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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세 자매는 아주 깔끔했다. 엄마 돼지한테 가정교육도 아주 잘 받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아기돼지 세 자매는 사실 아기가 아니다. 결혼할 나이가 된 어른 여자 돼지다. 어느 날, 엄마 돼지는 세 자매 돼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너희도 이제 통통하게 살이 잘 오른 예쁜 돼지 아가씨가 되었구나. 자, 이 금화 주머니를 하나씩 받아라. 가서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아보도록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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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며 헤어진 세 자매는 서로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났다.
여기서부터 『아기돼지 삼 형제』와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떠날 때 엄마 돼지는 금화 주머니를 준다. 원작이 무작정 길을 떠난 돼지 삼 형제가 집 지을 재료를 얻어 집을 지었던 것에 비하면 돼지 세 자매는 금화를 들고 떠난다. 그 금화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사는 거다. 어느 정도는 요즘 사회에 맞게 구성된 게 아닐까 싶다. 돈이 없으면 뭘 못하잖아. 누가 집 지을 재료를 그렇게 준다고? 그렇게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의 행보가 기가 막힌다.
편안한 걸 좋아하는 첫째 돼지는 가진 금화 모두 털어서 커다란 벽돌집을 산다. 어느 날 아침, 첫째 돼지가 창밖을 내다보니 멋지게 차려입은 돼지 한 마리가 청혼하는 거였다. "아리따운 아가씨, 문 좀 열어 주세요. 제가 귀부인이 되게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돼지는 문을 열어주면서 생각했다. 예의 바르고, 돈도 있는 것 같고, 마음에 드니까 저 정도면 좋은 신랑감이라고. 그러나 그 돼지는,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다. 첫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지.
둘째 돼지는 가진 금화 반만 들여서 나무로 된 예쁜 집을 샀다. 첫째 돼지 때와 마찬가지로 멋진 돼지의 청혼을 받는다. 잘생기고 힘도 세어 보이고, 겨울에 땔나무 걱정은 없겠다는 판단에 그 돼지를 좋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돼지의 탈을 쓴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결론.
이제 셋째 돼지가 궁금하겠지? 늑대는 돼지 가면을 쓴 채로 보리수나무 그늘에 누워 쉬고 있었다. 돼지 두 마리로 포식하고 나니 배가 불러서 좀 쉬어야겠다. 소화도 시키고 낮잠도 좀 자려고. 그런 돼지를 지켜보는 늑대 한 마리가 있었으니, 굉장히 사나워 보인다. 상황이 역전된 거다.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늑대 가면을 쓴 돼지'에게 자기가 사실은 돼지가 아니라 늑대라고 설명하느라 애를 쓰는데, 그에 '늑대 가면을 쓴 돼지'가 말한다. "그래? 저기 가서 지푸라기로 만든 집에 숨어 있는 셋째 돼지를 잡아먹으면 네 말을 믿어 주지."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지푸라기 집으로 뛰어들면서 셋째 돼지를 후식으로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어디 셋째 돼지 캐릭터가 그렇게 쉽게 잡아먹히는 것이더냐. 지푸라기 집은 셋째 돼지가 늑대를 잡기 위해 놓은 덫이었다. 그렇게 늑대를 포획한 셋째 돼지는 늑대를 사로잡았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래서인지 셋째 돼지와 결혼하겠다는 돼지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이... ^^ 하지만 셋째 돼지가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훨씬 재밌게 읽힌다. 글로 보면 A4 종이의 절반이나 채워질까 하는 정도의 분량인데, 그 흐름이 통쾌해서다. 독립하라고 집에서 내보냈던 돼지 삼 형제와는 아주 다르다. 돼지 세 자매에게 신랑감을 구하러 내보낸다는 설정은 참 구닥다리 같지만, 그 여정에서 보이는 돼지 세 자매의 태도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비춘다. 외모나 태도로만 판단한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이 정도면 뭐, 하는 계산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거다.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으니, 늑대의 손이나 발만 보았어도 돼지가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반명 셋째 돼지는 늑대가 쓴 가면을 똑같이 이용한다. 늑대가 돼지 가면을 쓰고 돼지를 잡아먹었으니, 돼지도 늑대 가면을 쓰고 늑대를 잡아먹어야지!
