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가을 스산한 바람이 불어 은행잎이 노랗게 도로를 물들이고 있어 허무함이 더할 때 아들과 함께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를 다녀왔다.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뒤 1년이 지났지만 선생님이 머물던 그곳에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대로인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선생님이 거처하던 방문 앞에는 선생님을 추모하는 이들이 놓고 간 작은 화분들이 텅 빈 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 체취가 남아 있는 집을 돌아보니 청빈과 무소유로 지냈던 선생님의 지난날이 스쳐지나갔다. 작은 교회 종지기를 하면서 빛바랜 책들을 읽으며 세상의 생명체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하나 둘 글에 담았다.
지병으로 힘든 생활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던 선생님의 글은 여전히 보석 같은 울림을 전한다. 선생님의 흔적을 찾아 떠난 길 옹색한 살림살이 앞에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옳은 것인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가급적 적게 취하면서 무엇보다 넉넉한 마음을 지녔던 선생님의 모습은 몽실 언니에도 잘 드러난다. 무명 치마저고리에 어린 아이를 들쳐 업은 단발머리 소녀가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는 듯 그려진 표지는 몽실이의 쓰라린 나날을 담고 있는 듯하다. 살강 마을 곁방살이를 하며 가난에 찌든 일상 속에 희망의 빛보다는 어둠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부모님의 고단한 삶은 가정을 지키기에도 힘겨웠던 모양이다. 부모의 보호와 사랑 속에 한창 자랄 나이에 가난을 감내하지 못하고 새 길을 찬아 나선 엄마와의 이별은 몽실에게 헤어나기 힘든 나락 속으로 끌고 갔다.
댓골로 거처를 옮긴 밀양댁이 새아버지와의 사이에 아들을 얻은 뒤부터 부쩍 몽실이를 구박하는 날이 잦아졌다. 새아버지의 학대로 절름발이가 되어버린 몽실이지만 그녀는 자신을 불구로 만든 이를 원망하지 않고 이런 일을 겪은 것도 모두 자신의 길이라며 꿋꿋이 이겨 냈다. 육이오 전쟁을 겪으며 남자들은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털 끌려가고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여인들은 기근에 시달리며 자신의 몸을 팔아 굶주림을 면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전쟁은 이전의 상태를 뒤엎고 걷잡을 수 없는 파란을 일으킬 때가 많다. 평화로웠던 가정이 해체되고 붕괴되어 전쟁고아들이 늘고 끼니를 때우기 힘든 이들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자신의 선택적 의지와는 달리 시대적 사회 현실이 몽실이에게 많은 멍에를 지우고 회생 불능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듯했다. 몽실이 정착을 하지 못한 채 어린 동생을 돌보며 지내는 사이 설상가상으로 전쟁터에서 병을 안고 돌아온 아버지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굶주림을 견디며 병원을 찾았지만 아버지는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버렸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젖을 새도 없이 살아야 했던 몽실이는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슬픔은 또 다른 아픔을 유발하는 것처럼 잇따른 밀양 댁의 죽음은 비빌 언덕조차 사라져버린 송아지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몽실은 참혹한 아픔을 겪으며 지내 왔지만 슬픈 감상에 빠져들 여유가 없었다.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도우며 지내는 이들의 따뜻함으로 일상을 달래며 살아가는 몽실이는 불구인 남편을 만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뒤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하루하루 희망을 저축하여 나갔다. 어려서부터 신산했던 삶이 가정을 꾸려서도 계속 되었지만 몽실은 푸념을 늘어놓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현재적 삶에 충실해 왔다.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지내는 몽실이는 전쟁과 폭력 앞에 희생된 이들의 삶을 위로라도 하는 듯 숭고해 보인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시대적 아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다면 사랑을 전하고 싶다. 몽실이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민 것처럼……. |
|
중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권한다. 이미 읽었다면 참 다행이고, 읽지 않았다면 입학하기 전에 꼭 보아 두라고.
명색이 국어교사인 내가 이 책을 오늘에서야 정독을 했다는 것은 참 미안한 노릇이다. 대충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고, 오래 전에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어 으레착각하고 있는 다른 일들의 일부처럼 나는 이 책에 대해서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읽으면서 금세 마음 고쳤지만.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아들이 다른 책을 읽다가 인민군이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왔다. 작년 여름 내가 가르치는 중2학년 국어 수업 때 소설 공부하다가 아이들이 인민군이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왔던 것처럼.
