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크리스마스이브 머리맡에 놓여질 선물을 기대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싶다. 차츰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더 이상 산타할아버지도, 귀신도, 영원한 사랑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아버린 영악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어른들이 하늘을 날 수 없는 이유는 몸이 무거워져서도, 나이를 먹어서도, 나는 법을 몰라서도 아니다. 단지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피터는 이야기 한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어찌 보면 참 서글픈 말이다. 어른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변해버린 내 모습이 요즘 따라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듯 기분이 참 묘연했다. 어렸을 때 일들이 조금도 생각나지 않아서 가슴이 아플 정도다. 어렸을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어떤 일들을 꿈꾸며 어떻게 살았던가를 모두 잊어버려서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 절대 동심을 믿지 않는, 냉정한 모습의 지금의 나를 결코 원하지는 않았을 텐데. 수 없이 많은 영화와 만화를 통해 친숙했던 「피터 팬」의 원작을 읽어 본 건 순전히 원작과 영화가 어떻게 다를까, 하는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읽는 내내 친숙하고도 익숙한 캐릭터의 형상이 계속 머릿속에 헤엄치며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녹색 의상을 차려입고 그림자를 찾던 피터, 하늘을 날아 네버랜드로 떠나던 웬디와 마이클, 존, 피터를 사랑하는 새침데기 요정 팅커 벨, 그리고 영원한 악당 후크 선장, 똑딱 똑딱 시계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거대한 악어.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는 친숙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이토록 아련하게 느껴지리라고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기에 스스로에게 놀랐다고 해야 할까. 읽는 내내 변덕스러운 내 자신조차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들추어내는 듯한 친근감이 들었다. 그 모든 게 사라져 버렸던 지난날들을 다시금 회상하게 해주었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모습의 나.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문득 피터 팬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라는 질문의 대답은 죽을 때까지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나중에 나이가 든 웬디를 찾아온 피터에게, 그녀가 했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난 하늘을 날 수 없어. 나는 법을 잊어버렸거든.’ 하늘을 나는 법을 잊어버린 어른이 된 웬디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그녀의 딸이 다시 딸을 낳게 될 때까지 변함없이 창문 밖에는 젖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소년 피터를 만나게 된다. 그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그렇게 늙어 가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삭막하고 메마른 감성을 지니고 살아갈지도 모르고, 더 이상 어렸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는 어른으로 살아가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되겠지. 그래서, 늙고 싶지 않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네버랜드가 있다면 나도 그곳으로 가서 피터와 함께 영원한 아이로 살아가고 싶다. 우리 인생에서 12살 이후로 일어나는 일들은 별로 중요한 게 없으니까. 「피터 팬」의 완역을 읽어보기는 처음인데, 어른이 된 후 다시 읽는 이 기분은 정말 특별하고 애틋했다. 나도 별 수 없는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그 옛날 내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나서 참 마음이 아팠다. |
| 난 이 ''완역본''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싫어한다. 원래 책이 출판이 되면 작가가 처음 쓴 그대로를 가져와서 출판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과 아동용의 경우 유독 이런게 심한데, 뭐.. 이런 감정은 접어두고 아무튼 피터팬의 완역본, 즉 28년만에 드디어 피터팬을 읽었다. 어릴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서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가슴에 안겨서 아니면 앉아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뭐 어떤 자세라도. 요즘 어린 아이들은 구연동화다 뭐다해서 아이들을 왕창 앉혀놓고, 아주 실감하게 이야기를 듣기도 하더라. 더 나아가서 어린이 인형극이나 역할극, 또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의 특징이 뭔 줄 아는가? 우리 어른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모두가 아이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 간다는 거다. 연극이라도 객석의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보며, 구연동화를 하더라도 ''이랬어요. 저랬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하며, 할아버지의 경우도 물론 그렇다. 모두 읽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대 읽어 주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매튜 베리''는 글을 쓴게 아니라 말로써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들 전지적작가 시점이라고 하는 그것이다. 아니 그거로는 부족한 우리나라 판소계 소설과 같이 화자가 직접 개입을 하여 서술한다고 하는게 더 정확하겠다. 한편, 이런 서술방식과 더불어 배경을 치밀히 묘사를 하지 않아 그 모습과 모양을 이해하려면 상상력을 엄청 발휘 해야 한다. 물론 동화 소설이기에 어린이들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피터팬을 읽기에는 좀 허무하고 책 자체의 재미를 별로 못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솔직히 원채 많은 버전으로 피터팬이 개작, 창작, 재해석등이 되어서 원작 자체만으로 보면 좀 허무하고, 이야기가 단조롭다.