![]() (늑대를 포획하고 난 후의 셋째 돼지 표정 좀 봐라. 저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돼지 자매 두 명은 죽었지만, 신랑감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가 얻은 교훈은 당하지 않고 세상을 사는 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먼저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 역시. 게다가 마지막 반전은 참 대단했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났던 여자 돼지에게 좋은 신랑감을 찾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나.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처음 길을 떠난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는 거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난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신랑, 결혼이라는 것은 삶을 차지하는 많은 의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니까. 여자의 행복이 결혼만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나, 어떤 남자를 선택하느냐에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나 요즘 세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개념은 아니니까. 사실 이건 여자 남자 따로 놓고 볼 일은 아닌데 말이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결혼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건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인생의 법칙이 아니라는 거다.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파고드는 메시지가 강하고, 통쾌한 결말에 큰소리로 웃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이야기다. 이 짧은 동화 한 편으로 요즘 시대의 많은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뭔가를 해결하고 찾아가는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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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저희집 막내 녀석이 아직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나이도 아니면서 단지 늑대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들고 오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사는 오로지 늑대뿐이지만 얼마 전부터 말문이 제법 트여 "늑대? 늑대!"하며 엄마에게 자신의 말을 확인 받으려고 연신 뒤에 앉은 엄마를 돌아다 보며 "오, 그래. 늑대네!"라는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요.그 옆에서 저희 집 둘째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희죽거리며 그런 엄마랑 책을 번갈아 쳐다봅니다.아마 이 녀석은 가면 속의 주인이 늑대인지 돼지인지를 엄마가 물어주길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전 아이들과의 이 책의 읽기에 한창 몰두하며 녀석들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 듯이 행동하고 대답하지만 항상 이 책을 읽을 때면 나에게 딸이 있었다면 난 이 책을 통해 나의 딸이 무엇을 얻게 되길 바랄까?라는 물음을 던지지요.또한 그 반대 급부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 그들의 반쪽을 만나게 될 때 어떠한 가치로 그들과는 또 다른 성인 여성에 대해 규정짓게 될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답니다. 지금은 제 의식 속에 여성과 함께 남성도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로 자리매김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여성의 피해의식이 더 큰 것은 부인하기 힘들거다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며 제가 자라며 받았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원망들을 정당화시켜 보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아주아주 사소한 넌 남자애가...넌 여자애가....라는 말로 시작 된 일련의 거침없고 다분히 가학적인 말들은 오히려 그 사소함에 비해 일으키는 파장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눈 뜨게 되는 아이들에게 또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의 영혼에 그 말들은 한마디로 찬 물을 끼얹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정신을 화들짝 깨게하는 말들이 분명하니깐요.이런 말들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로 서서히 편입되며 자신들의 성의 정체성에 대해 삐뚤어진 가치를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특히 아들을 둔 엄마들이 꼭 삼가해야 할 말은 " 넌 남자애가 왜 찔찔거리며 우냐?"라던가 "남자는 눈물을 함부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부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자라나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남의 이목을 더 중요시해 결단력없는 사람이 된다는군요.기분이 나빠도 좋은 척 한다는 것은 어쩜 슬픈 일이잖아요.그리고 여자 아이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신데렐라 콤플랙스에 대해 말이 나온지가 벌써 오래 전의 일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우리 엄마들은 딸아이를 위해 신데렐라를 사 주고 숲 속의 잠자는 공주를 필히 읽어야할 명작으로 이해하며 아무 주저없이 아이들 앞에 내밀고 있으니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신데렐라의 흡인력은 굉장한 것이니 내 아이가 당당한 주체로 서길 바라는 엄마라면 반드시 이런 그림책은 읽고나서 아이와 신데렐라의 삶이 무엇이 문제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아이들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객관화시키는 능력이 약하니 엄마의 적절한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전 그림책 아기 돼지 세 자매와 종이 봉지 공주는 여성의 힘으로 자신의 새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점에서 신데렐라나 여타 공주풍의 그림책을 대신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 돼지 세자매 이야기는 이렇답니다. 돈 많고 멋진 남자를 만나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며 그런 남자에게 선택당하기를 바라는 언니 돼지들은 결국 늑대에게 잡아 먹히게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슬기롭고 당찬 막내 돼지는 많은 남자들의 우상이 되어 자신이 결혼할 상대를 선택하게 되지요. 막내 돼지가 어떤 돼지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으론 아마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더욱 건강하게 채워나갔을 것 같네요. 돌이켜 보면 우리 중 누구나 한번쯤은 신데렐라를 꿈꾸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죠. 이제 나이가 들어 그 꿈이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노력없이 얻어지는 이런 헛댄 기대나 망상은 일찍부터 단절시켜야 되겠죠. 정당한 노력의 댓가에 정당한 값을 받는 당당한 아이로 키우자고요. 공주풍 왕자풍의 아이는 사양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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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세 자매
프레데릭 스테르 글 그림, 최윤정 옮김 파랑새 어린이
우리가 아는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게 한다. 맞다. 아기돼지 삼.형.제. 그런데 여기서는 세.자매.이다.