해방 즈음부터 6.25 전쟁이 일어나고 그 후 휴전이 되고 남북분단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요즘의 어린이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우기는 했을 텐데, 많은 학생들이 그 시절의 내용을 기억 못한다. 그 기억이 안 떠오르면 우리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모든 공부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누구와 왜 싸워야 했는지, 싸움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개인의 삶이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 50년 전의 역사가 지금의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왜 정신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영어 공부에 미쳐야 하고 유학을 가야 하고 토익 점수를 얻어야 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예비중학생이 이 글을 읽다가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을 대목이 분명 여럿 보이는데, 그때 도움을 주는 어른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몽실이의 삶이 어쩌다 이토록 고단해지게 되었는지, 그 때 그 사람들이 2009년 올해 몇 살의 어른들이신지.
길지 않은 글, 잘 읽히는 글이니 꼭 읽고 입학하기를, 당장 1학년 1학기 1단원을 배우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혹, 이미 다 읽은 게 아닌지. 그렇다면 철늦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아주 다행이다 싶을 것이다. |
|
가끔은 그런 책이 있다. 너무 유명해서 줄거리를 대충 알고 있어 자꾸 읽기를 미루게 되는 책. 내게 '몽실 언니'는 그런 책이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미루기만 하다가 판화같은 그림에 이끌려 보게 된 '몽실 언니'는 읽는 내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권정생 선생님의 생전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분은 늘 꾸밈없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사셨는데 만약 내가 이런 글을 썼다면, 나는 "내가 그 작가요~~, 왜 그 훌륭한 책을 아직도 안 읽었소?"하고 떠들고 다녔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면서도 우리는 전쟁에 무감각해졌다고들 말했다. 그렇지만 얼마 전 연평도 사건 이후로 이제 우리도 전쟁에 무감각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 '부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하고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은 착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뭉쳐 집단이 되면 서로를 향해 잔인해지게 하고 서로를 죽이고도 분을 품게 한다. 자기가 다리를 못쓰게 만든 그 사람이, 몽실이와 난남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였다는 것을 인민군들이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불쌍한 난남이가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알고 보면 어려운 중에도 쌀 한 줌이라도 나눠 주어 암죽을 끓이도록 해 줬던 이웃들의 도움이 있어서였다. 그런 이웃들이 살고 있던 우리 나라였는데, 전쟁은 참으로 잔인한 것이다. 자선 병원 앞에서 열여섯 날을 거지처럼 비를 맞고 그 옷을 다시 입은 채 말리며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결국은 죽음을 맞게 하는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전쟁의 잔인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읽고 있는 '김대중 자서전'에도 한국 전쟁 얘기가 나온다. 인민군이 지나간 마을에 다시 국군이 와서 사람들을 죽이는 그런 얘기들...... 그런데 역시 소설은 같은 내용도 장소와 인물이 구체적으로 살아움직이니까 훨씬 충격적이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렸을 때 수학여행을 가서 거북이 위에 작은 거북, 그 위에 더 작은 거북이 올려져 있는 기념품을 사온 적이 있다. 나는 조개로 만든 거북이가 귀여워서 사온 것인데, 다섯 마리의 거북이를 보더니 친정 엄마는 제일 밑에 있는 거북이가 불쌍하다고 하셨다. 우리 남매는 다섯 남매인데 마치 제일 아래 있는 큰 거북이가 우리 큰 언니처럼 보인다고 하시면서, 동생들을 다 책임져야 할 운명을 지닌 것처럼 보여 안쓰럽다고 하셨다. 그 뒤로 난 그 거북이들을 귀엽다는 눈빛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몽실이가 딱 그 경우다. 자신도 새 아버지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었으면서 엄마와 새 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동생들을 끝까지 챙겨주는 몽실이. 아빠와 새 엄마 사이에서 낳은 난남이를 등에 업고 다니며 암죽을 먹여 가며 키운 착한 몽실 언니. 우리 딸의 기저귀를 가시면서 친정 엄마가 옛날 얘기를 하신 일이 있다. 옛날(우리 키울 때)에 우리를 업고 다니면 기저귀에 오줌을 싸서 등이 뜨뜻하게 되었다고...... 하긴 그 때 하*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방수 기저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런데 몽실 언니는 이복 동생 때문에 옷이 젖어야 했고, 밤 잠을 설치고 아기를 업은 채 웅크리고 자기도 했다.