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피터팬의 중심줄거리 더 이상, 이하도 아니어서 이 완역본을 본다고 했을때 지금까지 몰랐던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져버린건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그 동안의 수 많은 다양한 줄거리의 개작된 피터팬에 찌들려서 원작 피터팬의 진정한 맛을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건 원작의 세계(네버랜드)가 무한한 상상력을 줄 수 있기에 많은 내용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책에만 나온 해적, 인어, 인디언, 동물, 악어등이 있지만, 네버랜드에 또 뭐가 있을지 상상만 하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피터팬은 1900년 초에 나온 아동용 소설이다. 2000년대의 해리포터와 맞먹을 수 있는 소설이다. 아니 해리포터가 피터팬과 맞먹는 소설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 당시에도 피터팬은 엄청 인기가 있었고, 물론 지금까지 인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왜 갑자기 해리포터와 비교를 하냐면 둘이 판타지 소설이고, 또 그들만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피터팬에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왜 피터팬은 시리즈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피터팬도 이 작가의 다른 소설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피터팬은 <피터와 웬디="">라는 소설이고, 이 이전에 <켄징튼 가든의="" 피터팬="">이라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피터와 웬디=""> 그 이후에 작품이 없다. 그 당시에도 인기가 많았으므로 <피터와 불의="" 잔="">, <피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와 같은 이전의 작품을 뛰어넘는 아주 흥미진진한 작품을 왜 안 썼나 모르겠다. 후속작이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상상을 펼쳐 <피터팬의 모험="">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냈지만, 그래도 원작자가 썼다면 네버랜드를 넘는 또다른 세상을 썼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 마지막으로 피터팬에서 유일하게 우스깡스러운 모습으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웬디의 아빠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엄나는 자상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아빠는 신경질적이고, 독단적이고, 마지막에는 개집에서 살겠다고 할 만큼 엉뚱하게도 나온다. 작가의 어린시절에 겪은 아버지의 안 좋은 모습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후크의 해적들보다 더 못난 사람으로 나오는게 웬디의 아버지다. 왜 이런 모습으로 그려야 했을까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의 사물은 거의 대부분 의인화되어 나온다. 웬디의 개 ''나나''도 그렇고, 별, 창문, 심지어 그림자, 바람등등. 그래서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펼치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솔직히 나이먹고 그것을 읽으려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처럼 마음으로 읽는게 아니라 머리로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피터팬은 어릴 때 읽어야 하는 거다. 완역본이라고 해서 많이 기대를 했지만, 그 만큼 많이 실망도 했다. 내가 모르는 그 무언가를 읽고 싶었지만, 내가 아는 그것이 전부라는 사실이 이제 피터팬에 대한 상상력을 더 이상 키우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몇 가지 아기자기한 숨겨진 사실들(예를 들면 요정들은 세상의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웃을때 생긴다는 사실같은)을 안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나이들어 좀 읽기엔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동화책을 읽고 이해하는 나이가 될 때 난 피터팬을 읽어 줄 것이다. 아니 작가의 이야기를 그래도 들려줄 것이다. 피터팬이 나이먹지 않고, 계속 어린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있는게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피터팬의>피터와>피터와>피터와>켄징튼>피터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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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고작 피터팬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훗. 처음 웬디가 어떻게 피터팬을 만났는지는 아는지.. 실제 피터팬이 순수하기만 한게 아니라 정말 5살짜리 아이같이 눈에 보이는 거짓말에 단순한 장난에 허풍에 초단기 기억력의 소지자 라는건 아는지~ 전지적 작가 시점인듯하면서 또 3인칭 시점인 듯하기도 한.. 피터팬의 묘사와 나는 방법, 요정이 태어나는 시기.. 네버랜드의 위치... 전부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라는게 참 안타까웠다 좀 더 어렸을때 봤다면 정말 믿어버렸을것 같은 내용들 잔인한 표현하나 없이 해적을 15명이나 죽이고 부모님 마음 찢으며 몇달을 네버랜드에서 살다온 아이들 결국엔 피터팬 빼고는 전부 어른이 되어버려.. 날 수 없게 된 현실.. 그래도 피터팬이 두려워 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뿐이라는게.. 참.. 부럽기도 하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웬디의 딸이 또 그 딸의 딸이 네버랜드에 살짝 놀러 갔다오는 동안 계속 피터팬은 피터팬일 뿐인라는 것.. 후크는 의외로 매너남이라는 것 ㅋㅋ 아는 내용을 또 새롭게 읽어 본다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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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지 않는 영원한 소년 모습의 멋진 피터팬을 동경하지 않는 소녀가 있을까. 웬디의 딸이 그리고 그 손녀가 대를 물려가며 피터팬과 봄맞이 숲속 대청소를 하러 네버랜드로 날아간다니 웬디의 입장에서는 어린시절의 추억쯤으로 여길 작은 사건이라고 애써 위로삼아 말할지 모르지만 분명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이 어찌 한탄스럽지 않을까. 한살 한살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그래서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듯 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후크선장에게 언제나 멋지게 골탕먹이는 피터팬, 네버랜드의 잃어버린 아이들은 후크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피터팬과 함께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그러나 해적들을 죽이는 모습은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행동은 어른과 다를바 없으니 내 아이들에게 피터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이 부분이 꺼려지지 않겠는가. 해적 하나씩 죽을때마다 숫자를 헤아리는 슬라이틀리의 모습을 보라. 전혀 순진한 아이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후크가 악당이라도 말이다.