그동안 봤었던 '아기돼지 삼형제'의 패러디 동화 - 아기돼지 세마리/ 데이비드 위즈너,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이야기, 아기늑대 세마리와 못된 돼지 - 를 보며 원 이야기 이상의 감동을 주었기에 이번 책도 기대하며 보게 되었다. 왜 아기돼지는 삼형제일까. 세자매라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외부적인 튼튼한 집만 있으면 괜찮은 걸까 익숙한 이야기 뒤집어보기, 아마도 작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 같다.
아기돼지 세자매는 결혼할 시기가 되어 엄마로 부터 금화가 든 주머니를 하나씩받아 각각 자신의 신랑을 찾아 떠난다. 첫째돼지는 그 금화로 튼튼한 벽돌집을 지었다.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돼지 - 사실은 돼지의 탈을 쓴 늑대 - 에게 속아 잡아먹히고 둘째 돼지도 나무로 집을 지어 놓지만 첫째돼지와 같은 운명에 처한다.
셋째돼지는 첫째,둘째 돼지를 잡아먹은 늑대에게 늑대의 탈을 쓰고 다가가 셋째돼지를 잡아먹으라며 자신의 지푸라기 집으로 유인해 늑대를 잡는다! 늑대를 잡은 돼지라는 소문은 셋째 돼지에게 끊임없는 구혼자를 선물로 주었고 말이다!
* '아기돼지 삼형제'와 같이, 익숙한 이야기를 그저 알고있다는것에 만족하며 있었다면 이와같이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글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각도로 생각해보기! 또 하나의 패러디 동화를 읽으며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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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돼지를 안전하게 지켜주었던것은 벽돌집도, 나무집도, 지푸라기 집도 아닌 그녀가 지닌 지혜와 용기였다. 늑대의 탈을 쓰고 진짜 늑대에게 다가가 지푸라기 집을 유인해 잡을 생각을 하다니!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나오는 이야기 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 외부를 철옹성처럼 튼튼하게 막아줄 그 무언가가 있다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금수저'가 되었든, '권력'이든, 강대국의 비호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첫째 둘째 돼지 자매들처럼 적에게 결국 문을 열어주는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그 든든한 방어막이 있음에도 들려오는 목소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면 스스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러면, 성 안에 가만히 있는것이 능사인가. 셋째 돼지는 아니라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꾀를 내어 먼저 적에게 다가가 두려움의 대상을 잡아버린다!
외부환경이 얼마나 든든한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 체념하고 낙담하는 것은 옳지않다. 듣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 구체적인 방안이 떠오르면 행동할 수 있는 용기.