몽실은 댓골 영순에게 가는 걸 그만둘 수 없었다. 영득이와 영순이가 날마다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북촌댁이 죽으면서 난남이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던 것처럼, 밀양댁도 몽실에게 무언가 부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난 앞으로도 이 절름발이 다리로 버틸 거야. 영득이랑 영순이랑 그리고 남남이를 보살펴야 해. 영득이, 영순이를 찾아갈 거야. 꼭 찾아갈 거야.'
너무나 가난했던 몽실 언니의 삶을 보면서 후원 아동에게 새해 선물을 보내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 풀죽을 먹기도 하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깡통을 메고 이웃 마을을 다녀야 했던 몽실 언니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의 작은 선물로 그 아이가 새해를 기쁘게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기도와 함께 적은 금액이지만 선물 보내기를 꾸욱 눌렀다.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기아로 죽어간다는데 그 숫자에 무감각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꾸만 무감각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내 힘이 너무 부족함도 느낀다. 몽실 언니를 도운 것은 정부도 이념도 아니었고,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지금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길 바란다. |
|
예전에 보았던 TV 드라마를 생각하며 이 책을 펼쳤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드라마의 내용을 생각했으나, 내게 이 소설은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들의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름이 모두 몽실이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난과, 전쟁, 그리고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애틋하고 고달픈 인생, 헤쳐나가야하는 삶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수없이 울었다.
연수를 받으러 다니면서 전철안에서 자리에 앉아 집중하고 읽는데, 나도 모르게 굵은 눈물 방울이 뚝 떨어진다. 출근길에 어떤 여자가 눈물을 흘리나하는 눈총을 의식하면서 눈물을 닦다가 나중에는 양손을 비벼가면서까지 눈물을 흘리게 된다. 전철에 내려 길을 걸어가며 엉엉 울어제끼고는 가슴 속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읽게 되었을까? 집의 책꽂이에도 꽂혀있고 학급문고에도 비치가 되어있던 책인데, 왜 그동안은 손에 잡질 못했을까를 아쉬워하면서 2학기에는 울반 아이들에게 반드시 권해보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 솜씨에 탐복하면서 어쩌면 글을 이렇게도 편안하게 잘쓰셨는지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
| 권정생의 『몽실 언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몽실이의 그 새까만 단발머리가 아닐까 한다. 스무 살이 지나서야 『몽실 언니』를 넘겨 본 나에게도 신기하게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이미지만큼은 늘 또렷하게 기억되었으니까 말이다. 이야기의 주된 배경은 우리 나라가 남북 전쟁을 겪은 1950년대 전후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온갖 고난을 겪는, 어쩌면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될 법도 한 어린 몽실이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 질문의 답은 이 말로 단번에 설명이 될 듯 하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없다." 『몽실 언니』를 쓰신 권정생 작가의 말이다. 나 또한 책을 읽는 내내 슬프지만, 늘 고생만 하는 몽실의 상황이 너무 가엾긴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 편으로는 뭔가 뭉클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읽으면서도 '신기한 매력'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후에 작가의 이 말을 읽었을 때는 '정말 그렇구나' 하고 한없이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 아버지의 박대로 인해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그것이 다 자신의 팔자라고 말하는 아이, 홀로 살아가기에도 벅찬 상황이지만 결코 배다른 동생 난남이를 포기하지 않는 애정, 새로 시집간 어머니가 낳은, 아버지 다른 동생들까지 돌보아주는 몽실이는 그야말로 상처받은 많은 이들을 온몸으로 보듬어 주는, 그저 '따뜻한' 아이라는 표현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는 아이들은 몽실이의 삶에 감동을 느끼고, 사랑에 인색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또한 오래 전,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겪었던 6·25가 무엇인지, 또 한 민족간에 벌어진 비극적인 이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몽실 언니』에 비춰진 남과 북의 대립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게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국군이나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단다." 