후크는 건방진 모습을 보이는 피터팬이 밉고 싫다. 그래서 끊임없이 괴롭히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데 늘 한발 앞서는 피터팬을 당해낼수가 없다.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웬디와 그녀의 동생들인 존, 마이클은 피터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향하게 된다. 이순간이나 네버랜드에 생활하는 동안에도 오랫동안 부모님 생각은 나지 않고 그저 신나는 모험을 할 수 있어 즐거울뿐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듯이 내레이션을 하는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책을 읽는 나도 그를 통해 아이로 돌아가 할머니께 옛날 이야기를 듣는듯 마음이 들뜨게 된다. 간혹 네버랜드의 모험이야기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서 해 주는게 문제긴 하지만. 설명하듯이 이야기 하기에 조금 지루한것을 빼고 다 괜찮다.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은 싫고 아이들끼리 네버랜드에서 모험을 즐기면서 사는것은 좋은데 한가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피터팬이 웬디의 엄마 달링부인이 들려주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조각조각 듣고 아이들에게 해주자 무엇보다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웬디가 '잃어버린 아이들'의 엄마가 되니 아빠는 피터팬으로 어린시절 하는 엄마, 아빠 놀이가 되어 버린다. 어른들 흉내를 내는 웬디와 피터팬의 모습은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미래가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은 피터팬과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야 하는 웬디는 이루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닐테니까. 그런면에서는 피터팬을 좋아하는 요정 팅커 벨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존재이지만 피터팬을 사랑해서 웬디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말은 여기에도 해당이 되는것 같다.
후크가 약병에 넣어둔 독약을 피터팬 대신 마시는 팅커 벨의 모습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작은 요정이라도 무시할 사랑이 아니다. 원래 후크의 신분은 해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품격을 너무나 중시하는 명문 사립학교 출신이라니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 신분이야기가 나온다. 품격의 극치는 품격이 있으나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를때라고 하니 피터팬의 모습이 후크에겐 품격을 제대로 지닌 인간으로 보인다. 그것이 얼마나 얄미운지. 사실 네버랜드에서 품격이야기가 나오다니 옥의 티다. 해맑은 아이들이 있는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
네버랜드에선 피터팬이 왕이다. 그가 지시하여 연극을 하고 뭐든 명령을 내리면 복종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던 악을 물리치고 가슴 따뜻한 피터팬의 모습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이다. 집으로 다시 돌아갔을때 닫힌 창문을 보고 도저히 집안에 발을 디딜 수 없어서 상처받았다고 믿는 피터팬은 조금전의 기억도 희미하기에 이 기억이 사실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것이 그가 네버랜드를 떠나지 않고 영영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조금 억지스러워도 이해해야 한다. 아이적엔 그때의 절실함이 있는 거니까. 유모차에서 떨어진 '잃어버린 아이들'이 각자의 부모의 곁으로 가지 않고 달링부부와 웬디, 존, 마이클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보기 좋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달링 부부의 마음이 느껴지니까. 피터팬이 외롭게 보일지 몰라도 "난 젊음이고 기쁨이다"라며 후크 선장앞에서 당당히 이야기하며 요정, 인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리기에 난 그저 구경꾼이지만 피터팬이 영원이 아이로 남아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