아기돼지 세자매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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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돼지 삼형제의 얘기를 줄줄 외우고 ''첫번째 돼지가 집을 짓는데...''로 시작하는 노래도 줄줄 외우는 우리 두 아들에게 이 이야기는 조금 생소한 돼지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아들들 ㅋㅋㅋ대며 너무 좋아했다 아직 세상의 악과 선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단지 명작동화라는 둥 필독서라는 둥으로 악과 선이 분명한 그런 이야기를 읽어 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곤 했다. 이 책에도 역시 늑대는 나쁜 역할이다. 하지만 돼지가 그냥 당하기만은 하지 않는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 되고 그것이 여자돼지이다 대부분의 동화에서는 남자가 정의로운 역할을 많이 하니까 어느새 그런 것에 익숙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점에서 이 동화책은 강력 추천이다 티내지 않게 그러나 끊임없이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위에 항상 두고 보려고 한다 |
| 너무나 눈에 익은 "아기돼지 삼형제"가 아니라 "아기돼지 세자매" 제목부터가 넘 잼있어서 도서관에서 확 빌려온 책. 아니다 다를까.생각부터 기막힌 이야기책이다. 아이도 혼자서 쑤욱 읽어내려간다.,무순내용인지 들려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한번 읽어보란다..짜슥..좀 가르켜주지 아기돼지 삼형제의 형식을 그대로 패러디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에게 찬사를.. 이 책이 뭐 여성의 지위를 상대적으로 높이고 뭐 이런얘기는 어른들이 읽는 시각에서 잡아낸 좋은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어서 재미있다고 느끼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책은 그 점에서 성공이다...재미있으니까. 군더더기없는 구성에 반복되는 어구들.. 전형적인 옛이야기의 틀속에 새로운 맛을 완벽하게 첨가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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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세 자매를 읽고
옥서초등학교 제1학년 4반 김서연
첫째 돼지는 돈을 많이 써서 벽돌집을 지었어요. 둘째는 아껴서 나무집을 지었어요. 셋째는 돈을 많이 아껴서 짚으로 지었어요. 늑대가 변장을 했지만 알 수 있어요. 얼굴은 돼지 얼굴이지만 발이랑 꼬리를 보면 새카매요. 그런데 첫째 돼지랑 둘째 돼지는 몰랐어요. 대충 보고 들어오라고 해서 늑대한테 잡아 먹혀요. 셋째 돼지는 늑대를 잘 살펴봐서 속지 않았어요.
늑대는 바보 같아요. 늑대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셋째 돼지한테 잡혀서 죽어요. 그래서 늑대는 뒤에는 불쌍해요. 셋째 돼지는 인기가 많아져요. 셋째 돼지는 착하고 용기 있어서 행복해져요. 그래서 착하고 마음씨 좋고 용기 있는 신랑감을 찾을 거예요. 엄마돼지는 맘이 상해요. 첫째 돼지랑 둘째 돼지가 죽어서요. 셋째 돼지때문에 기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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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아기돼지 삼형제의 플롯을 아기돼지 세 자매로 패러디한 작품이다. ('세 자매'도 당당히 '삼자매'로 번역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첫째 언니는 엄마에게 받은 돈을 몽땅 털어 멋진 벽돌집을 사서 살다가 어느날 돈많아 보이는 돼지가 나타나자 신랑감으로 적합하다고 보고 문을 열어주었다가 돼지탈을 벗은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둘째 언니는 돈을 반만 들여 비교적 괜찮은 집을 사서 살다가 잘생긴 돼지가 나타나자 문을 열어주었다가 역시 잡아먹힌다. (난 두 늑대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게 좀 웃겼다.) 막내는 언니들과는 달랐다. 초가집만 장만하고는 오히려 선수를 쳐 늑대를 잡는다. (먹지는 않는다.)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에 대한 소문이 퍼져 수많은 멋진 돼지들이 그녀에게 청혼을 하러 온다. 막내는 언니들처럼 한 마리의 겉만 보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이 많은 멋진 돼지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돈도 아껴썼기 때문에 경제적인 독립성도 지니고 명예도 취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왜 딸들을 여느 돼지 같지 않게 깨끗이 키우고 가정교육도 잘 시킨 엄마가 딸들을 독립시키면서 "가서 너희의 꿈을 펼쳐보렴."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아보렴"이라고 했던 걸까? |
|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죠? 잘 안다구요? 그럼 아기돼지 세자매 이야기도 알고 있나요? 이것 뿐이다. 이책의 소개는....난 좀더 장황한 무엇을 기대했었다.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에 대한 비판과 이책이 나오게 된 배경...같은 것들. 하지만 위와 같은 머릿말로 그냥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줄부터 아주 웃긴다. -아기돼지 세자매는 안 더러웠어요! 이다. 돼지는 더럽다는 상식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 아기가 아님을 말해주는 데서 기존의 ...삼형제 책을 뛰어넘는다.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았대요, 또는 멋진 돼지와 결혼해 잘 살았대요, 하는 식의 결말은 더더욱 없다. 죽을 돼지는 죽고, 살아남은 돼지는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작가가 나서서 돼지들의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결말이 확실히 나지 않는 것이 더더욱 명쾌하고 값져 보인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상상해 보게 하는 힘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혼자 살아남은 막내 돼지처녀는 앞으로 어떤 신랑을 만나게 될까?하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주 재미나지 않겠는가? |