몽실이를 잠시 스쳐간 인민군 언니의 말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그 동안 우리의 상상 속을 지배해오던 '공산당'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민군이 마을에 주둔하고 있을 때, 몽실이가 별 생각 없이 달아놓은 태극기를 얼른 내려주는 인민군 청년이나, 난남이에게 먹을 것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는 몽실이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인민군 언니까지…. 순간순간 고등학교 때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책을 읽으면서 내가 받았던 충격이 떠올랐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있어 공산당이란 무조건 나쁘고 잔인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으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고, 또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갔다는 등의 묘사는 나로 하여금 한동안 '무엇이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몽실 언니』또한 공산당에 대한 아이들의 고정된 인식을 깨뜨리고, 다른 한 편으로도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어른들에게 있어 '태백산맥'이 아이들에게는 '몽실 언니'가 되어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사랑을 잃지 않는 아이. 몽실이는 우리에게 시대를 뛰어넘어서도 여전히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
|
7살무렵부터 몽실이는 배고픔과 살아간다는것에 대해 처절하게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
| 정말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 몽실언니란 이 작품에 나오는 몽실이는 너무 불쌍합니다. 아빠에게 깔려서 다리 한쪽을 잘 못쓰게 되고, 그 때문에 여러가지로 피해도 보고...... 어쩜 인생이 그~렇게도 파란만장할 수가 있나요?! 그런데 쫌 아쉬운 건, 몽실언니 원작에서 내용이 좀 짤렸다는 것이...... 저는 완벽한 원작을 보고 싶었는데...... 저희 엄마한테 몽실언니 봤냐고 물었더니, 엄마 시대엔 정말로 유명한 책이었데요~ 드라마로도 했었다고 하더군요~! 몽실 언니의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다운 책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
| 몽실언니를 읽었다. 몽실언니는 힘든 6`25 전쟁을 꿋꿋하게 살아온 우리나라의 진정한 언니이다. 나는 몽실언니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집이 가난하여 양아버지를 새로 맞아들이고, 양아버지에게 맞아 한쪽 다리가 절름발이로 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몽실언니는 어린 동생들과 함께 힘든 6`25 전쟁을 이겨온것이다. 잠시 줄거리를 말하자면 아까 말했던것과 같으며 양아버지와 살다가 고모의 손에 이끌려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가 새어머니 북촌댁을 맞고, 북촌댁은 몽실언니에게 친절했으나 몽실언니의 동생만 낳고 죽어버린다. 그리고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서 간신히 살아돌아오긴하셨으나 얼마 않있어 돌아가 신다. 그래서 몽실언니는 동생과 함께 다른 사람의 손에 길러지는데, 나는 그러면서 겪은 고생의 끝없는 한탄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고 몽실언니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든다. 왜냐하면 북촌댁은 착하고, 친절했어도 일찍죽고.. 양아버지는 몽실언니의 한쪽 다리를 절름발이로 만들어놓고서도 그렇게 힘든 인생은 살지 않기 때문이다. 몽실언니는 친동생 돌보랴.. 북촌댁이 낳아준 동생을 기르랴..너무 힘들것이다. 나는 그런것을 생각하면... 우리집이 가난하지않고, 내가 6`25 때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거의 내가 하겠다고 맹세한 것도 잘 지키지 않고, 하나뿐인 친언니하고도 잘싸우는데, 그럴때 마다 친동생이 아니어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길러낸 몽실언니와 그 힘든 6`25 전쟁을 꿋꿋하게 살아온 언니를 생각하면서 나도 언니와 사이좋게 지내고 모든일을 성실하게 해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진정한 언니.. 몽실언니는 후세에도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
|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버리고 가난을 이기지 못해 재가한 어머니! 폐병으로 동생을 낳다 돌아가신 새 어머니!......... 몽실언니는 우리 역사속의 무거운 돌 덩어리인 6.25를 가장 잘 그려낸 가슴 아픈 이야기이며, 온 몸 희생하며 살아온 우리 할머니, 어머니세대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구한 운명이라기 보다, 너무나 가난했기에 짊어져야 했던 운명같은 삶! 그 삶 속에서 겪어야 했던 고난은 우리할머니, 어머니,이웃의 모습이었기에 몽실언니를 들고서부터 놓을때 까지 작가도 울고, 독자도 운다. 괴롭더라도 참고 열심히 살면 될거라고, 어떻게 사는 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되는 것이라는 삶의 교훈을 몽실언니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또한 부모의 사랑, 이웃의 사랑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만한 큰 힘이 되는가도 몽실언니에서는 절실하다. 어머니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누군가의 사랑이 그리워 질때 몽실언니는 가슴뭉클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우리곁에 다가 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