쟁을 통해 접했던 빨갱이는 그대로 모든 공산주의, 즉 마선생에게까지 핫라인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21세기 오늘도 열심히 작업한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의 프로파간다가 충실하게 작동 중이다. # 5. 모든 것을 의심하라―비판적 인간 마선생의 모습은 하나의 인간형으로 살펴봐도 흥미로웠다. 인간 자체가 헤겔의 변증법으로 이루어져있다. 하나의 글을 완성해 놓고도 ‘아직 읽지 못한 중요한 책이 있을까봐’ 손에서 놓지 못했던 모습이 이 책에 묘사되어 있다. 자신의 저서 『자본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의심했다. 진정한 학자, 지식인이라면 마선생 같아야 하지 않을까? 종종 신문에서 보는, 양심에 털 심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또 하나, 인간에 대한 신뢰다. 나약하지만,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라고 마선생은 끊임없이 확신하고 있다. 마선생의 삶은 돈을 물 쓰듯 했고, 독단적인 인간관계에 독설로 가득했다. 그 탓으로 평생 동안 엥겔스가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생활을 영위했고, 자식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단 한 번의 육체노동도 하지 않았던 이상한 가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에 심장 뛰던 사람이었고, 사람의 가능성을 믿으며, 세상의 한 중심에 인간을 세우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 6. 아직 유효한 마선생의 예언들. 바로 코앞에 마선생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FTA는 계속해서 각 나라의 문을 두드리고, 일본의 자본이 나스닥에서 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장은 중국으로 이사 갔다. 세계 최대의 빈곤국이었던 중국은 장차,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마선생의 예언대로 단일 국가 안에서의 공산주의 혁명은 거의 모든 세계에서 몰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100년도 더 된, 예전과 다른 부분도 많다. 자본주의는 복지국가와 어깨동무를 했고, 오늘의 대다수 사람들은 공산주의보다 현재의 복지자본주의를 더욱 편안해 한다. 이미 세계는 공산주의―이상하게 변형되긴 했지만―를 경험했으며, 잘못된 부분을 알게 되었다. 과연, 마선생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부족한 점을 깁는 실과 바늘을 제공한 것으로 수명을 다 했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혼란에 휩싸여 있는 오늘이, 마선생이 예언했던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처럼 느껴진다. 마선생의 왜곡되기 전의 모습을 잘 담아 놓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예니와의 연애를 구경하는 것도 꽤나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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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딸기밭’이라는 소설의 ‘나’는 최루탄이 교정을 어지럽히는 시절에도 집과 교실만을 오간다. 또래들이 민주화, 독재를 외치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나올 줄 모른다. 그의 또래들은 마르크스, 레닌 운운하며 투쟁의 이유를 찾았지만, 80년대를 그들과 같이 호흡한 나는 소설속의 ‘나’처럼 또래와 어긋났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좌경사상이었다. 나는 좌경이라는 말에 공포를 느꼈다.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다 마르크스를 한 사람으로 보려고 했다. 오늘에야..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한다’ 고 하면서 역사적으로 여성작가들이 적은 이유는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 발자크, 우리의 도스토예프스키는 풍요한 물질 속에서 창조성이 솟아 난 것일까? 평생을 치열하게, 어리석게, 사치스럽게 돈과의 사투를 벌인 그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기준으로, 오늘의 나의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창조적인 세계를 방해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를 복잡하지 않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우리의 마르크스는 극심한 궁핍 속에서도 단 한순간도 글을 쓰거나 행동하는 일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엥겔스라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궁핍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궁핍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무심한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격동의 시대를 산 풍운아, 투쟁적 혁명가의 모습과 함께 소심할 정도로 조심성이 있고,지나치게 완벽하리만치 성실한 연구자의 모습을 보았다.오랜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대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에 미소 짓는다.철학자로.. 혁명가로.. 경제학자로..사상가로..그리고 세계의 정신적 지주로 존재하는 그의 이야기를 명쾌하게 전해준 저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